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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Mar 29. 2021

바닷가에서 하루키의 소설을 읽다가

하루키 에세이


하루키와 안자이 미즈마루 씨의 궁합이 찰떡같았던 ‘세일러복을 입은 연필’을 읽고 있으면 꽤나 행복하다. 소설을 읽고 있으면 덜 불행하다는 기분인데 에세이는 좀 더 일상의 텐션을 느낄 수 있어서 행복하다. 개인적으로는 그렇다. 


초반부터 재미있다. 자유업이라는 제목에 관한 하루키의 이야기다. 나는 자유업은 아니나 자유업에 거의 근접해있다. 쉬는 날이 없지만 쉬고 싶을 때는 그냥 쉰다. 그러니 자유업인 것이다. 


집을 나서는데 너무 날이 좋아서 그만 맥주를 사들고 바닷가 근처에 앉아서 맥주를 홀짝이며 해변의 카프카를 읽었다. 해변의 카프카를 읽다 보면 알겠지만 다무라 녀석과 나카타 상의 이야기에 홀딱 빠져든다. 책에는 ‘무지와 기어(기억)'라는 말이 나온다. 베르그송의 정신이 어떤, 그런 것에, 암튼 그런 것인데 호시노 짱이 철학과에 다니는 끝내주는 여대생과 만나는 그 장면에서 ‘무지와 기어’가 나온다.


날이 며칠 동안 우울하다가 해가 쨍하게 떠서 그런지 하늘에 가스층이 걷혀 아기 염소 나란히 풀을 뜯어먹고 있을 것만 같다. 책을 읽으면서 맥주를 홀짝이다 보니 졸음이 몰려와 등을 기대고 좀 졸다가 바람에 놀라 다시 책을 읽었다가 하늘을 봤다가 칼스버그를 한 캔, 한 캔 비웠다. 


순간의 암전.

졸다가 눈을 떴을 때 앞에서 싱싱이를 타는 7살 정도의 사내아이가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선글라스를 쓰고 있기에 ‘나는 졸지 않았다’ 같은 확신에 찬 표정을 지었지만 아이는 난 다 알아, 하는 눈으로 저 넓은 곳으로 가지 않고 내 앞에서 싱싱이를 몰고 왔다 갔다 했다. 몹시 신경이 쓰였다.

사내아이는 친구들을 불렀다. 그 또래의 사내 녀석들이 모여들었다. 게 중에는 여자아이도 한 명 있었다. 사내 녀석들이 모이니까 시끄러움이 열 배는 되었다. 부른 아이 중에 한 녀석은 지치지 않고 “너네 엄마 발가락은 왕 발가락!"라며 큰 소리로 스무 번은 외쳤다. 미칠 것 같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애초의 녀석은 싱싱이를 타며 앞을 왔다 갔다 했다. 


부른 녀석들 중에 또 한 사내 녀석은 싱싱이를 타고 그대로 내가 앉은 옆의 벤치를 무지막지하게 박았다. 맙소사. 속력을 높여 있는 힘껏 싱싱이를 굴려 계단으로 가서 쾅!하며 박고는 신나 한다. 


이렇게 노는 것이 힘든 요즘, 사내 녀석들이 신나게 노는 것은 환영하지만 정말 시끄러워 죽을 것만 같았다. 저기 물구덩이가 있는데 싱싱이를 타다가 저기에 빠졌으면 하고 생각했다. 애초에 녀석은 계속 내 앞을 왔다 갔다 하며 나를 보며 눈빛으로 졸았죠? 조는 거 봤는데?라고 하며 한 녀석은 왕 발가락 소리를 지르고, 또 한 녀석은 싱싱을 박고 신나 한다. 따라온 여동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는 그들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재미있어한다. 엉망진창인 것이다.


자유업 같지 않은 자유업은 이런 꼴을 당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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