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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Mar 31. 2021

비는 소바와 티라미수를 타고 11

단편 소설


11.


 나는 봉골레라는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수많은 이름이 있지만 파스타의 이름이 봉골레라니. 마치 외계행성의 이름 같았다. 디저트가 나왔다. 수플레와 티라미수 4개, 진저 샐러드가 5인분이나 왔다.      


 “왜 4개지?”라는 나의 독백 같은 말에 그녀는, 내가 두 개 먹을 거예요,라고 했다. 그녀는 진정으로 배가 고팠음에 틀림없었다. 비가 천천히 소리 없이 내리기 시작하더니 쏟아졌다. 무시하고 낚시를 계속했으면 그녀에게 미안했고 비에 흠뻑 젖고 감기에도 걸렸을 것이고 친구는 다음날 새벽에 일어나지도 못했을 것이다. 친구와 나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카페 안에서 바라보는, 비가 내리는 바다는 고요하고 무서울 정도로 평화로워 보였다. 밖으로 보이는 풍경 속에서 비가 떨어져 내려 이전의 풍경은 소멸되고 다른 정경을 이루었다. 그 모습은 추상적인 그림을 보는 것 같았다. 비가 하늘에서 춤을 추며 내려와서 바다에 콩나물 대가리를 만들었다. 카페 안에서 조니 미첼의 ‘big yellow taxi’가 흘러나왔다. 절묘했다.


 조니 미첼은 70년대 초 LA의 심각해지는 공해와 스모그로 인내의 한계에 도달해있었다. 인간이 만들어낸 문명의 폐단이 그녀에게는 상당한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그녀는 난생처음으로 하와이에 방문을 했다. 다행히 그녀가 묵었던 호텔은 아주 높은 곳에 위치해 있어서 태평양을 볼 수 있었다. 바람이 불어와 흔들리는 야자나무들은 그녀가 그동안 봐왔던 공해에 찌든 도심의 그림이 아니었다. 그림책에서나 보던 그런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그때, 그녀가 발코니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추한 콘크리트 차가 나무를 밀어버리고 주차장을 만드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이렇게 멋진 낙원에다가 콘크리트로 포장된 길을 깔고 그곳을 주차장으로 만들었어!’라고 생각을 하고 big yellow taxi라는 노래를 만들었다. 이후 이 노래는 많은 후배 가수들이 다시 불렀다. 나는 조니 미첼이 그러한 노래를 만들게 된 경위를 떠올려보고 밖에서 내리는 비가 모든 것을 깨끗하게 해주는 광경을 바라보았다.      


 그녀 역시 창밖으로 비가 내리는 모습을 아무런 말도,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비가 떨어지는 모습을 보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비가 쏟아지는 장면을 바라보았다. 비가 떨어져서 그런지 카페 안에 감돌던 에어컨 바람이 차다고 느껴졌다. 그녀도 조니 미첼의 노래에 집중을 하면서 비를 쳐다보는 것일까.    

  

 조니 미첼의 부드럽고 우울하고 꿈같은 목소리가 경쾌한 리듬으로 카페 안에 울려 퍼졌다. 노래는 오래되었다. 요즘은 그 누구도 좋아하지 않는 노래지만 카페 안에는 유유히 흘렀다. 간과하고 있었지만 조니 미첼의 노래가 흘러나오기 전에는 지미 헨드릭스의 ‘헤이 조’가 나왔었다. 그 이전에는 방귀소리마저 쇳소리가 날 지경인 제니스 조플린의 ‘piece of my heart’가 나왔었다. 카페의 주인은 어차피 조용하게 음악을 틀어놓으면 손님들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주인이 70년대의 포크 팝을 좋아하는 모양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런 사람들이 있지, 지나간 과거를 그리워하는 사람들.      


 그녀는 어쩐지 전투적으로 먹던 음식도 그대로 앞에 두고 비가 떨어지는 모습을 쳐다보았다. 손가락으로 테이블 위를 톡톡 치는 걸 보니 음악을 들어가며 비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내심 좋아하는 음악을 같은 자리에서 그녀와 함께 듣고 있다고 생각하니 어떤 충족감이 밀려들었다. 나는 비가 떨어지는 모습을 한없이 바라보는 그녀의 옆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그녀의 옆모습에는 책 한 권 분량의 이야기가 들어있었다. 여러 개의 단편을 엮은 단행본 같은 모습이었다.     


 인간의 앞모습과 옆모습은 느낌이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그녀의 이마에서 코로 이어지는 선은 미끄러지듯 밑으로 길고도 아름다웠다. 그녀의 속눈썹이 그렇게 길쭉하고 하늘로 휘어져있으며 성냥개비 스무 개 정도를 올려도 끄떡없을 것만 같았다. 그녀의 길고 아름답게 휘어진 속눈썹을 한참이나 보고 있자니 하나의 세계를 이루고 있었다. 내가 먼지만 한 난쟁이였다면 그 속눈썹 속으로 파고 들어가 나오지 않고 그 속에서 살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면서 그 비가 쏟아지는 장면을 바라보고 있는지 짐작도 할 수 없었지만 진지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쩌면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우리, 비를 맞으러 가요”라고 그녀가 침묵을 깨고 나를 보며 말했다.      


 맙소사.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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