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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Feb 22. 2021

랑겔한스 섬의 오후

하루키 수필집 3



이 수필집은 안자이 미즈마루 씨와 함께 한 이야기의 여러 책 중에서 시초 같은 책이 아닐까 싶다. 수필집 1권은 ‘코끼리 공장과 해피엔드’, 2권은 ‘무라카미 하루키 일상의 역습’, 3권이 ‘랑겔한스 섬의 오후’로 나누어져 있다. 최근에 나온 수필집은 책으로만 보자면 훨씬 디자인이 예쁘고 읽기가 수월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아직도 랑겔한스 섬이 제주도 같은 섬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아니다. 나도 처음에 랑겔한스 섬이 무엇인지 찾아보고는 깜짝 놀랐다. 뭐야, 이런 거였어? 하게 되는 것이 랑겔한스 섬이었다. 어떻든 그런 무인도나 바다의 섬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 랑겔한스 섬이다.


이 책의 재미있는 점은 초반에는 하루키의 글만으로 시동을 건다. 그러다가 80페이지가 넘어가면 슬슬 안자이 미즈마루 씨의 삽화가 등장한다. 그때부터 큭큭큭 하게 된다. 안자이 미즈마루 씨는 어찌 이다지도 하루키를 점, 선 면으로 잘 표현을 했을까. 이 생각이 늘 따라다닌다. 이 3권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하이테크 워드’라는 챕터와 ‘지우개 공장의 비밀’이다. 그리고 결혼식장의 챕터는 마치 영화의 시나리오를 읽는 기분이다.



하이테크 워드는 시디 공장을 견학하는 내용이다. 공장의 입구에서부터 들어가기 전의 모습과 느낌, 기분을 나열하고 들어가서는 마치 다른 세계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 들게끔 적고(하루키) 그려(안자이 미즈마루 씨) 놨다. 카세트테이프에서 시디로 넘어가서 한창 시디가 전 세계적으로 열을 올리고 있을 때였는지 아마도 공격적으로 앨범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후에 나온 이 시리즈(문학동네)는 컬러로 되어 있다. 


이번 신작 ‘위드 더 비틀스’를 읽어보면 64년 한 소녀가 비틀스의 앨범을 소중하게 품에 안고 간다. 모두가 비틀스의 앨범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고 그 음악을 들으며 모두가 그 음악에 대해서 공유하고 이야기를 한다. 그러면서 서로 모르던 이야기를 나눠가진다. 그런 분위기는 시디가 만들어지는 세계까지 이어지는 것 같다. 좋아하는 음악가의 앨범을 소중하게 간직하며 그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연대하며 나이가 들어간다. 이런 분위기가 주춤하다가 근래에 BTS로 인해서 다시 발화되었다.


에세이 속 시디 한 장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그야말로 전쟁이다. 공장 밖에는 온화하고 평온한 일상이 이루어지지만 공장 안에서는 일정을 맞추기 위해, 고난도 기술력을 집약해서 시디를 만들어낸다. 읽다 보면 어찌 이렇게 재미있게 적었지, 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지우개 공장의 비밀 역시 너무 좋다.


지우개 하나가 태어나는 과정을 마치 한 아기가 탄생하는 것처럼 표현해버렸다. 김중혁의 ‘메이드 인 공장’을 읽으면서 자꾸 하루키의 이야기가 떠오르는 건 아마도 김중혁 역시 이 수필집을 몹시도 따라 하고 싶었지 않았을까. 게다가 김중혁 소살가의 절친으로 김연수까지 하루키의 광팬이니 여차여차해서 나도 한 번, 하면서 그 공장 견학 에세이?를 내지 않았나. 그리고 그 안의 삽화까지 모두 직접 그렸다. 위트와 유머를 잃지 않고 있으나 역시 하루키의 에세이가 더.


하루키의 소싯적 사진을 보면 늘 저렇게 옷을 코디하고 있다. 안 그런 척하면서 굉장히 옷에 신경을 쓴 것 같다. 아마도 소설 속 등장하는 고가의 의류 브랜드는 하루키가 주로 입는 옷의 브랜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내에게 당신 그 옷 좀 어떻게 해봐요!라는 소리를 들어도 하루키만의 스타일을 고집하지 않았나 싶다. 고집스러운 하루키의 소설처럼.



#무라카미하루키 #수필집 #하루키에세이 #랑겔한스섬의오후 #MURAKAMIHARU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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