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9.
그녀는 친구와 나를 뒤로 돌아서게 하고는 바지를 쑥 내려서 벗어버리고 나의 체육복 바지로 갈아입었다. 우리 두 사람만 그녀의 옷 갈아입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건너편에서 많은 낚시꾼들이 이곳으로 시선을 박고 있었고 어떤 이는 휘파람을 불었다. 그녀는 상관없다는 듯 청바지를 잘 접어서 보트의 운전석에 놓았다. 우리는 보트를 타고 잔잔한 수면 위를 미끄러지듯 나아갔다. 보트를 타고 바다 위를 달린다는 것은 자동차를 타고 도로 위를 달리는 것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바다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거짓말 같지만 실지로 그러했다.
바다는 많은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그것은 인간과 흡사한 모습이었다. 바다는 지금처럼 언제나 고요한 듯 보이지만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격렬하게 아름답게만 보이는 푸른 물결은 아무렇지 않게 가져가 버리고 말았다. 나는 달리는 보트 밑으로 손을 내밀어 보았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바다의 그 차갑고 짭조름한 내 손끝에 닿아서 온몸을 자극했다. 묘한 기분이었다.
친구는 여기가 거기다. 라며 좌표를 말하면서 바다의 어느 지점에 보트를 정박했다. 내가 상상했던 모습보다 주위에 보이는 검푸른 빛이 강하게 돌았고 한 번 빠지면 다시는 나오지 못할 것 같았다. 육지 끝의 바위에는 이미 많은 낚시꾼들이 자리를 잡고 낚시를 하고 있었다. 바다에 빠진다면 육지까지는 어떻게든 헤엄쳐서 갈 수 있을 것 같은 거리였다.
그저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을 뿐이다. 육지의 끝에서 낚싯대를 바다에 던진 낚시꾼들은 우리를 아주 부러워했다. 그들보다 낚시로 고기를 낚을 수 있는 여건이 훨씬 좋아서 그런다고 친구가 말해주었다. 하지만 우리는 고기를 한 마리도 낚지 못했다.
저 먼바다 쪽으로는 많은 수의 크고 작은 배들이 늘어서 있었다. 바다에 빠진다 해도 그리 걱정할 것은 없었다. 친구에게 물어보니 상어가 이 바다에 나타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고 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 나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친구 녀석을 쏘아보았다. 아마 상어가 나타난다면 다른 배의 선원이나 다른 낚시꾼들에게 이미 잡혔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런 일 조차 일어나지 않는 너무나 평온한 바다이니 낚시에나 신경을 쓰라고 했다.
보통 엄청난 사건과 대단한 사고와 지구 멸망은 소설에서 늘 평범하게 일어난다. 역시 세상은 단조롭고 고요했다. 그것만 제외한다면 내가 상상한 ‘보트 위의 (공포) 낚시’라는 시나리오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낚싯대를 드리운 지 30분이 조금 못 지난 시간에 그녀가 나와 친구에게 말했다.
“우리 점심은 언제 먹나요?”
나와 친구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아직 고기를 낚지 못해서.... 고기를 낚으면 그 고기로......”라고 친구가 어정쩡하게 대답을 했다.
“그럼 점심을 먼저 먹고 하는 게 어때요?”라고 그녀가 말했다.
“이봐, 세상엔 순서라는 게 있는 거야. 물고기를 먼저 잡아야 그 고기로 무엇인가를 만들어 요리를 할 것 아니야”라고 내가 말했다.
“저 배가 고프단 말이에요.” 그녀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을 하는 바람에 우리는 다시 낚싯대를 접고 보트에 시동을 걸고 보트를 몰아 육지로 돌아왔다. 우리는 봉골레 파스타가 맛있는 바닷가가 보이는 카페로 들어갔다. 그녀는 봉골레 파스타가 맛있다며 위확장자처럼 세 접시나 먹었다.
맙소사.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