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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pr 01. 2021

비는 소바와 티라미수를 타고 12

단편 소설


12.


 비는 카페에 들어오기 전보다 빗줄기가 더욱 강해졌다. 아마도 본격적인 레인 시즌을 알리는 빗줄기였다. 나는 비를 맞으면 안 되는 이유를 10가지 정도 늘어놓았다. 아주 논리적으로, 장황하게 미사여구를 붙이지도 않고 말이다. 그녀는 나의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내가 말을 끝내자마자 나의 손을 잡고 이끌었다. 나는 친구를 쳐다보았다. 도와 달리는 눈빛을 보냈다. 그 녀석은 티라미수를 포크로 천천히 시간을 들여서 먹고 있을 테니 다녀오라는 손짓을 했다. 그리곤 내 앞에 있는 티라미수까지 마수를 펼쳤다.     


 여름에 내리는 비라고 하지만 오랫동안 맞고 있으면 추워진다. 몸은 적응이 힘들다. 그렇긴 해도 여름의 비를 맞고 있으면 상쾌하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비를 제대로 맞아 본 적이 언제였더라. 나는 하늘로 얼굴을 올려 그때를 생각해 보았지만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 어린 시절에 비가 쏟아지면 하늘을 향해 목을 꺾어서 비를 얼굴의 모든 면으로 받았다. 다만 나는 언젠가 이렇게 비가 떨어지고 춥지 않았던 어느 날, 비가 쏟아지는 하늘을 향해 고개를 젖혀서 비를 맞았던 기억이 있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잔상만 남아서 뿌연 막을 드리우고 있을 뿐, 그 장소나 같이 비를 맞았던 친구에 대해서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누군가와 함께 비를 즐겼던 것은 확실하지만 그 누군가 역시 몽글몽글한 그림자처럼 막이 되어서 기억의 한 부분에 겨우 붙어 있었다.      


 정말 기억이란 소설과 비슷한 걸까.

 과거와 미래가 뒤죽박죽 섞여 있을까.

 내가 생각하고자 하는 것만, 기억하고자 하는 것만 뇌가 떠올리게 하는 것일까.     


 그녀는 마치 눈밭의 강아지처럼 비가 오는 해변을 뛰어다녔다. 간간이 보이는 사람들도 비를 피해서 뛰어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지만 그녀는 그 사람들과는 달랐다. 나는 그녀가 해변에 나가지 말았음 했다. 비에 젖은 모래는 개 오줌에 젖은 신문 뭉치와 비슷했고 쓰레기통에 들어가 버린, 반쯤 먹은 햄버거와 같았다. 그녀는 개 오줌에 젖은 신문 뭉치를 결국에는 집어 들었고 나에게 쓰레기통을 뒤져 반쯤 먹다 남은 햄버거를 건네주었다.   

   

 신발은 해변에 벗어 두었다. 나는 신발 벗기를 꺼려했지만 그녀는 자신이 신발을 벗는 것으로 나 역시 그렇게 하리라 믿고 있었다. 그 믿음에 찬물을 끼얹을 수 없어서 나는 그대로 따라 했다. 나는 양말을 신고 있었기에 양말을 벗어서 신발 안에 밀어 넣고 그녀와 함께 모래사장으로 뛰어들었다. 비에 젖은 모래사장을 밟는 기분은 쨍쨍하게 마른 모래를 밟는 기분과는 많이 달랐다.      


 발가락 사이로 비에 젖은 모래 알갱이들이 파고들었고 발등과 발목을 더럽게 엉켜 붙었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뛰어다니다 보니 그녀와 나는 비에 흠뻑 젖었다. 그녀는 영화에서처럼 양팔을 옆으로 벌리고 빙글빙글 돌기도 했고 비가 떨어지는 바다의 잔잔한 파도에 발을 담그기도 했다. 친구 녀석은 카페에 앉아서 창문으로 우리의 이런 행동을 긍휼히 바라볼 것이다. 내가 생각해도 비를 맞으며 해변에서 뛰어다닌다는 모습은 지금보다는 몇 년 전이 훨씬 어울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라면 그녀를 만나지 못했기에 지금은 그리 호러블 하지 않았다.      


 그날 그녀와 나란히 바다에 발을 담그고 비가 바다에 떨어져 음표를 만들어내는 장면을 눈에 담았다. 비가 바다에 떨어져 수십만 개의 음표를 만들어 내고는 이내 사라지는 모습은 마치 교향시를 보는 듯했다. 지금이 아름다웠고 안타깝기도 했다. 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는지 알 수는 없었다. 그녀는 백사장에 앉아서 나의 팔짱을 끼었다. 비 때문에 우리는 눈을 제대로 떨 수가 없었다. 비의 장막 속에서도 그녀의 얼굴은 잘 보였다.      


 저 멀리 수평선에 걸쳐있는 유조선은 미미하나마 좌에서 우로 서서히 움직였다. 아니 그렇게 보였다. 실은 유조선은 정박해있는 것일 터였다. 유조선보다 근거리에 있는 어선이 움직였다. 그에 따라서 유조선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비는 바다에 떨어지고 유조선에도 떨어지도 대형 어선에도 떨어졌다. 대지를 적시고 유조선을 적시고 대형 어선을 적시고 바다에 떨어졌다.      


 “바다는 비에 젖지 않는다는 말을 알 것 같아요.”


 쏟아지는 비에 그녀는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말했다.


 “응.”


 가늘게 실눈을 하고 나도 그녀에게 대답을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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