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그녀를 사랑한 죄[19금]
기분 나쁜데 달짝지근해서 맡기 싫어도 맡고 싶은 냄새가 있다. 등에는 곪아서 바늘 끝만 갖다 대면 곧 터질 것처럼 부은 부분이 있는데 그게 탁 터졌을 때 하얀 고름이 연고처럼 죽 나온다. 그 고름 냄새가 이를테면 그런 냄새다.
매일 밤 나타나 계단에 위에 앉아있는 남자는 하얀 고름 냄새 같은 것이다. 달짝지근한 냄새 때문에 나타나기를 바라는데 나타나면 기분이 절대적으로 나쁘다. 계단 위에 앉아있는 그 남자는 어느 기점을 기작으로 매일 밤 자정이 지나면 나타나서 계단 위에 가만히 앉아서 내 쪽을 바라본다.
그녀의 편지는 노골적이며 직선적이었다. 평소 그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지만 평소의 그녀 모습이 메일로 온 편지 속의 그녀일지도 모른다. 그녀의 현실적인 모습이 꿈이고 그녀가 바라는 꿈이 현실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나보다 훨씬 연상이라 반말로 나를 대했지만 편지에는 언제나 존칭을 사용하고 있다. 메일을 통해 들어온 그녀의 편지는 나를 한껏 높이고 있다. 존칭으로 대해진다는 건 또 다른 기분이다. 현실적으로 눈앞에 있는 그녀가 아닌 상상 속으로 떠올린 그녀의 이미지가 내 앞의 어느 지점에서 평소와는 다른 존칭을 사용하고 있다. 그녀는 나를 존대해주며 그녀의 감정을 나에게 전부 토로하고 있다.
그녀 역시 계단 위에 앉아 있는 남자처럼 묘한 여자였다. 계단 위의 남자와 그녀가 다른 점은 그녀는 실제이고 계단 위의 남자는 실체가 모호하다는 것이다. 그녀를 안고 있으면 불안하면서도 안도감이 들었다. 차갑지만 차가우면 차가울수록 그녀는 뜨거웠다. 냉정하게 말을 하면 할수록 그녀의 몸은 타올랐다. 그녀가 내 품에 안겨 있으면 두근두근 거리는데 두근거림이 거슬리지 않을 정도로 안정감이 드는 것이다. 하지만 안정감의 겉에는 불안이 덕지덕지 붙어있다.
남자는 자정이 넘으면 문을 열고 들어와 계단에 앉아서 가만히 나를 바라보고 있다. 밖의 어둠보다 더 어두운 문을 열고 들어와 그 문보다 더 어두운 남자는 매일 밤 계단 위에서 몇 시간이고 나를 바라보았다. 무엇 때문에, 왜 그런지는 전혀 알 수는 없다. 그저 남자는 ‘바라본다’ 그 하나의 행동에 집중을 할 뿐이다.
남자의 표정은 아주 기분 나쁜 웃음을 짓고 있는 것 같다. 남자의 얼굴은 멀리 있고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지만 기분 나쁜 얼굴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두웠지만 그렇게 보였다. 마치 너에 대해서, 하찮은 너에 대해서 다 알고 있어,라고 하는 기분 나쁜 웃음 말이다. 그런 웃음을 얼굴에 박아 놓은 것 같았다. 남자는 어둠에 존속된 채로 계단에 쪼그리고 앉아 팔을 모으고 그저 여기를 바라 볼뿐이다.
남자는 분명 현실의 사람이 아니다. 현실의 사람이 잠겨있는 문을 몰래, 소리도 없이 열고 들어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몇 시간이고 꿈쩍도 하지 않고 기분 나쁜 미소를 짓고 있을 수는 없다. 그 남자가 현실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현실에서 현실의 사람이 아닌 남자는 영혼이거나 그런 종류의 존재일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나는 나도 모르는 새 잠이 들어 그 속에서 남자를 봤던 것이리라. 하지만 꿈이라고 하기에는 어쩐지 모자라는 부분이 많다. 같은 꿈을 매일 꿀 수는 있겠지만 보통 자정이 넘어서 잠이 드는데 그 시간까지 술을 마시고 있거나 음악을 듣고 있다 보면 남자는 어느새 집으로 들어와 계단에 앉아서 나를 내려 보고 있다. 집으로 들어왔다는 것도 의문스럽다. 문을 열었다거나 문을 연 흔적이나 소리가 없기 때문이다. 남자는 늘 그 시간이면 계단에 앉아있어서 남자는 현실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사실을 처음에 알았을 때 무척이나 겁이 났다. 남자를 보자마자 꼼짝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며칠 동안 내내 보이는 남자에게서 하나의 특징을 발견했다. 내가 남자를 보고 있다는 것을 남자는 모르는 것 같았다. 남자는 그저 기이하고 기분 나쁜 웃음을 머금은 채 이곳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생각했다. 남자는 그녀의 남편이 아닐까. 언젠가 그녀에게서 남편의 모습을 들을 기억이 났다. 늘 검은 정장만 입고 다닌다는 이야기일 뿐이지만 남자는 자신의 아내가 젊은 남자와 바람을 피운다는 것을 알고 신체를 빠져나와 영혼의 모습으로 내가 있는 이곳을 찾아왔는지도 모른다. 남자는 다 알고 있다는 표정으로 나를 경멸하듯이 보고 있는 것이라 생각을 해봤다.
이 집은 이모의 집이다. 이모의 집은 그녀의 집에서 차로 십오 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다. 나는 이모의 집을 잠시 봐주고 있다. 남자가 나타난 첫날 나는 이모의 집을 나가려 했다. 이모에게 연락을 했을 땐 이미 이모는 혈액암 때문에 병실의 저 안쪽 투병의 길로 들어갔고 이 집, 즉 이모의 집을 봐달라는 간곡한 부탁을 거절할 수 없게 되었다. 할 수 없이 집을 뛰쳐나오지 않고 남자가 나타나는 밤을 보내야 했다.
