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383

13장 5일째 저녁

by 교관

383.


어두워진 하늘은 한차례 마른번개를 빠직거리며 땅으로 내려 보냈다. 싱크대 수납공간의 서랍 밑에 붙어있던 괄태충은 어두워진 공기를 감지해내고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괄태충이 움직인 자리는 점막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었으며 그 흔적이 묻은 곳은 이내 녹슬어가기 시작했다. 녹슨 곳을 또 다른 괄태충 한 마리가 지나가면서 녹을 갉아먹었다. 괄태충의 몸에 빛나는 자줏빛은 점점 어둡고 퇴색된 자줏빛을 자아냈고 그럴수록 괄태충의 몸은 조금씩 부풀어 갔다. 뒤를 이어 등이 딱딱한 괄태충이 천천히 움직이며 앞에서 녹을 만들고 지나간 괄태충의 흔적을 갉아먹고 어른 손바닥만 한 한 크기의 형태로 커졌다. 조금 덩치가 커진 괄태충은 움직일 때마다 기이한 소리를 냈다. 귀를 기울여야만 들을 수 있는 아주 작은 소리지만 스산하고 음산한 소리였다.


뒤따르는 괄태충이 녹을 갉아먹은 곳은 부식이 되었다. 부식되는 부분은 미미했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부식된 부분이 물감이 번지듯 커져 갔다. 괄태충 두 마리는 공생하는 듯 점액질을 뿜어내고 그 점액질을 먹으며 서로의 덩치도 부식된 부분처럼 커져갔다. 앞서 가던 괄태충이 싱크대를 느릿하게 기어오르다 움직이는 동작을 멈추었다. 더듬이로 이리저리 레이더를 움직이듯 지정되지 않게 꿈틀거리더니 그마저 멈췄다. 뒤따르던 괄태충은 앞서 나간 괄태충이 남긴 점액질을 먹어 치우고 있었다. 싱크대에 붙어서 멈춰버린 괄태충은 몸을 웅크리기 시작했다.


어른 주먹만 한 크기로 번데기처럼 몸을 말았다. 번데기는 음산한 자줏빛을 강하게 뿜어냈다. 괄태충이 발산하는 자줏빛은 너무나 음울하고 으스스해서 가까이 있다면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할 것만 같았다. 그 빛에 닿으면 살아있는 생명체는 무엇이든지 녹아내릴 것처럼 암울했다. 비는 또다시 세차게 떨어져서 창문에 부딪혔다. 후드득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것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싱크대에 붙어있던 주먹만 한 괄태충의 번데기는 어른의 팔뚝 크기로 변태 했다.


후드득 두둑.


빗소리가 걸차게 들렸다. 번데기가 자아내는 암울한 자줏빛은 어두워졌다가 밝아졌다. 크리스마스의 전구처럼 밝기가 반복적으로 깜빡였다. 그 반복은 시간이 흐를수록 빠르게 진행됐다. 팔뚝만큼 커진 번데기 껍질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움직임 속에서 더욱 암울하고 질퍽한 자줏빛이 강하게 발하기 시작했다. 누린내는 실내를 잠식했고 다른 생물체가 있다면 누린내에 그대로 질식하여 죽어 버렸을 것이다. 움직이던 괄태충의 번데기 몸에서 작은 돌기가 생겼다. 손톱만 한 크기의 작은 돌기는 하나가 생겨나는 듯 보이더니 두 개로, 다시 세 개로 번졌다. 괄태충의 번데기는 순식간에 수백 개의 돌기를 만들었다.


돌기는 공처럼 변하더니 수많은 돌기가 번데기의 몸에서 퍽 하는 소리와 함께 터져 나왔다. 수백 개나 되는 돌기가 번데기의 몸에서 떨어져 나와 벽과 바닥에 붙었다. 흙 녹색의 돌기는 벽에 부딪히자 툭 터져 묽은 찰흙 반죽처럼 벽면을 타고 그대로 흘러내렸고 누린내는 악취로 변했다. 떨어져 나온 그것들에게서는 모두 음산한 자줏빛과 누린내가 진동을 했다. 밑에서 점액질을 갉아먹던 또 한 마리의 괄태충의 몸에도 앞서 괄태충의 몸에서 떨어져 나온 돌기가 붙었다. 점액질을 갉아먹던 괄태충의 몸에 붙은 돌기는 괄태충의 몸속으로 스며들어갔다. 그리고 이내 그 괄태충도 수백 개의 자줏빛을 발하며 돌기를 뿜어냈다. 두 마리의 괄태충은 자가 생산하여 수십 마리의 또 다른 괄태충을 라베파젯(broad breeding)시켰다. 수백 마리의 괄태충은 서로 점액질을 분비하고 그 점액질을 먹어가며 싱크대를 지나갔고 지나간 자리는 어김없이 녹슬었고 부식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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