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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pr 03. 2021

비는 소바와 티라미수를 타고 14

단편 소설


14.


 나는 그 장면을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쇼산나는 유태인 출신으로 유태인 사냥꾼인 한스 대령에게 가족이 몰살당하고 혼자 살아남아서 프랑스에 간 것이다. 그곳에서 한스 대령을 만나는 장면은 정말 두근거렸다. 쇼산나도 쇼산나지만 바스터즈에는 매력적인 다이엔 크루거가 나온다. 정말 독일적인 이름이다. 다이엔 크루거. 나는 다이엔 크루거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생각이 멈추고 말았다.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녀의 말에 나는 동의했다. 돌싱이 된 사연의 주인공은 단지 생일을 축하받고 싶었을 뿐이다. 축하를 받으려고 라디오에 귀 기울이고 있다가 사람들의 비난에 기분이 다운된 생일을 맞은 그녀의 얼굴을 떠올려보았다. 갈아입을 옷도 없이 비를 흠뻑 맞은 사람의 얼굴이 따라왔다.      


 그녀는 햇볕이 따가운지 파라솔을 펼쳤다.   

  

 “하지만 우리가 앉아있는 이곳엔 햇빛이 도달하지 않아”라고 내가 말하고 그녀가 곧 알 수 없는 미소를 흘렸다. 엘리베이터가 17층에서 1층으로 내려오는 시간이 흐른 후 비가 쏟아졌다.      


 맙소사.  

    

 여름의 비였다.


 그녀는 내가 이겼지.라는 표정을 지으며 파라솔 안으로 의자를 끌어당겼다. 비는 나뭇잎으로 떨어졌고 빈 공간을 통해 아래로 떨어졌다. 비가 떨어지면서 짙은 녹음의 기운과 냄새도 같이 안고 떨어졌다.


 여름의 냄새였다.   

  

 비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하늘의 어느 공간에서 시작되어 지상의 여러 곳으로 떨어졌다. 그 이상도 그 무엇도 아니었다. 나뭇잎에 빗방울이 떨어져 여러 갈래의 물방울로 흩어졌다. 파라솔 안으로 의자를 바짝 당겨 들어와서 그녀는 테이블에 팔을 올리고 턱을 괸 채 비가 떨어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우중 속에서 그녀의 옆모습을 유심히 바라보는 것이 어쩌면 세상에서 내가 가지는 최대의 낙이 될 것만 같았다. 비가 떨어지지 않는 날의 그녀의 옆모습은 그냥 그녀의 옆모습이었다. 지금처럼 여러 단편의 모습을 지닌 옆모습은 오로지 비가 떨어지는 날에만 그녀에게서 비쳤다.      


 아마도 그녀는 이렇게 내리는 비와 무슨 사연이 있지 않을까.


 그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저 그런 생각을 그녀에게 이야기하려다 그만두었다. 비가 떨어지는 날의 당신의 옆모습은 꽤 많은 이야기가 서려있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녀는 비를 동반하는 것이 아닐까. 비를 동반하는 그녀는 비가 그치면 비와 함께 땅속으로, 대기 속으로, 나뭇잎 속으로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다. 그녀는 비가 내리면 세상에 없는 인간의 눈빛을 하고 비가 떨어지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일까.      


 비가 내리는 날에 그녀를 바라보면 수많은 질문이 응축되었다. 비는 백 년 전의 여름에도 이렇게 떨어졌고 앞으로 백 년 후에도 이렇게 떨어질 것이다. 그런 똑같은 비를 바라보며 그녀는 어떤 확장성을 느끼는 것처럼 보였다. 눈빛이 미묘하게 흔들리기도 했고 더 깊어지기도 했다. 필시 내리는 비와 함께 그녀의 어떠한 부분이 일렁이고 있음이 확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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