남자가 나타나고 지금은 일주일이 지났다. 남자가 처음 나타난 날, 그 전날 오후에 그녀와 섹스를 했다. 그리고 그날 밤 그녀에게 메일이 들어왔다. 그녀와 섹스를 하게 된 건 그녀와 알고 지낸 지 5올이 지난 후였다. 몸을 섞은 날 돌아오는 자정에 남자의 존재가 계단에 앉아서 나를 보기 시작했다. 그 남자의 눈길을 받는 동안 감정의 바다에서 불길하게 퍼지는 파도의 기분이었다.
그녀의 느낌도 그랬다. 불길했다. 불길하지만 그 불길함이 불안함을 압도해버려 그녀와 있으면 그것이 불길 함인지 어떤지 구분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남자의 기분 나쁜 미소를 매일 밤 보면서 어쩐지 남자에게서 나를 보는 것 같았다. 내 속에 감춰져 있던 또 다른 나의 어두운 모습을 보는 것 같은 착각. 남자가 그녀의 남편일 거라는 생각과 함께 계단 위에 앉아서 한 없이 나를 내려다보는 모습에서 나는 나를 투영했다. 그건 내 몸에서 나오는 하얀 고름 냄새 같은 것이었다. 달달해서 맡고 싶지만 기분 나쁜 그런 냄새 같은 것이다.
그녀는 기이하고 꽤 신비한 사람으로 거친 섹스를 바랐고 항문 성애까지 허락했다.
저는 당신을 떠올리며 식탁에 앉아 혼자 하고 있습니다. 이토록 축축해질 수 있을까. 몹시 젖어 있는 나를 발견합니다. 깊은 곳까지 들어왔던 당신을 떠올리며 저는 점점 흥분하고 있습니다. 가슴을 만지는 것도 이렇게 흥분이 된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지경입니다. 분명히 남편이 거실에 앉아있지만 저는 야릇한 죄를 짓는 것처럼 당신을 생각하며 식탁에 앉아 저의 육체를 탐하고 있습니다. 그런 저를 음탕한 여자라고 해도 저는 상관없습니다. 저에게 눈을 뜨게 한 당신과 또 한 번 몸을 나누고 싶습니다.
메일로 들어온 그녀의 편지에는 스노비즘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 본능적이고 쾌락적이었다. 덕분에 나 역시 그녀를 생각하며 자위행위를 두 번이나 했다. 이모의 집 거실 바닥에 그대로 싸버리고 말았다. 정액이 바닥에 닿았는데 평소보다 빨리 말랐다. 그대로 두어도 내일이 되면 바짝 말라 있을 터였는데. 그때 한 번 닦으면 그만이다. 냄새도 흔적도 없어지고 만다.
평소의 그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지만 원래 그녀 모습이 메일로 온 편지 속의 그녀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나보다 연상이라 반말로 나를 대했지만 편지에는 나를 높여 부르고 있다. 어쩌면 내가 아닌 어떤 누군가에게 그녀는 말을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뭐? 남편 이야기?”
그녀는 내가 남편의 이야기를 해달라는 말에 조금 생각을 했다.
“남편은 서질 않아.”
“그래서 날 택한 거야?”
“기분 나빠?”
나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입 밖으로 기분이 괜찮다고 말하지도 않았다.
“남편은 남편대로 사랑하고 있어. 남편이 그렇게 된 데는 나 때문일지도 몰라.”
그녀와 처음 섹스를 했을 때 그녀는 뒤에서 해 달라고 했다. 뒤에서 보는 그녀의 엉덩이는 큰 하트를 보는 것 같았다. 피부 관리를 어떻게 했는지 튼 살이 보이지 않았고 매끈한 엉덩이 피부에서 내 손은 떨어지지 않았다. 앞뒤로 왔다 갔다 하는 그녀의 상체는 안타까움과 아름다움이 교차되었다. 아아 내뱉는 교성은 녹음해 두었다가 두고두고 듣고 싶을 정도로 좋은 소리였다. 일반적으로 하루를 보내면서 들을 수 있는 소리는 분명 아니었다.
결혼한 여자를 선택할 수는 없지만 결혼한 여자에게 선택당할 수는 있었다. 그녀를 안고 있으면 일종의 안도가 내 몸을 감싸 안는다. 이상하지만 결혼하지 않은 여자를 안았을 때에는 전혀 느끼지 못한 감정이었다. 하지만 그녀를 안고 있으면 잡음도 들린다. 끼이이이이 하는 연주 하다만 바이올린 소리 같은 것. 거슬리는 소리가 들렸다.
잘 빠진 유부녀를 안는다는 것이 어떤 기분일까 생각했지만 그녀 속으로 들어가면 행복한 꿈을 꾸는 것 같았다. 그럴 때면 나는 어떤 식으로 성장을 하는 것이다. 내가 리드를 하는 잠자리에서는 성장이 불가능했다. 그녀가 만져주고 빨아주고 안아주는 자리에서는 나는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이대로 망가져도 좋을, 부서지기 일보직전으로 그녀와 섹스를 했다. 그녀는 못다 한 삶을 사는 사람처럼 격렬하게 몸을 움직였고 그녀의 신음소리는 굉장했고 우울했고 기뻤고 천박하며 아프게 들렸다.
