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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Dec 01. 2020

로비의 남자

단편 소설


 은빛 생물체처럼 보이는, 한 번도 써보지 않은 손톱깎이를 한참 쳐다보다가 나는 그대로 손톱깎이를 쓰레기통에 버려 버렸다.



 #

 가게 앞 로비에 앉아서 한 남자가 내가 일하는 곳을 쳐다보고 있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 보니 무표정한 얼굴에(약간은 인상을 쓰고 있었다) 다른 곳은 전혀 보지 않고 내가 일하는 가게 안을 죽 쳐다보며 앉아있었다. 나이는 나보다 젊은것 같았다. 20대 후반이나 중반이 되었을 법한 외모를 지니고 있었지만 그 또래 같지 않게 코밑에 어둑하게 수염이 자라나 있었고 턱에도 검푸른 바다와 같은 색을 띠고 있었다. 대학생들이 수염을 기르는 것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었다. 막 자라게 내버려 두었다가 대충 깎은 것처럼 보였다. 남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남자는 다섯 시간 정도(더 걸릴 때도 있었다) 로비에 앉아서 가게 안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러다 배가 고픈지 어딘가로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서 내가 일을 하는 곳을 쳐다보는 것이다. 남자는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홈리스는 아닌 듯 보였다. 직장이 있는 사람이라면 하루 이틀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며칠 동안 다섯 시간 이상 로비에 앉아서 가만히 가게 안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앉아만 있을 수는 없다.


 내가 일하는 곳은 시내 중심가의 15층 높이의 꽤 오래된 주상복합건물의 일층에 자리한 코너에서 양말을 팔고 있다. 가게 앞에는 로비가 바로 보이고 로비에는 벤치가 있는데 남자는 가게 바로 맞은편 벤치에 앉아서 가게 안을 쳐다보고 있는 것이다.


 오래된 건물이지만 일층을 통행하는 유동인구가 많은 편의 좋은 자리에 양말 코너를 얻은 덕분에 사람들이 양말을 많이 구입하는 편이었다. 처음 양말 장사를 한다고 했을 때 누구도 환영하지 않았다.


 요즘 누가 양말을 살까, 하는 말을 많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해도 대부분 양말을 신고 다닌다. 그동안 사람들의 발을 조금 유심히 관찰했다. 회사를 다니는 사람들은 거의 백 퍼센트 양말을 신고 다녔고 학생들 역시 양말을 대부분 신었다. 요즘은 양말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에 양말을 가방에 여분으로 하나씩 더 넣어 다니는 학생들도 많아졌다. 물론 양말도 유행을 타기 때문에 모양이 조금씩 변했지만 양말을 찾는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신고 다녔다.


 여름이 되면 슈즈나 발가락이 나오는 신발을 신고 다니기 때문에 양말을 잘 신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꾸준하게 양말을 사는 사람들은 늘 있었고 그 사람들은 역시 끈질기게 양말을 구입했다. 무엇보다 아내가 양말 장사를 한다고 했을 때 적극적으로 찬성을 해주었다.


 양말을 구입하는 사람들의 심리까지는 모르겠지만 동향을 잘 파악한다며 판매에는 문제가 없을 것 같았고 그것은 어느 정도 맞아떨어졌다. 저렴하게 구입하여 편안하게 신고 버릴 수 있는 양말부터 기능성 양말까지, 가격은 좀 비싸지만 패션을 완성하는데 한몫을 하는 양말도 잘 보이는 곳에 진열을 했다. 어떻든 단가가 센 물품을 팔아치우는 것이 판매자의 입장에서 이윤이 나기 때문이다.


 가게가 그리 큰 편이 아니기 때문에 손님이 북적이지는 않았다. 덕분에 지나다니는 많은 사람들을 보게 된다. 인생의 재미 중에 어딘가에서 어디로 지나치는 사람을 구경하는 것이 재미가 좋은 축에 속했다. 물처럼 흘러가는 사람들을 구경할 때에는 생각을 할 필요도 없다. 틀어놓은 음악을 들으며 멍하게 지나치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연스레 눈은 지나치는 사람들이 신고 있는 양말을 본다.


 그러다 보면 별별 사람들을 다 보게 된다.


 어느 날이었다. 오전 9시에 가게의 문을 열고 장사를 시작하는데 하루는 로비에 어떤 여자가 앉아 있었다. 흰 블라우스에 파란색의 스판바지를 입고 검은색 구두를 신고 있었는데 구두가 불편한지 로비에 앉아서 구두의 끈을 조이고 매만지고 있었다. 일층에는 화장실이 있는데 무엇 때문인지 여자 화장실에만 대걸레를 빨거나 헹굴 수 있는 수도시설이 되어있어서 나는 여자 화장실에 들어가서 대걸레를 들고 와서 가게 안의 바닥을 닦는다.


 당연하지만 여자 화장실에 사람이 있으면 대걸레를 가지러 들어가지 못한다.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들어가서 대걸레를 들고 나와서 가게 바닥을 청소하면서 보니 로비에 앉아 있던 여자가 가버리고 없었다. 십 분 정도 바닥을 걸레질하고 여자 화장실에 대걸레를 갖다 놓으려 들어가는데 냄새가 강하게 났다.


 뭐랄까, 일주일 만에 본 대변에서 나는 냄새처럼 아주 지독했다. 화장실에 똥 냄새가 나는 것쯤이야,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 사이에(가게 바닥을 닦는 동안) 누군가 변기 밖에, 그것도 엉덩이를 대고 앉는 변기커버에 어정쩡하게 대변을 본 것이다. 생각해보니 구두를 만지던 여자밖에 없었다. 어째서,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오전이었고 여자는 술을 마신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멀쩡하게만 보이는 여자는 변기커버에 똥을 싸놓고 사라진 것이다. 누군가를 향한 보복이었을까.


 정말 사람들의 마음은 알 수 없었다. 제멋대로다.


 양말 가게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지나침을 보다 보면 사람과 사람이 절대 같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어떻든 재미가 있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흐르는 전류처럼 어딘가로 갈구하듯 굳은 결심의 표정으로 가게 앞을 지나쳐갔다.


 오전에는 비교적 바쁘게 지나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고 그 시간대를 지나면 밝은 표정의 학생들이 우르르 시내로 나와서 건물을 관통했다. 하교 시간이 각 학교마다 엇비슷하니 오후가 되면 압도적으로 학생들의 이동이 많은데, 학생들은 의외로 싸고 질이 썩 좋지 못한 양말은 선호하지 않았다. 아디다스, 나이키의 최고 고객이 청소년들이라는 말을 실감했다.  학생들은(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몇 백 원이나 일이천 원이 더 비싸더라도 땀을 잘 흡수하고 발목에 포인트를 줄 수 있는 양말을 선호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맑은 하늘처럼 보냈는데 어느 날 젊어 보이지 않는 젊은 남자가 가게 앞의 로비에 앉아서 가게 안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처음에는 양말에 시선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양말이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 생각을 했다. 하지만 시선은 정확하게 양말을 향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가게 안의 어느 지점을 향하고 있었고 그 지점은 양말과 양말 사이 이거나, 양말이 놓인 선반의 끝이거나 또는 서랍장의 모서리 같은 부분을 향하고 있었다. 그저 대수롭지 않게 생각을 했지만 장사를 하는 시간 내내 가게 앞의 로비에 앉아서 이곳을 쳐다본다는 것이 상식에서는 좀 벗어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지만 남자는 무표정했고 눈을 피한다든가 눈인사를 하는 것도 아니었다. 눈은 내 쪽에서 피하게 되었다. 남자는 나에게 무엇을 갈구하는 눈빛을 약간 띠는 것 같았지만 그것은 나의 착각이라고 생각했다. 작은 가방을 메고 있었고 봄이 끝나고 여름이 막 오려는 계절이라 오전에는 서늘하고 오후에는 움직이면 등에서 열이 나는 날씨였다.


 유행의 근처도 가지 않을 것 같은 청바지를 입고 있었고 투박해 보이는 진한 갈색 구두를 신고 있었다. 점퍼를 입고 있었는데 지금 계절에는 좀 더워 보이는 점퍼였다. 하지만 남자는 더워 보이는 기색 없이 점퍼를 입고 사선으로 멘 가방을 배 앞에 놓고 앉아있었다. 여름이 오려면 아직 두 달 정도 시간이 걸리겠지만 어떻든 남자가 입고 있는 점퍼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더워 보이게 만드는 점퍼였다.


 남자는 거의 움직임이 없었다. 언뜻 멍하게 앉아 있는 것 같았지만 시선은 정확하게 보고자 하는 부분을 보고 있었다. 남자가 보고자 하는 부분이 어째서 내가 일하는 양말 가게 안이어야 하는지 의문스러웠다.


 최초에 몇 시에 로비로 걸어와서 앉아 있었는지 몰랐지만 하루 종일 그렇게 앉아 있었다. 모두가 시내 중심가에 자리한 건물의 일층을 지나갔지만 남자는 그날부터 로비에 머물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영화 '터미널'에서 빅터 나보스키처럼 머무는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그저 하루 동안 할 일이 없어 그러나 보다 했다. 남자는 내가 가게 문을 닫고 나 올 때까지 로비에 앉아서 내가 문을 닫는 장면까지 쳐다보았다.


 얼핏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가게 문을 닫는 모습을 확실하게 본 후 나중에 가게를 털려고 그러는 것일까. 하지만 가게에는 양말뿐이다. 오직 양말밖에 없다. 양말 가게이니 그야말로 양말로 가득 차 있을 뿐이다. 양말 가게를 턴다면 죽을 때까지 양말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양말과 양말을 진열해 놓을 수 있는 비교적 저렴한 수납 장과 음악이 나오는 스피커와 컴퓨터 한 대가 고작이었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초라한 가게일 뿐이다. 남자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로비에 앉아서 꼿꼿하게 시선을 고정했다.     



 "낮에 로비에 앉아있던 그 사람 말이에요? 홈리스처럼 보이던 남자?"


 아내는 점심시간이 되면 가게로 와서 싸온 도시락을 같이 먹는다. 아내는 근처 여행사에서 일을 한다. 이제 본격적으로 여름철이 되면 외국으로 나가려는 여행객들이 많아져서 아내는 몹시 바빴다.


 여권을 발급하여 여행사로 예약을 하려는 사람들로 연일 눈코 뜰 새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예전에는 여권도 여행사에서 대행을 해줬는데 요즘은 여권발급은 본인이 가야 한다. 점심을 같이 먹으며 아내는 로비에 앉아서 가게 안을 쳐다보는 남자를 기억하고 있었다.


 "홈리스는 아닌 것 같아. 어쩐지 흐르는 기류가 사람들과는 좀 다르게 느껴졌어."     


