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교관 Mar 12. 2021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

하루키 에세이

저 삽화가 하루키의 시그니처가 아닐지 

하루키의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를 아무리 읽어도 라오스에 뭐가 있는지 알 수는 없다. 분명한 건 라오스에는 하루키는 없다. 라오스에는 뭐가 있을까. 글쎄 라오스에 뭐가 있는지는 라오스에 가 보면 안다. 설령 라오스에 전화를 해서 라오스에 살고 있는 사람에게 라오스에는 ‘대체’ 뭐가 있습니까!라고 물어도 제대로 답을 해 줄 인간은 없다. 그건 아마 한국에 도대체 뭐가 있습니까!라고 물어도 똑같을지도 모른다. 

설명할 수 없는걸, 그러니까 경험이 없는 것을 책을 통해 습득하여 억지로 설명을 하려다 보면 구체성이 투명해진다. 하지만 또 압도적인 경험을 하고 나면 압도적일수록 그것을 구체적인 문장이나 구체적인 언어로 바꾸는 과정에서 자신도 알 수 없는 극심한 무력감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이 생생하게 느낀 것을 다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재현할 수 없는 스트레스는 당사자, 자신에게 엄청나게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럴 때 제아무리 최선을 다해 열심히 설명을 해서 그 감각을 불특정 다수에게 전하려 해도, 사실이라는 것은 실낱같은 틈으로 자꾸만 새어나가 결국 사실과 어긋나게 된다. 우리는 대체로 말을 많이 하면 할수록 그런 경험을 하게 된다. 

제목을 보고 라오스에서 무엇을 억지로 찾으려 하지 않아도 된다. 그간 하루키의 여행 에세이는 늘 그래 왔다. 병아리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본 것을 엄마라고 생각하듯 활자를 읽고 그대로 흡수하면 된다. 이해하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받아들이면 가뿐해진다.


이 에세이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는 여행 에세이 ‘우천 염전’이나 ‘먼 북소리’ 그 사이에 어딘가에 있는 에세이가 이 책이 아닐까 싶다. 소설가라는 건 좋든 싫든 그렇게 모두에게 쉽게 이해받을 수 있는 존재는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루키는 에세이에서 저를 좀 이해해주십사, 하지 않는다.

이해는 오해의 한 부분이다. 이해시키려고, 이해하려고 너무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이해보다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더 중요하고 필요할지도 모른다. 뉴욕의 재즈 바, 보스턴 마라톤의 거리, 라오스의 루앙 프라방의 수많은 사원들, 핀란드에서는 다자키 쓰쿠루의 발자취도 느끼고, 아이슬란드의 풍경과 느낌을 하루키의 활자를 통해 몸으로 흡수해보자. 하루키 씨, 정말 당신 덕분에 몇십 년째 여러 나라의 여러 곳을 여행하고 있습니다.

예술가 '이상은'도 삶은 여행이라고 노래를 불렀다. ‘삶’이라는 명사와 ‘삶다’라는 동사는 비슷한데  참 다르다. 하지만 가만 생각해 보면 ‘삶’과 ‘삶다’ 사이에는 시간이 지나 익어가면서 영글어 가는 무엇이 있다. 그 사이에는 공백이 있고 그 공백을 어떤 식으로 채우느냐의 관념이 존재한다. 우리는 그런 관념을 하루키의 글을 통해 하나씩 알아간다.


하루키의 타임머신에 관한 글을 읽고 있으면 영화 ‘미드 나잇 인 파리’가 떠오른다. 주인공 ‘길’은 자정이 되면 쟁쟁하던 극작가들이 아무렇지 않게 길거리를 다니고 와인을 마시는 곳으로 시간 여행을 간다. 파리의 명품을 바라는 ‘이레즈‘와 빗속의 파리를 걷고 싶은 ‘길’은 서로 다르다. 길과 이레즈는 서로 다른 점 때문에 끌렸지만 그 이유로 헤어지게 된다.