그녀는 말소리가 작다. 움직임도 크지 않았다. 그렇지만 내가 이걸 해야겠다는 의지가 그녀의 움직임 속에는 있었다. 그녀는 부유층을 상대로 하는 고급 옷 살롱을 하고 있었다. 손님들에게 옷을 권할 때에도 필요한 말만 했다. 잘 어울린다거나 손님에게 딱이네, 같은 말은 하지 않았다. 치수를 말하고 훈련되지 않은 미소로 입어보라고 할 뿐이었다. 그녀는 음식을 먹을 때에도 거의 소리를 내지 않았다. 먹고 싶은 것이 없냐고 물어보면 그저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면 족하다고 했다. 좀체 웃지 않았지만 한 번 웃으면 수줍은 미소가 점점 피어올라 만개한 꽃이 되었다.
이런 여자는 잠을 잘 때에는 어떤 모습일까.
그저 가만히 누워만 소극적으로 잠이 들까.
잠꼬대도 할까.
저는 당신이 벗겨 놓은 내 몸에 향유를 부을 때를 기억합니다. 당신의 손길이 향유와 함께 온 몸 구석구석 퍼질 때 저는 이제까지 느껴보지 못한 흥분을 느꼈습니다. 당신의 그 손길과 향유를 바르면서 나에게 한 달콤한 말들은 그 어떤 맛있는 음식보다 맛있었습니다. 당신의 손길이 그곳에 닿을 때 아아 참을 수 없었습니다. 당신을 정말 그때는 씹어 먹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가슴이 이렇게 뛸 수 있다니 의사를 찾아야 할 지경이었습니다. 저는 이전까지 느껴보지 못한 절정의 극치를 느꼈습니다. 아아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남편과는 공유할 수 없는 향유의 흥분이었습니다. 당신에게 처음 내 몸을 보여주기 거려한 이유가 유부녀가 된 이후로 어떻게 해도 늘어나는 팔뚝 살이나 옆구리 살이 선뜻 당신에게 다가가지 못하게 하는 이유라는 것에 나는 수치심을 깊게 느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런 문제에 관해서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오로지 “저’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 주었습니다. 그건 실로 잊어버렸던 나의 감정을 되살아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남편을 사랑합니다. 남편이 그렇게 된 데는 저의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남편 역시 저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남편이 저 몰래 여러 군데의 병원에 다니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남편은 차도가 없습니다. 남편이 나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이 듬뿍 있음에도 그것을 미뤄두고 저를 만족시키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습이 안타깝습니다. 저는 남편의 그런 모습이 안쓰러워서 남편과 함께 있을 때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남편의 손이 저의 몸 여기저기를 훑는 것을 허락하고 있습니다. 남편은 저를 통해 만족을 하고 저는 당신을 통해 만족이라는 목표에 도달합니다. 제가 이기적인 년이라는 걸 압니다. 그러고도 당신이 제 눈앞에서 사라지면 또 당신이 보고 싶어 이렇게 글을 쓰게 됩니다. 세 사람이 있습니다. 이 세 명이 모두 만족하는 삶을 매일 누린다는 건 기적과도 같은 일입니다.
클릭 한 번으로 나의 이야기가, 하고 싶었던 말이 당신에게 바로 들어갑니다. 무서우면서도 흥분되는 일입니다. 편지가 이렇게도 사람의 마음을 놓게 만들고 편안하게 만드는지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천박한 여자입니다. 그러니 저를 천박하게 대해도 상관없습니다. 깨지면 안 되는 유리병처럼 저를 대할 필요가 없습니다. 모두가 나를 교양 있는 여자처럼 대하는데 어쩔 땐 진절머리가 납니다. 당신은 나를 있는 그대로 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그렇게 대해 주세요. 가끔 섹스에서 저를 천박하게 대하는 것도 마음에 듭니다. 너무 좋아요. 미쳐버릴 것 같습니다. 그렇게 당신이 내 안에 들어오는 기분을 나는 어쩌면 좋을까요. 지금도 이렇게 당신이 보고 싶습니다. 미칠 듯이 당신이 보고 싶습니다.
그녀는 항상 도시락을 싸와서 점심을 먹었다. 나의 도시락까지 싸왔다.
“남편에게 들키지 않겠어?” 나의 물음에 그녀는 미소만 지었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마도 남편은 도시락에 대해서 일일이 따지거나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그녀가 직원들의 도시락까지 준비하고 있다면 한다면 그만일 것이다. 무엇보다 남편은 회사에 출근하고 난 후의 일이라 알 수가 없다.
그녀는 나보다 좀 더 살아서 그런지 나의 마음을 대체로 꿰뚫고 있는 것 같지만 또 나의 마음과는 전혀 먼, 그러니까 아이 같은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한없이 순수한 어린이 같은 모습.
그녀와 제주도로 가게 되었다. 갑자기 일어난 일이었다. 제주도라고 해도 1박을 하고 오전에 바로 오는 것이다.
“남편이 독일로 출장을 갔어. 나 당신과 바다가 보고 싶어 “라고 해서 갑자기 그녀가 나의 팔짱을 예쁘게 낀 채 비행기에 올랐다. 그녀는 나를 창가에 앉게 했다.
“그래야 창밖의 하늘을 보는 척 당신의 얼굴을 볼 수 있으니까.”
그녀는 옆에 땀에 밸 정도로 붙어있었다.
남편은 애당초 알고 있었습니다. 당신과 나의 관계를. 하지만 모른척하고 있는 겁니다. 남편이 당신을 찾아가서 마구 휘두르지 않을 거라는 걸 저는 알고 있습니다. 저는 남편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남편이 이 일로 나를 내팽개치기를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남편을 사랑하고 있기에 남편에게 버림을 받는 것이 남편을 위하는 내 사랑의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에 대한 저의 마음은 집착일까요, 사랑일까요, 호기심일까요.
그 어떤 것이 되었던 저의 마음은 일정하다는 겁니다. 당신과 함께라면 당신과 누울 수 있다면 저에게는 더 바랄 게 없습니다.
