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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Nov 28. 2020

푸른 거탑을 보다 보니 군대서 사고 친 게 생각난다

일상 에세이


얼마 전에 끝난 군대 미스터리 스릴러 ‘써치’ 때문인지 유튜브에 들어가면 ‘푸른 거탑’이 뜬다. 실시간으로 몇 편 보지 못했는데 다시 보니 정말 재미있다. 화면의 구석에서도 디테일을 살리는 연기를 하고 있어서 놀라면서 보게 되었다. 여러 영화 속 명장면들의 패러디와 오마주를 이렇게나 재미있게 편집을 할 수 있다니. 유주얼 서스펙트부터 글루미 선데이까지 박수가 절로 나온다. 푸른 거탑에 나오는 연기자치고 어설프게 하는 연기자도 없는 것 같다. 주인공들은 전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서 찰지게 군인을 표현했다.


남자들에게 군대 이야기는 정말 빠지면 안 되는 이야기다. 제일 왕성한 시기, 이십 대 초반에 2년을 단체생활을 하기에 좌충우돌하게 되고 그 기억은 오래 남아서 다시 추억으로 포장된다. 푸른 거탑에는 여배우들도 많이 나오는데 지금은 최고의 배우가 된 이정은도 왕왕 나왔다. 주인공들은 부대 안에서 하루도 사고를 안 치고 넘어가는 날이 없다.


군대가 냄새나는 20대 초반의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 있으니까 청결하지 못할 거라 생각하겠지만 그 어디보다 청결에 신경 쓰는 곳이 군대다. 그래서 매일 하는 점오 시간 전에 하는 막사 전체의 청소는 땀을 뻘뻘 흘리며 미친 듯이 한다. 먼지 하나 있으면 안 되고, 모든 곳이 반짝반짝 빛나게 되고, 어떻게 해도 닦이지 않는 곳은 치약, 치약으로 모든 곳을 깨끗하게 닦는다. 치약은 모든 곳에 쓰인다. 기름기 묻은 그릇을 닦을 때에도, 관물대를 닦을 때에도, 막사 내 바닥을 닦을 때에도 치약은 온통 다 쓰인다. 제일 막내들은 청소를 할 때 변기 청소를 해야 하는데 손으로 걸레질을 다 한다. 그래서 막내 생활이 길어지면 손에 똥독이 도돌도돌 올라오기도 한다. 손으로 걸레를 들고 변기를 전부 닦아낸다. 그래서 점오를 할 때 화장실의 변기가 정말 바로 설치한 것처럼 항상 반질반질 깨끗하다. 역시 치약이 사용된다.

 

그 정도로 청결에 신경을 쓴다. 막내일수록 속옷을 자주 빨지 못할 수 있으니 항상 점검을 한다. 그래서 막내들은 매 시간, 늘 바쁘다. 시간만 나면 속옷과 군복을 빨고, 운동화도 빨고, 건조대에 널어놓은 고참들의 빨래가 없어지는지도 체크해야 한다. 그래서 아픈 사람이 잘 나오지 않는다. 누군가 감기가 걸리게 되면 다른 사람이 그 일을 대신해야 한다. 게다가 군대에서 아픈 것만큼 서러운 것도 없다. 하지만 또 군대에서 아프면 평소에 죽일 것처럼 달려들던 무서운 부대원들이 따뜻하게 대해준다. 그런 일화를 다룬 푸른 거탑 편을 올려본다. 꾀병을 부릴 때마다 들키던 캐빈이 진짜로 아프게 되면서 부대원들은 극에 달하는데.


https://youtu.be/pKlQ88uzarQ


푸른 거탑의 주인공들은 정말 하나하나가 사고 치는데 뭔가가 있다. 군대를 조용히 보내고 전역하는 사람도 있지만 실제로도 사고를 많이 친다. 나도 사고를 쳐서 영창에 갈 뻔한 일이 있었다. 나는 법무부 소속으로 구치소에서 군생활을 했다. 구치소 앞에는 관사가 있어서 중대장이나 집이 먼 직원들이 관사에서 평일에 생활을 하고 주말에는 타지방에 있는 집으로 간다. 우리 부대의 중대장도 내가 작대기를 네 개를 달 무렵 새로 왔는데 집이 타지방이라 주말이면 관사를 떠난다.