 나는 아내의 신음소리를 좋아한다. 아내의 신음 소리는 교태스럽지 않고 억억 하는 소리를 냈다. 목소리가 다른 여자들의 비해 굵었지만 아내의 목소리는 타인으로 하여금 계속 듣게 하는 매력이 스며든 목소리였다.


 아내가 여행상품을 소개하면 사람들이 어느샌가 고개를 끄덕이며 죽 듣고 있었다. 아내와 섹스를 하면서 처음 듣는 아내의 신음소리는 꽤 이질적이어서 머리를 때리는 것처럼 충격이었지만 나는 그 소리에 깊게 빠져들어버렸다. 아내의 신음소리에 대한 이야기는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다. 그것은 프라이버시에 관한 것이었고 무엇보다 나는 아내의 신음소리를 듣기 위해 매일 아내의 속옷을 벗겼다. 어느 날은 밥을 먹다가 속옷을 벗겨 신음소리를 들었다.


 아내는 입안에 밥이 있다고 했지만 나를 나도 막을 수 없었다. 식탁을 물리고 아내가 설거지를 하고 있을 때 쓰러뜨리기도 했다. 저녁에 집에 있을 때 아내는 나를 위해 팬티를 입지 않는 날도 있었다.


 "속옷을 입지 않고 있으면 어때?"


 "대단한 일탈은 아니에요. 하지만 머릿속 생각은 뭔가 조마조마하면서 당신이 들어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어요."


 "팬티를 입지 않은 채 헐렁한 치마를 입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가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생각이 연기 같은 형태로 떠돌아다녀요."


 아내의 말을 들으면 나는 아내가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어떤 사내에게 당하는 장면을 자동적으로 떠올렸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아내는 거부하면서도 억억 하는 소리를 내는 것이다. 그 생각의 끝에 닿을 때면 나는 어김없이 아내를 잡아당겼다.     



 남자는 다음 날에도 나타났다. 9시면 나는 가게 문을 열었다. 가게 문을 열고 양말을 정리하고 신상품을 사람들이 잘 보이는 곳에 놓아두고 지난 상품을 안으로 밀어 넣고 재고를 체크하고 먼지를 털고 가게 앞에서 선반을 내어 양말을 진열했다. 늘 있는 일이다.


 그리고 음악을 틀어 놓는다. 아무래도 시내 중심가다 보니 유행하는 팝을 틀어 놓는 경우가 많지만 오전에는 내가 듣고 싶은 음악을 틀어 놓는다. 트래비스의 노래를 틀고 물청소를 하는데 남자가 나타났다. 남자는 저쪽에서 걸어와 어제와 마찬가지로 가게 앞의 로비에 앉았다. 어제와 다른 점은 남자는 점퍼를 입지 않고 있었다. 어제보다 오늘이 좀 더 더워졌는지 모르겠지만 남자는 점퍼를 벗고 왔다.


 남자는 늘 하는 일처럼 로비의 벤치에 앉아서 내가 하는 행동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남자가 쳐다보는 것에는 망설임이라든가 자신이 타인을 쳐다보는 것에 대해서 상대방이 어떤 생각을 할까. 따위는 없었다. 머리는 잠들기 전에 감고 일어나서 그대로 나온 것처럼 헝클어져있었다. 정리를 하는 것은 남자의 의식에 들어있지 않은 모양이었다.


 나는 대걸레를 빨아서 바닥청소를 하고 먼지를 털면서도 남자를 의식했다. 남자는 앉아서 가만히 이곳의 한 지점에 시선을 두었고 그 이후로는 계속 그 같은 양식을 유지했다. 알 수 없었다. 어째서 한창 일해야 하는 시간에, 일해야 하는 나이가, 이곳에 계속 앉아 있을까. 하는 생각이 내 머리를 지배했다.


 점퍼를 벗고 왔다는 것은 어딘가에 머무르고 있다는 말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겨울 동안 입었던 점퍼를 버렸는지도 모른다. 남자가 입고 있던 점퍼는 한 겨울에 입기에는 추워 보였지만 지금 입고 다니면 분명 더워 보이는 점퍼였다.


 일단 남자를 의식하고 나자 나는 평소처럼 제대로 가게 안에서 쉴 수 없었다. 남자는 무표정하게 가게 안을 쳐다보았고 나는 남자에게 다가가서 왜 그렇게 뚫어져라 여기를 쳐다보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포인트라고 해야 할까. 물어봐야 하는 시점을 놓쳤다. 일단 시점을 놓치고 나니 남자에게 다가간다는 것이 멀어졌다. 그러다가 오기 같은 것이 생겼다. 그래, 누가 이기나 한 번 해보자. 하는 마음이 일어났다.


 남자는 3일째 되는 날에도 나타났다. 이쯤 되면 남자가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가게의 보증금이나 이런저런 세입자에 관한 부분은 나쁘지 않았고 주인이 혹시 은행의 빚을 떠안고 야반도주를 한다고 해도 우리에게 큰 피해는 오지 않을 것이다. 전세권 설정도 부동산을 통해서 해놨다. 그런 조사를 하기 위해 나온 사람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남자는 직업을 가진 보통의 사람들의 모습에서도 벗어났다.


 어쩌면 작가일지도 모른다. 작가들은 관찰이라는 것을 해야 하고 그걸 토대로 글을 써야 하기 때문에 양말에 관한 것에 대해서 글을 적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려면 양말에 대해서 알아야 했고 양말이 많은 곳에, 그곳이 당연히 양말 가게이니 양말 가게 앞에서 양말에 관해서, 양말을 둘러싸고 있는 어떤 관념에 대해서 관찰하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어떤 특징적인 양말을 신고 있는 사람을 보면 살인의 충동을 느끼는 사람이 주인공이다. 주인공은 그런 양말을 신고 있는 사람을 따라가서 죽이고 만다. 그것도 양말을 신은 채 발목을 잘라서 죽이는 것이다. 주인공은 여자, 남자 가리지 않았고 나이도 상관없었다. 그래서 형사의 추적이 어려웠고 살인을 하는 지역도 일정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할머니를 살인하기도 했다. 양말이란 발 냄새를 없애고 발을 보호하기 위해서 신는 것이지만 그것에서 벗어난 옷 같은, 입는 관념을 주인공은 느끼고 있었고 그런 양말을 신고 있는 사람을 보면 따라가서 죽이고 만다. 주인공의 심리에 대해서 알아야 했고 양말을 좀 더 심도 있게 쳐다볼 필요가 있었다.


 남자가 작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남자를 신경 쓰는 동안 맞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양말 가게 앞보다 양말 공장을 취재하는 것이 훨씬 양말에 대해서 알기 쉽고 접근하기 좋은 방법이다. 남자는 메모를 한다거나 휴대전화기에 기입을 하는 행동도 전혀 없었다. 남자의 표정은 무표정 그 이상이었고 눈빛은 모호하여 잠깐씩 눈이 마주치면 조금 무서웠다.     


 3일째 되는 날에 입고 나온 옷은 변함없었지만 양말은 바뀌었다. 나는 사람들의 발목을 가장 먼저 보는 경향이 있고 남자가 앉아 있을 때마다 남자의 발목을 제일 먼저 쳐다봤는데 양말은 3일째 다른 양말이었다. 양말도 청바지처럼 시대를 거슬렀다.


 "어머, 저 사람 오늘도 왔네요. 오늘 벌써 3일 째에요? 어머, 오늘도 꼼짝 않고 여기를 보고 있네. 내가 가서 왜 그러냐고 물어볼까요?" 아내가 도시락으로 싸온 미역무침을 밥과 함께 먹으며 말했다. 나는 그러지 말라고 했다. 어쩐지 물어보고 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실망하게 될 것 같았다. 그리고 먼저 물어보는 사람이 지는 것 같아서 싫다고 했다. 아내는 그런 나의 말에 피식 웃었다. 남학생이 와서 발목 양말 흰색으로 두 켤레를 사 갔다.


 남자가 가게 앞에 나타난 지 4일째 되는 날 밤에 아내의 입에서 억억 하는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아내는 옆으로 누워서 나의 페니스를 만지며 "억지로 신음소리를 낼 수는 없었어요. 흥분되지 않는 상황에서 자연스러운 신음소리는 나오지 않아요. 당신은 왜 인지 몸은 나와 함께 있지만 정신은 다른 곳에 가 있는 것 같았어요."


 그랬다. 나의 머릿속은 가게 앞의 남자 생각으로 가득했다. 남자의 눈빛을 떠올리면 이상했다. 설명할 수 없지만 내 속에 있는 어떠한 기운을 남자가 가져가 버린 것 같았다. 4일째 되는 날, 양말을 사러 온 손님들에게도 나는 남자가 신경 쓰여 친절하게 대하지 못했다. 남자가 앞에 앉아있음으로 해서 내가 백 퍼센트 내야 하는 친절함이 반으로 깎였고 그 절반이 남자의 눈빛으로 빨려 들어가 버리는 착각이 들었다. 분명 착각이겠지만 남자가 나타나고 나서 나는 내가 원래 지니고 있어야 할 견고한 것들이 조금씩 바람에 흩날리는 것 같았다. 아내에게 설명을 하고 싶었지만 어떤 식으로 말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나도 잘 모르겠어. 그 남자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아. 남자는 나에게 해코지를 한 적도 없는데 정신적으로 투침해서 나를 점점 조여 오는 것이 아닐까."


 "아, 양말 가게 앞에서 뚫어져라 쳐다보는 남자 말이죠? 어쩐지 이상했어요. 경찰에 신고해야 하지 않을까요. 보니까 나이에 맞지 않게 옷을 입은 것 같기도 했고, 그 정도 나이면 그 시간에는 보통 일을 하거나 놀아도 한 곳에서 죽치고 가만히 있지는 않잖아요." 아내는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아내는 나를 몹시 사랑하고 있다. 나는 그 점을 잘 알고 있다. 나 역시 아내를 정말 좋아한다. 아내는 바쁘지 않을 때면 나에게 여행 제의를 했고 우리는 일을 하다가도 모든 것을 내려놓고 어딘가로 훌쩍 떠났다. 아내가 여행을 가자는 말이 없을 때는 아내가 몹시 바쁘다는 증거다. 내가 하는 일은 바쁠 일이 없으니까.


