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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Feb 07. 2021

달리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하루키 에세이


유일하게 책 표지까지 제대로 가지고 있는 책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다. 이 에세이는 잠들기 전에 유튜브로 자주 들었는데, 듣다가 듣지 않게 된 이유가 북 리더가 책만 읽어주면 되는데 거의 대부분 이 에세이를 읽을 때 자신의 달리기 경험을 꼭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들어보면 4 반세기를 매일 꼬박 달린 하루키의 달리기를 고작 1년 정도 달린, 그리고 일주일에 몇 번 달리지 않은 자신의 경험에 집어넣어서 마치 같은 것처럼 이야기를 하니까 듣기 싫어졌다.


적어도 10년 이상, 매일같이 쉬지 않고 적정한 시간 동안 아무 소리 하지 않고 꾸준하게 달린 사람 정도라면 하루키의 달리기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 그것대로 고개를 끄덕이게 되지 않을까 싶다. 이 에세이에 대해서 리뷰를 한 사람 중에 가장 듣기 좋았던 사람은 팝 칼럼니스트 김태훈과 문화 평론가 김갑수 정도라고 생각된다. 특히 김갑수는 오롯이 이 책 하나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이 책은 내가 누구냐는 기준을 지정해 나가는 책이라고 김갑수는 말한다. 하루키가 자기의 정체성을 만들어 가는데 인생에서 이겨야지, 성공해야지, 같은 치열함이 아니라 어느 날 문득 그것이 좋아졌는데 계속하게 되는 것이다. 어느 날 아아 소설을 써보면 되지 않을까 하다가 그게 생활이 되고, 어느 날 달리기를 해볼까 하다가 달리기를 오래 하니까 하루키 자신의 또 하나의 정체성으로 러너라는 게 생겼다.


이 책에 뭐 특별한 이야기는 없다. 러너로서 살게 된 자기의 20여 년 동안의 삶의 행보들이나 소박한 이야기들, 사사로운 얘기들뿐이다. 그 안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달리고 싶을 때 달리는 이야기를 한다. 작가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고 김갑수는 말한다. 와아 어떻게 이렇게 어마어마한 문장을 구사할까 하는 경외감을 주는 작가가 있고, 어떤 사람은 대작가라는데 막상 글을 보면 엄청나게 소박한 문장을 쓰는 사람이 있다. 과연 하루키는 어디에 속할까.


본문에는 믹 재거의 노래에 관한, 그리고 그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나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만 본문에 없는 이야기를 하자면 믹 재거도 매일 아침 10킬로미터(19킬로미터인가?) 이상 조깅을 한다. 그걸 평생 하고 있다. 록스타가 뚱뚱해서 스키니진을 입지 못하는 것을 자신이 용서를 못 한다. 그래서 믹 재거(가 있는 밴드 ‘롤링 스톤즈’가 공연을 하면 200톤이 넘는 무대 장비를 옮기고, 7층 높이의 무대를 세워야 한다. 무엇보다 100만 명에 육박하는 관중이 모여들기에 안전에 바짝 긴장을 한다. 그리고 공연 책임자는 믹 재거의 달리기 트랙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는 아직까지 무대에서 그 큰 입으로 공연을 휘어 잡아드신다. 여기서 잠시 궁금한 건 믹 재거가 입이 클까, 스티브 타일러가 입이 클까, 음 배철수가 입이 클까. 


하루키는 본문에서 누군가의 부탁을 받고 소설을 쓰거나 달리기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저 어느 날 문득, 어느 날 갑자기 소설을 쓰게 되었고 달리게 되었다. 그것이 좋아졌고 그래서 일상이 되어 버렸다. 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살았다고 회고한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다 읽고 나면 끝에 이 소설은 정말 어느 날 문득 뭔가가 적고 싶어서 적기 시작했다고 나온다. '어느 날 문득'이라는 말은 인간 사에 깊숙하게 와 있다. 우리는 어느 날 문득 누군가를 만나고, 어느 날 문득 이걸 하고 있고, 어느 날 문득 여행을 간다. 하루키는 그렇게 쓴 처녀작에 대해서 쓴소리도 많이 들었다. 그게 소설인가? 나도 쓰겠네? 같은 이야기들. 하지만 아무도 그렇게 쓰지 못했다. 


[설사 다른 사람들이 말려도 모질게 비난을 받아도 내 방식을 변경한 일은 없었다. 그런 사람이 누구를 향해서 무엇을 요구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하늘을 올려다본다. 거기에는 친절한 마음의 편린 같은 것이 보일까, 아니다. 보이지 않는다. 그저 태평양 상공에 동그라니 떠있는 무심한 여름 구름이 보일 뿐이다. 그것은 나에게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구름은 언제나 말이 없다. 나는 하늘을 우러러보거나 하는 일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시선을 향해야만 하는 것은 아마도 자신의 안쪽인 것이다. 나는 자신의 내면으로 눈을 돌린다.] - 본문 중

하루키의 문학, 하루키의 정체성은 어느 날 문득 시작되었다. 문학평론가 정선태 교수는 우리의 인생은 어느 날 갑자기 빚어진다고 했다. 우리의 삶은 우연의 입자들이 빚어낸 무지개와 같은 것이라 했다. 훌륭한 작품은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된다. 우리는 어느 날 갑자기 태어났다. 그래서 하루키의 작품만큼 우리 역시 세계에 단 하나뿐인 훌륭한 작품인 것이다.


#무라카미하루키 #하루키에세이 #달리를말할때내가하고싶은이야기 #MurakamiHaru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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