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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pr 19. 2021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

모텔과 기자회견

이 사진은 쿨하고~가 아닌 다른 에세이 책자


하루키의 에세이들이 문학동네로 넘어온 이후에는 표지도 하드커버지로 바뀌고 속지도 꽤 질이 좋아지긴 했지만 역시 비싸졌고, 무엇보다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라고 써 놨지만 예전의 에세이집만큼 속에 그림이 없어서 읽다 보면 어? 이쯤에서 미즈마루 씨의 삽화가? 하는 생각을 해버리고 만다.


모텔과 기자회견, 라는 챕터도 이전의 에세이 집 ‘작지만 확실한 행복’에는 미즈마루 씨의 삽화가 모든 챕터에 들어있어서 확실하게 행복한 에세이집이었다. 처음 접하는 독자라면 모르겠지만 하루키의 독자들은 이미 이전의 미즈마루 씨와의 환상적이고 환장하는 콜라보를 맛봤기에 삽화가 없는 것이 조금 아쉽다. 사진의 삽화는 다른 에세이에 있는 그림이다.


모텔 이야기가 나왔으니, 하루키의 러브호텔의 이름에 관한 에세이가 있다. 러브호텔은 딱 러브호텔의 쓰임이 확실한 장소 중 하나로 그에 걸맞은 기가 막힌 이름에 관한 이야기를 하루키가 하는 챕터가 있다. 러브호텔의 이름은 정말 신경 써서 짓는다는 이야기를 주절주절하고 있다.


그래서 나도 한국의 모텔 이름들을 검색해보니 참으로 재미있는 모텔 이름들이 많았다. 대구 기차역 주변에 친절히 영어로 ‘Baby One More Time'라는 이름의 모텔이 있다. 제주도의 한 곳에는 ‘특 급, 한 마 음'이라는 이름의 모텔이 있다. ‘특급’ 글자는 조금 작게 위의 간판에 있고, ‘한마음’이라는 글자는 밑의 간판에 세 글자가 있는 형태다. 그런데 밤이 되면 글자에 네온이 들어오는데 ‘특’ 자에 불이 들어오지 않아 밤에는 ‘급 한 마 음’으로 보인다.


나주 시청을 지나 영산포 다리를 건너면 ‘벌꿀장’라는 이름의 모텔이 있다. 또 예스러운 ‘드가장'이라는 이름의 모텔도 있다. 아마 이곳 주인은 ‘에드가 드가’를 좋아했을지도 모른다. 미대를 졸업했지만 미술가의 길을 포기하고 피치 못할 사정으로 모텔을 연 것이다. 분명 드가의 ‘머리 빗는 여인’이 방마다 걸려있지 않을까.


드가장이 있다면 ‘무진장’라는 이름의 여관도 있다. 예전에는 이름을 짓는 것도 직관적이었다. 대구에는 ‘꼬모’ 모텔이라는 신개념 모텔이 있는데 카페와 결합되어 있어서 호텔보다 좋은 환경의 모텔이라는 소문이 퍼져 젊은 남녀가 많이 찾는다. 방안에 들어가면 나오기 싫을 만큼 재미있게 보낼 수 있다고 하여 친구들끼리 파티를 위해서 많이 온다고 한다. 이곳의 결합된 카페는 조식이 제공된다. 아침 일찍 부스스한 커플들이 좀비처럼 걸어 나와 카페에 앉아서 서로 모른 체하며 조식을 먹는 모습을 상상하면 재미있다.


베르사체라는 이름의 모텔도 있었는데 소송을 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어느 곳에 ‘준희빈’라는 이름의 모텔이 있다. 그런데 조금 떨어진 곳에 같은 이름의 모텔이 또 있다. 아마 두 모텔의 주인 이름이 준희와 희빈, 정도가 아닐까. 내친김에 우리 숙박업에 뛰어들자, 불끈! 했을지도 모른다.


Iu라는 이름의 모텔도 있고, 꽈배기 모텔도 있다. 대구 성서에는 MBL라는 이름의 모텔이 있는데 ‘몸부림’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면 러브호텔의 이름 속에서 재미있는 세계가 가득하다.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 이 책에서 ‘시계의 조촐한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이렇게 되어 버렸네. 늘 생각처럼 되지 않는다.


#무라카미하루키 #하루키 #하루키에세이 #쿨하고와일드한백일몽 #모텔과기자회견 #MURAKAMIHARU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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