 경찰에 신고하기에도 어딘가 이상했다. 경찰에 신고를 하면 경찰에게 뭐라고 해야 할까. 여기에 늘 나와서 앉아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수상해요. 일도 하지 않은 채 노숙자처럼 언제나 이곳에 앉아 있는 사람이 있어요. 그 사람이 당신에게 해를 입혔습니까? 아니요. 그렇다면 욕을 했습니까? 아니요. 그렇다면 영업에 방해되는 행동을 했습니까? 가령 정보를 캔다거나 피켓 같은 것을 들고 방해를 하거나 누워서 장사를 하지 못하게 한다거나? 아닙니다. 여긴 그저 양말 가게 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을 연행해야 할 명분이 하나도 없습니다. 오히려 멀쩡한 사람을 신고했다는 이유로 이쪽에서 손해를 입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라는 말을 들을지도 모른다. 하긴 어떤 경찰이……. 얼마나 바쁜데. 죄질이 심한 자들을 잡아들이는데 시간과 노력을 쏟아붓는데.


 "디태치먼트 할 거야. 내일부터는 그냥 아무런 일이 없는 것처럼 지내야겠어."


 "일층에 다른 점포도 있잖아요? 옆 가게에서는 아무런 말을 안 해요?"


 "하지만 대부분 자신의 일이 아니니까. 애써 외면하는 것 같아. 괜히 휘말리면 귀찮게 되고. 게다가 남자는 양말 가게 앞에 앉아 있을 뿐이니까. 나만 무신경하면 돼."


 "당신, 어쩐지 어른이 되어 가는 것 같아요."


 "응? 무슨 말이지?"


 "글쎄요, 어른이 된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요? 어른이 된다는 건 이렇게 마음 놓고 섹스를 하는 것, 그 이외의 무엇이 있는 거 같아요."


 나는 아내를 쳐다보았다. 아내는 늘어진 페니스의 끝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손으로 애무를 했다.


 "어른이 된다는 건 하나씩 생겨버린 자신의 아픔을 짊어지고 앞으로 가는 것 같아요. 아픔 속에는 슬픔이라든가 배신 같은 것들이 있죠." 아내는 손을 움직였다.


 "그리고 동시에 타인의 아픔을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타인이라고 해서 내가 알지 못하는 불특정 다수가 아니라 나 이외의 사람, 가족도 포함이 되고 친구나 알고 있는 사람들의 아픔도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어른 이전에는 오로지 나만의 아픔을 생각하지만 말이에요."


 나는 아내의 말을 생각했다. 그렇지만 나는 타인에 대해서 썩 생각해본 적이 없다. 아내의 말대로라면 아내 역시 타인이지만 나는 아내의 아픔에 대해서는 비교적 고민을 하는 편이었다.    


 나는 이제 어른이 되어 가는 것일까.


 문득 어른이 된다는 것은 아이로 가지고 있던 어떤 것들이 와르르 무너지는 시점에 도달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가게 앞에 남자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나는 어른이 되지 못했을까. 이렇게 자연스럽게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침대에서 서로의 몸을 애무하고 사랑을 나누는 것이 어른이 아닌가. 하지만 어른이라는 정의 속에는 더 많은 의미나 관념이 들어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 그것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남자는 5일째 되는 날에도 어김없이 로비에 나타났고 5일째 되는 날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나는 남자를 디태치먼트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나는 마음을 먹으면 그대로 하는 스타일이다. 양말 가게도 마음을 먹고 시작하게 되었다. 아내를 제외하고 모두가 말렸지만 나는 다니던 회사를 때려치우고 마음먹은 대로 양말 가게를 시작했다.


 다녔던 회사는 동네의 소식을 전하는 소식지를 만드는 간행물 회사였다. 그곳에서 일을 하면서 나는 더 큰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몇 년이 지나는 동안 늘 그대로 머물러있는 것에 회의가 들었다.


 동네 공원에서 나이가 많은 할아버지들을 상대로 고추를 만지고 음료를 파는 음료 할머니의 르포를 소식지에 내보냈다. 반응이 좋았다. 그 칼럼이 서울의 신문사에 실리면서 나는 소식지 회사에서 벗어 날 줄 알았지만 어처구니없게도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어떤 기자가 내가 쓴 칼럼을 교묘하게 편집하여 마치 자기 것인 양 재구성하여 인기를 얻어 가 버렸다.


 공원에서 일주일 가량 잠복하면서 노인들의 성에 대해서 조금은 알게 되었다. 누구나 노인이 되기 때문에 그들의 성은 모두의 모습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모두 쉬쉬했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나는 오지 않을 것 같은, 내가 노인이 되었을 때의 페니스를 생각하면서 취재에 몰두했었다. 친구 놈이 내가 결혼하기 전에 그랬다. 결혼하면 섹스는 끝이야, 유사 성행위만 해도 감지덕지지. 그저 종족 번식을 위해서 섹스를 할 뿐이야, 열심히 할 수 있을 때 해 두라구.     


 기사를 갈취당하고 난 후 회사를 박차고 나와서 양말 가게를 열었다.


 나는 아내와 함께 왕왕 여행을 훌쩍 떠났는데 사람들은 그런 우리를 부러워하면서도 내면에는 좋지 못한 것, 또는 미래를 생각해야지, 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그들은 대부분 먹고사는 것에 대한 걱정 때문에 여행을 훌쩍 떠나는 것은 옳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어른'이 된 후로는 대학생처럼 생각 없이 돌아다닌다면 나중에 힘들어질 거라는 말을 종종 들었다. 그렇게 먹고사는 것에 대해서 걱정을 많이 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권태'라는 벌레가 이미 크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남자는 5일째에도 로비에 앉았다. 신경을 끊고자 마음을 먹었기에 남자를 디태치먼트 했다. 양말 가게 안을 정리하고 음악을 틀고 컴퓨터를 열어 이메일을 확인하고 시간이 날 때 볼 요량으로 받아놓은 영화 목록을 열었다.


 남자는 가게 안의 어딘가를 쳐다보고 있는 것이다. 무표정한 얼굴로 앉아서 말이다. 남자는 보통 아내와 내가 점심을 먹는 것을 본 후에는 배가 고픈지 어딘가로 가서 30분 정도 있다가 왔다. 아마도 점심을 먹고 오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5일째 되는 날에 남자는 꼼짝 않고 자리에 앉아 있었다. 적어도 소변도 보러 가지 않았다. 점심도 먹지 않고 하루 종일 앉아만 있었다. 나는 남자를 무신경으로 일관하려고 했기에 오전부터 판테라의 음악을 틀었다. 꽤나 공격적이고 시끄러운 음악이 오히려 나을 수 있다.


 남자의 표정이 다른 날과 달랐다. 늘 무표정하던 날과는 달리 5일째 되는 날의 남자의 표정은 조금 온화한 듯 보였다. 판테라의 음악이 시끄럽다고 옆 가게인 네일숍에서, 이제 갓 들어온 막내가 와서 음악소리를 좀 줄여달라고 말을 걸어오는 바람에 알았다며 말을 주고받다가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때 남자의 표정이 평소와는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그 순간 새끼손톱의 상처가 아프기 시작했다. 나는 원래 새끼손톱의 반 정도가 까맣게 죽어 있었다. 오래전에 손톱이 빠지면서 새까맣게 피가 죽어 버렸는데 그동안 새끼손톱이 아팠던 적은 없었다.


 나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알고 싶어 하던 아내도 새끼손톱이 까맣게 되어 있는 것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새끼손톱의 뿌리 쪽에서 반 정도가 검게 변해 있었는데 그곳이 갑자기 아프기 시작했다. 나는 어째서 느닷없이 새끼손톱이 아프기 시작하는지 놀랄 수밖에 없었다.     


 18살에 나는 첫사랑을 하게 되었다. 그녀는 나보다 2살이 아래였고 그녀의 집은 버스를 타고 한 시간이나 떨어져 있는 곳에 있었다. 우리가 만나게 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그녀의 학교와 내가 다니는 학교는 바로 붙어있었다. 재단이 같았고 그래서 중학교와 고등학교로 나뉘어 있었지만 교복도 엇비슷했고 선생님들도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번갈아가면서 공부를 가르쳤다.


 버스정류장에서 그녀는 버스비를 잃어버렸는지 쩔쩔매고 있었다. 그때는 휴대전화가 없던 시대로 동전도 없으면 집에 전화도 할 수 없었다. 중학교 3학년이었던 그녀는 자율학습을 하다가 나왔는지 늦은 밤에 정류장 앞에서 난처해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나는 어디서 용기가 나왔는지 버스비를 그녀에게 건네주고 그대로 집으로 와버렸다. 그때 멍하게 나를 바라보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뒤에 그녀는 나에게 버스비를 갚으려고 나를 찾아왔다.


 "갚아주지 않아도 돼"라고 했지만 그녀는 나에게 버스비를 주고는 돌아갔다. 버스비와 함께 편지가 있었는데 밤에 많이 무서웠다는 것이다. 비교적 정리 벽이 있어서 잊어버릴 리가 없는 것을 잊어버렸다는 것이 자신에게는 꽤 충격이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녀는 책을 많이 읽었는지 중학생 주제에 편지가 마치 소설을 읽는 기분이었다. 그 뒤로 그녀와 나는 가끔씩 만났고 영화도 보러 가는 사이가 되었다. 주로 그녀가 먼저 연락을 해왔는데 만나면 그녀는 정작 말이 없었다. 굳이 말을 시키면 소설 태백산맥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고 무진기행을 논했다. 나는 그때 그것이 소설 인지도 몰랐다. 그녀를 만나면 이상하게 말을 많이 했는데, 내가 앞으로 하고 싶은 운동이나 진로나 계획, 좋아하는 음악이나 연필 같은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연필?"


 "그래, 연필. 뭐 볼펜 같은 것들 말이야. 손으로 이렇게 쥐고 사용할 수 있는 물품은 정말 대단한 것 같아. 그중에서 연필이나 볼펜 같은 필기구가 엄청나잖아. 그런데 자신에게 반드시 맞는 볼펜은 꼭 따로 정해져 있는 것 같아. 생각을 하지, 어떤 볼펜을 집어 들고 사용을 하면 아아 이건 아니야, 왜 지난번 볼펜처럼 만들어내지 못하지? 자신에게 맞는 볼펜으로 낙서를 하거나 필기를 하면 기분이 좋아. 잘 알지? 하지만 분명 나에게 맞는 볼펜이 저 사람에게도 맞을 거라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을 하거나 꼭 그렇지 만은 않다는 것을 알게 돼."


 그녀는 나의 말을 재미있게 들었다. 어느 날 말을 하고 있는데 그녀의 입술이 내 말을 막았다. 나는 뭐랄까. 아직 성적 욕망이나 키스에 대해서 무지했고 그건 좀 더 있다가, 라는 생각이 강했는데 느닷없이,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았던 그녀가 내 입술을 훔쳐 버렸다.


