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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Dec 05. 2020

나의 고양이 인연들

동물 에세이

나는 동물을 인간보다 더 좋아하는 것 같다. 동물이라고 해봐야 개와 고양이로 축소되지만 유순한 눈동자의 그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개냐, 고양이냐 둘 중에 하나만 고르라고 한다면 참 힘겹지만, 굳이 골라야 한다면 그래도 나는 개 쪽이다. 개들은 오랫동안 키웠고 개와 교감하는 방법은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나는 버려진 개 두 마리를 데리고 와서 죽을 때까지 키웠다. 한 마리는 18년 동안 키웠고 또 다른 한 마리는 주워올 당시 6개월밖에 살지 못한다고 했지만 할 수 없지 뭐, 하는 심정으로 데리고 와서 키우다 보니 11년을 같이 살게 되었다. 물론 키우는 동안 돈이 많이 들었지만 돈이 들어간 것에 비해 그들에게 받은 행복함이 더 크다고 할 수 있어서 후회는 없다.

 

고양이가 물수제비 같은 느긋함과 자유함이 있다면 개는 몰아치는 개울물처럼 혼란스럽기는 하지만 한 번 정을 준 주인에게는 죽음이 덮칠 때까지 영원성을 간직하고 있다. 많은 작가들이 개보다는 고양이를 키우고 있고 고양이는 신비스러운 면모가 많아서 인지 고양이에 대한 글이 개에 대한 글보다는 더 많은 것 같다. 나스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봐도 그렇고, 김영하 작가도 고양이를 키우고 있고 하루키 역시 그렇다.

 

고양이는 한 번도 키워본 적이 없고 개를 좀 더 좋아하지만 오늘은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고양이와 나와의 일정한 간격과 좁혀졌던 거리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길거리에는 버려진 개가 그냥 다니고 버려진 개들이 짖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그에 비해 요즘은 그런 개들은 전혀 볼 수 없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고양이는 예나 지금이나 비슷한 모습으로 볕이 드는 곳에 은밀한 부위를 드러내고 누워 졸거나 햇빛을 받는 광경을 볼 수 있다.

 

1.

길에서 지내는 고양이는 대체로 사람이 다가가면 멀리 가버린다. 하지만 길에서 마주친, 나에게 다가온 몇몇의 고양이가 기억이 난다. 첫 번째로 공원을 산책하다가 만난 고양이 말콤이라는 녀석이다. 이름은 그냥 내가 멋대로 부른다. 말콤은 안타깝고 기묘한 면이 많은 녀석인데 잘 보면 뒷다리 한쪽이 없다. 그래서 안타까운데 내가 부르니까 아무렇지 않게 갸릉거리며 오는 것이다. 처음에는 사람을 좋아하는 녀석이구나, 하고 생각을 했는데 공원에 나와있는 할아버지의 말을 들으니 사람들 보면 도망을 간다는 것이다.

나를 보더니 그대로 팔을 활짝 펴고 달려오는 연인처럼 다가와서는 쪼그리고 내 발밑에 자리를 잡고 퍼졌다. 말콤은 유독 내 다리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내 다리라고 하는 것이 그래도 고양이에게는 인기가 있구나. 사실 이때까지도 말콤이 다리가 하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일어나서 움직일 때 보니 다리가 하나 없었다. 말콤이 사람을 멀리하는 이유가 아무래도 사람에게 해코지를 당해서 다리를 잃어버린 것 같았다. 그럼에도 어째서 나에게는 이렇게도 연인처럼 다가와서 몸을 비빌까.


말콤은 앉아서 자신의 얼굴을 긁어야 했지만 다리의 부재 때문인지 공백이 있어서 얼굴을 매몰차게 긁지 못했다. 하지만 말콤은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그런 점에서 말콤은 쿨 했다. 나는 가야 했지만 30분이나 앉아서 말콤과 놀았다. 치열한 삶 속에서, 마땅히 누려야 할 것을 인간이라는 존재에게 하나를 내어주고서도 말콤은 능청하게 나를 따랐다.

한 달 후 다시 만난 말콤


그리고 한 달 동안 비슷한 시간에 공원을 찾았지만 말콤은 보이지 않았다. 그때가 5월로 가장 좋을 날씨를 자랑하는 계절이었다. 한 달이 끝나갈 무렵 말콤은 다시 공원에서 만날 수 있었다. 역시 나를 보더니 갸릉갸릉 거리더니 벤치 옆으로 와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손길을 바랐다. 말콤을 쓰다듬고 문질러 주었다. 으레 고양이의 눈은 한 일자로 좁혀지며 기분이 좋은지 졸기도 했다.


