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9.
그녀와 느닷없는 만남이 있은 후 일주일 정도 지나서 그녀에게 연락이 왔고 가끔씩 만나서 식사를 하거나 맥주를 마셨다. 식사는 대체로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샌드위치를 먹었고 맥주는 칼스버그를 마셨다. 그녀는 예고 없는 비처럼 느닷없이 찾아오거나 연락을 했다. 연락을 했는데 내가 받지 않으면 그녀는 나의 집까지 찾아왔다. 내가 작업하는 곳, 즉 주거환경에 타인이 들어오는 것을 아주 싫어하는 타입의 인간이 나지만 그녀가 찾아오는 것은 그렇게 싫지 않았다.
한 번은 낚시를 가는데 그녀가 따라왔다. 나는 낚시를 잘하지 못한다. 친구의 아버지가 조그마한 낚시점을 운영하며 경량급 보트로 바다로 나가서 낚시를 하는 사람들을 포인트까지 실어주고 시간 맞추어서 다시 데리고 나오는 일도 하는데 그날은 친구의 아버지가 다른 지역으로 볼 일을 보러 갔다. 친구는 나를 불러 날이 좋으니 바다에 보트를 띄워놓고 낚시나 즐기는 게 어때?라는 말에 오케이하고 말았다. 내 쪽에서는 재산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남아도는 시간이었다.
친구는 공과대를 졸업하고 취업난에 허덕이다 결국에는 아버지의 가업을 물려받기로 했다. 기계과를 졸업한 덕분일까, 보트의 간단한 수리 정도는 친구가 했다. 그리고 낚싯대의 수리도 곧잘 하면서 아버지의 믿음을 조금씩 쌓아가기 시작했고 아버지는 친구에게 보트의 운전을 가르치면서 본격적으로 아버지의 가업을 물려받았다. 그렇지만 친구도 낚시에는 관심이 없었고 결과적으로 낚시를 못하니 고기를 잡는다는 것은 우리들이 낚시를 하는 일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친구와 나는 가끔씩 만나서 방파제에 낚시를 하러 가서 낚싯대를 던져놓고 고기를 끌어올리는 일에는 무관심한 채 이야기를 하곤 했다. 친구와 보트를 타고 시퍼런 바다에 나가서 낚시를 하는 약간의 걱정과 설렘으로 마음이 살짝 고무되어 있었다.
보트를 타고 바다에 나간다. 그렇게 멀지 않은 지점에 다다른다. 이곳에서 보면 육지가 보인다. 바다는 잔잔하고 청명하고 푸른 바다가 마치 잘 익은 농어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친구가 갑자기 보트에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보트는 잔잔하지만 파도에 떠밀려 자꾸만 육지에서 멀어진다. 우리는 손으로 아무리 휘휘 저어도 보트는 점점 멀리 떠내려가기만 한다. 우리들의 얼굴은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져서 땀을 흘려가며 팔을 저어 보지만 보트는 점점 거세게 바다의 중앙으로 나아간다. 바다 중앙에서 괴생물체가 흡입하듯이 보트는 육지에서 거짓말처럼 멀어진다. 곧 회로 먹어도 맛이 좋다는 상어의 삼각 지느러미가 수면 위로 나타나면서 우리의 두려움은 극대화가 된다. 솔직히 나는 너무나 두렵고 무서웠지만 친구 녀석은 나만큼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다. 그 녀석은 마치 자신 혼자서 무슨 방법이 있는 것만 같았다. 나는 바다 주위를 두리번거려 본다. 아무리 봐도 그 녀석 혼자 탈출할만한 그 어떤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녀석의 얼굴에는 불길한 자신감이 곁들여 있었다. 이제 육지는 점점 작아지더니 점처럼 변했다. 육지에서 멀어지니 태양의 빛이 생각보다 더 뜨겁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팔이 벌겋게 익어서 씹어 먹으면 금방이라도 뜯어질 것만 같았다. 드디어 상어가 모습을 드러냈다. 상어는 티브이에서 보는 것과는 아주 다른 모습의 상어였다.
그때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봐요, 당신 뭐 하고 있어요? 당신 집 근처인데 들어갈게요.”
상어는.......
“이봐요? 뭐 하고 있어요?”
“상어를 상상하고 있었어.”
“그랬군요. 이 번 글에 상어가 등장하나 봐요”라고 수화기 너머에서 그녀가 말했고 그녀가 말을 할수록 내 상상 안의 상어의 모습은 희박해져만 갔다.
“그런 건 아니지만....”
“나, 당신 집근처라구요.”
나는 난처했다. 지금 친구의 보트를 타고 이제부터 바다로 나가서 낚시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녀는 수화기 너머로 너무 기대가 된다며 체육복 바지를 하나 더 들고 나오라고 했다.
맙소사.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