우리는 주말이면 시간이 널널해서 각자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면서 보낸다. 탁구(이건 평일에도 한다)를 치거나 여름이면 선텐을 즐기기도 하고 종교 행사를 하거나 면회가 오면 면회 온 친구들과 보내기도 한다. 부대에서는 회식비를 직접 충당했는데 구치소 뒤에 만 평 정도의 배밭이 있어서 배 농사를 지었고, 돼지도 9 마린가 있어서 사육을 했다. 돼지를 사육하기 전에는 염소 몇 마리를 키웠는데 야간 근무는 늘 염소 몇 마리가 잘 있는지 수를 헤아리는 것이 근무의 전부였다. 한 마리라도 없어지면 엄청난 일이 일어난다. 돼지는 정말 잘 먹었다. 붉은 황토도 먹었다. 그리고 돼지는 아주 똑똑한 동물이다.


어떻든 배 밭 너머에는 저수지가 있는데 주말에는 막사를 몰래 빠져나가 그 근처에서 고기를 구워 먹기도 했다. 사실 그렇게 하면 안 되지만 간부들도 다 민간인들이라 상부에 보고를 해봐야 자기들 감봉되고 전출을 가거나 출세가 더디기 때문에 대체로 눈을 감아준다. 주말에 구워 먹을 고기와 고구마, 숯과 불판 같은 것들을 평일에 운전병을 통해 다 구입해 둔다. 그리고 잘 짱박아두다가 주말에 간부들 몰래 구워 먹는다. 그럴 때는 항상 회식병이 따라와서 수발을 든다. 고기를 굽는 동안 닭과 고구마는 은박지에 잘 감싸서 불구덩이 안에 던져 놓는다. 그리고 들고 온 소주와 함께 고기를 먹는다. 고기를 다 먹을 때쯤 은박지에 숨겨진 닭과 고구마를 꺼내면 정말 맛있는 요리가 된다.


내가 영창에 갈 뻔한 일이 있었다. 보통 토요일 오후 1시에는 중대장이 관사에서 나와 자신의 집이 있는 타지방으로 간다. 구치소 정문에서 보초를 서고 있는 병력이 죽 지켜보다가 중대장이 관사를 빠져나가면 막사에 보고를 한다. 그러면 이제 우리들의 주말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날은 여자 후배들 세 명이 면회를 왔다. 그중에 한 명이 미스코리아 대회를 나갔던 애가 한 명 있었다. 미모가 출중했다는 말이다. 날씬한데 다리고 길고, 사투리도 쓰지 않고, 아무튼 길쭉길쭉 그런 애였는데 졸다구 하나가 그만 반해버려서 어떻게든 좀 만나게 해달라고 했다. 그래서 면회 자리에 불렀다.


그런데 이 녀석이 면회시간이 끝나고 저녁에 대학교 앞에서 같이 술을 마시자고 했다. 이 녀석도 짝대기 네 개로 나보다 4달 늦게 들어온 녀석인데 나를 졸라서 그렇게 하자고 했다. 녀석은 그동안 보지 못했던 간절한 눈빛으로 제발 그 자리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 여자 후배에 관한 이야기를 잠시 하자면 내가 아주 졸다구 때 친구들과 면회를 왔다. 그때 고참 역시 반해서 연락처를 가르쳐 줄 수 없냐는 것이다. 나는 그 고참에게 참 많이 맞았다. 구치소에서 근무하는 이런 부대는 내무생활이 힘들어서 구타가 잦다. 그리고 구타가 심하다. 역시 구타가 심해도 간부들을 통해 위로 올라가지 않는다. 심하게 구타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면 간부들 역시 감봉에 전출에, 진급이 힘들기 때문이다. 신병 때에는 얼굴을 많이 맞아서 코가 퉁퉁 부었는데 하필 그때 집에서 면회를 오기도 했다. 도저히 싸들고 온 음식을 먹을 수 없어서 그대로 집으로 들고 가라고 했다. 안경을 쓰는데 맞다가 안경이 깨지기도 했다. 암튼 그렇게 졸다구들을 많이 때리던 고참이 나를 찾아온 여자 후배에게 반한 것이다. 밉다고 안 가르쳐줄 수도 없고, 그렇다고 가르쳐줄 수도 없고 참 난처했다. 결론은 그 해 겨울 크리스마스에 내무실에 받은 크리스마스 카드를 걸어 두었는데 우리 내무실 고참 세 놈의 카드가 같았다는 것이다.