죽어야 끝나는 부조리는 말콤을 따라다닐 것이다. 어디를 가든 부조리는 말콤을 괴롭히고 감시하고 끊임없이 바늘이 되어 찌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말콤은 개의치 않고 쿨하게 자신만의 세계를 굳건히 지켜나갈 것이다. 말콤 역시 세상 속에서 치열하게 지내고 있으니까. 네 발의 고양이들 속에서 세 발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을 테니까.




2.

또 마주친 고양이 카오루는 바람의 검심에 나오는 카오루에서 이름을 땄다. 아마도 그때 바람의 검심을 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바닷가에 사는 길고양인데 크기도 작고 다른 길고양이들에게 늘 위협을 당하는 그런 작은 고양이였다. 처음 만났을 때는 내가 치즈를 먹고 있다가 나에게 다가왔기에 치즈도 먹나? 하며 조금 주었는데 발로 툭툭 건드려보더니 다른 걸 달라는 것이다.

처음 만날 날. 비 안 오는 날



비 오는 날

하지만 고양이는 뭘 먹는지도 모르고 아무것도 없어서 내일 다시 올 테니 내일 다시 와라,라고 말(해봤자)했다. 카오루는 응 그래 알겠어, 라며 그날 헤어졌다. 다음 날은 비가 왔는데 캔으로 된 닭가슴살과 물을 가지고 갔다. 설마 있으려나 했는데 카오루는 어제의 약속을 잊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는 말은 거짓말이겠지만). 여어 카오루 이리 와, 너의 음식을 가져왔어, 이거는 먹을 수 있나. 라며 캔을 따서 이렇게 주고 옆에 물 뚜껑에 물을 부어서 놔두었다. 그랬더니 먹는 것이다. 먹을 때는 건드리면 안 되겠지만 이렇게 바라보고 있다가 사진도 한 컷 찍을 수 있었다. 다 먹고 났을 때 손등으로 카오루의 등을 슬슬 문질렀더니 나에게 등을 내밀어 주었다. 기특한 녀석.


다시 비 안 오는 날

그 뒤로 나만 보면 저렇게 닭가슴살을 달라고 한다. 그걸 매일 사들고 다니는 건 참 귀찮은 일이고, 또 고양이는 고양이 사료를 먹어야지.

이걸 마지막으로. 이제 사료를 먹도록 해라 카오루야

바닷가에는 덩치가 큰 다른 길고양이도 많고 까마귀가 많다. 비둘기야 고양이를 건드리겠냐마는 덩치 큰 까마귀들은 보기에도 무섭고 날개를 펼치면 겁도 난다. 그런 까마귀들까지 피해 가며 지내야 하니 카오루는 역시 힘겹다. 다니는 자동차들도 피해야 하고. 단지 사람들이 좋다. 사람들은 길고양이들을 자기 집의 새끼처럼 보살피려고 한다. 카오루도 이곳 카페의 주인(고양이를 무척 좋아하는 주인 부부로 고양이가 카페에 들어와도 누구도 나무라지 않는다, 심지어는 손님들도 개의치 않는다, 아주 기분 좋은 카페다)이 잘 거둬서 먹여주고 재워주었다.



3.

그리고 조깅을 하면서 횟집 앞에서 늘 이런 모습으로 보는 양추녀석이다. 횟집에서 주는 사료는 먹지 않고 횟집에서 손님들이 들고 나오는 콩고물을 받아먹으려는 양추의 모습은 만화를 보는 것 같다. 언제나 저 자리에 앉아서 졸면서 앞발이 추운지 늘 꼬리로 발을 감싸고 있다. 여름에는 저러지 않는 걸 보면 겨울에는 발이 시려서 그러는가 보다. 아무튼 지나치며 보니 저런 모습이다. 살며시 이렇게 가서 툭 건드리면 그저 눈을 뜨고 어? 뭐야? 물고기는? 이런 제길, 같은 표정을 짓는다.

포즈와 생긴 것부터 재미있는 양추 녀석




4.

이곳은 계단이 있는 작은 공원으로 조깅코스에 넣어서 몇 번을 오르락내리락 하지만 그곳에서 자주 마주치는 말랑이는 귀찮은지 나를 신경도 쓰지 않는다. 꼭 '날은 바야흐로 선탠을 즐기는 날이지? 이런 날은 비타민을 생성시켜야 해' 라며 낮잠을 즐긴다. 이봐, 길고양이라면 사람을 좀 무서워해달라고,라고 하면 '아이구 거참 귀찮아' 하며 몸을 쭈욱 스트레칭을 하며 뒹굴뒹굴한다. 말랑이(이름을 이렇게 지었다) 녀석을 보고 있으면 세상이 돌아가는 것과는 다르게 무척 평온하게 보인다.

