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교관 Feb 06. 2021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하루키 소설

레종 데트르

바람이 너무 분다.
비가 온다.
비가 바람에 실려 창문에 부딪힌다.
마치 문을 좀 열어 달라고 하는 것 같다.
죽은 너는 바람과 함께 살아서 흐르는데 아직 살아있는 나는 
창문 하나 열지 못할 만큼 움직이지도 못하는구나.
시간은 작년보다 올해 내 얼굴에 더 많은 금을 그었다.
셀 수도 없을 만큼 금이 그이기 전에 네가 있는 곳에 가고 싶은데,
죽은 채로 사는 것은 빛의 무게를 느끼는 일.
세상의 수많은 일 중에서 빛의 무게를 느끼는 일은 가혹하다.
비가 밤새 내렸다. 아직도 비난이 내리고 있다.
비가 오는 일은 비난이 바람을 타고 흐르다가 나에게 와서 고이는 일.
적나라한 비난이 사라지고 나면 그곳엔 온전한 너만 남는다.
완전한 너 하나만.

완벽한 문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완벽한 절망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완벽한 죽음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무라카미하루키 #하루키 #소설 #바람의노래를들어라 #이책을읽으면시가적고싶어진다 #시


하루키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서 거리를 떠나 40년을 지나 ‘일인칭 단수’까지 왔다. 거기서 만난 ‘시나가와 원숭이’ 역시 나이가 들었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서 청춘인 주인공은 나이가 들어가는 것과 죽음에 대해서 생각한다. 주인공 ‘나’는 글을 쓰는 일을 몹시 고통스러워한다. 한 달 동안 한 줄도 쓰지 못할 때가 있고, 사흘 밤낮을 계속 썼는데 모두 엉뚱한 내용인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글을 쓰는 일은 즐거운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안다. 삶이 힘든 것에 비하면 글에 의미를 부여하는 건 간단하기 때문이란 걸.

나는 거기서, 그 거리에서 브룩 벤톤을 듣고, 크리던스 클리어워터 리바이벌을 듣고, 비치보이스를 듣고, 글렌 굴드를 듣고, 마일스 데이비스를 듣고, 밥 딜런까지 듣는다. 그리고 모두가 사랑한 감독 로제 바딤의 ‘나는 빈약한 진실보다 화려한 허위를 사랑한다’에 점점 녹아들어 간다.

해마다, 달마다, 날마다, 한 시간마다 나이를 먹어가는 것 같은 뭣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젊음을 간직한 채 그대로 죽어버린 세 번째로 잤던 여자 때문이다. 그럴 땐 몇 년 만에 화가 나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른다.

나는 남들보다 월등히 강한 인간은 없다고 생각한다.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는 자는 언젠가는 그것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겁이 나고, 아무것도 갖지 못한 자는 영원이 아무것도 가질 수 없는 게 아닐까 걱정한다. 모두 마찬가지다.


그리고 라디오 디제이가 읽어준 병원에서 척추염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17세 소녀의 편지는 어느새 눈을 따갑게 만든다. 그녀가 바라는 소망은 병원 앞에 있는 공원에 햇빛을 받으며 고작 두 다리로 걷는 것.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걷는 것이 그 소녀에게는 소원인 것이다. 세상은 너무나 불공평하고 공정하지 못하다.

그래서 우리는 거짓말이 필요하다. 거짓말은 매우 불쾌하다. 그래도 우리는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다. 만일 우리가 1년 내내 쉴 새 없이 지껄여대면서 그것도 진실만 말한다면, 진실의 가치는 똥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 하루키는 29살이 되었고 결혼을 하여 아내와 함께 좋아하는 감독의 영화를 보며 서로 다른 의견을 낸다. 그리고 그때 쥐 역시 섹스가 없고 누구도 죽지 않는 소설을 쓰고 있다.

이 모든 게 지나가 버린 그 거리의 이야기가 되었다. 손가락 네 개뿐인 그녀는 머리 위에서 불길한 바람이 분다고 했다. 지금쯤이면 바람의 방향도 바뀌고 무게도 달라졌을 것이다. 그렇게 거리를 떠나 지금 ‘일인칭 단수’로 왔다.

디제이가 17세 소녀의 편지를 읽고 저 수많은 불빛을 본다. 이상은의 ‘삶은 여행’에도 삶은 여행이니까 언젠간 끝나니까 강해지지 않으면 더 걸을 수 없으니, 수많은 저 불빛에 하나가 되기 위해 걸어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라고 했다. 하루키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의 거리에서 떠나 수많은 불빛 속에서 40년을 보내고 '일인칭 단수'의 거리로 다시 돌아왔다. 

그렇게 인간의 삶은 진화의 에너지에 조금씩 밀려간다. 더불어 추억이 하나씩 쌓이게 되고 그 추억은 가슴 안쪽에서부터 따뜻하게 하고, 가슴 안쪽으로부터 아프게도 한다.

#무라카미하루키 #하루키 #소설 #바람의노래를들어라 #을시작으로 #일인칭단수 #까지 #MURAKAMIHARUKI

꿈속의 데릭 하트필드를 만나지 않았다면, 하트필드가 납작하게 죽지 않았다면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쇠고기와 바다를 좋아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