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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Nov 24. 2020

라디오를 4년 만에 다시 듣기 시작했다

일상 에세이

아날로그 감성은 라디오에서부터지 


라디오를 다시 듣기 시작한 요즘(그렇다고 해도 오전에 한 시간 정도 듣는다. 10시 20분에서 11시 30분 정도? 정지영 약간, 김현철 약간, 그 정도 듣는 편이다. 예전처럼 하루 종일 라디오를 듣지는 않는다) 라디오를 듣다 보니 아직도 재미있는 구석이 있는 곳이 라디오구나 하게 되었다. 


2016년도에 라디오를 듣지 않게 되어서 그동안 듣고 싶은 음악을 찾아서 듣다가 며칠 전에 다시 듣기 시작했다. 2016년도 이전에는 죽 라디오를 들어왔었다. 그래서 일전에도 한 번 말했지만 선물이 없는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도 선물을 받기도 했었다. 라디오에 참여도가 높은 요즘이라 누구나 실시간으로 접근이 가능하고 또 그만의 재미가 있다. https://brunch.co.kr/@drillmasteer/881

 

없어질 거라는 우려 속에서도 라디오는 꾸준하게 자신의 갈 길을 가고 있다. 무엇보다 라디오에서는 라디오 밖에서의 사건사고에서 벗어난다. 코로나로 인한 힘들고 어려운 기사보다는 노래로 위안과 위로를 하려는 글과 사연이 많다. 오전의 라디오를 듣다 보니 2016년에 듣던 광고가 아직도 흘러나오고 있었다. 정말 놀랍고 신기한 일이었다. 광고라는 건 가장 발 빠르게 변화하는데 ‘이카운트 이알피' 광고는 전혀 변하지 않고 아직도 나오고 있었다. 대단했다. 속을 벌리면 계약이니 뭐니 하는 관계가 있겠지만 그 광고를 4년 만에 다시 들으니 웃음이 나왔다. 뭐 반갑기도 했고.


오늘, 11월 24일 화요일 '오늘 아침 정지영입니다'의 마지막 곡은 마돈나의 '보그'가 나왔다. 마돈나의 여러 멋진 노래 중에서도 가장 멋진 노래가 아닌가, 가장 멋진 뮤직비디오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보그 하면 보그지가 먼저 떠오르고 뮤직비디오 역시 최신의 유행을 말하기도 한다. 가사 속에는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뛰는 그레이스 캘리, 할로, 진 켈리, 그레타 가보, 디마지오, 마론 브란도, 지미진이 마돈나의 입을 통해서 마구 튀어나온다. 보그를 부르며 했던 안무는 우리나라의 광고에서도 너나없이 카피를 했다. 


내가 학창 시절 시끄러운 음악에 빠져 있을 때에도 균형을 잡아준 앨범 중에 마돈나의 앨범도 있었다. 마돈나의 앨범 몇 장을 가지고 많이도 들었다. 마돈나는 철저하게 타인의 곡을 받아서 노래를 부르는 철학을 고수하고 있다. 거기에 자신의 퍼포먼스와 스타일을 입히는 형식을 추구한다. 마돈나의 노래에 대한 열정은 소문이 났지만 ‘헝업’의 도입 부분에 아바의 노래가 쓰이는데, 아바는 자신들의 노래를 타 가수가 쓰는 걸 싫어하기로 유명했기에 그런 일이 그동안 없었다. 마돈나는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서 아바를 만나 당신들의 노래를 샘플링하고 싶다고 말했고 대선배, 대그룹 아바는 마돈나의 열정에 오케이를 한다. 그러고 보면 지구 상의 슈퍼그룹이나 해외 팝스타들이 한국에서 공연을 거의 다 했지만 마돈나는 아직 한국 공연을 한 적이 없다. 요즘은 뭐랄까 코로나 때문에 구설수에도 오르지만. 


싸이가 강남스타일로 유명세를 탈 때 마돈나와 함께 그 노래를 연습했다. 그때 연습을 하다 지쳐서 둘 다 스테이지에 누워서 쉬고 있을 때 마돈나가 싸이에게, 본 공연을 할 때에는 내 몸의 어떤 부위든 터치하고 싶은 대로 해라,라고 했다. 사생활이야 모르겠지만 아티스트적인 면모로는 악착을 넘어 악랄하게 무대를 점령하기에 지금까지 꾸준하게 인기를 누르고 있지 않나 싶다. 아무튼 마돈나의 '보그'를 오랜만에 라디오에서 들으니 반가웠다.


마돈나 대부분 엘피판이었는데 다 없어지고 카세트테이프로 하나가 남아있다

https://youtu.be/GuJQSAiODqI 

말이 필요 없는 멋진 뮤직비디오


라디오에서는 일상의 정보도 많이 알려준다. 요컨대 손가락이 마주치는 부분에 정전기가 많이 일어나면 주머니에 있는 열쇠를 그곳에 한두 번 탁탁 건드리면 정전기가 일어나지 않는다던가, 어딘가 출장을 갔을 때 옷을 다릴 수 없을 때는 샤워를 하고 나면 뿌연 수증기가 욕실에 있는데 그 안에 셔츠를 걸어두면 아침에 구김이 전혀 생기지 않는 정보를 알려주기도 한다.

 

라디오를 듣다 보면 한 시간마다 교통정보를 알려준다. 57분 교통정보를 마치면 누구였습니다,라고 리포터가 인사를 한다. 교통정보를 알려주는 리포터 중에 이름이 고경봉 리포터가 있었다. 고경봉 리포터의 목소리는 전달력이 강했고 부드러웠다. 무엇보다 튀지 않지만 라디오를 많이 듣던 사람들은 누구나 고경봉 리포터를 알고 있었다.

 

매일 고경봉 리포터의 교통정보를 듣다가 어느 날 다른 사람이 리포터를 해서 실시간으로 문자를 보내면 휴가 갔습니다, 라는 방송국 관계자의 답변이 오기도 했다. 이 고경봉 리포터의 아주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고경봉 리포터의 남편 이름도 고경봉이다. 2006년 고경봉 리포터는 연말 라디오 시상식 특별상을 받고 그곳에서 지인을 통해서 같은 이름의 남자가 있는데 그 사람이 너(고경봉 리포터)의 카페에 회원으로 등록된 사람이다. 현재 회원 수는 달랑 두 명. 너(고경봉 리포터)와 회원 두 명, 총 세 명이 같이 만나자, 라는 제의를 받는다. 하지만 사정 때문에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후에 남자 고경봉이 여자 고경봉에게 이메일을 보내게 되고, 두 사람은 얼굴도 모른 채(여자 고경봉이 남자 고경봉의 얼굴을) 지속적으로 메일을 주고받다가 마음이 통하게 되었다. 두 사람은 느낌이 잘 통한다는 것이 너무 신기해서 석 달이 지난 5월의 어느 저녁 7시에 만나서 새벽 3시까지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그해 11월 결혼식을 올린다.

 

정말 영화 같은 이야기다. 남편 고경봉은 한국경제신문기자였고 아내 고경봉은 리포터였다. 두 사람은 우리 이름은 ‘고경봉’입니다, 라는 제목으로 잡지사에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라디오는 이렇게 때때로 영화 같은 이야기로 가득 채워져 있다. 변화하되 변함없는 곳이 라디오, 그곳일지도 모른다.


http://mywedding.designhouse.co.kr/in_magazine/sub.html?at=view&info_id=4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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