 눈을 감고 내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댄 그녀의 얼굴을 또렷하게 볼 수 있었다. 피부가 아이 피부처럼 하얗고 잡티가 없었다. 그녀와 나는 만나는 횟수가 늘어났고 낮은 스킨십을 나눴다. 대수롭지 않았다. 손을 잡거나 머리를 쓰다듬고 얼굴을 건드리고 헤어지기 전에는 키스를 했다. 그리고 그녀는 책의 세계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고 나는 그 외의 것들에 대해서 말을 했다. 그녀는 고등학교에 진학을 앞두고 있었고 나는 고3을 앞두고 있었다. 사귄 지 7개월이 됐을 무렵 집에 부모님이 없는 틈을 타서 그녀가 왔다.


 기회는 왔을 때 꽉 잡아야 하는 거야.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오지 않아.라고 친구가 말했다. 친구는 남자들만 있는 고등학교에서도 인기가 많았고 타 여고에서도 인기가 많았다. 키가 아주 컸고 무엇보다 잘 생겼다. 맨 뒤에 앉아서 교복의 단추를 채우는 법이 없었다. 내가 음악을 많이 듣고 있다는 것을 알고 책상 앞쪽에 앉아있는 나에게 먼저 다가온 녀석이었다. 친구는 많은 여자를 만났고 헤어지는 것에 대해서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다. 친구는 내가 그녀를 만나는 것을 알고 많은 조언을 해주었고 기회가 오면 확실하게 자신의 여자로 만들라고 했다.


 너는 많은 여자를 만날 것 같지는 않아, 너의 여자로 만들어서 네가 대학교를 가더라도 여자가 널 기다리도록 만들어봐.


 나는 그러리라 생각했다. 친구는 시간이 나면 나에게 여자의 성기가 다 드러나는 사진을 보여주었다. 여자의 성기를 자세하게 보기도 처음이었고 친구의 말로 여자의 성기는 흥분을 하면 우리가 정액을 방출하는 것처럼 애액이 흘러나오는데 여자에 따라 색도 다르다고 했다. 그리고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지.라고 했다.


 그녀는 내 방을 구경하는 것을 몹시 좋아했다. 구경할 꺼리라고는 전혀 없었지만 그녀는 세세한 곳까지 눈으로 담아두려고 했다. 어쩐지 좀 창피했다. 나에게는 레코드 판이 몇 장 있었다. 아프로디테 차일드의 앨범과 데미스 루소스의 앨범이 여러 장 있었고 판테라, 사운드가든, 바쏘리, 오비츄어리 같은 시끄러운 음악이 대부분이었다.


 그녀가 이런 시끄러운 음악을 좋아할 리 없어서 나는 데미스 루소스의 집시 레이디를 틀었다. 바늘이 지지직거리며 데미스 루소스의 미성이 흘러나왔다. 데미스의 음악을 들으면서 나는 그녀에게 데미스가 탄 비행기가 납치범들에게 납치가 되었을 때 납치범들에게 노래를 불러주고 납치범들은 비행기를 다시 돌린 일화를 들려주었다. 그녀는 몹시 재미있어했다.


 하지만 나는 머릿속으로 언제 그녀를 덮칠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그녀도 분명 그걸 바라기에 혼자 있는 집에 놀러 온 것이다. 우리는 같이 사들고 온 야채 빵을 먹고 음악을 들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가 하는 이야기가 귀로 들어가는 건지 그저 흘러가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녀가 한 템포 쉴 때 나는 그녀의 입술을 훔쳤다.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이 눈을 감았다.


 그녀의 등이 뜨거웠다. 나는 그녀의 가슴을 움켜잡았다. 작고 한 손에 들어오는 아담한 가슴이었다. 옷을 벗기려고 했지만 잘 되지 않아서 옷 안으로 손을 넣어서 그녀의 가슴을 세게 잡았다. 그녀는 그렇게 강하게 만지지는 말라고 했다.


 나는 알았다고 하고 그녀의 가슴을 느꼈다. 그러는 새 나는 페니스가 버튼을 누른 기계부품처럼 서서히 부풀어 오르는 것이다. 그녀의 치마 속으로 손을 넣었다. 그녀의 팬티가 젖어 있었다. 친구 녀석이 말해준 게 다 맞았다. 그녀의 팬티의 앞부분은 축축해졌고 그녀의 눈빛도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나는 그녀의 팬티 속으로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성기 속으로 손가락을 집어넣으려는데 그녀가 거부를 했다.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당황했다. 밀어붙이면 그녀도 나를 따르리라 생각을 했던 것이다. 나는 더욱 그녀의 입술을 빨았고 가슴을 누르며 팬티를 벗기려고 했다. 그럴수록 그녀는 나를 완강하게 밀어냈다. 친구가 보여주는 포르노 속에는 여자는 힘없이 남자의 완력에 당하기만 했는데 그녀는 보기보다 힘이 셌다. 그녀가 격하게 움직이면 내가 힘이 다 빠졌다.


 친구들은 전부 한 번 이상의 경험이 있었다. 내 주위에는 한 번도 안 한 친구들은 있어도 한 번만 한 친구는 없었다. 내가 전자에 속했다. 나만 오로지 아무런 경험이 없었고 성관계에 대해서도 무디게 지내왔다.


 어쩌다가 숨어서 몰래 술을 마시며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나는 지어내서 말을 했다. 아마 친구들은 다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나는 그녀의 팬티를 확 잡아당겼다. 그녀는 나를 밀치고 울면서 방을 뛰쳐나갔다. 나는 그녀의 뒤에서 그녀를 끌어안았는데 그녀가 나를 밀어내는 바람에 문고리에 왼손 새끼손톱이 끼면서 손톱이 빠지고 말았다.


 금세 피로 물들었고 나는 아파서 소리를 지르며 오른손으로 왼손의 새끼손톱을 눌렀다. 그녀는 찢어진 팬티를 입고 돌아가 버리고 상황은 엉망이었다.


 하루 뒤에 그녀에게 연락이 왔지만 나는 받지 않았다. 학교 앞에서 그녀가 기다리고 있으면 후문으로 가버렸다. 일주일 이상 그녀를 피했다. 그러다가 그녀와 통화가 이루어졌는데, 처음 겪는 일이라 당황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나를 좋아하는데 미안해하며 울었다. 우는소리가 전화기 밖으로 다 들릴 지경이었다.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가 울면서 미안하다고 하는데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 뒤로 그녀에게 연락은 오지 않았다. 빠져버린 손톱은 보기가 흉했다. 그대로 나는 그녀를 잊었다고 생각을 했다. 한 달이 지나니 나는 그녀가 궁금했다. 마음의 고통이 얼마나 생활을 피폐하게 하는지 알고 싶었다. 나는 용기를 내서 공중전화기로 그녀의 집에 전화를 했다. 하지만 전화번호가 없다는 것이다. 이상했다. 그녀의 집을 모른다. 나는 그녀의 학교로 찾아가서 그녀를 찾았다. 그녀는 며칠 전에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것이다. 그 사고는 처참했다. 트럭에 깔려서 죽었는데 그녀의 머리가 알아볼 수 없게 갈렸다는 것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녀는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어딘가로 뛰어가고 있었는데 트럭이 다가오는 것을 보지도 못한 채 도로를 건너다가 그대로 즉사하고 말았다.     


 나는 검게 변해버린 새끼손톱을 보면 그때의 일이 떠오른다. 왜 그런지 나에 대해서 낱낱이 알고 싶어 하고 다 아는 아내도 검게 변한 새끼손톱에 대해서만은 함구했다. 아니 원래 그렇게 태어난 손톱처럼 대했다. 아내는 섹스를 하다가 내 손가락에 입을 맞추었지만 새끼손톱에는 입을 맞추지는 않았다.


 나는 그녀가 죽고 난 후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그녀의 무덤에 한 번 찾아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지금까지 못 가고 있었다. 그곳에 가면 그녀의 영혼이 나를 끌고 갈 것만 같았다. 실제 그런 꿈에 나는 시달렸다. 새끼손톱에 새로운 살이 돋고 손톱이 자라났지만 손톱 밑의 살갗은 검은색을 유지했다. 통증이나 아픈 것은 없었다. 그저 그렇게 태어난 손톱처럼 보였다.


 5일째 나타난 남자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까맣던 새끼손톱이 빠질 것처럼 아프기 시작했다. 통증은 그야말로 소용돌이쳤다. 손톱에서 시작한 통증은 팔을 타고 머리를 관통했다. 나는 너무 참기 힘들어서 119를 불러서 앰뷸런스에 실려 응급실에 가서야 진정이 되었다.


 응급실에서는 뚜렷한 증상을 찾을 수 없다고 했다. 어떠한 정신적인 문제이지 않을까. 팔이 없는 사람이 아프다며 환지 통을 호소하듯이 아주 고통스러웠다.


 그날은 가게 문을 닫았다. 장사를 못했다. 앰뷸런스에 실려 가면서도 남자가 나와 마주쳤을 때의 표정이 떠올랐다. 아내가 병원으로 뛰어왔고 누워있는 나를 바라보았다. 아내에게 미안했다. 아내는 요즘 너무 바쁘다.     


 "여보, 괜찮아요?"


 "그래, 그런 것 같아. 괜히 오게 만들고 미안해."


 "어디가 아팠기에 이렇게 응급실까지 오게 됐어요? 오는 내내 걱정돼서 미칠 것 같았어요."


 아내는 나의 이마에 손을 대고 있었다.


 "지금은 딱히 아픈 건 없어. 괜찮아. 좀 쉬면 괜찮아질 거래."


 아내는 나를 돌봐준 의사와 이야기를 했다. 나는 응급실의 형광등을 보며 눈을 감았다. 눈을 감고 펼쳐지는 곳에 그녀가 서 있었다. 찢어진 팬티를 입은 채로 그녀가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바로 눈을 떴다. 형광등의 불빛이 눈을 찔렀다.     


 도대체 로비에 앉아있는 남자는 누구일까.      


 내일 남자가 오면 이제는 뭐든 물어봐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남자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빠져버렸던, 내 속에 있던 과오 같은 것들이 일제히 나를 고통으로 몰아넣었다.


 그녀가 살아 있다면 지금쯤 어떤 여자가 되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병원에서 퇴원을 해도 된다며 팔뚝에 꽂은 링거를 뺐다.


 꾀병으로 양호실에 누워있는 학생처럼 나는 응급실에서 나가기 싫었다. 아내는 내 오른쪽에서 오른팔에 팔짱을 두르고 삼계탕을 먹고 들어가자고 했다. 나는 아내가 오른쪽으로 오기 전에 왼편으로 슬쩍 오게 만들려고 했지만 아내는 나의 왼쪽에는 서지 않았다. 아내는 나에게 어떤 식으로 아픈 건지, 어디서 아픔이 시작되었는지 묻지 않았다. 의사에게 다 들었다며 삼계탕으로 영양을 보충하자고만 했다.     