그녀에게 메일을 보내는 걸 자제하고 있다. 그녀에게 메일을 보내고 나면 나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말을 하고 만다. 마주 보고 대화를 할 때와는 다른 이야기 속으로 그녀는 나를 이끈다. 그녀와 보낸 여러 날 밤을 후회하거나 마음 졸였던 적은 없었다. 단지 이제는 그녀가 나를 버릴까 봐 그것에 마음 졸이고 있다.
통속이라는 거취 속에 나를 가둬 둘 필요가 없었어요. 내 몸속의 세포 하나하나가 전부 당신에게로 가 있는 느낌입니다. 아주 황홀한 기분입니다. 당신의 그 딱딱하고 큰 그것이 내 몸 안으로 들어왔을 때 나는 비로소 나의 삶을 돌아보게 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동시에 아주 강한 수치심도 들었습니다. 수치심이라는 게 아주 몹쓸 것이라 생각하며 지냈습니다. 하지만 당신에게 느낀 수치심은 아주 묘했습니다. 버려지고 채찍질을 당하는데 더 받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당신은 제 안에서 저를 마구 꾸짖었습니다. 당하고 능멸이 가능하지만 저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그 야릇하고도 슬픈 감정을 또 느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신이 나의 냄새를 맡는 모습을 보는 것이 좋습니다. 나의 팬티를 내리고 묻은 애액의 냄새를 맡는 모습이 섹시하다고 느껴본 적 역시 처음입니다. 이런 모습은 통상 저질스럽고 변태스러워서 누군가 그렇게 말을 하면 맞장구를 쳐줘야 합니다. 모두가 꺼려하는 모습이지만 당신이 저의 냄새를 맡는 모습은 아름답게만 보였습니다. 그건 너무 자연스러워서 내가 당혹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자연의 냄새를 맡는다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저는 당신이 내 안으로 들어오기 전 손으로 허벅지 안쪽을 만져주는 것이 좋습니다. 대화를 하게 되면 의도와는 다르게 비켜가는 대화의 습성 때문에 이렇게 편지를 하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의 손은 굉장합니다. 도식이나 형식이 없습니다. 그저 본능에 의해서 움직입니다. 그것이 허벅지 안쪽에서부터 제 머리를 녹아내리게 합니다. 녹아내리는 느낌 그것입니다. 저는 당신의 혀 또한 사랑입니다. 당신의 혀는 말을 잘하는 능력 이외에 또 다른 능력이 있습니다. 저는 그동안 하고 싶었던 말들을 이렇게 전부 메일로 할 겁니다. 저를 나무라지 마세요. 저를 난잡한 여자라 하지 마세요. 노래의 가사처럼 나의 사랑을 사랑이 아니라 욕하지도 마세요. 저는 당신에게 능욕당하기를 바라지만 나무라지만 말아 주세요. 당신이 버스에서 팬티 속으로 손을 넣었을 때를 기억합니다. 황홀했습니다. 창밖으로 멀어지는 빛이 온통 나를 비추는데 저는 그만 옷을 홀라당 벗어버리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습니다. 고속버스에서 내려 사막을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계단 위에 앉아 있는 남자는 그녀의 남편이라고 확신했다. 얼굴은 잘 보이지 않고 검은 정장을 입었지만 얼굴은 그저 붓으로 그려 놓은 것처럼 평면적이고 정장은 근래에는 볼 수 없는 정장의 스타일이었다. 실제로 그녀의 남편은 이런 모습은 아닐 것이다. 그녀에게 남편에 대해서 물어보면 자세하게 말을 해주지는 않았지만 매일 나타나서 계단 위에 앉은 남자의 모습이 남편의 외형은 아니라 생각했다. 나는 어떻든 남편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질문을 하면 “남편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게 좋아?”라며 그녀는 겉도는 말을 할 뿐 더 이상 남편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어느 날 계단 위의 남자가 평소의 밤처럼 계단에 앉아 있는데 평소와 달라 보였다. 딱히 어디가 달라 보이는지 딱 집어내기에는 애매했지만 달랐다. 얼굴이 달라진 것도 아니었다. 늘 하고 있던 가고일 같은 포즈도 변함이 없었다. 기분 나쁜 미소도 그대로였다. 하지만 무엇인가, 어떤 무엇인가가 달라졌다. 남자는 필시 평소와는 달랐다. 어제 같으면 남자가 여기를 보는 것을 확인한 다음 내가 할 무엇을 하거나 다른 생각에 잠기거나 잠들었다. 하지만 오늘은 다르게 보이는 남자 때문에 남자가 나를 바라보는 것처럼 남자를 바라보았다. 한참을 보았다. 남자는 여전히 기분 나쁜 표정으로 나에게 무엇이라 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 것이 분명하지만 기분 나쁜 미소를 유지한 채 말을 하는 것 같았다. 마치 거울 속의 내 얼굴을 오랫동안 쳐다보고 있으면 꼭 상이 달라 보이면서 페럴렐 월드처럼 느껴지는 것처럼 말이다. 한 지점을 시간을 들여 오랫동안 보면 으레 그런 현상이 보인다. 하지만 남자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있다. 그럼 무엇이 달라 보이는 것일까. 남자를 계속 보는 동안 시계(市界)가 비틀어지는 것 같았다.
남자가 앉아 있는 곳과 내가 있는 곳은 같은 곳이지만 다른 시간이 흐르는데 어쩌다가 같은 시간에 같이 놓이게 된 것이다. 현실적이지 않은 남자가 현실에 들어옴으로 시계가 틀어져 버렸다. 그렇게 보였다. 그녀의 남편이 둘이 되어 버린 것이다. 같은 시공간에 같은 사람이 두 사람이 된 것이다. 물론 외적으로는 닮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계단 위에 앉아있는 남자는 그녀의 남편이 맞다. 저쪽 세계에서 살아가는 그녀의 남편은 그 세계에 맞는 형태를 하고 있다가 이쪽으로 온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남자를 보니 달라진 점이 눈에 들어왔다. 남자는 평소보다 조금 크게 보였다. 그러니까 형태가 커졌다는 것이 아니라 원근감이 조금 더 상세해졌다. 남자는 한 계단 앞으로 내려와 앉아 있었다. 남자는 계단 하나를 내려옴으로써 이쪽 세계에 발을 디딘 것이다.
