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상수필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교관 Nov 15. 2020

바닷가에서 먹는 컵라면은 천상의 맛

바닷가 에세이

저 앞이 바다인데 사진으로는 어두워서 안 보인다



날이 추워질 거라고 했지만 포근한 날의 연속이다. 밤이지만 청명한 날의 가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다. 단지 건조 치수가 높다고 한다. 언젠가부터 일기예보는 극과 극을 달리고 있는 기분이다. 비가 온 여름에는 너무 많은 비가 와서 모든 시스템이 멈추기도 했다. 그런 복잡한 기후변화와는 무관하게 바닷가에 앉아서 바다의 냄새를 맡으며 먹는 컵라면은 꽤 맛이 좋다. 아니, 최고의 맛이다.


세상이 복잡할수록, 생각이 많을수록 단순한 바다를 찾으면 평화롭다. 덴마크적인 바다는 늘 그 자리에 그대로 있기 때문에 발길만 옮기면 된다. 내가 좋아하는 맥주는 칼스버그인데 그것이 없어서 칭따오 한 캔을 땄다. 그리고 홀딱 빠져버린 천오백 원짜리 컵라면에 물을 붓고 바다의 냄새를 흠 하며 맡는다. 여기까지의 행위를 하는 것이 몹시 좋다. 일단 바닷가니까 바다가 없는 곳에서는 맡을 수 없는 냄새와 할 수 없는 행동이기에 좋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 야외에서 맥주를 즐길 수 있는 계절은 그리 많지 않고 길지 않다. 여름이면 바닷가라도 덥고 습하다. 겨울이면 추위 때문에 이런 건 꿈도 꾸지 못한다. 봄과 가을이라도 바람이 심하고 비가 내리면 이렇게 앉아서 평온하게 맥주를 홀짝이며 컵라면을 즐길 수 없다. 지금 딱 이 계절에만 늦은 밤이든 새벽이든 약간 두꺼운 옷만 있으면 바다의 소리를 들으며 컵라면을 호로록 먹으며 맥주를 즐길 수 있다. 


바닷가의 정취에 빠져있는데 앞 테이블에 한 아저씨가 와서 앉더니 기타를 꺼내 든다. 그리고 김광석의 노래를 부른다. 원곡은 보브 딜런의 곡인데 이 밤바다에 어울리는 노래다. 노래를 굉장히 잘 부른다거나 기가 막히게 노래를 부르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노래를 즐기는 듯 보였고 주위에 눈치를 보지 않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노래를 한 곡 끝냈을 때 나는 나도 모르게 박수를 쳤다. 아저씨는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칭따오가 두 캔이었는데 나는 한 캔을 건넸다. 아저씨는 주름 가득한 얼굴에 주름을 몇 개 더 만들었다. 


이맘때가 되면 기를 쓰고 밤바다에 앉아서 맥주를 홀짝홀짝 마신다.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말하는 '감성'라든가, '정취'에 취하기 가장 좋을 시기다. 덥지도 춥지도 않다. 사람들의 기분도 여름만큼 들뜨지 않아 조용하다. 달과 지구의 거리가 멀어지기에 밤바다의 파도도 잠잠하다. 라면 국물이 식어도 괜찮은 밤이다. 이제 곧 데카브리다. 나의 인생철학은 어쩐지 회귀성으로 귀결되는 것 같다. 아저씨가 맥주를 잘 마셨다고 가고 나서 나탈리 콜의 노래를 죽 틀어 놓는다. 볼에 닿으면 기분 좋은 이불 같은 외투의 안감 스웨이드. 이런 밤이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


저 멀리 생과 사를 오고 가는 오징어 배의 불빛을 보라

연료를 소진시켜가며 덴마크식 바다의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를 보라

뜨거운 여름을 견뎌낸 사람들의 건강한 발걸음을 보라


라면 먹는 곳에서 앞으로 죽 나오면 바다가 이렇다



매거진의 이전글 Do They Know It's Christmas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