 로비 앞에 남자가 나타나고부터 어쩐지 나에게서 무엇인가가 조금씩 빠져나갔다. 내 내부의 어떤 것, 지정할 수 없지만 무엇이 뼈 속에서 점점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뼈를 단단하게 유지시키던 골수가 조금씩 빠져나가 골괴사가 이루어지는 것처럼 물에 희석되듯이 나가는 것이다. 나를 울타리처럼 감싸고 있는 어떤 분위기나 사람들에 대한 생각, 이념이 남자가 로비 앞에서 쳐다보는 동안 약간씩 허물어지는 느낌이었다.


 삼계탕은 늘 먹던 맛에서 벗어났다. 나는 빠져나간 내부의 무엇 때문에 그러리라 생각했는데 아내마저 이 삼계탕은 맛이 없다고 했다.


 "삼계탕의 맛이라는 것은 고만고만하니 엇비슷한데 이 집은 그마저도 못 미치는 거 같아요."


 아내는 고기를 반이나 남겼고 국물만 마셨다. 나는 아내보다 더 못 먹고 나왔다.


 저녁을 일찍 맞이한 우리는 일찍 몸을 나눴다. 아내는 억억 하는 소리를 냈지만 그것은 자연스러운 소리가 아니었다. 아내는 최선을 다하고 있었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아내는 내가 모르는 척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런 분위기를 아내에게 나는 물어보지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묵언으로 일관할 것이라는 것도 서로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 아내와 나는 비밀 없이 모든 것을 공유하거나 이야기를 해왔다. 하지만 무엇인가 생활의 부분에 있어서 하나씩 퇴색되어 갔다.


 그 점화가 가게 앞에 나타나는 남자 때문인지, 자연스러운 시기에 남자가 단지 나타났는지 모르는 일이다. 하나씩 정의할 수 없는 것들이 비틀어지고 있었다. 아내가 잠들고, 잠든 아내의 모습을 오랫동안 쳐다보았다. 아내는 내 것이다. 아내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잠들어 있지만 아내의 몸 위로 올라갈 수 있다. 아내가 조금 피곤하다고 하겠지만 아내는 그것대로 나를 받아 줄 것이다. 아내는 나를 위해 잠이 들 때면 지금까지는 발가벗고 잠들었다. 나는 먼저 잠든 아내의 벗은 몸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남자와 다른 몸을 가지고, 아이와도 다른 몸을 지닌 아내가 나는 좋았다. 젖꼭지도, 유륜의 색깔도, 그리고 다듬어서 멋지게 보이는 음모도 탄탄한 허벅지도 다 좋았다. 그런 아내의 벗은 몸을 오랫동안 쳐다보는 것을 나는 좋아했다. 내 것이니까.


 하지만 나에게 안겨 잠이 든 아내는 먼 사람처럼 느껴졌다. 아내는 내 속을 채우고 있던 어떤 기저의 흐름이 다 흐트러지고 나면 아내도 내 옆에서 없어져 버릴 것 같았다. 아내는 내 오른편에 누워있었다. 그러고 보면 아내는 집 안에서 나의 오른편에서 대부분 움직였고 아내의 움직임에 맞게 가구 배치나 아내의 필요한 물품이 놓여 있었다. 그동안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단순히 우연일까.


 어쩌면 남자와 아내가 서로 알고 있는 사이가 아닐까. 아니다. 그렇게까지 몰아갈 필요는 없다. 왼손을 들어 새끼손톱을 보았다. 낮에 나에게 극심한 고통을 준 새까만 부분이 하나의 상징처럼 붙어있었다. 그녀가 떠올랐다. 그녀를 떠올리는 순간 아내가 몸을 돌려 등을 보였다.


 모든 것이 우연이 지나지 않아. 이건 단순히 우연일 뿐이다.


 그녀가 나에게 복수를 하려는 걸까.


 교통사고를 당한 원인의 제공이 내가 됐다는 이유로 그녀는 나에게 원한의 형태를 내보이고 싶었던 걸까.     


 새벽 2시가 되었다. 비바람이 거세게 몰아칠 거라는 일기예보가 있었는데 창문 틈으로 바람이 닿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바람의 신이 날을 잡고 파티를 하는 것 같았다. 종류가 다른 바람 소리가 휘몰아쳤다. 겨울의 설악산 중턱에서 맞이하는 거센 눈보라의 소리처럼 사람을 구석진 곳으로 몰아가는 소리였다.


 아내도 그녀처럼 나보다 2살이 적다. 아내와 내가 만나게 된 것 역시 우연이라면 우연이었다. 아내는 영천 출신으로 그곳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니고 대도시인 이곳에서 대학교를 졸업했다. 산업디자인과를 졸업했지만 손재주가 없었는지 성적은 시원찮았다. 디자인과를 졸업하는 학생 수는 매년 증가했다. 생활 전반에 디자인이라는 것은 전면에 가득했지만 디자인을 전공한 사람들이 너무 많았고 간판장이라고 불리는 간판 업을 하는 사람들 역시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는 달리 컴퓨터 그래픽에 관해서는 고수들이었다.     


 아내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여행사에 취직을 해서 허드렛일을 했다. 주로 잔심부름 위주의 일이었다. 상품을 소개하고 고객을 맞이하는 일은 베테랑들이 대부분 했고 아내는 제일 먼저 출근하여 정리를 하고 예약 일자가 다가오면 고객들에게 전화를 하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던 중 고객들을 인솔해서 해외여행을 가야 하는 직원 중에 한 명이 빠지게 되면서 아내는 안내자의 역할에 대신 끼게 되었다. 아내는 현지의 지리를 모르니까 대동한 관광객들(대부분 어머니, 아버지의 나이 때로 단체 여행객)에게 나긋하게 대하며 그들의 안전과 말 상대가 되어 주었다.


 우리 마누라가 말이야, 하면서 아버지뻘이 이야기를 하면, 아버님이 조금 참아 주셔야죠. 우리 영감이 말이야,라고 하면, 어머니들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었다. 그러면서 아내는 사람들의 칭찬을 듣게 되었다. 점점 아내를 찾는 고객들이 늘어났다. 평판이 좋았다. 지루하지 않고 여행 일정 내내 편안하다는 소리를 듣게 되었고, 아내는 여행사에서 하는 일이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다. 물론 월급도 하는 일의 양에 따라 조금씩 불어났다.


 아내는 사장에게 말해서 여행객들의 사진을 찍어주는데 그중에서 현지의 배경으로 잘 나온 사진 하나는 크게 확대해서 액자에 넣어 선물로 주는 방법을 제안했고 먹혀들었다.


 아내는 그렇게 일을 한 결과 지점 하나를 낼 수 있었다. 아내의 여행사 지점에는 늘 사람들이 북적였다. 고객들에게 제대로 된 추억을 건넬 수 있어서 아내는 일하는 것이 기뻤다.


 비교적 날씬한 아내였지만 운동을 할 수 없고, 사무실에서는 대체로 앉아서 일을 하다 보니 하체에 비만이 오기 시작했고 다리가 오자로 자꾸 변해 가는 것 같았다. 아내는 저녁에 조깅을 하리라 마음을 먹고 코스를 정해서 일정한 시간을 들여 달리기 시작했다.


 아내와 조깅코스에서 종종 마주치며 얼굴을 익혔지만 서로 모르는 사이니 말을 걸어 보지 못했는데 마주친 지 두 달이 되어갈 때 아내가 다가와 조깅코스를 좀 알려 달라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우연처럼 만나게 되었다. 아내는 언니가 있었고 동생이 있었지만 동생마저 여자였다. 아내에게 남자 형제가 있지는 않았다.


 생각해보니 오래 전의 그녀에게는 남동생이 한 명 있었다. 당시에 그녀를 만나면서 동생을 보지는 못했다. 가게 앞에서 쳐다보는 남자는 그녀의 남동생이었을까. 그녀의 얼굴은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남자는 그녀와 닮은 구석이 전혀 없는 얼굴이었다. 그녀보다 3살 적은 나이였으니까 나보다는 5살이나 어렸다. 그렇게 본다면 남자는 그 나이 대에 비슷하게 보였다.     


 손톱 밑이 또 아프기 시작했다. 나는 손톱 위 손가락 마디를 힘을 다해 꾹 눌렀다. 그때 검은 부분이 빛이 나기 시작했다. 나는 벌떡 일어나서 주방으로 갔다. 일어날 때 반동으로 침대가 울렁거렸지만 아내는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주방으로 가서 칼을 들어 새끼손톱을 자르려고 했다. 가슴이 심하게 뛰었다. 손톱의 검은 부분은 보란 듯이 반짝이며 빛을 냈다.


 남자는 어디선가 나타나서 왜 하필 내가 일하는 가게 앞의 로비에 앉게 되었을까.


 전조 같은 것도 없었다.


 물어보는 수밖에 없다.     


 남자를 디태치먼트 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남자를 몹시 신경 쓰고 있었다. 남자의 모호한 눈빛과 무표정한 얼굴은 일반적인 얼굴에서 벗어났다. 남자가 그녀와 관계가 있다면 나는 남자에게라도 그녀에 대해서 무엇인가 말을 해야 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나를 이루고 있는 삶의 여러 부분이 쪼개지고 부서지고 하나씩 빠져나가 버려 나중에는 껍데기만 남을 것 같았다.


 칼날을 손가락에 대는 순간 통증을 자아내며 반짝이던 빛이 사라졌다. 나는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다.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오늘 밤은 잠들지 못할 것 같았다. 식탁에 앉아서 냉장고에 있는 술을 꺼냈다.


 눈을 뜨니 아내는 출근을 했고 오전 10시였다. 어제는 새벽 늦게 잠이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10시까지 잠들어 있었다니. 분명 남자는 로비에 나와 있을 것이다. 나의 모든 생각은 남자에게로 가 있었다. 남자를 보면 가게 문을 열기 전에 남자에게 질문을 할 것이다. 나는 머리도 감지 않고 허둥지둥 집을 나와서 가게로 갔다.


 하지만 남자는 내 예상과는 달리 나와 있지 않았다. 나는 11시가 훨씬 넘어서야 가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예상하고 있었던 상황에 대해서, 확실하다고 느끼는 것에서 벗어나면 알 수 없는 기분에 휩싸이고 만다.


 가게 앞에서 문 열 생각도 하지 못하고 멍하게 있으니 옆의 가게에서 사람이 나와서 몸은 괜찮으냐고 물었다. 그러고 보니 어제 119에 신고를 하고 구급차에 실려 갔을 때 많은 사람들에게 구경거리를 제공했다. 나는 괜찮다고 했고, 문을 열고 양말을 꺼내놓고 음악을 틀었다.