여자 후배는 다니던 미용실에서 미스코리아 제의가 들어와서 나가게 되었다. 미스코리아는 어떡하면 뽑히는지 대체로 모른다. 미스코리아는 얼굴이 예쁘다고 뽑히는 것도 아니다. 예쁜 것도 3위다. 진, 선, 미 중에 예뻐봐야 '미'다. 미술대회는 그림을 잘 그려야 하고, 노래 대회는 노래를 잘 불러야 하는 명분이 있는데 도대체 미스코리아는 어떡하면 뽑히게 되는 것일까. 그리고 미스코라아 대화가 한 도시에서 열리면 그 도시의 사람들만 출전하는 게 아니다. 다른 도시에서 떨이진 사람들, 처음 도전하는 사람들도 우르르 온다. 한국의 도시에서 들만 오는 게 어니다. 남가주에서도 오고 아주 난리가 아니다. 그럼 올해 미스코리아 대회가 한 도시에서 열리면 그 해 도전하는 사람들만 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작년, 재작년에 떨어진 사람들이 일이 년 열심히 준비해서 재도전을 하기 때문에 경쟁률이 어마어마하다. 이렇게 도전해서 쉽게 붙을 수 없다. 당최 미스코리아는 무엇으로 뽑히는가, 그걸 아는 사람은 각 도시의 미스코리아를 배출해낸 미용실의 원장님만이 알고 있다. 미스코리아는 그날 나온 심사위원들의 눈에 들어야 한다. 그렇기에 이것저것 준비할 것이 많다. 그 모든 것을 원장님이 다 잡아준다. 말투, 걸음걸이, 키, 화장 등 모든 것을 원장님이 트레이닝을 해준다. 미스코리아를 내가 나가고 싶어서 원장님을 찾아가면 만만찮은 비용을 내가 다 내야 하지만 미용실에서 손을 내밀면 미용실에서 모든 비용을 댄다. 여자 후배는 그해 포토제닉상을 받았다. 요즘은 없는지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수영복 심사가 있었고 후배의 엉덩이는 미국 모델들처럼 위로 봉긋 올라 있어서 수영복이 꽤 잘 어울렸나 보다.


여자 후배는 대학교 때 같이 방구석에서 아이들과 뒹굴고 이야기하고 놀던 여자애로 우르르 모여서 밤새도록 술 마시다 보면 아침에 눈썹이 다 지워져서 놀리고 잠이 들면 얼굴에 치약으로 영구 콧물을 그리기도 해서인지 미스코리아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했다. 막상 무대에서 그런 식의 옷과 그런 식의 포즈로 서 있는 걸 보니 멋있기보다 어떻게 놀리나 하는 생각이 들뿐이었는데  청바지 입고 조신하게 앉아 있으면 많은 남자들에게서 데시를 받곤 했다.



아무튼 주말에 저수지를 지나 조금 가면 나오는 울산대학교 근처에서 술을 마시는 것은 탈영이다. 그전까지 사실 몇 번 몰래 빠져나가 대학교 앞에서 한 잔 하고 들어온 적이 있기 때문에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어떻든 탈영인 것이다. 후배에게 반 한 이 녀석은 전출 온 녀석으로 진주교도소인가, 그곳에서 이곳으로 온 것이다. 이 녀석은 진주에서 음지의 세계 생활을(나이트 기도 같은) 하다가 그대로 군대에 끌려갔다가 법무부로 차출이 되어 진주 교소에서 군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사방(흔히 감방이라 불리는)에 온통 친구들, 선후배들이었다. 그래서 그들의 편의를 봐주다가(담배를 넣어 준다던가, 술을 넣어 준다던가) 영창을 갔다가 내가 있는 구치소로 전출을 오게 되었다.


