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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pr 02. 2021

비는 소바와 티라미수를 타고 13

단편 소설


13.


 그날, 우리가 먹은 봉골레까지 그녀가 계산을 다 했고 ‘보트 위의 (공포) 낚시’는 그렇게 막을 내렸고, 그녀는 심한 감기에 걸려 내 집에서 이틀을 고스란히 열을 뿜어내며 잠들어 있었고 덕분에 나는 약국에 왔다 갔다 했고 손수건으로 그녀의 열을 내리느라 잠을 설쳤다. 이후 그녀와 나는 종종 만나게 되었다. 아직 잠자리는 갖지 않았다.      



 그녀가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하얗고 큰 젖가슴이 옷 안으로 숨어 버리는 순간이었다.


 “지금 라디오 말이에요”라며 그녀는 테이블 위에 있는 작은 쿠킹 요리 기계 같은 라디오를 가리켰다. 트랜지스터 라디오 말이다.


 “그래, 그러고 보니 당신이 내 볼펜을 빼앗아갔던 그날 레코드샵에서 흘러나왔던 노래가 이 노래였어.”


 나는 새삼 감회에 젖어 그녀를 보며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나를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보며 “그래요? 그날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군요. 어쩐지 집에 가서 보니 내가 사용하는 볼펜이 아닌 볼펜이 가방 안에 있어서 순간 가방을 잘못 들고 왔나? 하는 생각을 했지 뭐예요.”     


 맙소사.      


 “라디오에 나오는 음악을 말하는 거 아니었나?”


 나는 그녀의 다리를 보며 말했다. 그녀의 매끈하고 하얀 다리는 모기들이 많이 달려들었음에도 모기에게 물린 자국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두 손으로 방어를 철저하게 한 모양이었다.


 “아니에요. 당연한 거 아니에요? 노래 말구요. 라디오 사연 말이에요. 사연을 들어보면 생일을 맞이해서 자신의 사연을 보냈잖아요.”


 나는 그녀의 말에 그렇다고 했다.


 “그런데 사연이 앞의 라디오 프로그램에도 소개가 되어서 나왔다고 사람들이 기를 쓰고 항의를 하잖아요. 항의를 실시간으로 하면서 디제이는 그것을 읽어주며 멘트를 하고 있잖아요.”


 나는 또 그렇다고, 그녀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은 라디오에도 반응이 너무 빨라서 별로네요. 예전만큼 라디오를 듣지 않게 되었다고나 할까요. 사연은 그저 생일을 축하해달라는 멘트와 신청곡 하나잖아요. 사연의 주인공은 돌싱에다가 어느 프로그램에 소개가 될지 몰라서 여러 군데에 사연을 보낸 것뿐인데 말이죠. 사연을 들어보면 남편과 헤어지고 아이를 키우며 힘든 나날을 보내고 혼자서 맞이하는 생일이라서 어렵게 공중파에 용기를 내어 사연을 보내서 타 프로그램의 디제이들도 같은 마음으로 그 사람의 사연을 소개해 준 거잖아요.”


 그녀의 말에 나는 그 부분까지는 생각해 보지 못했다. 하지만 모기를 프라이팬에 구워대는 생각보다는 훨씬 현실적이었고 생각의 끝에 닿을 수 있었다. 또 사연을 보낸 당사자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았다.

     

 사연을 보내기까지 적잖이 생각을 하고 또 했을 것이다. 혹시나 라디오를 듣고 자신을 알고 있는 사람이 축하한다고 연락을 해오지는 않을까. 그런 생각이 스쳐갔을 것이다. 하지만 라디오를 듣는 청취자들은 그러한 이혼녀의 마음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다. 사람들은 먼저 나온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온 사연이 또 나오는 것에만 집중력을 발휘해서 비난을 퍼붓는다. 대중은 멈출 줄 모르는 폭주기관차다. 뭉쳐서 한 번 출발하고 나면 멈추지 못한다. 그것이 비극이다.      


 “그 여자는 단지 생일을 축하받고 싶은 거라구요. 두 번이나 세 번 축하받으면 그곳이 라디오라도 그게 비난받을 정도로 이상한 건가요? 두 번 축하받는다고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나요? 이렇게 빈정거리는 말들을 보내다니 너무하지 않아요? 전 그 여자가 마치 바스터즈에서, 쇼산나에서 임마뉴엘이 되어 극장을 운영하던 중에 한스 대령을 만나는 장면과 겹쳐요. 왜 그런지는 모르겠어요. 크루아상에 크림을 찍어서 먹는 장면이나 담배를 건네받고 떨지 않고 담뱃불을 붙인다거나 대화를 하는 동안 그 두려움을 찾아내는 장면 말이에요. 그 장면 혹시 기억나요?”라고 그녀는 고집스럽게 말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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