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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Mar 15. 2021

하루키 굿즈를 만들어 봄

일큐팔사를 읽으며

하루키가 아기자기하게 들어간 키링
몇 개 더 만들어봐야겠다
이렇게 먼저 마우스로 하루키의 그림을 그린다
책갈피나 엽서 형식으로 만들어 본다


하루키의 굿즈를 만들어봤다. 이쯤 되면 하루키 굿즈 맛집이라고 해도. 그러나 주위에는 하루키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에 이렇게 하루키를 만들어 놔도 대부분 잘 모른다. 하루키 굿즈와 함께 귀멸의 칼날 굿즈도 만들었는데 이건 인기가 좋아서 조카를 비롯해서 아이들에게 만들면 빼앗기고 만다.


하루키의 굿즈를 만들려면 먼저 마우스로 하루키의 그림을 그린다. 안자이 미즈마루 씨의 하루키 그림은 따라 그리기도 쉽고 무엇보다 아주 재미있다. 다 그리고 나면 책갈피나 엽서 같은 굿즈로 만들어 본다. 그런 다음 키링이나 아크릴 액자에 넣을 수 있게 굿즈를 만들어 보면 된다. 하루키는 온전하게 내가 즐기기 위해서 만들었다. 인터넷 안으로 들어오면 하루키가 유명해서 하루키에 대해서 이런저런 정보를 나눌 수 있는데 오프라인으로는, 내 주위에서는 하루키를 아는 사람조차 없다. 그래서 하루키의 굿즈를 만들어놔도 대부분 시큰둥하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귀멸의 칼날 굿즈는 만들어 놓자마자 동네 아이들이 와서 만화 같은 눈망울로 하나씩 달라고 해서 줘버릴 정도로 인기가 많지만 하루키는 그렇지 않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좋다. 


가끔 인터넷에서 왜 일본 작가를 좋아합니까, 그런 사람의 글을 집어치우세요. 같은 말을 듣는데 그렇게 말하는 사람 대부분이, 아니 그런 사람 모두가 하루키의 글은 읽어보지 않았을뿐더러 정작 조금만 일본과 한국의 근 현대사에 대해서 물어보면 나 몰라라 하고 도망가 버리는 사람들이다. 그저 똥 싸지르듯 하루키는 일본 작가니까 욕으로 배설하고 만다. 아마도 5년 후에도 변함없이 굳건하게 하루키의 소식 밑에 댓글로 욕을 하고 다닐 것이다.


하루키는 그간 자국인 일본이라는 나라에 잘못을 했으면 사과를 하라고 늘 비판했다. 그리고 해 오고 있고, 앞으로도 할 것이다. 일단 사람이 유명해지면, 그것이 연예인이든, 스포츠 스타이든, 작가든, 영화감독이든 사실에 대해서 올바르게 이야기를 하기 꺼려하는 부분이 많다. 왜냐하면 옳은 일이라고 생각해서 말을 해도 결과가 올바르지 않게 돌아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하루키는 그간 늘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비판을 하며 저지른 잘못에 대해서 사과를 하라고 꼿꼿하게 말하고 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는 실감할 수 있는 살아 숨 쉬는 영혼이 있습니다. 시스템에는 그것이 없습니다. 시스템이 우리를 이용하게 놔둬선 안 됩니다. 시스템이 홀로 작동하게 놔둬선 안 됩니다. 시스템이 우리를 만든 게 아닙니다. 우리가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라고 하루키는 사람들 앞에서 큰 소리로(라는 건 그저 나의 생각이지만) 말했다. 와  정말 멋있다. 시스템에 종속되어서 사람이 죽어가는 일이 근래에 들어 더 비일비재해졌다. 새겨볼 말이라 생각된다.


하루키의 소설을 읽으면 가끔 궁리에 대해서 생각을 하곤 한다. 일큐팔사를 읽다가 문득 그런 생각에 사로 잡혔다. 이 곳은 바닷가이며 바닷가에 앉아서 일큐팔사를 읽다가,


고양이 헤시시가 비도 오지 않는데 서럽게 운다. 헤시시는 마치 이 세계와 저쪽 세계를 접합하려는 듯 고독한 소리를 냈다.


헤시시의 소리를 듣고 리틀 피플들이 호우 호우 내려온다. 헤시시는 리틀 피플들과 접합하려 더 크게 울었다. 헤시시의 고독에 겨운 소리를 들으며 나는 궁리에 빠졌다.


궁. 리.

궁리는 생각과 조금은 차이가 날걸. 졸음과 잠의 사이에는 여러 가지 골이 있는 것과 비슷할 거야. 궁리를 제대로 해 본 적이 언제였더라. 궁리에 대해서 생각을 할수록 늪은 깊고 끈적여 발이 빠지면 쥐도 새도 모르게 빠져들어가고 만다.


궁리는 한문으로 窮理 다.  한문에 대해서도 궁리를 해본다. 한문은 어려워서 당연하게도 멀리하게 되지만 궁리만이라도 한문으로 옮겨 적어 보고 싶다. 그건 꼭 이름을 잃어가는 사람의 이름을 한 번 불러주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오래전에는 말이야 사람들이 너도나도 궁리를 했었어. 그건 생존에 관계된 것이거든. 궁리를 하지 않으면 굶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궁리를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거야. 배고픈 자에게 허울 좋은 말을 해봐야 그저 개 짖는 소리로 들릴 뿐이야, 배고픔을 벗어나는 궁리를 하지 않으면 깨지 못하고 그대로 잠들 수밖에 없어.


배고픔을 잊는다는 것. 다양한 감정으로 마음의 배고픔을 채우는 것. 그러고 나면 조금 행복해질 거야.

오규원의 시와 영화 라따뚜이에는 궁리가 있다. 그렇게 조금 행복에 가까워진다. 봄이 오면 민들레 홀씨가 된다. 이 많은 형제들 틈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궁리를 해야 했고 바람을 타고 저 멀리멀리 날아가는 길을 택한다. 바람에 몸을 실어 살아남는다.


살아남아서 궁리를 한다.


성석제는 투명 인간을 통해 궁리를 말했다. 사실 어쩌면 궁리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궁리를 하지 말아야 할 것에는 기를 쓰고 궁리를 하기 때문이다. 어느새 헤시시가 일어나서 리틀 피플들과 손을 잡고 두 개의 달이 있는 곳으로 가고 있다. 헤시시는 궁리가 끝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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