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5.
그래, 교보문고에 가는 길이었던 것 같다. 교보문고에 가는 길에 때아닌 비를 만난 것이다. 예고 없이 떨어지는 비는 금세 주룩주룩 쏟아지기 시작했고 나는 옷 가게의 처마 밑으로 피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처마의 기단이 좁고 사람들이 왕래를 하는 곳이라 나는 그곳에서 오래 서 있을 수 없었다. 나는 낭패적인 상황이 되면 얼굴을 찡그리게 되는 경향을 보인다.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그 옆의 상점 처마 밑으로 이동을 했다. 그곳은 금은방으로 옷 가게보다 더욱 오래 머물 수가 없는 곳이었다. 그런 식으로 비를 피해 상점 안, 주인의 눈치를 피해 옆으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그때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어디선가 로드 스튜어트의 노래가 들렸다. 나는 로드 스튜어트의 노래를 몇 곡 알고 있다. 그렇지만 그의 노래가 특별하게 느껴진 적은 없었다. 대단한 가수지만 나는 그의 노래를 듣기 위해서 앨범을 구입해 본 적이 없다. 그날 로드 스튜어트가 부르는 노래를 따라서 비를 피해 가면서 노래가 더욱 잘 들리는 곳까지 왔다. 이곳에 서서 비가 떨어지는 모습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비는 거리의 먼지를 풀풀 날려버리더니 물에 젖어버리는 신문지처럼 거리를 촉촉하게 적셔주었다.
영화에서 흰 블라우스를 입고 주인공의 여자 친구가 칼에 찔려 하얀 블라우스에 피가 스며들듯 거리는 이내 비에 젖었다. 어째서 영화에서는 칼에 찔리는 사람은 늘 흰옷을 자주 입고 나올까.
로드 스튜어트의 노랫소리를 들어보니 최근이라고는 할 수 없으니 십 년은 더 전에 불렀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노래는 무척 오래전에 나온 노래였지만 들려오는 노래는 여자 가수와 함께 부른 버전인 듯했다. 독자적이고 고집스럽게 여자를 갈아치워 가며 돈을 쓰는 그였지만 노래를 부르는 목소리에는 젊었을 때의 독불스러움은 배제되어 있었다. 그가 부르는 노래에는 평안함과 배려가 깃들어 있었다. 노래가 참 듣기 좋았다.
게다가 이렇게 비가 떨어지지 않는가.
비가 오고 로드 스튜어트의 노래가 흘러나오는 곳에 나는 서 있었다. 커피만 손에 쥐고 있으면 그야말로 모든 것을 갖췄을 것이다. 로드 스튜어트는 같이 노래를 부르는 여자 가수가 떨지 않고 노래를 잘 부를 수 있도록 이끌어 주었다. 여자 가수는 조금 수줍은 듯 노래를 불렀고 로드 스튜어트는 그 특유의 목소리로 중간중간 여자 가수에게 용기를 주는 기합 같은 것을 불어넣어주었다. 노래가 쉬는 간주 부분에는 색소폰이 폭발하듯 흘러 흥을 돋우었다.
노래를 부르는 로드 스튜어트와 여자 가수를 보러 나온 많은 사람들에게 마이크를 넘겨주어서 그 많은 사람들이 노래를 따라 부르는 모습이 보였다. 정확하게는 그런 모습이 들렸다. 그러한 풍경이 눈에 선하게 보이는 노래였다.
만약 지금 비가 떨어지고 있지 않았다면 노래가 그렇게까지 아름답게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늘은 잿빛이었고 이제 내리는 비가 그치고 나면 날은 긴팔에서 반팔로 넘어가는 단계에 들어갈 것이다. 하늘은 한껏 물을 머금고 있는 솜이었다가 재채기를 참지 못하고 물을 뿜어내듯 비가 떨어졌다. 비가 떨어지고 어디선가 싸구려 방향제의 향이 났다. 버려진 시간의 냄새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