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교관 Mar 25. 2021

비는 소바와 티라미수를 타고 6

단편 소설


6.


 방향제 냄새는 버려졌던 내 기억을 고스란히 물 밖으로 떠올려 주었다. 그런 냄새가 존재한다. 싸구려 방향제 냄새처럼 이발소와 비누 거품 냄새와 싸구려 로션 냄새도 그랬다. 갑작스러워서 더욱 반가운 냄새이기도 했다. 이제 사라져 버렸다고 생각했지만 길에서 또는 여행 중 어딘가에서 그 냄새를 만나는 그곳에 한참을 서서 그 냄새가 스며들어있는 버려진 시간에 대해서 탐닉하곤 했다. 나는 고집스럽게 버려진 시간의 냄새를 쫓아다니곤 했다. 정말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었다. 아마도 오래된 방향제 냄새 그것은 잃어버린 나의 시간일지도 모르고, 놓친 나의 상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는 설명할 수 있는 일들이 많지만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은 더 많은 법이다. 그렇게 버려진 시간의 냄새는 절대 발기를 일으키게 하지 않아서 당혹스러울 일이 전혀 없었다. 가끔 기괴한 냄새는 발기를 야기한다.     


 비를 맞는 사람들은 미간에 주름을 만들어 짜증 섞인 표정을 했다. 손을 눈썹 앞에 대고 비막이를 만들어 내리는 비 사이를 지나다녔다. 얼굴에 짜증을 만들어낸 사람들과 같은 공간 속에서 나는 내리는 비를 바라보는 것을 즐기고 있었다. 자연이 만들어주는 그림이었다. 자연주의적 유연함에 나는 조금 미소가 일었다. 물론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말이다.      


 그러는 동안 나는 비를 많이 맞아서 옷이 축축해졌다. 로드 스튜어트의 노래가 흘러나오는 곳은 이 시대까지 없어지지 않은 오래된 레코드 가게의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였다. 주인은 그 노래를 레코드판으로 틀었을 모양이었다. 레코드의 음악이 흘러나오는 가게 앞에서 비를 피해 음악을 듣는 와중에 나도 모르게 발기해 버렸다. 어째서 남성의 페니스는 아무런 예고도 없이 발기를 할까.      


 방향제의 냄새를 맡고 나서부터였다. 마치 지금,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처럼 그 어떤 예고도 없이 발기를 해버렸다. 머릿속은 하얗게 되어있었는데도 순식간이었다. 나는 할 수 없이 몸을 뒤로 돌려 레코드 가게 쪽으로 향하게 되었다. 레코드 가게 안이 보였다. 아직 레코드 판이 수백 장이 꽂혀있었다. 시디와 가수들의 판촉물이 벽면 여기저기 붙어있었고 주인으로 보이는 남자는 60세는 넘어 보였다. 어쩌면 훨씬 더 나이가 많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귀의 모습이 자세하게 보였는데 귀의 구멍으로 검고 하얀색이 섞인 털이 길게 비어져 나와 있는 것이 보였다.      


 손님이 별로 없었다. 주인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나에게는 다행이었다. 손님이 많았다면 나는 낭패였을 것이다. 전조도 없이 발기를 하면 성인 남자들은 으레 낭패를 겪게 된다. 나 역시 성인이며 남자이다. 덕분에 내가 서 있는 모습도 어딘지 오줌을 지린 바지를 입고 있는 모양새처럼 어정쩡하게 레코드샵의 유리벽에 붙어있었다. 나는 시간과 장소에 무관하게 발기를 하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는 동안 더욱 딱딱해오는 것을 느꼈다. 아예 생각 자체를 하지 않기로 했다. 로드 스튜어트가 노래를 부르고 여자 가수가 바통을 이어받아서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여자 가수가 흑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그런데 여자 가수의 목소리를 들으니 발기는 더욱 거세졌다.      


 맙소사.     


[계속]

매거진의 이전글 비는 소바와 티라미수를 타고 5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