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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Mar 10. 2021

스푸트니크의 연인

하루키 소설

스미레를 보면 대학시절의 내가 떠오른다. 자취를 할 때 최소한의 가구와 안도 다다오의 책과 가우디의 책이 잔뜩 그 가구 속에 들어있었고, 고무신보다 낡은 신을 신고 행자 같은 기세로 학교 캠퍼스 안을 돌아다니다 볕 좋은 곳에 호기롭게 앉아서 샌드위치와 맥주를 마시며 안도 다다오의 책을 읽었다.


비가 오거나 추운 날에는 라디오 헤드나 버브의 음악을 이어폰으로 크게 들으며 카페의 따뜻한 곳에 앉아서 졸면서 캡틴 큐를 탄 커피를 홀짝였다. 커피가 조금씩 없어질 때마다 내 몸은 소파의 밑으로 차츰차츰 꺼져 들었다. 그러다 카페를 나오면 묘하게 몽롱하고 몸이 무겁고 배가 고파 자주 가는 식당에 들어가 2인분의 음식을 주문해서 먹곤 했다.


그럴 때마다 깊은 정막(정적과 적막) 을 느꼈다.


나는 아마도 가장 활발하면서 때때로 지루한 고독과 절망을 동시에 느꼈을지도 모른다. 자기는 오직 자기 자신에게만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뒤에 자기 자신의 진실, 숨겨져 있는 능력을 깨달아야 한다고 잭 캐루악의 말을 열심히 실천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뮤는 아주 신비로운 사람으로 놀이기구에서 저 먼 자신의 집에서 자신의 모습을 본다. 남자와 함께 있는. 그 뒤로 뮤는 머리가 하얗게 변했다. 젠이츠가 번개 맞고 머리가 노랗게 변한 것처럼. 뮤는 뭐랄까, 먼 곳에서의 소리가 기분 나쁠 정도로 깨끗하게 들리는 것 같은 사람이다.


나는 잠이 들면 배를 가르고 가슴을 벌려 그곳을 나와서 조금 떨어져 잠들어 있는 나를 보곤 한다. 그건 마치 더 이상 아파하지 않아도 되는 애처로운 한 인간을 보는 것 같다. 나를 보는데 내가 아는 것 같은 기분이다. 그리고 기분 좋게 잠들지 않는 나를 뒤로 나는 도망쳐 버린다. '스푸트니크의 연인'의 뮤처럼 나도 어딘가가 설명할 수 없게 변해 버린다. 손금이 싹 사라지거나 땀샘이 소거되어 버렸거나. 그래도 그 꿈에서 벗어나기 싫어 어디까지고 도망친다.  


스미레는 자기가 쓴 원고를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사람밖에 없는데 나에게 있어 내가 잔뜩 써 놓은 원고를 보여주는 사람이 딱 한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뮤 같은 사람으로 입가에 중립적인 미소를 머금고 눈동자는 탁하지 않고 어두운 우울이 없는 사람이었다.


스푸트니크의 연인에서 상실될 것 같았던, 영영 사라질 것 같았던 스미레가 돌아온다. 어떻든 제자리로 돌아온 것이다. 그러면 된다. 일단 돌아오면 그다음부터는 어떻게든 될 것이다.


#무라카미하루키 #장편소설 #하루키소설 #스푸트니크의연인 #팔천오백원 #TheSputnikSweethe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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