그렇지만 기이한 것은 저 문으로 사람이 나오거나 다른 사람이 계단을 내려오면 후다닥 하며 풀숲으로 잽싸게 도망가 버리고 만다. 아무래도 나를 만만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내가 옆으로 가면 되게 귀찮아하면서 다른 사람이 오면 아주 날렵해진다. 살짝 기분이 나쁘다.



5.

이 녀석은 아주 작은 녀석으로 여름에 조깅을 한 시간 정도 해야 도달할 수 있는 거리에 있는데, 내 신발보다 더 작은 새끼 고양이다. 이 녀석의 이름은 고무. 고무라는 이름은 고무신에서 '신'을 뺀 이름이다. 검정고무신이 생각이 났나? 고무야,라고 부르면 또 온다. 고무 녀석은 경계심이 많고 작은 소리에도 자주 놀란다. 처음 만난 날에 도망을 가지 않기에 그런 녀석이거니 했지만 누군가 가까이 오면 경계를 바짝 하다가 사라진다. 앉아있으면 놀아달라는 건지 배를 보이며 눕기도 하고 앞발로 얼굴을 문지르며 야옹야옹거린다. 고무 녀석은 온몸이 전부 까맣다. 눈도 까만데 이는 새하얗다.

그런데 어느 날은 고무 녀석이 심하게 우는 것이다. 아무래도 배가 너무 고픈 것 같았다. 다행인 것은 오천 원짜리 한 장을 들고 나왔는데 참치 캔 작은 것과 물 한 병을 살 수 있었다. 참치의 기름을 좀 버리고 물을 약간 부어서 고무 녀석에게 내주었고 물병 뚜껑에 물을 받아 옆에 놔주었다. 역시 달려들어 맛있게 참치를 먹었다.


아무래도 마르고, 새끼에다가 자동차들도 휙휙 지나가고, 누군가 먹이도 주지 않으니 나에게 다가와서, 여어 인간 친구 나 배가 많이 고픈데 먹을 것 좀 줘, 건 멸치면 참 좋겠지만 그것이 없더라도 괜찮아,라고 하는 것 같았다. 고무 녀석은 그렇게 실컷 배를 채우고는 발바닥을 핥았다. 시간이 지나면 고무 녀석도 뒷다리가 멋진 어른 고양이가 되겠지만 아직 엄마의 품에서 마냥 애교를 떨며 어미 고양이가 잡아 준 작은 쥐를 가지고 놀며 세상을 알아가야 하겠지만 까맣고 작은 고무 녀석을 보고 있으면 어쩐지 세상을 미워하지 않을까. 지금은 아무래도 크고 멋진 검은 표범 같은 고양이가 되어 있겠지요.



6.

강변의 조깅코스에 있는 길고양이 녀석이 새끼들을 낳았다. 서로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은 그곳을 지나다니면서 차례차례, 십시일반으로 고양이 사료를 챙겨 와서 길목에 먹도록 놓아주었다. 누구랄 것도 없이 예쁜 어린것들에게 마음을 빼앗겨 버려 그저 무럭무럭 잘 커 주었으면 하고 바랐다.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야생의 길고양이들과 공존하고 있다. 그런 따뜻한 손길로 인해 인간과 동물이 소통을 한다.

지구 재난 영화 '그린랜드'에서도 마지막에 새 두 마리가 날아다는 것을 보고 벙크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희망을 갖는다. 고작 새 두 마리에게서 인간들은 웃음을 보인다. 사람들은 어린 고양이들을 보며 얘들이 이곳에서 잘 커가리라는 것을 생각한다. 그리고 그 사이에 인간과 교감하는 상상을 하면서 행복해한다.

흐뭇하게 지켜보는 운동 중인 아저씨

자전거에 치이지 말고,  배고프다고 윗 도로로 달려들어 로드킬 당하지 말고 열심히 크거라. 사람들은 모두 같은 마음으로 어린 고양이들의 먹이를 책임져 주었다. 뉴스에서는 온통 사람들의 잔혹함에 대해서 나오지만 눈을 돌리면 이렇게도 아름다운 모습들을 볼 수 있다. 꽤 흐뭇한 광경이다.



7.

