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또 일상
달이 바뀌었다. 이번 오월에는 전시회를 연다. 지금 거의 준비가 끝났다. 사월 말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코로나 이후 이 도시에 가장 많은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다. 연일 수십 명씩 확진자가 나오고 있다. 그래서 전시회에 아는 사람 그 누구도 초대를 하지 않기로 했다. 아주 기묘한 전시회가 될 것 같다. 2021년도 사분의 일 분기가 지나가고 일 년 중에 가장 푸르른 달로 접어들었다. 어린 시절의 오월에는 풀 냄새가 주위에서 진동해서 흠 하며 향기를 많이 맡았던 기억이 있는데 그 기억이 제대로 된 기억인지는 나도 잘 알 수는 없다. 하지만 근래에 강변을 달리다 보면 풀 냄새를 맡을 수 있는데 그럴 때면 늘 기시감에 젖는다. 아무래도 어린 시절을 소환한다.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매일 비슷한 시간에, 비슷한 곳을 조깅하지만 가끔 일요일이나 토요일에는 좀 더 이른 시간에 나와서 조깅을 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조깅은 목적이기보다 그저 대상이 되고 조깅을 하며 지나치는 풍경이나 모습을 멍하게 보기도 한다. 강을 보며 강멍하기도 하고, 하늘을 보며 하늘멍을 하기도 한다. 벤치에 앉아 멍하게 강을 보고 있으면 정말 멍하게 된다. 아무런 생각이 없어진다. 생각보다는 환상이나 공상 쪽으로 기울다가 다시 멍해진다. 그리고 지나치는 사람들을 본다. 이럴 때 이상은의 삶은 여행이 나온다면 꽤 좋을 것 같다. 사람들은 여기에서 저기로도 갈 법한데 이상하게 저기에서 여기로 지나가는 사람들만 보인다. 그 모습이 신기해서 몇 컷 찍어본다.
매일 달리지만 매일 조금씩 비겁한 곳에 살은 더 찌는 것 같다. 옷을 입고 있으면 전혀 표가 나지 않지만-체육복을 입고 있으면 아버님들이 멋있다고까지 하는 말을 아주 가끔 듣지만 매일 조깅을 하는 것과 매일 안 보이는 곳에 살이 붙는 것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그리고 정면으로 달려가기 전에 하늘과 조깅코스를 담아본다. 이 사진 속의 색채는 십육만 가지 컬러가 채색되어있는 것만 같다. 하늘이라도 저 먼 하늘의 색과 가까운 하늘의 색은 다르다. 이런 장면을 보면 나는 늘 하는 말이 있다. 괴테는 색이란 빛이 고통으로 빚어낸 것이라서 세상에서 이렇게나 아름답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인간 역시 부모가 고통 속에서 탄생시켰기에 아름다울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인간이란 전부 다른 모습이며 각각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지만.
비가 내리고 나면 강도 고요해서 푸른 색감과 반영의 멋진 장면을 담을 수 있다. 암청색에 가까운 푸른 색감은 새벽과 하늘이나 물빛에 어울린다. 오래전 감성을 건드렸던 필름 사진 같은 기분도 잠시 낼 수 있다. 이런 날만 되면 사람들 중에 얼굴이 파랗게 변하는 바이러스에 걸려 다른 사람들을 먹으러 다니고 점점 사람들은 얼굴이 파랗게 변하는 바이러스에 감염이 된다. 이런 이야기를 만들면 재미있을 것 같은데 얼굴이 파랗다고 하면 스머프가 제일 먼저 떠오르기도 한다. 스머프 하니까 하는 말인데 혹시 스머패트를 기억하시는지. 스머패트는 원래 스머프가 아니라 갸갸멜이 스머프들을 잡기 위해 만든 복제 스머프였다. 남자들만 있는 스머프들을 미인계로 잡는다는 계획이었지. 갸갸멜은 실은 물리학보다 화학에 천재성을 보인 과학자였다. 그런 갸갸멜이 스머프 일망타진을 위해 만들어진 바이오테크놀로지 스머프가 스머패트라는 거지. 하지만 물리학에서 좀 벗어나게 만들어졌는지 파파스머프로 인해 순화되었다. 이후에는 완전히 스머프가 되어서 아픈 스머프를 간호해주며 돌보게 된다. 스머프 종족은 어떤 식으로 번식을 하는 것일까. 전부 남자인 스머프 마을에 스머패트 혼자 여자다. 후에 사세트가 등장하지만 사세트는 어린이였다. 단 한 명의 여자로 살아가는 인생이란 어떨까. 아기 스머프는 어떻게 탄생할까. 똘똘이 스머프, 투덜이 스머프, 배짱이 스머프 등 심지어 파파 스머프까지 스머패트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한다. 파파스머프 때문에 마법으로 스머패트는 박애주의자가 된 것일까.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기 직전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으면 보색 대비의 느낌을 낼 수 있다. 겨울을 벗어난 나무와 들판의 풀과 꽃들은 녹색으로 옷을 갈아입고 하늘은 한껏 석양의 그것을 뽐낸다. 그 반대되는 대비가 조화롭다. 이 세상은 그런 대비의 조화가 균형을 이루고 있다. 땅과 하늘이 그렇고 아이와 어른이 그렇고 남자와 여자가 그렇고 패션리더와 패션 테러분자가 그렇다. 그렇게 말하고 나의 복장을 보니 테러를 일삼아도 크게 일삼는다.
