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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Mar 26. 2021

비는 소바와 티라미수를 타고 7

단편 소설


7.


 세상은 내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 LP 특유의 잡음이 밖으로 새어 나와 비가 떨어지는 소리와 앙상블을 이루었다. 노래를 듣고 있는 동안 예고도 없이 발기할 때처럼 페니스는 어느 순간 작은 애벌레처럼 고요하게 변해서 나는 한숨을 쉬며 안정을 되찾고 그 앙상블에 귀를 기울였다. 로드 스튜어트와 여자 가수가 노래를 주고받는 모습들이 나름대로 좋았다.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상상하고 있으니 그 장면은 아름다운 장면을 묘사해놓은 글을 읽는 기분처럼 다가왔고 노래를 부르는 이들이나 노래를 듣는 이들 전부 감격에 젖어 있는 모습이 떠올랐다.    

  

 어째서 그런지는 알 수 없었지만 비가 떨어지고 로드 스튜어트가 흘러나오는 레코드 가게 앞에 서있는 알싸하고 미묘한 느낌을 나는 즐기고 있었다. 그런 즐거움을 혼자서 느끼고 있는데 그녀가 갑자기 끼어든 것이다. 그녀는 단발머리였는데 비를 맞아서 더욱 그녀스러운, 설명하기 애매한 형태의 스타일로 보였다. 녹색의 시원한 야상점퍼를 입고 있었고 안으로는 타이트한 청 남방을 입고 있었다. 상당히 마른 체형에 비해 가슴이 볼록했다. 눈에 가슴이 가장 먼저 들어온 것으로 보아 가슴이 꽤 큰 것을 자랑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필시 그것보다는 나의 시선의 문제일 것이다. 문제는 늘 내 쪽에 있는 것이지 나의 밖에서 찾으려 하면 안 된다. 하지만 슬랜더의 몸인데 가슴이 저렇게 크다는 건 필시 가슴과 옷 사이에 보형물을 넣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청바지 역시 다리에 달라붙어있었지만 말랐다는 느낌보다는 날씬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녀가 입고 있는 얇은 옷 안으로 알몸이 떠올랐다.


 늘씬한 몸에 큰 가슴.

 발기.

 맙소사.      


 나는 금세 그 상상을 쓰레기통에 버려 버렸다. 그녀는 비에 젖은 옷을 툭툭 털고서 자신의 주머니를 뒤졌다. 주머니를 뒤지더니 그녀가 원하는 것이 주머니 안에 없다는 것을 알아챈 모양이었다. 아뿔싸, 하는 표정을 짓더니 나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손가락을 입에 대고서는 담배가 있으면 하나만 달라는 표정을 지었다.     

 

 안타깝게도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나는 손가락을 입에 대고 담배 표시를 했다가 이내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는 손짓을 했다. 말을 하지 않고 의사소통을 하고 있다는 것이 못내 이상했지만 신기했다. 그녀는 대뜸 “당신, 손가락이 참 길고 예쁘군요”라며 내 손을 덥석 잡았다. 내 손을 잡은 그녀의 손으로 느슨한 고집스러움이 느껴졌다.


 “이 시간에 이렇게 길거리에서 방황하는 예쁜 손가락을 가진 남자는 흔하지 않아요. 당신은 글을 쓰는 직업을 가진 모양이죠?”라고 정확하게 집어내서 말했다.


 “네, 그렇지만 정식적으로 데뷔한 적은 없어요. 이름을 걸고 출간된 책도 없어요. 월간지에 단편소설을 등재했고, 인터넷 매거진에 기행문 같은 글을 쓰고 있는 수준입니다”라고 나는 소극적이게 말했다.


 “이런, 작가님을 길거리에서 만나다니 큰 행운이군요.”     


 이 여자는 내 말을 제대로 듣고 있는가.


 “그 정도의 글은 누구나 쓰고 있어요”라는 내 말은 바로 묵살되었다. 그녀는 가방에서 작고 오래된 수첩을 꺼내서 나에게 쥐여줬다. 그리고 그녀는 가방 안에서 무엇인가를 꾸준하게 찾았지만 그 무엇인가가 역시 그녀의 노력을 헛되게 하는 모양이었다.


“때때로 이럴 때가 있어요. 나는 집에서 나설 때 빠짐없이 챙겨 넣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찾아보면 없는 거예요. 그런데 집에 가보면 집에도 없어요. 그렇다는 것은 분명 챙겨 넣었다는 말이거든요. 가방이나 주머니에 구멍이 뚫린 것도 아닌데 가끔 이렇다니까요”라는 그녀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만 나는 그녀가 때때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자주 그렇다고 생각해버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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