저 녀석들이 커서 이제 강변에서 낚시를 하러 나온 아저씨의 오토바이 위에 아무렇지 않게 올라타서 던져주는 물고기를 기다린다. 서열이 안 되는 녀석들은 그 밑에서 눈을 감고 추위를 견뎌가며 물고기를 기다린다. 낚시를 하는 아저씨는 당연하다는 것처럼 고양이가 오토바이 주위에 몰려와도 아무렇지 않게 자리를 잡고 앉아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물고기를 잡으면 한 마리씩 고양이들에게 던져 준다. 그러면 고양이는 물고기를 입에 물고 잽싸게 맞은편의 수풀(6번 사진에서)로 들어가서 맛있게 만찬을 즐긴다.

사진에는 총 세 마리의 고양이가 있습니다



8.

마지막으로 거의 몇 개월 동안 내 손을 뿌리치던 길고양이가 나에게 등을 내주던 날이다. 가장 최근의 날로 그날은 추운 날 속에서 밤에도 포근했다. 달리는데 땀이 엄청 흐르는 날이었다. 이 녀석의 이름은 까칠이인데 역시 오늘도 까칠하게 굴 줄 알았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내민 손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까칠이가 웬일이지. 그리고는 내 손바닥의 냄새를 한 번 맡더니(장갑을 끼고 있다가 벗었다) 다리 사이로 몸을 비볐다.

아아 까칠이의 애정표현이 시작되었다. 나에게서 어떤 친밀한 감정을 느꼈는지 몸을 비비기 시작했다. 야옹야옹하는 소리는 아주 부드러웠고 적대적이지 않았다. 그리고 나에게 등을 내밀었다. 인간과의 거리는 가까워질 수 없는데 동물과의 거리는 이렇게도 자연스럽게 가까워진다. 이대로 영영 동물들의 영역 속으로 들어가고픈 생각마저 드는 요즘이다.

벌 것 아닌데 아주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까칠이가 나에게 등을 내밀더니 이내 단으로 올라가 얼굴까지 내밀었다. 그날 까칠이는 거의 50미터를 나를 따라왔다. 그날 정말 까칠이를 안고 집으로 가서 키울까 하는 생각이 이만큼 찼었다.

표정은 아주 시리어스 ㅋㅋㅋ


길고양이의 인연에 관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오래전이지만 술을 마시고 대리운전을 해오는 날이었다. 그날 집으로 오는데 차에 치여 목숨이 갓 끊어진 고양이가 도로에 있다며 대리기사가 차를 멈추었다. 그래서 내려서 보니 아파트 밑 도로(2차선 도로인데 밤에는 길가에 차를 주차한다. 구청에서도 아침 7시까진가는 주차를 허용하는 그런 도로)의 중간에 고양이가 죽어 있는데 죽은 고양이 주위에 새끼 고양이 네 마리가 모여있었다. 새벽이라 다행히 오고 가는 차가 드물었지만 저대로 뒀다가는 새끼 고양이들도 전부 차에 치일 것 같았다. 할 수 없이(술을 마시지 않았다면 그 짓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미 고양이를 묻어 준 적이 있었다. 어미를 들었을 때 아직 몸은 뜨뜻했고 창자가 터졌는지 입에서는 피가 계속 흘렀다. 그때에는 도시락을 싸 들고 다녔을 때라 포크 숟가락이 있었다. 그 숟가락으로 저수지 근처,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곳으로 올라가 땅을 열심히 파고 묻어 주었다. 술 때문에 새벽에 죽은 고양이를 묻어주다니, 하면서 씩씩 거렸던 기억이 있다. 어미를 들었을 때 주먹만 한 새끼 고양이들에게 술이 취해서 한 소리 했다. 미안하다, 인간들 때문에 엄마도 잃고, 대신 내가 잘 묻어줄게!라고. 뭐 알아듣지는 못했을 테지만.


길고양이들은 지구에 존재하는 생명체중에 가장 나약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너무나 나약해서 어느 날 아무 소리도 없이 차에 치여 그저 길바닥에서 싸늘하게 죽어간다. https://brunch.co.kr/@drillmasteer/468

그렇게 소리도 없이 사라지는 길고양이들이 우리와 다를 바 하등 없다. 우리의 존재도 비가 오면 창문에 붙은 빗방울과 같다. 악착같이 창에 붙어있으려고 하지만 무게가 무거워지면 그대로 창에서 떨어지고 만다. 나는 고양이들과는 그다지 친밀하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그간의 고양이들은 나에게 등을 내밀어 주었다. 마치 괜찮아, 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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