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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Nov 05.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265

10장 4일째

265.

 아직도 여전히 두려운 마음이 일었다. 어릴 땐 단순히 그 뾰족하고 긴 바늘이 무서웠지만 어른이 되어 갈수록 단순함에서 오는 두려움보다는 좀 더 확대된 공포가 그 속에 있었다. 그렇다고 마동이 선단 공포가 있다는 말은 아니었다. 주사의 가장 큰 두려움인 주사쇼크에 대해 사람들은 무지했다. 병원에서는 환자가 조금만 아프면 감기를 낫게 해주는 강력한 ‘주사 한방’이라는 처방을 의사들은 그동안 공공연하게 해오고 있었다. 환자들은 의사의 말이라면 그저 믿을 수밖에 없었다. 수면 위로 올라온 주사쇼크로 인한 사고사나 장애가 찾아오는 경우는 미세한 부분이었고 대부분 의료분쟁에서도 환자는 패소하고 말았다. 뒤처리와 위생에 관한 업무처리에 대해서 일반인은 알지 못했다. 주사가 의미하는 바는 강압과 질서가 있다는 것이다. 하나의 상징은 여러 개의 구체성을 만들어낸다. 주사는 주사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의 회수, 빅브라더와 의료기관의 협착을 말해주었다. 그 속으로 들어가면 프랑스의 지하도로보다 더 세밀하고 복잡하게 뻗은 밀착관계가 있어서 뿌리를 걷어내기는 불가능했다.


 주삿바늘 같은 쇠붙이보다 큰 쇠붙이에게 다가가는 것이 마동에게는 수월했다. 변종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었고 변종이 아니라고 해도 무거운 침묵 속에 들어갈 뿐이다. 마동은 거대한 쇠붙이에는 다가갔었다. 철길, 송전탑 같은 거대한 쇠붙이는 마치 로봇과  흡사했고 손을 닿아보면 그만의 실체와 세계가 느껴지기도 했다. 자신과 가까이 있다는 기분은 유구했다. 거대한 쇠붙이는 높은 곳에서 또는 아주 먼 곳에서 마동을 긍휼히 바라보았다. 주삿바늘은 마동에게 거리를 두게 만들었다. 마동은 성인이 되면서 병원에 가 본 적이 없었다. 지금까지는 그래 왔다.


 분홍 간호사가 소리 없이 나간 후 마동은 조명을 받아서 더 붉게 보이는 주스 병을 집어 들었다. 눈을 떠서 두리번거렸을 때 주스는 이 방안에 단언하건대 없었다. 주스는 마동이 잠깐 눈을 감은 사이 어딘가에서 누군가로부터 아무도 모르게(마동도 모르게) 테이블 위에 놓였다. 눈에 익은 주스다. 뚜껑을 열고 마동은 벌컥벌컥 마셨다. 목으로 주스가 넘어가는 느낌이 좋았고 주스를 마시고 나니 배가 부르고 무엇보다 그 맛에 상당히 놀랐다. 이건 굉장한 맛이다,라고 밖에 할 수 없었다. 주스를 마실수록 욕구가 올라오고 몸의 구석구석으로 실핏줄을 타고 힘이 전해졌다. 기존의 주스보다 맛있었다. 주스에서는 철분의 맛이 혀가 아릴 정도로 강하게 났는데 그 자극에 마동은 흥분했다. 과즙도 아니었고 육즙도 아니었지만 신선하고 깨끗하고 날것의 맛이었다. 처음 맛보는 맛이라 자세하게 설명은 안 되지만 월급을 통틀어 한 번에 사 먹을 수 있는 요리의 몇 배나 되는 맛이었다. 마동은 1리터 정도의 주스를 마시고 나니 다리에 힘이 들어가고 팔다리가 제 것처럼 움직였다. 몸은 가벼웠고 그 탄력에 침대에서 뛰어서 바닥에 착지를 했다.


 이 방은 내과 복도의 여러 개 문중에 하나를 열고 들어온 방이었다.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먼치킨 마을의 한 집처럼 작고 아담한 곳으로 용도는 도무지 알 수 없는 방이다. 수면실과 또 달랐다. 묘한 의사와 묘한 분홍 간호사가 운영하는 묘한 내과 안의 묘한 방일뿐이다. 단지 그것뿐이다. 마동의 머릿속 사고는 이미 어느 시점에서 조금씩 삐거덕 거리기 시작해서 지금은 완전히 멈추었다. 그렇게 표현해도 무관했다.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얼굴 윤곽도 기억이 나지 않았고 하루 전의 일들에 대한 기억도 사고가 되지 않았다. 작은 그림자들이 마구 밀려 들어와 머릿속 기억 회로를 뒤죽박죽으로 뒤엉켜 놓은 것 같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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