이른 시간에 나오면 몇 시간 달리며 걷다가 저녁이 된다. 스쳐 지나가는 모든 이들이 자기 자리에서 자기 일을 하며 나와 무관한데 나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 후배가 얼마 전에 단편영화를 하나 찍는다며 시나리오를 들고 왔는데 이런 내용의 시나리오였다. 내가 읽기에는 꽤 철학적이라 내가 잘 이해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떻든 응원을 보낸다.
하늘은 그대론데 구름이 매일 다르다. 그래서 하늘은 볼 때마다 같은 하늘은 없다. 구름은 눈에 보이지만 만질 수는 없다. 지구 상에 그런 물질이 우리 주위에 상시 존재한다. 바람도 느낄 수는 있지만 만질 수 없고 빛도 눈에 보이지만 촉감을 느낄 수 없다. 바다도 강도 그리고 안개도 그렇다. 이런 물질과는 다르지만 벌레는 만질 수는 있지만 만질 수 없다. 바퀴벌레도 만질 수는 있지만 그럴 수 없다. 까마귀도 눈에도 보이고 만질 수 있지만 만지려는 사람도 없고 역시 그럴 수는 없다. 얼마 전에 영화 ‘더 파더’를 봤다. 더 파더의 리뷰를 한 번 따로 적겠지만 정말 공포를 체험했다. 인간은 왜 늙을까, 늙어서 치매라는 것들이 왜 걸릴까, 인간도 애초에 고양이처럼 40세 정도까지만 살면 더 좋을 텐데. 그러면 40년 안에 80년 동안 해야 할 것들을 해야 하니까 다른 것에 눈을 돌리지 않을 텐데, 같은 생각이 들었다.
어스름 저녁이 하루를 덮는 시간이면 하늘에 빛을 내는 공이 뜬다. 저 멀리 떠 있는 공은 어딜 가나 보인다. 숨바꼭질을 하는 것처럼 어딜 가도 빛나는 공이 보인다. 나무에 빛나는 공이 걸릴 뻔 하기도,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빛나는 공이 작아지기도, 마치 자연주의적 그림 같은 사진에서도 빛나는 공이 단연 돋보인다.
예전에는 사진 속에 전깃줄이 나오면 신경질 적으로 그 선들을 다 지웠는데 언젠가부터 사진을 더 살리는 것처럼 보였다. 전깃줄이 없었다면 너무 완벽한 그림이다. ‘너무’라는 부사는 예전에는 부정적인 의미였기 때문에 너무 완벽하다는 말은 완전무결하다는 말이며 완전무결한 것들은 마음이 없거나 감정이 소거되어 늘 이성이 모든 걸 검열한다.
골목의 저 끝에 가로등 불빛이 켜졌다. 이런 장면은 언제나 정겹다. 차갑게만 보이는 골목에 들어온 가로등 불빛은 따뜻하기만 하다. 골목이라는 자체가 현재의 격차를 보여주는데 골목에서 마주하는 집에서마저 또다시 격차가 느껴진다. 이 동네 사람들은 주일이 되면 저기 교회에 가서 다 같이 잘 살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할까. 기도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하기 때문에 내 차례가 되려면 아마도 98년이 지나야 가능할 것이다.
어둠이 내려앉은 밤이 되니 인공광원과 자연 광원이 동시에 하늘에 떴다. 자연광과 인공광은 멀리서 보면 참 비슷하다. 하지만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인공광에 비해 자연광은 절대 가까이서 볼 수는 없다. 형형색색 인공광은 인간에게 즐거움을 준다. 높은 빌딩에서 내려다보는 도시의 밤 풍경을 수놓는 건 네온의 아름다운 불빛들이다. 만약 단색의 인공광이거나 불빛이 없다면 아마도 사람들은 불만을 내뱉으며 욕을 할지도 모른다. 인공 불빛은 따뜻하게 보이지만 광합성이 없고 자연광은 생명력이 강하지만 그만큼 눈과 피부에 좋지 않다. 모순은 어디에나 있고 세상은 불편한 진실을 잔뜩 안고 있다. 당분간 아랑 미용실은 좋겠다. 달과 등이 한꺼번에 미용실 앞을 비추니.
일상 그리고 또 일상이 오늘도 지나간다. 그리고 내일도 지나갈 것이다. 그 속에서 만나는 해와 달, 전깃줄, 흐르는 강물, 건물, 나무와 풀, 스치는 사람들 이 모든 게 나를 이루고 있고 모두를 이루고 있다. 우리는 그렇게 나와 무관한 것들로 인해 서로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오전 8시에 올릴 글이었는데 아무 생각 없이 발행을 해버려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