현실의 그녀 남편은 그녀와 나와 관계를 알고 있다고 했다. 남편은 알고 있지만 그녀처럼 3명이서 모두 만족할 만한 방법을 택하고 있다. 하지만 그건 그녀가 기분 좋은 소리로 하는 말일지도 모른다. 남편의 속마음은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렇다면 저쪽 세계의 남편은 이쪽 세계로 건너와서 나에게 메시지를 전하려고 하는 것일까.
계단 위의 남자가 한 계단 밑으로 내려온 날은 그녀와 제주도에 갔다 온 다음 날이었다. 그녀가 여행을 제안했다. 나는 불안했다. 가지 않았음 했다. 나는 그녀에게 계단 위의 남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저쪽 세계의 그녀의 남편이 매일 밤 나타나는 것 때문에 여행을 가도 그녀에게 기쁨을 주지 못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일사천리로 일박의 숙소를 예약했고 택시도(차를 렌트하지 않았다) 예약을 해 놓았다. 물론 비행기 표도, 저가항공이 아닌 것으로.
남편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남편은 출장을 갔던 것이다. 그래서 이틀 동안 제주로도 갔다 왔다. 오늘 아침 일찍 가서 내일 밤늦게 오는 것이다. 이틀 동안 택시가 우리를 싣고 다녔다. 목적지도 없었다. 택시기사는 다 알고 있다는 듯 우리가 가 달라는 곳으로, 또는 우리가 모르는 곳으로, 택시는 어딘가로 데리고 가서 우리를 내려놓았다. 그녀와 나는 택시 뒷자리에 앉아서 위스키를 홀짝였다. 그녀는 바지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서 나의 주눅들은 고추를 만졌다. 그녀는 정말 기분 좋은 것 같았다. 택시기사도 모르는 척 운전에만 집중을 했다. 아마도 이런 여행코스에 적합한 택시기사를 구했는지도 모른다. 돈이 많은 그녀는 이런 것쯤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한 손놀림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한 표정이었다.
택시기사와 그녀는 알고 지내는 사이처럼 보였다. 늘 어떤 묘령의 남자와 제주도에 오면 이 택시를 타서 남자와 재미를 본다. 택시기사는 주머니에 세금 걱정 없는 현금이 두둑하게 들어있기에 그녀와 남자를 모른 척한다. 이번에 그녀의 남자로 내가 선택이 된 것이다.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그녀가 고추를 만지는 바람에 쿠퍼 액이 많이 흘러나왔다. 나는 그만 생각과는 다르게 흥분하고 있었다. 그녀는 손으로 쿠퍼 액을 닦아서 자신의 입에 넣었다. 그녀는 찰나로 택시기사와 눈이 마주친 것 같았다. 택시는 인적이 없는 어떤 아담한 폐건물 앞에 우리를 내려 주었다. 그녀는 나의 손을 잡고 내려서 폐건물 안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그녀는 치마를 걷어 올렸고 뒤돌아서 허리를 구부렸다. 수풀이 우거진 곳이 보이는 폐건물 속에서 우리는 섹스를 했다. 그녀는 야외에서도 거리낌이 없었다. 그녀는 마치 타올라 없어지는 재 같았다. 침대 위에서 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그녀는 엉덩이를 흔들다가 입으로 빨았다가 다시 뒤로 돌아서 엉덩이를 벌렸다. 나는 그녀 속으로 깊게 깊게 빠져 들었다.
그녀는 배가 고프다고 했다. 택시기사가 우리를 데려다준 곳은 거기서 가까운 몽상드에월이었다. 사람들이 때를 가리지 않고 북적거렸다. 인파에 커피의 맛과 케이크를 시간을 들여 먹기에는 어려운 카페였다. 멋진 곳에 위치한 세련된 카페는 북적되는 사람들 때문에 가지고 있는 맛이 퇴색되었다.
“자기는 이렇게 북적되는 곳 싫어하지? 나도 별로야, 하지만 이곳에 와야만 볼 수 있는 것이 있어. 바로 저거야. 트레이시 에민의 작품이 여기에만 유일하게 있거든. 나는 그녀의 작품을 정말 좋아해.”
영국의 설치 미술가인데 권지용에게 선물로 줬다는 것이다. 눈에 딱 들어오는 곳에 작품이 걸려 있었다.
“영화 속에 그녀의 작품이 많이 나오는 거 같은데?”라고 하니 많은 영화 소품에 사용되었다고 그녀가 말했다. 카페의 수많은 사람들 중에 작품에 눈길을 보내는 이는 우리 둘 뿐이었다. 주문한 커피와 케이크가 나오기까지 시간이 걸려서 우리는 작품을 꼼꼼하게 감상할 수 있었다.
우리가 나오면 택시기사는 기다리고 있다가 우리를 실어서 다른 곳으로 데리고 갔다. 바다가 코앞에 보이는 작은 해산물 가게에서 싱싱한 성게와 멍게를 한라 소주와 함께 먹었다. 차를 렌트했다면 이렇게 먹고 마시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미 택시 안에서 위스키를 홀짝이며 이동을 해서 술은 차곡차곡 테트리스처럼 위장에 쌓였다. 그녀는 술이 약했지만 지치지 않고 마셨다.