 아침에 아내는 식탁 위에 쪽지를 두고 나갔다.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질 거예요. 그러니 아무 걱정 말고 푹 자고 나와요.라는 쪽지가 있었다. 이상한 것은 아내의 말처럼 오늘부터 괜찮았다. 그러니까 어떤 식으로 괜찮아졌냐고 한다면 남자가 나타나기 이전의 날과 동일했다.


 가게로 왔을 때의 느낌. 상쾌함, 남자를 신경 쓰며 일을 하는 등등의 문제에서 벗어난 것이다. 일층에서 일하는 사람들 몇몇이 와서 나의 안부를 물었고 나는 겸연쩍게 웃으며 일일이 화답했다. 사람들이 가고 나서 첫 손님이 와서 마수걸이를 했다. 그랜 토리노의 사운드트랙 중에 클린트 이스트 우드와 제이미 칼럼이 부른 그랜 토리노를 틀었다. 노래를 듣고 있으면 그랜 토리노를 두고 떠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괜찮아진 하루를 보내면서 손톱을 자꾸 쳐다보았다. 자동적으로 그녀가 떠올랐다. 시간이 꽤 흘렀지만 전화기 너머에서 울부짖던 모습이 생각났다. 그 반대편에서 나는 무표정하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전화기를 끊어 버렸다. 그 무표정하던 얼굴이 로비의 남자 얼굴처럼 보였다. 나는 냉정한 사람도 아니었고 냉철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맺고 끊음에 있어서 망설이고 생각이 많은 축에 속한다. 그런데 그녀에게 아주 매정하고 무표정으로 대하고 말았다.


 나는 그녀를 좋아했고 그녀 역시 나를 몹시 좋아하고 있었다. 그것을 알고 있어서 그랬을까, 당시에는 역시 고등학생이었고 아직 어떤 부분에 있어서 있어서는 이성보다는 감정이 앞서는 시기라서 그랬을까. 그녀를 내 것으로 만들지 못했다는, 무엇인가 손해를 봤다는 느낌 때문이었을까.


 어떤 식이든 나는 그녀에게 잘못을 한 것이다. 그녀는 나에게 손톱 밑의 상처를 남기고 떠났다. 손톱 밑의 검은 상처는 내내 그녀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녀가 남겨 놓은 상처는 나를 따라다녔다.


 누가 나를 불렀다. 나는 그것도 알아듣지 못하고 가게에 앉아서 생각에 몰두했다. 누가 보면 아마도 음악에 심취한 사람으로 보였을 것이다. 아내였다. 그녀를 생각하고 있는데 아내가 왔다. 나는 마치 잘못한 행동을 들킨 아이처럼 아내를 맞이했다.


 "점심 먹어야죠." 아내는 조금 놀라며 왔냐고 말하는 나에게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벌써 그렇게 되었나?" 목소리는 평소의 내 목소리를 찾았다.


 "몇 시에 일어났어요?"


 "눈을 뜨니 10시가 되었지 뭐야. 너무 놀랐어." 평소에 나 같지 않은 말투였다.


 "가끔은 괜찮아요. 뭐, 매일 그러는 것도 아닌데." 아내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아내는 내 말투나 늦게 일어난 것에 대해서 크게 생각을 하지 않고 가게 안에 식탁을 마련했다. 도시락은 샌드위치와 주스였다.


 "당신은 커피로 드려요?"라고 아내가 물었다. 나는 아니라고 했다. 그런데 아내는 오전에 식사를 도시락으로 싸오지 않고 샌드위치 전문점에서 샌드위치를 사 가지고 왔을 모양이었다.


 "저도 당신 때문에 잠을 설쳤어요. 조금 늦게 일어났어요."


 "그런데 왜 깨우지 않았어?"


 "제가 일어나서 당신에게 아는 척을 한다고 해도 도움이 되는 것이 있었을까요? 당신은 혼자 있기를 바라지 않았을까요." 아내는 입술을 위로 올리며 그렇게 말을 했고 식탁 위에 샌드위치를 보기 좋게 늘어놓았다.


 종이컵 두 개에 주스도 부었다. 아내는 샌드위치를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런데 오늘부터 남자는 보이지 않네요. 당신, 그 남자 때문에 많이 신경 쓰는 거 같던데 잘 됐어요."


 "그래, 당신 말대로 오늘부터 괜찮아지겠지. 모든 것이 말이야."


 아내는 내 말에, 제가 그랬어요?라는 표정을 지었다.


 "혹시 남자와 어디선가 만난 적은 없었어?" 나는 샌드위치를 먹다가 용기를 내어 아내에게 물었다.


 "남자요? 여기 맨날 오는 남자 말이죠? 제 기억으로는 그 남자는 처음 보는 남자였어요. 왜 그래요?"


 "아니야. 여기 맨날 와서 가게 안을 쳐다보고 있으니 우리를 알고 있는 사람 인가해서. 아니면 어디선가 마주쳤다거나 어쩌면 당신을 흠모하고 있는 스토커가 아닌가. 해서 말이야."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저렇게 대놓고 당신 가게 앞에 오는 것은 이상해요. 내 스토커면 여행사에서 저를 훔쳐봐야죠. 왜 당신 가게 앞에 앉아 있어요?"라며 깔깔거리며 웃었다. 나는 아내에게 조심스럽게 중학교 때 혹시 이 도시에 있는 중학교와 교류 같은 것은 하지 않았냐고 물었지만 전혀 그런 것은 없었다고 했다.


 아내가 여행사로 돌아가고 나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아내와 그녀도 만난 적은 없다. 그녀와 아내는 무관했다.


 손톱의 검은 부분은 그녀를 떠올리게 한다. 아내는 손톱을 애써 외면했다. 남자가 나타나고 손톱의 검은 부분에서 통증이 시작됐고 빛이 나기 시작했다.     


 하루는 평온하게 흘러갔다. 남자는 하루가 저물어 갈 때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저녁에 집에서 아내와 밥을 먹는데 다른 날보다 간이 짰다. 아내는 괜찮은데요?라고 했다.


 아내는 나의 목을 감으며 억억 소리를 냈다. 소리가 크게 들렸다. 침대 위에서 들리는 아내의 신음소리는 내가 알고 있는 신음소리에서 확실하게 벗어났다. 아내는 상관없는 것 같았다.


 남자는 6일째에도 나타나지 않았고 7일째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남자가 나타나지 않아서 내가 체감하는 생활의 전반은 평안했다. 그렇지만 나는 정당하게 내가 취해야 할 자세에 대해서 의문점이 들었다. 나는 마음을 먹으면 곧잘 마음먹은 대로 하는 스타일이지만 로비에 남자가 나타나지 않아서 그 이전의 생활의 나로 돌아가야 했지만 왜 그런지 나는 발목을 들여놓은 늪지대의 세상에서 헤매는 것처럼 생활 전반에 대해서 태도를 확실하게 하지 못하고 있었다.


 6일째에는 분명히 괜찮았다. 나의 상태에 관한 모든 부분이 아주 보통 적이었고 좋았다. 지금은 그것을 부인하고 싶다. 아내를 제외하고 내가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상대가 없었다. 하지만 아내에게도 더 이상 로비의 남자에 관해서, 내가 남자 때문에 느끼는 기이한 기분을(손톱에 관한 부분을 숨기며) 이야기하지는 못했다. 어쩐지 아내 앞에만 서면 이야기라는 형태가 흐리터분하게 변해버렸다.


 7일째 밤에도 아내는 침대에서 억억 소리를 냈다. 나는 물어보려고 했지만(침대에서의 분위기가 아니라 나에 대해서) 역시 말하지 못했다. 아내의 신음소리는 자연스러움에서 벗어나 있었다. 아내는 분명 나를 위해 노력을 하고 있었다. 아내는 내가 노력하는 아내를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런 나를 아내는 긍휼히 바라보았다.


 8일째에도, 9일째에도 남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남자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나는 남자가 없는 동안에도 내가 지니고 있는 무형태의 무엇인가가 자꾸 일탈되어 간다고 느꼈다. 하루에 손톱 밑의 검은 상처를 몇 번이나 쳐다보았는지 모른다. 검은 상처는 확실하게 나에게 사실을 떠올리게 했고 뒤따라서 남자가 자연스럽게 따라붙었다.


 10일째 되는 날에 남자가 나타나지 않는 것을 알고 나는 아내에게 점심은 혼자서 먹으라 전하고 시간을 내어 그녀가 살았던 동네를 찾았다. 주민자치센터에서 그녀와 그녀의 가족에 대한 등본을 떼었다. 요즘은 이런 것들은 인터넷으로 가능하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살았던 집을 한 번 가보고 싶었다. 그 집은 이사를 갔다는 말을 들었지만 그래도 가보기로 했다.     


 그녀가 살았던 집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그 자리에는 상가가 크게 들어서 있었다. 그녀의 집은 아예 없어지고 만 것이다. 수소문을 하여 그녀가 죽고 나서 이사를 간 집을 또 찾아갔다. 이사를 간 집은 그곳에서 택시를 타고 한 시간 이상 가야 하는 곳이었고 아직 모기가 많은 하수구가 인근에 죽 붙어 있는 오래된 주택지였다. 집 뒤에 산처럼 있는 공단 때문에 맑은 개울물이어야 했지만 카페오레 색의 하수구처럼 변해 버린 곳이었다.


 죽 늘어선 여러 집들 중에서 하나의 문 앞에 섰다. 어렵게 문을 두드리니 65살쯤 되어 보이는 아주머니 한 분이 나왔다. 첫눈에 그녀의 엄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눈매며 입술이 그녀와 닮았다. 나는 인사를 하고 오래전에 그녀와 알고 지내던 사람이라고 했고 그녀의 어머니는 시간이 이렇게 지났는데 기억해줘서 고맙다며 나를 집 안으로 이끌었다. 집으로 들어가기 싫었지만 물어볼 것이 있어서 들어갔다. 집은 오래되었지만 깨끗했다.


 "인근의 모기들이 아주 많아요. 그래서 대부분 집들은 방충망을 치고 있어요. 답답하게 생활을 하고 있어요. 바깥양반이라도 있었으면 좀 수월했을까." 그녀의 어머니는 나를 거실로 안내했다. 실내는 낮임에도 좀 어두웠다. 창문은 열려 있었지만 방충망이 몇 겹으로 쳐있어서 그런지 거실은 밝지 않았고 거실의 대부분을 난초나 화분이 차지하고 있어서 기괴한 분위기가 있었다.


