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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Nov 26. 2020

대중목욕탕에 가지 않은지 어언 9년

일상 에세이

아직 형태가 남아있는

대중목욕탕을 좋아하던 내가 안 간지 9년? 10년? 은 된 것 같다. 대중목욕탕에 자주 갈 때는 일주일에 두 번도 간 적이 있다. 찜질방은 나와 맞지 않은데 대중목욕탕은 또 잘 맞았다. 씻는 건 싫어해도 목욕하거나 샤워하는 건 어른이 된 누구나 좋아하지 않을까 싶다.


목욕탕을 좋아하는 것도 기억을 가득 채우고 있는 추억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에 토요일 저녁에는 늘 아버지와 함께 목욕탕에 갔다. 아버지는 주말을 몽땅 우리에게 할애했다. 분명히 주말에 하고 싶은 일이나 만나고 싶은 친구들이 있을 텐데도 주말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보냈기에 그게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생각했다.


토요일에는 아버지와 함께 늘 동네 목욕탕에 간다. 아버지와 함께 가니 탕 안에서 헤엄을 쳐도 나무랄 사람이 없어서 그 시간을 기다리게 된다. 아버지는 썩 시원하지도 않을 텐데 아버지의 등을 밀면 나에게 시원하네, 잘 미네, 같은 말로 나를 우쭐하게 만들었다. 때도 나오지 않아서 아버지는 등을 미는 기계에 등을 댈 법도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아버지는 나에게 실망감을 안겨주기 싫어서 시원하게 기계에 등을 미는 걸 포기했다. 그때는 알지 못했지만 조금 지난 후에야 그걸 알 수 있었다.


인간에게는 어떤 시점이 오는 것 같다. 무엇을 알게 되는 시점. 그 이전에는 잘 알지 못하는 것들을 알게 되는 그 시점. 아버지와 함께 목욕을 하고 돌아와서 조안나 골드를 먹고 이불을 턱까지 끌어올리고 토요명화를 보다가 노곤함에 속수무책으로 잠으로 빨려 들어가는 행복한 기분을 주말에는 만끽했다.


일전에 조깅을 하다가 어린 시절에 살던 동네를 가봤다. 아직도 그 동네 목욕탕이 있지만 이제 목욕탕은 하지 않았다. 딸려 있는 여인숙의 간판도 보였지만 여인숙도 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동네는 워낙 달동네라서 그런지 아직도 예전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건물이 있었다. 목욕탕은 대형 목욕탕과 달리 계단을 오를 필요도 없고 밖에서 탕까지 가서 몸을 담그기까지 문 두 개만 지나면 된다. 단순한 구조로 되어 있다. 그래서 겨울에는 난방을 해놔도 탕에서 나와 로비에서는 재빨리 물기를 닦아야 한다. 춥기 때문에. 동네 목욕탕은 그렇다.  


밖에서 부르면 예! 하고 나갈 수 있었다. 탕에 몸을 담그고 있으면 천장과 벽의 어디쯤 뚫려 있는 작은 창으로 밖에서 노는 아이들의 소리가 들렸다. 대형 목욕탕에서처럼 편리한 시설은 없지만 몸을 말리고 옷을 입기에는 충분한 공간이 있었고 겨울에는 평상 옆에 난로가 있었고 난로 위에는 오뎅이 잘 익어가고 있었다. 오뎅을 팔기도 했기에 홀딱 벗은 아저씨들이 전부 빙 둘러서 오뎅을 하나씩 먹고 국물을 홀짝 거렸다. 

역시 겨울에 먹는 오뎅이


늦게까지 하지 않기에 목욕을 제대로 하려면 저녁 8시에는 들어가야 문을 닫기 전에 원하는 만큼 목욕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길거리에서 시간을 물어보는 사람이 없어지듯 동네 목욕탕은 사라졌다. 지우개로 슥삭슥삭 지우듯, 정말 거짓말하지 않고 거의 대부분 없어졌다. 그리고 세상에는 스포츠센터처럼 거대한 찜질형 대형 목욕탕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수려한 내장 인테리어에 냉탕도 몇 개, 온탕도 몇 개, 편의시설과 이발소가 딸려 있고 잠을 잘 수 있는 방도 거대했다. 3층까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여러 개의 문을 열고 들어가서 옷을 갈아입을 라커를 찾는데만 시간을 들여야 하는, 아주 거대한 공룡 같은 목욕탕.


나 역시 그만 대형 목욕탕이 좋아서 종종 가곤 했다. 탕 밑에서 올라오는 기포가 몸을 시원하게 때려 주었고 샤워기가 남아돌아 어디든 자리에 앉을 수 있고 밤새도록 하기에 새벽에 가서 샤워를 하고 탕에 몸을 담그고 눈을 감고 잠시 잠들 수도 있었다. 세상에 이렇게 멋진 곳이 있다니. 남탕은 여탕과는 다르게 수건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수건을 두 장 이상 사용하는 남자는 아주 드물다. 대체로 한 장의 수건으로 모든 것을 끝낸다. 또 목욕을 하면서 사타구니의 털에 샴푸질을 해서 계속 빗는 아버님도 있고 냉탕에 들어갈 때마다 아흐 하는 큰 소리를 꼭 내는 아저씨도 있다. 무엇보다 잠자는 수면실에서 홀딱 벗었지만 하나를 걸치고 잠이 든 아버님들이 보이는데 그 하나가 양말인 경우도 있다. 목욕탕에 이발소도 딸려 있어서 이발도 하고 몸이 좋은 남자는 절대 빨리 옷을 입지 않는다. 아무튼 재미있는 곳이 목욕탕, 대형 목욕탕이었다.