저녁에 숙소로 돌아와 씻지도 않고 바로 그녀의 몸을 안았다. 오는 내내 봉크를 하느라 시동이 가득 걸려있었다. 굉음을 내는 오토바이처럼 우리는 침대 위에서 달렸다.
“하루 종일 자기의 고추를 만지작거리고 싶었어. "
그녀가 섹스가 끝나고도 나에게 바지를 입지 말라고 했다.
남자는 그녀의 저쪽 세계의 남편이다. 계단 밑으로 다 내려오면 이 세계에 접합하려는 것일까. 나의 착각일 뿐이라고만 하기에는 시계가 이미 틀어지고 있다. 그녀에게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제주도에 그녀와 갔다 온 이후 계단 위에 앉아있던 남자는 한 계단 내려온 것이다. 한 세계에 같은 사람 두 사람이 만나는 어느 순간, 어딘가가 변형되고 만다.
그녀에게 계단 위의 남자에 대해서 말을 하기 위해 그녀를 이모의 집으로 데리고 왔다. 그녀는 이모의 집을 좋아했다. 아담했고 포근함이 깃들여있다고 했다. 특히 벽면에 칠해 놓은 노랗고 피부의 스킨톤 같은 컬러가 마음을 안정시켜 준다고 했다. 이모는 결혼도 하지 않은 채 젊은 시절 세계를 떠돌아다니며 긁어모은 액세서리가 온 집안을 장식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것을 트레이시 에민의 작품을 감상하듯이 꼼꼼하게 들여다보더니 감탄이나 탄성을 연발했고 감상이 끝났을 때 우리는 거실에서 섹스를 했다.
그녀는 발가벗은 채 소파에 모로 누워 잠이 들었다. 섹스가 끝나고 하품을 한 번 하더니 그대로 잠이 들었다. 흘러넘치는 성적 암시를 가득 담고 그녀는 모로 누워 새끼 고양이처럼 잠들어있다. 밑으로 약간 처진 젖가슴을 타고 흐르는 관능미에 나는 속수무책이었다. 진부한 말이지만 그녀는 유부녀라고 하기에는 몸매가 이십 대에 머물러 있었다. 일반적으로 손과 손톱에서 늙음의 정직함을 볼 수 있는데 그녀는 손톱마저 플라스틱처럼 탱글탱글했다. 그러나 그녀의 얼굴에서 저물어가는 그림자를 보았다. 집안에 낀 그림자와는 다른 질감의 그림자가 그녀의 잠든 얼굴에 내려앉았다. 불치병 환자가 지정할 수 없는 병이 깊어져 내일일지 한 달 후일지 알 수 없는 불안처럼 탁하고 기이한 그림자가 그녀의 얼굴에 내려앉았다.
그녀의 허벅지를 쓰다듬었다. 보드라웠다. 손을 더 밀어 넣었다. 그녀가 움찔했다. 잠든 그녀의 모습을 있으니 현실감은 제로였다. 그녀는 정말 나이를 먹지 않고 있었다. 영화 속 주인공 같은 그녀의 얼굴에 보이는 저물어가는 그림자가 신경 쓰였다.
그녀가 일어나면 계단 위에 앉아 있는 남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녀에게 말을 해야 했다. 그녀의 남편, 저쪽 세계의 남편이 이쪽 세계의 남편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틈을 타서 오려고 한다, 저쪽 세계의 남편이 이쪽 세계로 완전하게 건너와 버리고 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그러니 조금 해야 한다,라고 그녀에게 말을 해야 한다. 하지만 말을 하지 못했다. 그녀가 일어났을 때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프다고 했다. 그녀는 관자놀이를 누르며 고통을 호소했다. 그녀의 얼굴이 고통에 일그러졌다. 그런데도 뭐랄까 평면적이었다. 굴곡이 있어야 하는 부분에 굴곡이 소거되어 있어서 입체감이 들지 않았다. 나는 그녀에게 괜찮냐고 물었지만 그녀는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다. 두통약을 찾는 사이 그녀는 옷을 입고 약은 필요 없다고 했다. 집으로 가서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집에 있는 약을 먹겠노라고, 안정이 되면 연락을 하겠다고 했다. 내가 바래다주려고 했지만 그녀는 손짓으로 괜찮다고 했다. 택시를 불러 그 안으로 들어간 다음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날은 연락은 없었다.
계단 위에 앉아 있는 남자는 이틀 뒤에는 한 계단 더 내려와 앉아 있었다. 계단 위의 남자의 형태가 좀 더 뚜렷해지니 그 모습은 우울하고 지쳐 보였다. 물론 기분 나쁜 미소는 여전했지만 박음질처럼 그 얼굴에 박혀 더 지쳐 보이는 것 같았다. 남자가 계단 밑으로 다 내려온다면 고독하고 고요하게 이 세계의 아포칼립스가 도래할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다음 날 남자는 한 계단 더 밑으로 내려왔다. 남자의 기이하고 우울한 분위기가 후광처럼 그 주위를 일그러트렸다. 계단 위의 남자는 한 계단 한 계단 내려오더니 어느 날부터 나타나지 않았다. 그녀가 집으로 가고 일주일 정도 흘렀을 무렵이었다.
그녀에게서는 연락이 전혀 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먼저 연락을 할 수는 없었다. 메일을 보내면 그녀의 폰으로 띠링하며 신호가 온다고 했다. 그녀는 항상 내게 메일을 보내고 답장을 보낼 때는 몇 시에 전송 버튼을 누르라고 되어 있었다. 그때는 그녀가 남편이 없는 곳에서 내가 전송하는 메일이 도착하면 띠링하는 소리를 듣고 메일을 읽는 것이다. 무음이더라도 그런 신호를 주고받았다. 그녀에게 메일이 오지 않는 이상 내가 먼저 메일을 보낼 수는 없다.
