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에세이
이 자리에서 바다에 가을비가 떨어지면 지치지 않고 바라본다. 매년 가을은 오고, 가을에도 비가 오니 가을비가 바다를 적시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보게 된다. 오늘은 오랜만에 라디오를 들었다. 골든디스크. 예전에 이루마가 하던 것을 듣다가 듣지 않게 되었는데 어느새 김현철이 디제이를 하고 있었다.
라디오를 듣는데 유라이어 힙의 ‘레인’이 나왔다. 비가 오는 가을에 어울리는 노래라고 김현철이, 김현철의 나긋함이 섞인 목소리로 말을 했다. 그리고 사라 멕라클란의 ‘웬 쉬 러브드 미’가 나오고, 마이클 부블래의 노래도 나왔다. 그동안 들리는 음악을 멀리하고 악착같이 찾아서, 듣고 싶은 노래를 찾아서 들었다. 굳이 듣기 싫은 노래를 왜 들어야 하나, 듣고 싶은 노래를 들으며 살아도 다 듣지 못할 텐데, 라는 생각이 강했다. 그간 음악을 듣는 것에 히어링이 싫어서 리스닝을 했다? 고 해야 할 것 같다.
그저 들리는 노래가 소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음악을 찾아서 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서 지금까지 죽 그렇게 음악을 들어왔는데 라디오를 들으면서 마음이 꽤 편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누군가 선곡을 해서 들려주는 음악이, 설령 그 음악이 오늘의 나의 선곡에 없는 곡들이라도 듣기 좋다는 것을 알았다. 사실 이전에 한창 라디오를 매일 끼고 들었을 때에도 알고 있었지만 방향을 선회하게 되었다는 게 맞는 표현인 것 같다.
가을이라는 계절은 언제나 아쉽다. 비록 짧고 잘 느낄 수 없고, 특히나 이번 가을은 손이 닿지도 않을 거리에 있지만 가을에 비가 오면 조금은 마음이 가라앉는다. 라디오에서 '가을에 제철인 것은 쓸쓸함'이라는 말이 나왔다. 그러고 보니 가을에 쓸쓸함을 느껴본 기억이 없다. 가을이 오면 그저 아름답다,라고 생각하는 동안 스치는 버스처럼 지나가버리고 만다.
그리고 쓸쓸함과 외로움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라며 디제이는 말을 했다. 사람은 누구나 쓸쓸함을 느낀다. 안 느끼는 사람은 쓸쓸함이 왔지만 그냥 지나가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인간인 이상 외롭다. 죽을 정도로 힘들어도 잠이 쏟아지면 결국 혼자서 잠이 든다. 같이 앉아서 밥을 먹지만 밥을 넘기는 행위는 혼자서 하며, 책도 혼자서 읽는 것이고 무엇보다 사랑하는 사람이 아플 때 대신 아플 수도 없다.
나에게도 그간 가을에는 쓸쓸함이 노크를 하고 문을 열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쓸쓸함을 받아들이지 않고 그저 문 밖에 세워두었다가 내쫓았을지도 모른다. 쓸쓸함이 왔다면 그 쓸쓸함을 거부하지 말고 제대로 안아줘야 했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래서 가을에 제철인 쓸쓸함을 정직하게 맛보지도 못 하고 가을을 보내고 말았다.
나에게 ‘시'라는 것에, ‘시’의 세계에 눈뜨게 해 준 시집이 박정대 시인의 ‘삶이라는 직업’이었다. 시를 읽으면 좀 쓸쓸 해잘까 싶어서 ‘삶이라는 직업’을 읽고 또 읽었다. 하지만 박정대의 ‘시‘는 ‘시’라기보다 서사에 가까웠다. 사람이 사람에 대한, 사람의 의한, 아주 긴 서사가 짧은 시집 속에 들어있었다. 천사라도, 악마라도 인간의 모습으로 인간 세계에 와서 삶이라는 직업을 가지게 되면 그것은 혹독하고 처절하고 고통이 따른다. 또 슬라브식 연애에는 얼마나 빠져들었던가. 깜깜한 밤 속으로, 끝도 없이 이어지는 길을 따라 슬라브식 연애를 읽으며 걸어가고 또 걸어갔다.
가을이 주는 쓸쓸함 보다 최승자 식의 처절하고 갉기 갉기 찢기는 아픈 가을보다 창백하고 폭설로 갇혀버린 데카브리가 나의 세계에 들어와 버렸다. 그러면서 동화 같은, 동시 같은 쓸쓸함이 제철인 가을과는 멀어지게 되었다. 이제 음악도 라디오 헤드의 ‘키드 에이’에서 벗어나야 할 때다. 그럴 때라고 생각한다. 편안하고 좋은 팝들이 많으니까. 무엇보다 아직은 쓸쓸함이 제철인 가을이니까. 아직 데카브리는 열흘 정도 남았으니까. 쓸쓸함은 잘 모르지만 그래도 아직 쓸쓸함을 느낄 수 있을 때 제대로 느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