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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pr 05. 2021

비는 소바와 티라미수를 타고 15

단편 소설


15.


 [스릴러 영화에서 쏟아지는 여름밤의 비는 무서운 비였다. 그 비를 맞으면 피부가 따끔거리며 아프기 시작했고 며칠 동안 시름시름 앓는다. 그녀는 그 비를 맞고 침대에서 창을 통해 내리는 비를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결국에 그녀의 몸이 하나하나 분열되어서 녹아 없어진다. 그녀의 몸은 비가 떨어져 도로 위의 물먹은 신문지가 되어 지나가는 사람들의 신발에 의해 그 형태가 차츰 떨어져 나가듯 그녀 몸의 테두리에서부터 녹아 없어져 버리는 것이다. 그녀는 다리가 점점 녹아 없어져가지만 창가를 바라보고 있는 표정은 평온해 보인다. 전혀 아프지 않고 편안하다는 듯이]     


 그녀를 보면서 이런 영화의 시나리오를 한 편 써보면 어떨까 하고 잠시 생각을 했다. 물론 아무도 메가폰을 잡으려 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그녀는 이제 다리에 달려드는 모기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나는 그녀에게, 모기들이 다리를 뜯지 않느냐고 물어보려다가 역시 그만두었다. 비 때문에 모기들이 더욱 파라솔 안으로 몰려들 거라고 생각되었지만 그녀가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인지 모기들이 사라져 버렸는지 모기 때문에 더 이상 다리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리고 모기들도 포착되지 않았다.      


 나는 그녀의 옆모습에서 느껴지는 것들, 옆모습에서 보이는 것들을 글로 써보자고 방금 생각했다. 그렇게 그녀에 대해서 닿을 수 없는 세계의 발을 들여다 놓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비를 바라보던 그녀는 갑자기 놀란 듯이, 앙리 루소의 그림이 그려진 쇼핑백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쇼핑백의 바닥 부분에 비가 스며들어 찢어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이거 앙리 루소의 전시회에 갔다가 전시회장 밖에서 비싸게 주고 구입한 쇼핑백이에요. 바닥이 다 젖에 버렸네요.” 그녀는 미간을 좁히며 안타깝게 말했다. 그녀의 미간 속 접힌 부분에서도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었다.


 앙리 루소는 알면서 에셔는 왜 모르는 것일까.


 “이리 줘봐, 테이프를 잘 붙이면 앞으로 2년은 더 들고 다닐 수 있을 거야”라며 나는 손을 내밀었다.


 “당신은 재주가 좋군요.”


 “이런 건 재주라고 부르는 게 아니야. 동물원의 곰이 부리는 게 진정한 재주지. 그건 인간의 욕심이 만든 것이지만 말이야. 재주라는 건 키리코의 그림 같은 거야.” 나는 말했다. 그녀는 신기한 것을 쳐다보듯 나를 보더니, 잠시 있어보라며 쇼핑백에서 상자를 여러 개 꺼냈다. 상자들은 한눈에도 음식을 담아온 도시락 통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집에서 만들어왔어요”라며 그녀는 도시락 상자를 열어서 그것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테이블에는 카페에서 파는 티라미수의 두, 세배 큰 티라미수가 보였고, 또 이름은 전혀 짐작이 가지 않는 음식이 올라왔다.


 비는 레인 시즌을 알리는 듯 억척스럽게 파라솔에 떨어져서 파라솔을 타고 흘렀다. 라디오에서 조용한 음악이 흘러나올 땐 비가 파라솔에 떨어지는 소리와 어울렸다. 이렇게 만들어낸 앙상블은 어딘가에서 한 번 들어본 적이 있었다.      


 나는 도시락 뚜껑을 열었다. 아직 따뜻한 김이 올라왔고 그 향은 허기를 더욱 북돋아주었다. 보기에는 형편없이 보이는 요리였다. 닭으로 만들어진 요리라는 건 알겠는데 가늠할 수 없는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운동장 만한 허기로 나는 참지 못하고 포크로 집어서 입안에 넣었다. 그것은 지금껏 먹어보지 못한 맛이었다. 물론 굉장히 맛있었다. 그녀는 내가 오물거리는 모습을 천진난만하게 쳐다보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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