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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Nov 06.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266

10장 4일째

266.


 “그래요, 한결 몸이 가벼워졌을 겁니다. 이제 어떠세요?” 신뢰감이 묻어나는 목소리의 의사였다. 이 작은 방에 의사의 목소리는 하나의 선율처럼 방 안에서 물처럼 흘렀다가 바닥에 가라앉았다.


 “어떻게 된 일이죠?”마동은 자신의 목덜미를 손으로 문질렀다. 그 뜨겁던 기운이 사라져서 다행이었다. 여자에게 호감을 불러일으키는 얼굴을 지닌 의사는 마동의 동공에 플래시 불빛을 비쳐보고 반사를 확인했다. 그리고 여기저기를 훑어보았다. 의사는 여자 속옷의 버클을 능숙하게 풀어버리는 손놀림으로 마동의 머리를 살짝 젖히더니 목덜미를 유심히 확인했다.


 “동공이 상당히 작아졌습니다. 지금 밖에 나가면 시야협착이 일어나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될 수 있어요. 자칫 시력이 완전히 망가질 수 있습니다. 일단 낮 동안은 시야를 제대로 확보할 수 있도록 저희가 준비한 선글라스를 착용하세요. 낮에는 이걸 쓰고 다니도록 하세요. 선글라스라고 하지만 일반적인 안경으로 보일 뿐이니 실내에 들어갈 때도 벗지 않도록 하세요. 아무쪼록 조심해야 합니다.”


 의사는 생각났다는 듯 “일반적인 안경점에서 판매하는 선글라스나 안경은 안 됩니다. 반드시 처방을 받아서 구입하거나 여기서 간호사에게 말씀해주세요. 시력은 잃어버리고 나면 어떠한 경우에라도 되살리지 못합니다. 시력이 나빠지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니 주의해 주세요.”


 “아, 더 중요한 건 이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있더라도 태양빛이 내리쬐는 곳에서 두 시간 이상 이동하는 것은 안 됩니다. 우리들의 소견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겁니다.”


 우리들이라는 건 의사와 분홍 간호사 외에 또 다른 의사가 있다는 말인가. 여기도 어떤 집단에 속하는 곳일까.


 여자에게 호감을 불러일으키는 얼굴을 가진 의사는 간호사처럼 마치 마동의 생각을 읽고 있다는 듯 자신이 가지고 온 선글라스를 써보라고 건네주었다.


 정말 이 의사는 누구일까. 단순한 내과 전문의는 아니다. 도대체 누구일까. 분홍 간호사와 어떤 사이일까. 그렇다면 분홍 간호사는 역시 누구일까.


 “인간은 뇌의 기능 중에 단지 2%만 사용하고 있다는 걸 알고 계실 겁니다. 인간이 뇌의 기능을 50% 정도만 사용을 한다고 해도 상상이 가질 않습니다. 지금으로부터 500년 후의 인간이라면 또 모를까 말이죠. 그런데 만약 인간이 뇌의 90% 이상을 사용해 버린다면 지금 우리 모습에서 굉장히 진화한 모습으로 바뀌게 될 겁니다.”


 마동은 의사가 무슨 말을 하는지 집중했다. 분명 이 의사가 하는 말은 마동 자신과, 자신의 무의식과 연관이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인간은 보통 눈에 보이는 것으로 진실과 거짓을 판단하게 됩니다. 망막을 통해 들어온 정보를 시신경 계에 전달하는 것만이 진실이라고 믿고 있죠. 그 외의 것은 보지 못합니다. 보려고도 하지 않죠. 그리고 자신이 믿고 있는 정보, 팩트라고 여기는 부분과 팩트 사이의 구멍은 그저 하나의 검은 점으로 메꿉니다.”


 마동은 집중했다. 의사는 신뢰가 가득한 마동에게 중요한 사실을 전달하려 하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세상의 전부는 아닙니다. 그러한 명확함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인간은 놀라운 망각이라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보이는 것 이외에는 잊어버리게 만들죠. 인간은 폭력을 좋아합니다. 폭력 속에서 폭력이 지니는 미학에 매료되어 사람들은 폭력 없이는 살아갈 수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정당하다는 이유에서 자행되는 폭력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당하니 권장하는 풍토가 되었습니다. 강도가 뒤에서 자신을 덮쳤거나 하는 경우에 그에 대처하기 위해서 나오는 형태의 폭력은 정당합니다. 누구의 도움을 기다리기만 하다가는 큰일을 당합니다. 도움이라는 것은 도와주는 이들이 자신의 입장을 한 번 고려해본 다음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만큼 한 발 늦어집니다. 이렇게 정당한 폭력은 언론이라는 매개를 통해 사람들에게 퍼지게 됩니다. 그리고 언론 위에는 누가 있겠습니까.”


 의사는 잠시 마동의 눈동자를 살폈다. 살피는 의사의 눈은 깨끗하고 하얗다. 어떤 썰매도 아직 달리지 않은 순수한 빙판 같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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