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382

12장 5일째

by 교관

382.


마동은 오래된 영화를 동시에 상영하는 건물 앞으로 왔다. 건물은 낡을 대로 낡아서 발로 차면 부서질 것만 같았다. 건물의 외형에는 여전히 극장의 간판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마동은 다시 따분한 조정경기를 하는 영화를 보러 올라갔다. 오직 마지막 5분을 보기 위해, 5분 등장하는 사라 발렌샤 얀시엔을 보기 위해 계단을 올랐다. 건물의 계단은 여전히 더러웠고 여전한 냄새가 있었다. 냄새가 난다는 것이 다행스러웠다. 마동은 누린내를 맡은 이후로 다른 냄새를 맡지 못할 것만 같았는데 더러운 계단의 냄새는 반가웠다.


계단은 여전했지만 처음 이곳에 왔을 때와는 아주 다른 느낌이었다. 어딘가 모난 구석이 많이 느껴졌고 일탈된 계단의 모습으로 마동에게 와 닿았다. 그리고 그런 슬픈 예감은 언제나 들어맞았다. 계단을 타고 극장이 있는 곳으로 올라왔을 때 극장은 흔적이 없었다. 극장은 이미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남아있지 않았다. 공허하고 텅 빈 실내의 공간만이 극장이 있었던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극장의 바닥에 고대 화석의 늑골처럼 변해버린 오래된 영화 포스터가 굴러다닐 뿐이었다. 벽에 붙은 너덜하고 퇴색된 포스터만이 이곳이 극장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 주었다.


뻥 뚫린 창문으로 불어오는 바닷바람은 세월의 염분을 잔뜩 머금고 건물 안으로 날아 들어와 차곡차곡 쌓였다. 마동은 이미 오래되어서 무슨 영화인지도 분간이 가지 않는 바닥에 널브러진 포스터를 손으로 건드렸다. 종이는 건드리자마자 모래 알갱이가 되어 흩어졌다. 류 형사가 사진으로 보여준 그 시체가 떠올랐다.


낯선 매점의 더위에 지친 아주머니가 앉아있던 자리도 공허한 빈 공간이 대신하고 있었다.


태초에 그러했던 것처럼.


푹신하지만 불편하던 소파도, 낡은 테이블도, 테이블 위의 오래된 바둑판도 사라지고 없었다.


태초에 그랬던 것처럼.


푹신하지만 불편한 소파는 마동의 마음을 안정시켜 주었다. 마동은 그 불편하고 낡은 소파가 마음에 들었다. 소파는 마동 저 깊은 마음의 연약하고 오래된 부분을 부드럽게 감싸주었다. 이제 더 이상 그런 소파에 앉아 볼 기회는 없다. 앞으로 그런 소파를 생산하는 공장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푹신하지만 불편한 소파는 지구 상의 그 어떤 공장에서도 만들어내지 않는다.


마동은 오래된 건물의 극장이 있던 공간에 서서 창밖을 바라보며 어두워지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바다의 염분은 바람을 타고 창문을 통해 들어와서 마동의 볼에 닿았다. 저 멀리 먹구름 사이의 자줏빛 검은 구름은 그 형체가 더 커졌다.


시작도 끝도 알 수 없는 바람은 비를 몰고 왔다.



[5일째 저녁]


보험회사 사고 조사팀이 업무를 마치고 사무실에 들어왔다. 그들은 퇴근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 팀장님, 여기 달팽이, 유리병에 들어있던 달팽이? 팀장님이 버렸어요?” 조사팀 중의 한 명이 말했다. 아니라는 대답과 함께 유리병을 다시 콸콸 나오는 수도꼭지의 물에 씻어서 싱크대 위에 올렸다. 그들은 탕비실 겸 휴식공간인 그곳을 정리하고 사무실로 돌아가서 마무리를 하고 퇴근을 했다. 창밖의 하늘은 어두워졌다. 비는 바람에 날려 드세게 창문에 후드득 부딪혔다가 실처럼 가늘어져서 흩뿌리기도 했다. 또는 세차게 퍼부었다가 치맛자락 날리듯 사뿐히 창문에 떨어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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