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380

12장 5일째

by 교관

380.


마동은 마음이 격렬하게 일렁거렸다. 너구리를 보는 순간 비릿한 피 내음이 진동을 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고 두통이 먹구름과 함께 몰려오고 일렁이던 마동의 마음속에 어느새 이드가 고개를 들고 있었다. 이드는 마동의 깊은 무의식 심층에 숨어 있다가 사라 발렌샤 얀시엔을 만나는 동시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그동안 마동의 심층 속에서 이드는 잘 숨어 지내고 있었다. 이드의 욕구는 사라 발렌샤 얀시엔을 통해서 깨어났으며 구조적 환경을 조정하는 것이 자신의 기능인 것처럼 고개를 들고 너구리를 만나려고 했다.


이드는 도덕도 가지고 있지 않았고 선악의 분간도 없었다. 논리적인 사고도 작용하지 않았고 시간의 관념도 없었고 오로지 무의식적으로 움직였다. 그런 이드가 사라 발렌샤 얀시엔을 통해서 너구리를 만나려 하고 있었다. 불어난 과거 속에서 너구리는 용케도 희박한 미래를 지나쳐 마동을 만나러, 마동 안의 이드를 불러내려고 왔다. 사라 발렌샤 얀시엔은 왜 이드를 불러내서 너구리를 만나게 하려는 것일까.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모습은 는개의 또 다른 모습이기 때문이다. 마동은 뭐가 뭔지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어찌 되었던 이. 드. 를. 눌. 러. 야. 한. 다.


너구리는 택시가 돌진해오기를 바라고 있었다. 짧은 털을 지니고 짧은 다리에 힘을 주며 마동이 탄 택시가 그대로 처박히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동은 쳐다보는 너구리의 두 눈에 광풍의 조류 속에 헤매고 있는 마동 속 작은 에고들의 안타까운 모습들이 비쳤다. 쾌락이 있었으며 동시에 고통이 도사리고 있는 너구리의 눈이었다. 그 모습이 마동의 눈에 선명하게 들어왔다. 선글라스 너머로 보이는 너구리가 냉소적인 환희를 가득 품고 마동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래전 그 핏빛 찬란한 환희를 다시 누려보고 싶다는 듯 너구리가 마동 속의 이드를 불러낼 것이다. 택시가 너구리 가까이 갔을 때 마동은 뒷자리에서 몸을 앞으로 당겨 택시기사가 잡고 있던 핸들을 꺾었다.


끼이이익하는 소리가 요란하고 풍성하게 들렸다. 차가 옆으로 꺾이는 느낌과 충격이 몸으로 전해졌다. 택시기사는 너무 놀랐지만 본능적으로 마동에 의해서 꺾였던 핸들을 다시 제자리로 재빨리 돌린 다음 급브레이크와 함께 제동 브레이크를 조절하며 잡아당겼다. 매캐한 타이어 타는 냄새가 도로에 진동했고 급브레이크를 밟은 반동으로 택시의 차체는 균형을 잃고 옆으로 한 바퀴 돌았다. 마동은 이대로 죽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택시핸들이 꺾이고 도로 위에서 피겨선수처럼 빙글 돌아버린 현상이 마동의 기억 회로가 제대로 작동되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순식간에 지나갔고 빙글 하는 순간에는 마동은 이제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생각만 들었다. 도로 위에서 몸이 붕하며 뜨는 느낌을 받았다.


이대로 차가 뒤집히면서 끝이다.라는 생각이 깊어질 때 택시기사는 운전대를 조절해서 돌리며 상황에 대응하여 차체가 뒤집어지는 것을 방지했다. 다행히 택시는 뒤집어지지는 않았다. 구부러진 도로의 코너에 비스듬히 정차를 하고 택시기사는 가쁜 숨을 힘겹게 내쉬고 있었다. 이 모든 일들이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마동은 용수철처럼 택시 안에서 튕겨져 나와 너구리를 찾았다. 불사의 너구리, 사념을 잔뜩 지닌 너구리, 친구들을 죽게 만든 너구리를, 그 너구리를 찾아야 했다. 그놈은 환희에 차있었다. 오래전 그놈은 파업을 했던 철도청의 기차를 불러냈다. 하지만 택시가 멈춰있는 구부러진 도로의 가장자리에 너구리는 없었다. 너구리가 웅크리고 있던 흔적인 어디에도 없었다.


택시기사는 운전석의 창문을 열고 마동에게 무슨 일이냐고 숨을 참아가며 물었고 마동은 여기에서 너구리가 웅크리고 앉아있었다고 말했다. 택시기사도 힘이 빠져서 택시에서 내렸다. 그리고 마동에게 다가왔다. 예상 밖으로 키가 컸다. 흐린 여름날의 후텁지근한 공기가 택시기사의 얼굴을 불쾌하게 만들려고 했지만 택시기사의 얼굴은 찌푸려지지 않았다. 택시기사는 심장이 강하고 상황 대처능력이 좋았고 판단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마동이 도로가에 앉아서 터질 것처럼 요동치던 가슴이 진정될 때까지 택시기사는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기사는 마동의 옆에 와서 앉았다. 택시기사의 나이를 가늠할 수 없었다.


[계속]



작가의 이전글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3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