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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Dec 01.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291

11장 4일째 저녁

291.


 [4일째 저녁]


 휴대전화에는 는개의 메시지가 다섯 개나 들어와 있었다. 는개는 마동의 집 근처에 있는 카페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연락을 보면 와 달라는 것이었다. 는개의 메시지를 제외하고 모르는 번호로 4통의 부재전화가 와 있었다. 모르는 번호는 분명 형사일 거라고 생각했다. 마동은 두 편 동시 상영관에서 영화를 보고 집으로 오자마자 샤워를 했다. 영화 속의 사라 발렌샤 얀시엔은 마동을 또렷하게 쳐다보았다. 머릿속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얼굴은 지금 마동을 기다리고 있는 는개의 얼굴로 바뀌었다. 언젠가부터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얼굴은 는개의 얼굴로 자꾸 겹쳤다. 마동은 물을 세게 틀었다.


 샤워기의 물줄기가 유난히 차가웠다. 다시 한번 가서 영화를 봐야겠다. 는개를 만나고 나서 다시 한번 그곳에 가서 영화를 보면 는개의 얼굴로 바뀌는 사라 발렌샤 얀시엔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가 화면 밖으로 뿜어내는 눈빛에 담긴 의미를 알고 싶었다. 그곳에 앉아서 그대로 한 번 더 영화를 보고 올 요량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오늘의 마지막 상영이었다. 샤워기의 물줄기를 받으며 비누칠을 했다. 평소처럼 진지하고 꼼꼼하게 하지 않았다. 비누칠을 대충하고 샤워기로 한 번 씻어낸 후 나왔다. 샤워는 진중하고 진지하게 하는 것이 몸이 편안하고 상쾌한 기분이 오래간다. 비누칠도 몸의 구석구석 거품을 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뽀드득하는 소리가 날 때까지 꼼꼼하게 씻어준다. 비누거품이 잔뜩 나오는 전용 타월로 구석구석 씻어낸다. 물론 그러기 전에 땀을 흘리며 조깅을 한 시간 동안 하는 것이다. 그러면 하루 동안 쌓인 마음의 검은 때도 깨끗하게 씻겨 내려간다. 하지만 는개가 기다리고 있어 그러지 못했다. 회색 브이 네크라인 티셔츠와 두꺼운 카고 바지를 입었다가 다시 여름용 체크 면바지를 입었다. 티셔츠와 어울리지 않았다. 두 편 동시 상영하는 영화처럼.


 마동은 옷을 갈아입고 는개에게 전화를 했다. 세 번 울리고 그녀가 받았다.


 “어떻게 된 거예요? 무슨 일이 있는 거예요?”


 “무슨 일이야 늘 있지. 그렇게 됐어. 지금 갈 테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줘.”


 “여자를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는 거 아니에요? 저 점심도 굶었고 배가 너무 고파요. 이미 지쳤다구요.”


 수화기 너머로 는개의 표정이 들렸다. 표정은 잔상처럼 한동안 마동을 따라다녔다. 는개는 퇴근해서 마동의 집 근처 카페에서 두 시간 넘게 기다리고 있었다. 마동은 카페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는개가 기다리고 있는 카페는 모던타임스라는 오래전 유행했던 이름의 카페다. 요즘 흘러넘치는 세련된 카페에 견줄 바는 못 되는 카페지만 이곳도 오로지 커피의 맛으로 아직까지 살아남은 작은 로컬카페였다. 마동은 이곳에서도 몇 번 커피를 홀로 마셨다. 커피는 인스턴트커피를 사용하지 않고 더치커피를 내주었다. 모던타임스의 주인은 나라별로 다른 더치커피를 손님에게 소개하고 내려주었다. 과테말라, 케냐 AA, 브라질 산토스, 콜롬비아 메델린의 달콤한 향기와 약간의 신맛이 특징이라 이곳을 찾는 단골들이 많아진 카페였다.


 마동은 이곳에도 설마 하며 메뉴판을 보니 역시 비싸지만 주인은 찾는 사람에게 코피루왁을 판매했다. 대부분의 카페에서 코피루왁을 팔고 있다. 그렇게 구하기 힘들다는 커피가 한국의 한 도시에 있는 여러 작은 카페에서는 넘쳐나고 있었다. 한국은 정말 없는 게 없는 나라다. 귀하다는 코피루왁이 이렇게 판매가 왕성하게 이루어지는 것을 보니 사육으로 인한 판매가 만연하고 있다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 사향고양이들의 고통을 마동은 잠시 느꼈다. 그렇게 좋아하던 커피에 거부감이 들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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