그것 덕분에 결국 경찰들의 포위망에서 벗어 날 수 있었다. 그녀가 집으로 돌아가고 일주일 후 그녀는 사체로 집 안에서 발견이 되었다. 그 시간에 그녀의 남편은 회사의 자신의 사무실에서 과로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을 했다.
나는 그녀에게 계단 위의 남자에 대해서 말을 했어야 했다. 결국 그 말을 하지 못했다. 그녀는 자신의 집에서 죽어버린 것이다. 그녀는 약물을 과다 복용해서 심정지로 죽었다고 했다. 아직 자살인지 사고사인지 수사 중이라고만 들었다. 그녀를 그때 그렇게 집으로 그냥 가게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악착같이 곁에 같이 있어줘야 했다. 그래야만 했다. 계단 위의 남자에 대해서도 기를 쓰고 이야기를 했어야 했다. 그녀가 죽고 나서야 계단 위에 앉아 있는 남자는 나타나지 않게 된 것이다.
그녀가 죽음으로 간 것은 순전히 나의 탓이다. 계단 위의 남자에 대해서 이야기만 했어도 그녀가 죽음으로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슬펐고 심한 자책감에 시달렸다. 밖에도 나가지 않았으며 겨우 움직일 수 있는 만큼만 음식을 섭취했다. 손톱에서 단백질이 빠져나가는 것이 보였다. 두 달을 집 안에 꼬박 틀어박혀 있었다. 죽지 않을 만큼의 인스턴트식품은 한꺼번에 인터넷으로 주문을 했다.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무슨 일이 일어난 지 알 수도 없었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잠이 오면 잠들었다가 허기 때문에 어지러우면 라면을 끓여서 국물을 조금 마셨다. 그러다 다시 잠에 취했다.
정신이 들면 손에 느껴지는 그녀의 감촉을 복기했다. 그녀는 죽었다. 한 번 죽으면 다시 되살아 날 수 없다. 그녀의 얼굴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낮에는 대체로 잠들고 밤에는 거의 깨어 있었다. 깨어 있다고 해서 딱히 무엇을 하는 것도 없었다. 그저 가만히 계단을 응시하고만 있었다. 남자가 한 번만 더 나타나 주기를 바랐다. 그러면 나는 괴로움과 미칠 것 같은 우울을 던져버리고 남자와 이야기를 하기 위해 계단으로 올라갈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그녀에게 닿을 수 있는 방법을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두 달하고 또 하루의 밤이 되었다. 일주일 때 흐리고 달빛이 구름에 가려진 밤의 연속이다. 음산해야 하지만 달빛이 없음에도 밤은 밝았고 바람이 미미했고 공기는 맑았다. 나는 밖으로 나가 보기로 했다. 사람들이 몇 없었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날이다. 두꺼운 옷을 입어도 반팔로 나와도 괜찮을 그런 날이었다. 자동차들도 드문드문 다녔고 개 짖는 소리나 고양이의 울음소리도 소거된 밤이었다. 골목을 나서는데 고양이 한 마리가 나를 보고 있었다. 작고 볼품없는, 영락없는 길고양이다. 찾아먹지 못해서 그런지 말랐고 보잘것없어 보였다. 작은 고양이는 인간으로 치면 양반다리를 한 채 앉아서 가만히 내가 걷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다. 나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서글퍼 보이는 고양이었다.
나는 그만 눈물이 나왔다. 고양이를 통해 그녀가 생각이 나서였을까. 그녀가 트레이시 에민의 작품을 좋아한 것은 트레이시 에민이 어린 시절 성폭행의 역경을 딛고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녀는 남편과 지내면서 알 수 없는, 감당할 수 없었던 마음의 큰 결락을 지니고 있었다. 제주도에서 그녀가 트레이시 에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 그녀의 눈이 그걸 말해주었다.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녀는 결락으로 인한 마음의 공백이 나무나 크고 넓고 깊어서 어떤 것으로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어린아이가 백사장에 물을 계속 붓는 것처럼 그녀의 뻥 뚫린 공백은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것이다. 아무리 부어도 부어도 결락이 만들어낸 공백의 곳곳에 구멍이 생겨 다 빠져나가버리고 만다. 백사장에 물을 부었다는 아이의 기억만 있지 그곳에는 어떤 과거의 물이 부어졌지만 흔적이 없는 것이다. 지네도 살지 못하고 잡초도 피지 않는 마르고 건조한 삭막한 사막 같은 피폐함이 그녀의 마음을 채우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나로 하여금 그 피폐한 곳에 물을 부어 조금이라도 축축하게 하려고 했다. 그것을 나는 알 수 있었다. 나는 그녀가 혼자 집으로 가는 것을 막았어야 했다. 그녀는 격렬하게 내리는 소나기 같은 건조함이 시시때때로 그녀를 괴롭혔다. 그녀를 참을 수 없게 만든 것이다. 남편이 잠든 새벽에, 살롱에서 고객이 탈의실에서 옷을 입어보는 오후에, 장을 보는 저녁에 참지 못하게 만들었다.
남편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어떤 남자로도 채워지지 않을 그 축축함을 나를 통해서 그녀는 채우려다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다. 나에게 안기지 않고서는 참을 수 없는 격렬한 고통을 그녀는 겪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생각하니 눈물이 쏟아졌다. 밤이라 누구도 내가 우는 걸 보지 못했지만 누군가 봐도 상관은 없었다.
나는 무엇에 이끌린 듯 그녀의 집으로 갔다. 그녀의 집에는 그녀가 있을 것만 같았다. 이미 죽어버린 그녀는 다시 돌아오지 않겠지만 그녀가 보고 싶어서 나는, 나의 다리는 나도 모르는 새 그녀의 집으로 가게 만들었다. 그녀의 집 앞에 섰을 때 그녀의 집에는 불이 다 켜져 있고 창문으로 여러 명의 실루엣이 보였다. 남자는 한 명으로 보였고 그 남자는 그녀의 남편일 것이다. 나머지 몇 명은 실루엣으로 이브닝드레스를 입은 여자들이었다.