그 녀석의 얼굴은 험상궂게 생겼다. 나와 같은 내무실도 아니었다. 다른 내무실인데 나와 친해지게 되었다. 겨울에 같이 외박을 받았는데 그 녀석은 진주의 집에 가기 어려워서 우리 집에서 같이 보냈다. 덩치가 컸는데 내 옷이 맞는 옷이 없었다. 다행히 멜빵바지가 하나 있어서 그걸 입혔다. 그리고 가죽잠바를 입혔는데 그날 밤에 술을 마시고 힘을 주니까 가죽잠바의 날갯죽지가 죽 다 찢어진 적이 있었다.


아무튼 그런 녀석이 여자 후배에게 반해버린 것이다. 그래서 저녁에 술 약속을 잡았다. 중간에 여러 말들이 오고 갔지만 생략하고, 저녁 근무를 빼돌린 다음에 대학교 앞에 있는 주점에서 만나기로 했다. 들키면 탈영이고 영창을 가게 된다. 그렇다고 하지만 왕왕 있는 일로 만약에 들켜도 간부들은 위에서 말한 것처럼 군인 신분이라기보다 직업공무원에 더 가깝기 때문에 이런 일들을 일일이 상부에 보고하기보다 자신의 손에서 해결하려는 경향이 짙다.


저녁이 되었고 철조망으로 된 담장을 살며시 넘어서 우리는 저수지를 돌아서 대학교 앞까지 왔다. 후배들을 만나서 주점으로 들어갔다. 그 녀석과 함께 자리를 잡고 주문을 했다. 낮에 한 번 만났기에 후배는 술술 이야기를 잘 도 했다. 술과 안주가 나오고 재미있어지려는 찰나 중대본부에서 연락이 온 것이다. 큰일 났습니다,라고 하는 것이다. 요즘은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휴대전화를 가지고 부대에 들어갈 수 없었다. 그래서 중대본부에 있는 휴대전화를 몰래 들고 나왔는데 연락이 왔다. 중대장이 관사에서 집으로 간 줄 알았는데 관사에 다시 들어왔다가 우리가 막사를 넘어서 저수지 쪽으로 가는 모습을 봤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간을 두고 기다렸지만 우리는 오지 않고 중대 집합을 시켜 인원 점검을 한 결과 두 명이 비어서 비상이 걸렸다는 것이다.


그대로 우리는 일어나서 부랴부랴 택시를 타고 정문으로 들어갔다. 이미 중대가 막사 앞의 운동장에 다 모여 있었다. 분위기가 몹시 살벌했다. 왜냐하면 우리는 탈영을 했기 때문이다. 중대장실에 끌려간 나는 중대장의 고함소리를 다 받아야 했다. 평소에 좋게 봤는데 이 놈 이거 안 되겠구만, 너희 전부 영창이야!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는 국방부의 영창과는 다르게 구치소의 사방에 계급장을 떼고 올라가서 각 잡고 영창 생활을 한다. 나는 중대장에게 모든 것이 다 저의 잘못입니다, 저만 영창에 가겠습니다,라고 호기롭게 말해다. 그랬더니 그래? 그럼 너만 영창 가, 잘 됐구만. 하는 것이다. 속으로 이거 큰일 났구만,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중대장은 다른 간부들과 달리 바로 보고하고 조치를 취하려 했다. 중대장의 머리에는 자신의 감봉이나 전출 같은 것은 들어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소대장들이(역시 직원들로, 모두가 다 난처한 상황) 중대장을 어르고 달랬다. 평소에 저 녀석(나를 가리켜)은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그래서 결국 동초 근무(막내가 하는 야근 근무지)를 일주일 동안 하게 되었다. 영창은 면하게 되었다. 천만다행이었다. 하지만 그 뒤로도 제대할 때까지 주말에는 가끔씩 배밭 근처에서 고기를 구워 먹었다. 여자 후배는 요즘도 일 년에 한 번 정도 만나지만, 몇 해 전에 화교인과 결혼을 하여 중국집을 여러 개 하는 사모님이 되었다. 아이도 낳고 아줌마가 되었지만 어쩐지 아직도 늘씬하고 옷을 잘 입고 다닌다. 단지 입을 벌리면 어느새 수다가 시끄럽게...


https://youtu.be/gG13OlTF-nU

닭 대신 비둘기를 튀기는 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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