길이 떠난 시간 여행 속에는 스콧 피츠 제럴드와 헤밍웨이, 살바도르 달리, 거트 루트도 나온다. 콜 포터도 나오고 마크 트웨인도 나오며 피카소와 모딜리아니, 마티스도 아무렇지 않게, 옆집 아저씨처럼 막 나온다. 부록으로 미술관 가이드 역으로 모델 카를라 브루니가 나오는데 23대 프랑스 대통령의 부인이다.

길과 이레즈가 폴 커플과 걸었던 베르사유 궁전은 아주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원래 베르사유는 루이 13세가 사냥용 별장으로 지은 건물이지만 14세로 넘어오면서 건물은 증축을 감행하고 명령에 의해 대정원을 착공하게 된다. 죽기 살기로 거대 정원을 가꿨다. 베르사유 궁에는 많은 방이 있다. 그중에 유명한 방이 ‘거울의 방’으로 영화 후반부에 ‘길’을 미행하던 장인의 끄나풀이가 시간이 후퇴한 베르사유 궁으로 가게 되어 그곳에서 헤매게 된다.

주인공 ‘길’이 콜 포터를 보고 감격한데 이어 스콧 피츠 제럴드와 젤다에게 이끌려 다른 술집으로 가는데 거기서 조세핀 베이커를 보게 된다. 블랙 펄이라 불렸던 프랑스에서 가장 유명한 춤꾼, 조세핀은 늘 영화 속에서처럼 그런 의상을 입고 무대에 올랐다. 조세핀의 얼굴은 참 예쁜 얼굴이다. 웃는 모습이 아기처럼 맑다. 하지만 그녀는 무대에서 늘 얼굴을 변형시키는 퍼포먼스를 했다. 우리나라의 공옥진 여사처럼.

조세핀 베이커는 빌리 홀리데이 만큼 파란만장한, 아픈 삶을 살았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식모살이를 하다 13세에 길거리 댄서로 데뷔를 하게 되었다. 애칭은 ‘블랙펄’, 헤밍웨이의 극찬을 받으며 조세핀은 애칭대로 블랙펄의 위용을 떨친다. 프랑스에서 펼쳐진 블랙펄의 공연은 프랑스에 문화적 충격을 알린다. 그때가 1920년대다. 영화 속 배경과 흡사한 부분이 있다.

조세핀 역시 샤넬처럼 전쟁과 첩보 역할을 했다. 조세핀이 죽었을 때 프랑스에서 국장을 치렀다. 모든 프랑스인들이 프랑스인이 아니었지만 그녀의 죽음을 애도했다.

아무튼 ‘길‘이 입을 벌리고 조세핀의 공연을 본 다음 날, 헤밍웨이와 거트루트 스테인의 집으로 간다. 스테인의 집에서 문이 열리고 헤밍웨이가 ‘하이, 엘리스’라고 하며 엘리스는 가벼운 인사로 답변하고 장면이 바뀐다. 아주 잠깐 등장하는 엘리스.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는 잠시 스쳐가는 엘리스는 거트루트 스테인(일명 거츠)의 비서이며 애인이다.

거츠는 평론가로서 많은 작가들의 작품을 검토했다. 그래서 영화 속에서 ‘길‘의 작품도 검토한다. 작가들의 작품에 대해서 자신의 애인인 앨리스와 많은 것을 공유했다. 헤밍웨이의 작품은 실제로 거츠의 손을 거쳤다. 헤밍웨이는 거츠를 존경했으며 더불어 피카소, 모네, 조이스 에즈라 등 작가들과 감독들도 존경했다.

하루키도 빌리지 뱅가드에 들어가는 순간 시간이 순간 전후가 바뀌고 클리포드 브라운의 트럼펫 연주를 보며 아아하며 교류를 했을지도 모른다. 영화 속 ‘길’이 시간의 전후가 바뀌는 곳에서 자신이 좋아했던 역대의 작가들과 교류를 했듯이.

#무라카미하루키 #여행에세이 #라오스에는 #몇번을읽어도재미있는하루키 #몇번을다시봐도재미있는 #미드나잇인파리 #MURAKAMIHARUKI

매거진의 이전글 스푸트니크의 연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