 그렇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밝았다. 웃는 모습이 그녀를 보는 것 같아서 나는 고개를 돌렸다. 어머니는 그 모습을 오래도록 잘도 유지하고 있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나와 그녀가 어떻게 아는 사이냐고 물었고 나는 몇 번이나 연습했던 대로, 같은 도서관을 다녔다고 했다. 나는 고3을 앞두고 있었고 그녀는 고등학교 입시를 앞두고 있어서 같이 공부를 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했다고 했다. 그 부분에서 그녀의 어머니는 많은 생각을 하는 듯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커피를 냈다. 사과는 껍질째 잘라서 접시 위에 담았고 커피는 프랜차이즈 맛이 나서 조금 놀랐다.


 "아르바이트로 카페에서 일을 하지. 그곳에서 바리스타 교육을 받고 있는데 동네에서 어르신들 커피도 만들어 드리고, 꽤 재미있어요." 그녀의 어머니는 웃었다. 웃음 속에 그녀가 들어 있어서 나는 고개를 숙이고 커피를 마셨다.


 그녀의 어머니는 그동안 그녀에 대해서 이야기를 아끼며 살고 있었는지 그녀에 대해서 한 마디가 터지기 시작하더니 많은 말을 쏟아냈다. 아나운서가 되려고 했던 것부터 주말에만 입고 다니고 싶다며 샀던 청바지와 듣던 음악에 대해서 말을 했다. 죽기 전에 평소에 잘 듣지 않던 시끄러운 음악을 들었다는 이야기도 했다.


 그녀의 인생은 16살에서 막을 내렸다.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의 이야기를 더 많이 하고 싶었지만 더 할 수 없었다.


 "그 날은 많이 울었어요. 그렇게 심하게 울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많이 울었지. 좋아하던 남학생에게 자신의 마음이 전달되지 않는 것에 대해서 무척 힘들었던 모양이에요.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했지만 어디 당시에는 그런 말이 먹힐 리가 있나. 우리도 어릴 땐 으레 그랬으니 말이에요." 그녀의 어머니는 잠시 쉬었다.


 "병원에서 시신을 확인해야 하는데 관계자들이나 경찰이 아빠하고 남동생만 확인시키려 들었어요. 나에게는 보여주지 않으려 했지. 나는 미친 사람처럼 우리 딸을 보려고 했어요." 그녀의 어머니는 커피를 마시지는 않고 커피 잔만 쥐고 있었다.


 "그 말을 들어야 했던 것 같아요. 지금도 그 모습이 악몽이 되어 꿈에 나타나니 말이에요. 보지 말았어야 했어요."


 "남동생이 지금……."


 시간을 두었다.


 "상태가 나빠지기 시작한 건 그 이후였어요. 아주 착한 애였고 여자애들에게 인기도 많았어요. 공부도 잘해서 우리를 기쁘게 해 주었는데 모든 것이 한순간에 조금씩 삐걱거리기 시작했어요."


 그녀의 남동생은 정신적으로 이상한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확하게 그녀가 그렇게 되고 3년이 지난 후 교통사고를 당한 그 날 실종이 되었다고 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의 남동생을 찾으러 다니느라 모든 재산을 버렸고 결국 건강에 큰 이상이 와서 재작년에 죽었다고 했다.


 "찾지 않으려고요. 이것이 운명이라면 이제는 그대로 생각하기로 했어요. 지금 그 녀석도 잘 살아가고 있으리라 생각하면……." 그녀의 어머니는 말끝을 흐렸다.


 나는 그녀의 어머니에게 그녀가 있는 곳을 알려 달라고 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화장을 해서 재를 뿌렸으니 찾아갈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대신 그녀의 사진을 놓아둔 작은방을 보여주었다. 작은방에는 책상이 하나 있고 그곳에는 아직 그녀가 공부하던 책이 몇 권 있었고 그 앞에 환하게 웃고 있던 그녀가 있었다. 사진 속의 그녀를 보는 순간 손톱 밑의 상처가 빛나기 시작했다. 곧 통증이 오려나보다. 주먹을 쥐어 새끼손톱을 말아 넣고 그녀의 어머니에게 급하게 인사를 하고 집을 나오려 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나에게 고맙다고 했다. 시간이 많이 흘러 그 누구도 그녀를 알아주지 않는데 이렇게 친구라는 사람이 와서 그녀에 대해서 물어주고 사진까지 보고 가줘서 그녀의 어머니는 기쁘다고 했다.


 나는 얼른 집을 나와서 마구 뛰었다. 반짝거리던 손톱 밑의 상처는 밖으로 나와서도 지속되었다. 그녀의 집이 보이지 않는 곳까지 달려와서 그 자리에 멈춰 서서 나는 반짝이는 손톱의 상처를 보았다. 상처의 빛은 겁이 날 만큼 반짝였지만 아프거나 통증은 없었다. 빛을 내며 반짝이는 상처는 한 번씩 반짝일 때마다 내가 지니고 있는, 또는 내가 지니고 있으려는 확실함이라는 것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서서 그 현상을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11일째 되는 날에도 가게 문을 열고 한 시간이 지나도 남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낮에는 제법 햇살이 강했다. 아내가 오늘 점심은 냉모밀을 먹고 싶다고 했다. 근처에는 냉모밀을 하는 곳이 없기 때문에 차를 타고 조금 나가서 먹고 와야 했다.


 이제 햇살이 강해져서 양말이 이전보다 판매가 줄 것이다. 하지만 여름에도 양말을 찾아서 신는 사람들이 있기에 그에 맞는 양말을 구비해두는 것이 좋다. 가게 안을 정리하고 음악은 유튜브로 틀었다. 아리아나 그란데 노래가 나왔고 뒤에 테일러 스위프트 노래가 나왔다. 샘 스미스, 제이슨 데룰로가 노래를 불렀다. 현재 잘 나가는 팝 가수들의 노래가 차례가 나왔다. 노래는 듣고 있으면 신나고 좋다.


 좋은 음악이나 노래는 이미 60년대에 모든 곡이 다 나와 버려서 뒤에 나오는 노래는 정말 파이팅을 외쳐야 하고 분발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이 말했다. 그럼에도 좋은 노래들은 끊임없이 나왔고 한 곡을 만들기 위해 곡을 만드는 이들은 노력을 거듭했다. 그 노력 속에는 자신과의 싸움도 있을 것이며 타인의 곡에 바늘을 걸어 슬쩍 가져오는 일도 있었다.


 어찌 되었던 시간이 지나면 모든 노래는 자리를 내주고 다른 노래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만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서서히 잊힌다. 몇몇 마니아들이 그 노래를 기억하고 들어줄지도 모르지만 흐르는 물 같은 것이라 나중이 되면 사라지고 만다. 그럼에도 대를 이어 끝없이 생존하는 노래도 존재한다.


 손톱 밑의 상처는 산발적으로 빛을 발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부의 어떤 것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것이 무형태의 것이라 설명은 불가능했다.


 남자는 어쩌면 그녀의 남동생일지도 모른다. 설사 닮지 않았다고 해도, 아니라고 해도 남자는 그녀의 남동생으로서 내 앞에 나타났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때의 일을 캐물으려고 나타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녀가 달려가는 도로에 트럭이 나타났듯이 자연스럽게 남자는 내 앞에 나타난 것일지도 모른다. 남자는 그동안 어딘가에서 변해버린 자신의 정신에 대해서 깊게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고 어딘가에서의 생활이 힘겨워서 어머니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려고 왔는지도 모른다.     


 "당신 그간에 살이 좀 빠진 것 같아요." 아내는 냉모밀을 입으로 쏙 빨아 당기며 말했다. 아내는 말을 많이 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휴가철이 다가오기 때문에 여행사는 무척 바빴다. 아내는 여행객들의 사진을 촬영하여 액자에 담아서 주는 것을 선물로 하고 있었는데 그 수가 점점 불어나니 좀 더 저렴한 액자를 구입해야 한다고 했다. 아내는 삶에 애착이 강했다. 사람과의 관계도 중요하게 생각했고 그 관계를 잘 이끌어가는 재능을 지니고 있는 여자였다. 한 번 고객이 되었던 사람들은 잊지 않았다. 아내는 일과 사람, 중간에서 연결하는 일을 어처구니없지만 잘했다.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이 동일 선상에 있는, 운이 좋은 여자였다.


 그에 비해 나는 무엇일까. 양말을 파는 것이 정말 좋아하는 일인가. 네,라고 대답하기가 어려웠다. 분명 나에게도 좋아하는 것이 있었지만 지금은 명확한 모습이 사라졌다.


 남자가 나타나고 나서부터인지 아니면 원래 좋아하는 것을 애써 찾지 않아서 그대로 사라져 버렸는지 알 수 없었다. 지금은 뭐든 뚜렷하게 대답할 수 있는 것이 협소해졌다는 것이다.


 "새우튀김을 더 주문할까요?" 아내는 복어처럼 볼을 볼록하게 만들어서 나에게 물었다. 새우튀김? 우리가 새우튀김을 좋아했던가. 그 생각에 도달하니 새우튀김을 맛있게 먹고 있는 아내가 정말 멀게만 느껴졌다.


 "당신, 모밀을 먹고 나서 새우튀김을 꼭 먹었잖아요"라며 아내가 웃었다. "덕분에 기름에 튀긴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데 저도 먹게 되었어요."


 알 수 없었다. 나는 새우튀김을 씹어 먹으면서도 이 맛을, 이 식감에 대해서 전혀 다가갈 수 없었다. 내 미각에 대해서 믿을 수 없게 되었다.


 아내는 바쁜 예약이 끝나면 며칠 여행을 다녀오자고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정리되지 않은 마음의 상태에서 여행을 떠난다고 해도 내부의 무엇은 계속 사라질 것이다.


 손톱 밑의 상처가 시간과 장소에 상관없이 반짝여서 손톱을 말아 넣어서 모밀을 먹었다.  빛이 손바닥으로 미미하게 빠져나왔다. 아내는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어쩌면 알고도 모른척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내는 냉모밀을 먹고 기분이 좋은지 밖으로 나와서 서른한 가지 맛이 나는 아이스크림 집에서 치약 맛이 나는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아내가 그것을 좋아한다는 것조차 나는 모르고 있었다.     


 가게로 돌아와서 커피를 마셨다.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했지만 무엇인가가 무엇인지 확실하지 않았다. 음악은 에드 시런의 노래로 바뀌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음악을 트래비스로 바꾸려 할 때 로비에 앉아있는 남자를 보았다.