하지만 9년 전부터는 목욕탕에는 다니지 않게 되었다. 여러 개의 이유가 있겠지만, 별 볼일 없는 나 같은 인간(일지라도 건축과를 다니면서 어쩔 수 없이 방화벽이나 방화문에 대해서 공부를 하게 되었다)의 눈으로 봤을 때 거대한 대형 목욕탕에는 방화문이 없다는 이유가 컸다. 조금 허술하지만 탕에서 밖까지의 거리가 짧은 동네 목욕탕에 비해 대형 목욕탕에 불이 나면 탕에서 밖으로 나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믿기나? 불이 났을 때 재빨리 옷은 못 입더라도 밖으로 나와야 하는데 전혀 그럴 수 없는 구조다. 설사 나오더라도 멀쩡한 정신이 될 수는 없다. 검은 연기 때문에. 목욕탕에서 화재 때문에 죽은 모습은 다른 어느 곳에서 죽는 모습보다 비참하다. 그렇지 않을까? 홀딱 발가벗은 채로 수건으로 몸도 못 가리고 어딘가에 축축하게 박혀서 죽어 있는 모습은 그와 다르게 죽음을 맞이한 어떤 죽음보다 비참하고 안타깝다. 여러 군데의 대형 목욕탕에 가봤지만 건물 밖에서 목욕탕 안까지 들어가는 길은 꽤 복잡하고 긴 거리를 올라야 도달할 수 있었다.


요즘의 대형 목욕탕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그 당시의 대형 목욕탕은 무법천지였다. 그저 보기에 찬란하고 화려하고 자본을 많이 들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형 목욕탕뿐이었다. 법이라는 게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건 아니다. 어떠한 불이익을 당해서 법의 도움을 한 번 받으려 하면 일반인은 그 벽이 너무 크고 높아서 엄두도 나지 않는다. 법을 믿을 수밖에 없지만 아직도 법을 믿나, 라는 말이 영화에서 가장 많이 나온다. 어른이 된 이후에 사람들은 소방훈련을 받는지 모르겠지만 소방훈련을 받으면 소방대원은 말한다. 식당이나 술집에서 분위기 좋고 구석진 자리보다는 출입문 근처에서 식사를 하는 것이 좋다고. 그게 혹시라도 일어날 수 있는 화재에 재빠르게 나올 수 있는 방법이라고 했다. 모든 식당이나 술집이 법을 꼬박꼬박 지키지 않는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법을 지키려면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대중목욕탕을 가지 않게 된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문 닫는 시간이 없다 보니 들어가면 너무 오래 그 안에 머무른다는 것이다. 실지로 목욕을 하는 시간은 짧은데 2시간 이상 머무르게 된다. 잠깐 졸기라도 하면 3시간이 훌쩍 넘어간다. 게다가 나는 회귀성이 강해서 갔던 곳으로 줄곧 가는 경향이 짙다. 가고 오고 하는 시간이 1시간 반은 넘는다. 그러면 도대체 목욕탕에서 잡아먹는 시간이 어마어마한 것이다. 그 시간이 늦은 밤이면 집으로 와서 저녁을 먹을 수 없기에 오는 도중에 국밥을 한 그릇 먹기도 한다. 목욕탕에서 때를 미는 시간은 정말 얼마 되지 않는다. 어떤 날은 때를 미는 것이 귀찮아서 한쪽 팔과 한쪽 다리는 그냥 두고 나올 때도 많다. 다음에 이곳을 집중으로 밀지, 뭐. 하는 생각을 해버린다.


그러다 보니 대중목욕탕에는 가지 않게 되었다. 편리하지만 역시 아버지와 함께 했던 동네 목욕탕에서의 추억 같은 것들을 느낄 수 없어서였던지 한 번 가지 않게 되니까 이제는 전혀 가지 않게 되었다.


친구 중에 목욕탕 집 아들내미가 있었다. 그 녀석과는 고등학교 내내 전혀 마주할 일이 없다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디자인을 배우면서 친해지게 된 녀석인데 집이 목욕탕이었다. 부모님은 목욕탕에서 1분 거리의 집에 살고 녀석은 목욕탕 위 옥상에서 살았는데 그 녀석의 집에서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면 바로 목욕탕으로 내려가서 씻으면 된다. 그때 목욕탕 안에서 옷을 입은 채 세수만 하는 것도 묘한 기분이었다. 텅 빈 목욕탕에서 이른 오전에 뜨거운 수증기가 폴폴 올라오는 탕을 앞에 두고 옷을 입고 세수만 하고 나오는 기분은 아무튼 기묘하고 이상하고 찝찝했다. 


목욕탕에 가지 않은 덕분인지 매일 샤워를 하게 되었다. 조깅을 하고 들어오니 어쩔 수 없다. 샤워를 할 때는 진지하게 한다. 발가락 사이, 배꼽 안도 손가락으로 때타월을 돌돌 말어서 잘 닦아낸다. 그래도 가끔 탕에 몸을 담그고 망상에 젖는 그 시간이 그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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