분노 같은 것이 올라왔다. 나의 몸은 작용 반작용 현상으로 벌벌 떨렸다. 그녀의 집 대문 가까이 갔다. 높이가 1.5미터 정도의 아담한 대문이었고 그녀의 집은 정원이 딸린 2층짜리 고급주택이었다. 대문 앞에 섰을 때 현관문 계단에 계단 위의 남자가 앉아 있었다. 남자는 어느 날 내 앞에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그녀가 죽고 난 후부터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남자는 이미 이쪽 세계로 넘어와 있었다.
나는 계단 위의 남자에게도 할 말이 있었다. 대문을 넘어 현관문 쪽으로 성큼성큼 갔다. 남자는 계단에서 일어나 현관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잠기지나 않을까 나는 달려서 현관문으로 갔다. 다행히 문은 잠기지 않았다. 남자는 문을 잠그지 않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바로 따라잡았다고 생각했는데 현관문을 여니 남자는 벌써 이층으로 올라가 버렸다. 2층은 중2층으로 타원형의 실내계단으로 올라간다. 2층에서 그녀의 남편과 여자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기름과 고기가 익어가는, 맛있는 음식 냄새가 잔뜩 났다. 식탁이 있는 곳으로 가니 여러 종류의 요리가 가득했다. 남편은 아내가 죽기를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마음의 결락을 엄청나게 끌어안고 다른 남자의 품에 안긴 채 살아가는 아내가 자신의 앞에 있는 것이 견딜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약물중독으로 사망했다고 했지만 남편이 그녀를 죽였는지도 모른다.
식탁이 있는 곳으로 갔을 때 떠들썩하던 사람들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식탁의 한 의자에 앉았다. 남편은 그녀가 죽었음에도 진수성찬을 차리고 파티를 즐기려 하고 있었다. 도대체 누구와 함께 먹기에 그녀가 죽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차려놓고 늦은 밤 파티를 즐기려는 것일까.
나는 남편이 식탁에 오기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잘 안 되겠지만 차분하게 기다리자.
남편은 여자들과 집의 어딘가에 숨었다. 하지만 왜? 그들이 왜 숨을까. 어쨌든 내가 오는지 알고 숨은 것이다. 계단 위의 남자가 알려 줬을 것이다. 그렇게 오랫동안 숨어 있지는 못 할 것이다.
어쩌면 계단 위의 남자는 나에게 남편이 그녀가 죽었음에도 혼자서 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려고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식탁으로 남편이 왔을 때 나는 극도의 분노에 휩싸여 있는 내 마음을 심각하게 드러낼지도 모른다. 그것을 계단 위의 남자는 노리고 있었을까.
그녀는 결국 남편 옆에서 거대한 결락을 견디지 못하고 죽어 버렸다. 죽임을 당한 것이다. 어째서 그녀를 자유롭게 내버려 두지 못하고 심연의 끝에서 고통받게 한 것인가.
남편은 악마의 모습이다. 계단 위에 앉아 기분 나쁜 미소를 흘리는 남자의 모습보다 더 추악하고 어두운 모습이 남편의 모습일 것이다. 그토록 아름다운 그녀가 죽었는데 아무렇지 않게 여자들과 많은 요리를 차려놓고 파티 따위나 즐기려 하다니.
정말 용서할 수 없다.
몇 명이 먹을지 모르겠지만 요리는 터키가 통째로 한 마리 기름에 둘러 구워져 있고 양송이 수프와 어복쟁반처럼 보이는 궁중 요리도 있었다. 달팽이 요리와 인간의 탐욕이 만들어낸 비대한 거위 간이 삶겨 연기를 대기 중으로 올리고 있었다.
남편은 집 밖에서 돈을 벌어서 그녀에게 던져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겠지만 그녀는 경제력을 갖추고 있는 여자였다. 자신만의 고객을 유치했고 그녀만의 스타일로 고객을 늘려갔다. 남편이라는 존재가 굳이 필요 없는 여자였다. 특히 심연의 결락을 가져다주는 남편은.
식탁에 앉아 있은 지 한 시간이 넘어간다. 남편과 여자들은 식탁에 돌아올 생각을 않는다. 그녀의 집 안을 둘러보았다. 모든 물품이 정리가 잘 되어 있다. 자세히 보니 심각하달 정도로 정리가 되었다. 마치 집착증에 걸린 환자가 정리해 놓은 것처럼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앉아있는 식탁보, 심지어 요리가 놓인 접시도 오와 열을 맞추어서 놓여 있다. 이건 마치 영화 속에 등장하는 소품처럼 부자연스러웠다.
나는 식탁에서 일어나 방을 둘러보았다. 남편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집 밖으로 나갔다면 소리가 들렸을 텐데 분명 이 큰 집 어딘가에 숨어 있는 게 분명했다. 그렇지만 의문이 자꾸 든다. 왜 남편이 숨은 것일까. 집으로 불러 파티를 같이 하려던 여자들까지 같이 숨을 이유가 있을까.
그녀의 방이 보고 싶었다. 그녀의 집 방문을 전부 다 열어 보았다. 역시 모든 것이 부자연스럽게 정리가 되어있다. 그녀의 방은 있어야 할 건 다 있는 방이지만 그녀가 죽어버려서 그런지 공기는 죽어 있었다.
식탁에 돌아와서야 나는 알게 되었다.
한 시간 반이 지나도록 그녀의 남편을 기다리고 있는데 아직 음식이 식지 않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음식은 영원히 식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곳에 고립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