 나는 남자의 눈을 피하지 않고 남자를 쳐다보았다. 남자는 조금 수척해진 것 같았다. 수염이 더 짙어져서 그런지 남자의 얼굴은 며칠 전보다 거칠어졌고 몸도 왜소해 보였다. 남자는 무표정하게 이쪽을 바라보았다. 나 역시 표정 없이 남자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남자는 나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어느 지점, 가게의 어느 한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남자에게 무슨 말이라도 해야겠기에 마음을 먹고 일어서서 로비로 나가가려는데 한 여자가 남자 옆으로 다가가서 앉았다. 여자가 남자의 옆에 앉아서 남자에게 아는 척을 했고 남자도 여자를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은 말을 주고받았다. 남자는 그동안의 무표정에서 벗어났다. 남자는 그저 일반 사람처럼 여자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웃기도 했고 얼굴 표정에 변화가 많았다. 여자는 몸집이 남자의 두 배는 커 보였다. 조금 과장되게 말하면 코끼리 여자처럼 보였다. 허벅지가 굵었으며 그것을 감당해내는 청바지가 위태로워 보였다. 조금 더워지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여자는 티셔츠 위에 얇은 점퍼를 입고 있었는데 그것마저 더워 보였다. 남자는 여자를 잘 알고 있는 듯했다.


 나의 모든 신경은 그들의 대화에 집중되어 있었고 그들은 나를 신경 쓰지 않고 이야기를 했다. 그들의 대화에 거창하거나 대단한 이야기는 없었다. 누군가를 향한 비난조의 언어나 불순물이 가미된 언어도 섞이지 않았다. 그저 대부분의 남녀가 나누는 이야기를 할 뿐이었다. 이제 무엇을 먹으러 갈 것인가, 날이 더워졌다, 몸이 무거워서 이제 힘겹다. 같은 이야기를 하면서 두 사람은 웃었다. 남자의 웃는 모습을 보는 순간 내가 지니고 있던 여러 감정이 달아나는 것 같았다.


 내가 착각하고 있었던 것일까. 나도 아내와 이야기를 할 때면 많이 웃었다. 하지만 냉모밀을 먹으며 아내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나는 웃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만 있었고 내내 무표정이었다. 마치 전화기 너머로 울부짖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무표정했던 것처럼. 그것을 생각하니 아내에게 좀 더 웃어줄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저기요?" 하는 소리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하마터면 커피 잔을 떨어트릴 뻔했다. 남자가 자게 안으로 들어와서 나를 불렀다.


 "저, 어렵지 않으시면 손톱깎이를 좀 빌리고 싶은데요"라고 했다.


 "손톱깎이요?"라는 말을 하기까지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손톱깎이라니.


 나는 안도와 함께 뭔가 복잡한 심정이 되었다. 남자는 그동안 무례하게도 여기를 며칠씩이나 앉아서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나는 그 시선을 알고 있었지만 그대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어쩌면 나와 남자 사이에는 어떤 기류 같은 것이 생성되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간 애써 남자를 디태치먼트로 일관한다고 했지만 남자가 나타나고부터 내 생활의 또는 내 내부의 어떤 것들이 질서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남자는 그런 모든 것을 무시하고 대뜸 손톱깎이를 빌려달라는 것이다.


 손톱깎이는 타인과 공유할 수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남자가 처음으로 나에게 말을 걸었지만 이것이 나와 남자의 앞으로 일어날 어떤 일에 대해서 시작점을 알리는 전조 같은 것이라 생각지는 않았다.


 남자는 너. 무. 자연스러웠다. 남자에게 어떤 위화감이나 그녀의 남동생이라는 분위기는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가게에 손톱깎이는 없었다.


 "죄송합니다만 여기는 손톱깎이가 없습니다"라고 나는 말했다. 남자는 무표정한 얼굴로 가게의 서랍장을 바라보더니 손가락으로 그곳을 가리켰다.


 "저곳에 손톱깎이가 있어요."


 뭐야? 하는 생각에 나는 서랍을 열었는데 그곳에는 한 번도 보지 못한 손톱깎이가 있었다. 그것을 꺼냈다. 손에 들고 있으니 손톱깎이를 건네주지 않을 수 없었다. 손톱깎이를 건네받은 남자의 손톱은 조금 더러웠고 새끼손톱이 보기 싫을 정도로 길게 나 있었다. 노숙자 같은 손톱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손톱은 깎아야 할 만큼 길었고 손톱 밑에는 약간의 때가 껴 있었다.


 남자는 손톱깎이를 건네받은 후 로비로 가서 등을 구부리고 앉아서 손톱을 깎았다. 손톱을 깎으면서 여자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 모습에서 어떤 이상한 점도 발견할 수 없었다.


 탁, 탁, 하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남자는 손톱을 깎는 것에 열중하느라 깎인 손톱이 어디로 날아가는지 신경 쓰지 않았으며 치우려고도 하지 않았다. 손톱 밑에 낀 때와 함께 손톱은 손톱깎이에 의해서 탁탁 소리를 내며 떨어져 나와 분리되었다.


 남자는 손톱을 깎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하나씩 꼼꼼하게 깎았고 여자는 그 옆에 앉아서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남자는 새끼손가락의 긴 손톱을 깎는데 열중했고 다 깎고 난 후 손톱 끝을 갈 거나 정리하지는 않았다. 남자는 여자와 이야기를 할 땐 밝은 표정이었지만 손톱을 다 깎은 후 무표정한 얼굴로 나에게로 와서 손톱깎이를 건네주었다.


 "잘 깎았습니다. 덕분에 모든 것이 정리가 되었어요."


 남자는 예의 바른 말투로 말을 했다. 그땐 고개를 끄덕이며 나도 인사를 했다. 남자는 로비로 돌아가서 여자를 데리고 어딘가로 갔다. 아마도 식사를 하러 가는 모양이었다. 남자와 인사를 주고받을 때는 몰랐지만 앉아서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모든 것이 정리가 되었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남자는 손톱을 깎은 후 나타나지 않았다. 아마도 여자와 함께 앞으로의 생활 속으로 들어가 버렸는지도 모른다. 남자가 손톱을 깎은 후 나의 새끼손톱 밑의 상처에서 빛이 발하는 현상이 일어나지 않았다. 이틀을 긴장을 하며 손톱 밑의 상처에 신경을 쓰고 있었지만 전혀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빛이 나지 않았다. 더불어 통증도 사라졌다.


 나는 멍하게 있는 시간이 많았다. 아내는 여전히 식사를 할 때 말을 많이 했고 잘 웃었지만 나는 웃어야 할 타이밍을 놓쳐버린다거나 엉뚱한 대답을 하는 일이 늘어났다. 그렇지만 아내는 그것에 대해서 지적을 한다거나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옆에서 보면 평온하게 흘러가는 시간처럼 보였다.


 멍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을 재능이라 부를 수 있다면 나는 최고의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음악도 틀지 않았고 손님이 없는 시간에는 그저 멍하게 있었다. 멍하게 있는 것이 딱히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멍하게 만드는 무엇인가가 내 내부에 가득 들어차버렸다.


 아내의 신음소리는 자연스럽게 못했지만 나는 끝내 그 문제에 대해서도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남자는 나에게 남아있던 적극적인 면모를 몽땅 긁어 가버렸는지도 모른다. 집에 싱크대 문이 조금씩 삐거덕거려 고쳐야 했지만 그대로 둔 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보통의 일상에서 조금 벗어났다고 으샤, 하며 달려들 수 없었다. 저녁에 하는 조깅도 하지 않고 운동복은 서랍 안에 그대로 있었다. 아내가 같이 운동하기를 바라서 조깅을 했지만 나는 이내 힘이 빠져 걷기 시작했고 숨을 헉헉 거리다가 앉아 버렸다.


 남자를 매일 바라보는 동안 남자는 내가 그동안 잡히지 않는 형태로 배양해 놓은 나만의 세계를 어떠한 열기(熱氣)로 무너뜨려 놓았다. 남자가 완벽하게 사라지고 나는 남자가 나타나기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가지 못했다. 인간은 인생에 반드시 진다는 것을 일깨워 준 것 같았다.


 남자가 나타나지 않은 지 열흘째 되는 날 저녁에 밥을 먹으며 뉴스를 보는데 내가 일하는 건물의 지하 계단에서 사람이 죽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가게에 있는 동안 거기서 사람이 죽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나 이외에 다른 이들도 몰랐다. 모두가 문을 닫고 집으로 간 뒤에 경찰에 신고가 접수되었을 모양이었다.


 죽은 지 3일이나 되었고 날이 더워서 조금 부패하고 있었다고 했다.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지하 계단이 건물의 양옆으로 두 개가 있는 건물이다. 한쪽은 비교적 사람이 잘 걸어 다닐 수 있게 해 놨지만 다른 한쪽은 폐 가구가 지하 일층부터 쌓여 있어서 통행이 어려웠다. 7층의 사무실이 빠지면서 나온 가구인데 아직 치우지 못해 지하 계단에 쌓아두었다. 사망자는 그 사이로 들어가서 죽어 버렸다. 뉴스에서는 신원을 파악하고 있다고 했고 사람의 얼굴이 나오는데 그 남자였다.     


 손톱깎이를 빌린 남자.     


 나는 뉴스를 보다가 그대로 멈추어 버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정확한 사인은 알 수 없지만 바이러스 때문이라는 기자의 말이 나왔다. 바이러스라는 것이 사람의 몸에 침투하여 염증일 일으켜 목숨을 가져가 버렸다.


 남자는 마지막으로 나에게 손톱깎이를 빌렸다. 손톱깎이를 나는 처음 보는 것이었지만 남자가 가게 안의 뚫어져라 쳐다보는 곳에 손톱깎이가 있었다. 그것을 남자는 알고 있었고 나는 그 손톱깎이를 건넸다. 남자는 손톱깎이를 사용했고 며칠 뒤 남자는 내가 일하는 건물의 지하 계단에서 바이러스에 잠식당해 죽어 버렸다.


 언젠가 남자가 가게 앞에 나타나면 나는 나에게서 가져가 버린 모종의 적극성에 대해서 돌려 달라고 할 요량이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불가능해져 버렸다. 뉴스는 아주 짧게 나왔다. 어느 누구도 남자가 죽은 것에 대해서 기르는 개보다 못한 눈길로 화면을 쳐다볼 뿐이다. 남자가 죽은 뉴스 다음으로 연예인의 필로폰 투약 소식이 나왔다     


 나는 일어나서 욕실로 가서 울었다. 왜 울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오래전 떠나가 버린 그녀에게 미안한 마음에 울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지금의 아내에게 진심을 담아서 대해주지 못해서 나오는 눈물일지도 모른다.


 나도 흐르는 눈물에 대해서 의미를 알지 못했다. 그저 울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남자는 죽으면서 내 손톱 밑의 상처도 같이 가져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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