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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pr 03. 2021

무력감

사진 에세이

아파트 현관에 길냥이가 무력하게 앉아 있다. 놀랄까 봐 바로 들어가지 못하고



봄이 되면 이 깊고 깊은 무력감은 주기적으로 겪게 된다. 그리고 주기적으로 사라진다. 사월은 내게 정말 잔인하다. 사월이 되면 정말 알 수 없는 무기력이 온몸을 휘어 감는다. 사월에 하는 조깅은 그야말로 무기력 때문에 몸이 천근만근이 된다. 조깅을 하면서 나는 도대체 왜? 같은 생각에 빠져들고 만다. 다른 계절이나 다른 달에는 하지 않던 생각을 하게 되고 나는 무엇 때문에 매일 이 시간에 이 거리를 달리고 있을까, 이런 생각에 빠지면 이 무기력은 무력감을 부르고 오늘은 이쯤에서 그만하자, 해버리고 만다. 문제라면 문제이고 아니라면 아니지만 매년 사월이면 무력감이 찾아오는데 매년 그 깊이와 길이가 깊고 길어진다는 것이다. 지금 오늘은 오늘 이전에 맞이했던 사월의 무력감보다 더 한 무력감에 빠져있다.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면 세계가 혼란하니 더 그런 것 같다. 햇빛 눈이 부신 날에 이별해봤니, 라는 노래 가사처럼 사월이면 온 세상이 봄눈으로 뒤덮인다. 거리도, 도로도 모든 곳이 봄눈이 내려 그래픽 처리를 해 놓은 것처럼 아름답게 보인다. 세상의 예쁜 것들은 쉽게 질리지만 아름다운 것은 질리지 않는다. 온 세상이 아름다운 옷으로 갈아입은 사월은 질리지 않는다. 너무 아름답고 너무 고혹적이라 슬프고 결락감에 빠져든다. 김윤아도 봄은 또 오고 꽃은 피고 또 지고 피고, 아름다워서 너무나 슬픈 이야기라고 노래를 불렀다. 사월이 아름답게 보이는 이유는 찰나로 왔다가 가버리기 때문이다. 순간으로 스쳐간 그 사람이 눈을 감으면 손으로 만져질 것처럼 선명하게 떠오르는 그리움은 봄이면 달처럼 커진다. 내 곁에 머물 수 없던 아름다운 사람들은 무심히 떨어지는 벚꽃이 되어 하얗게 변해갔다. 누가 옆에서 어깨를 건드리면 터질 것 같은 그리움이 그대로 눈물이 되어 흐를 것 같은. 그 모습을 숨기기 위해 얼른 샤워를 한다. 샴푸를 핑계 삼아 눈물을 흘릴 수 있게. 하지만 다음 달을 버티게 만드는 힘은 사월의 미칠 것 같은 무력감을 이겨낸 걸음이다. 다른 날보다 천천히 가자. 조금 뒤처져도 괜찮다. 목적을 가지고 가지 말자. 그냥 간다는 게 중요하다. 천천히 주위를 느끼며 슬로우 슬로우 흘러가자.


 

아름답지 않다면 노을이 아니다. 아름다운 건 쉽게 질리지 않는다. 쉽게 질리면 좋을 텐데, 그러면 삶이 훨씬 수월할 텐데
봄눈이 오소소
만개와 동시에 무화되는 벚꽃의 미학이 너무 아름다워서 슬픈 계절



https://youtu.be/_latgzoqo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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