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381

12장 5일째

by 교관

381.


“아마도 손님께서 잘못 보신 게 아닐까 합니다. 이 도로에서 로드 킬을 당하는 산짐승들이 많거든요. 대부분 해가 떨어지고 난 후 밤에 동물들이 많이 차에 치어 죽습니다. 자동차의 불빛에 현혹되어 뛰어들거나 그 불빛보다 빠르게 도로를 지나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주로 트럭에 치어 죽음을 당하거든요. 그래도 너구리는 처음 들어봤습니다. 산속에 너구리는 있겠지만 아직 너구리가 로드 킬을 당한 모습은 본 적은 없습니다.” 택시기사는 몇 마디 하지 않았는데 땀이 많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의 미소는 사라지지 않았다. 연륜은 많은 것을 가져다주는 좋은 선생님이다.


택시기사는 내용물이 가득 들어있는 빵 봉지처럼 지식도 풍부했다. 마동은 거친 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택시기사는 마동을 이상하게 보지 않았다. 이해해주는 것 같았다. 미친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자칫 죽을 수도 있었지만 택시기사는 마동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마동은 택시의 수리비와 지체한 시간에 대한 보상을 약속하고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그들은 그곳에서 5분 정도 앉아 있었다. 택시기사는 마동을 도착지까지 안전하게 데려다주었다. 마동이 택시에서 힘겹게 내렸다. 택시는 마동 때문에 급브레이크를 밟고 도로를 빙글 돌아서 표현할 수 없는 타이어의 마모가 생겼지만 상태가 그리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마동이 인사를 하고 택시 문을 닫았다.


“손님, 원하시는 바를 얻어 가시기 바랍니다.” 미소를 짓고 택시기사는 마동에게 인사를 하고 왔던 길로 사라졌다. 배려가 담긴 미소였다. 마동이 택시 안에서 본 너구리는 마동 자신의 부정적 투영의 혐오일지도 몰랐다. 내 속의 호러블 한 또 다른 모습이 너구리일지도 모른다고 마동은 생각했다. 마동은 시선을 바닥에 고정하고 걸었다. 사라 발렌샤 얀시엔을 봤던 동시상영관을 찾아서 발길을 옮겼다.


흐리고 어둠이 늘어진 하늘 속에 마른번개는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한 번씩 내리쳤다. 저 먼 곳의 하늘에서 유난히 검은 구름이 몰려있는 곳이 보였다. 검은 구름은 자줏빛을 발하고 있었고 그것에는 비가 내릴 모양이었다. 보험회사들이 밀집된 곳으로 검은 구름은 그 지역위에서 곧 거센 비라도 뿌릴 것처럼 거뭇거뭇하게 하늘에 떠 있었다. 염분을 실은 더운 바닷바람이 마동의 볼에 닿았다. 간간하고 짭조름한 내음이 작은 마을의 거리에 불었다. 거리에 붙어있는 가로등의 몸체는 페인트칠이 벗겨져 벗겨진 틈 속으로 염분이 지속적으로 날아와 상처를 더욱 크게 만들었다.


마을에는 개들의 모습조차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고 아슬아슬하고 위태롭게 도로 위로 트럭이 지나가며 굉음을 냈다. 버스를 타고 이 마을에 왔을 때에는 느껴보지 못한 풍경이 마동의 눈에 들어왔다. 마치 먼 과거로의 여행에서 찾은 마을을 거닐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지나치는 건물의 벽에 마동은 손을 대어 보았다. 건물은 세월을 지내 온 힘겨운 담벼락의 촉감을 마동의 손에 전해 주었다. 마을에는 아이들도 보이지 않았다. 어딘가 모여 앉아 담소를 나누는 마을 사람들도 없었다. 가끔씩 부둣가나 마당이 다 보이는 집에 앉아서 그물을 손질하는 나이 든 노인들만 보였다.


마동은 어촌마을의 포구에서 그물을 손질하는 노인에게 다가갔다. 깊게 파인 주름은 물고랑 같아서 빗물이 닿으면 바닥으로 바로 떨어지지 않고 그 물고랑을 타고 얼굴을 돌아다닐 만큼 주름이 깊었다. 노인은 인상을 구기고 있었지만 그것은 주름이 만들어낸 하나의 순수한 완성품처럼 보였다. 가까이 다가 갈수록 인상을 쓰고 있는지 웃음을 짓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마동은 노인이 그물을 손질하는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어둑한 하늘은 잿빛의 구름덩어리를 한층 더 긁어모았다. 어둠이 몰려오기 전에 비가 거세게 쏟아질 것 같았다.


주름 깊은 얼굴의 노인은 주름진 손을 움직여 일정한 패턴으로 끊임없이 그물을 손질했다. 저 그물은 바다로 나아가서 던져지고 물고기를 잡아 올려야만 한다. 그래야 지금 손질을 하는 노인들의 깊은 주름에 대한 면죄부가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고기를 못 건져 올리더라도 구물은 똑같이 손질해야 한다. 그것이 어부에게 주어진 과제다. 인간은 누구나 과제를 안고 살아가는 운명이다. 그 과제가 그물 손질이든 무엇이든 간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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