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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pr 20. 2021

위로가 되는 일상 브이로그

타인의 일상

근래에 글에 집중하는데 세 시간 정도 매일 틀어 놓는 브이로그가 있다. 그저 단조로운 일상을 보여주는 브이로그일 뿐인데 그 단단한 단조로움과 반복이 주는 편안함 때문에 매일 몇 시간씩 틀어 놓는다. 늘 비슷한 영상으로 편집을 할 뿐이다. 마치 일기 같다. 딱히 특별할 것도 없고 새로울 것도 없는데 보고 있으면, 틀어 놓고 있으면 위로가 된다. 브이로그의 주인공의 순환의 일상에서 나오는 백색소음이 작업을 하는데 집중하게 만든다.


그 소리 역시 평소에 늘 지나치며 듣는 소리들이다. 하지만 지나치기 일쑤여서 무시했던 소음들로 듣고 있으면 위로가 된다. 젖은 마음으로 내려오는 하얀 밤의 소리, 낮보다 더 뜨겁게 느껴지는 어떤 밤의 소리, 그리하여 그 소리로 젖은 마음을 바짝 말릴 수 있는 소리, 시리고 하얗고 투명하게 맑고 더럽지만 사랑스러운 소리. 표현하자면 그런 백색소음들이다.


주인공은 직장을 다니며 공부를 하는 임고생으로 비슷한 여타 브이로그와 다른 점은 얼굴은 나오지 않는다. 사진에서처럼 항상 저 위치의 카메라가 주인공의 일상을 비쳐준다. 마치 오즈 야스지로의 약간 위로 올려보는 듯한 다다미 촬영기법을 보는 것 같다. 카메라를 통해 피사체를 내려다보는 시야각에 비해 약간 위로 보는 듯한 각도는 안정감을 준다.

주인공은 그저 쳇바퀴 굴러가듯 같은 시간에 일어나서 출근하고 일을 하며 점심 먹고 오후 일과를 보내고 퇴근해서 공부를 하는, 단순한 반복의 매일을 순환한다. 고요한 물처럼 재미없을 것 같은 일상이지만 주인공은 그 속에서 작은 것에 기뻐하고 행복해한다. 요컨대 금요일이면 좋아하는 과자를 사서 주말 저녁을 보내는 것이 기뻐하고, 남자 친구를 만나 데이트를 하며 소중한 사람과 보내는 시간에 대해서 행복해한다. 그렇게 자기 자신을 조금씩 더 알아간다. 사람들도 대부분 나도 작은 것에 많이 기뻐한다고 말하지만 썩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나의 경우를 보더라도 작은 일에 기뻐하기보다, 작은 일에 분개하는 경우가 더 있는 것 같다. 김수영 시인의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도 분개하는가'를 읽어보면 그 시를 이해하게 된다. 작은 일에 기뻐하는 건 간단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여기 브이로그의 주인공은 그렇게 하고 있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주인공이 보내는 일상 속에서 자아내는 백색소음이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우리는 늘 일탈을 꿈꾸고 그 속에서 일상에서는 들을 수 없었던 자유한 소리를 듣기를 바라지만 일탈이 길어지면 불안해하며 일상을 그리워한다. 일상에서는 일탈에서는 느낄 수 없는 편안함이 있다. 주인공이 일하면서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 책장을 넘기는 소리, 다이어리에 글을 쓰는 소리, 구두 소리, 버스 소리, 하루가 저물어 가는 소리는 백색소음으로 편안하다. 그 소리는 나의 소리이며 모든 이의 소리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여름에 모든 일들이 집중이 잘 된다. 그 이유 중 하나에 매미소리가 있다. 매미소리를 집중해서 들으면 황홀하기까지 하다. 매미소리가 편안하지 않고 시끄럽게 들리는 건 매미소리와 함께 다른 소음이 껴 있어서 그렇다. 시골집 앞마당 평상에 누워서 듣는 매미소리는 음악과 같다. 제목을 붙이면 ‘매미 협주곡 라장조 작품 32’ 정도 되겠다.


주인공은 직장을 다니며 공부를 하는데 일과 공부를 동시에 한다는 건 내입장에서는 굉장한 일이라고 본다. 나는 학창 시절에 공부를 못하고 담을 쌓아서 그런지 공부를 좋아하고 공부를 끊임없이 하는 사람은 참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시간이 지나 여러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발휘하는 경우를 봤다. 주인공은 일하는 모습을 제외하고 나면 영상에 넣을 것이 없다며 슬퍼하는 자막은 재미있다. 그렇게 주인공은 오늘도 조금 성장해간다.


주인공도 청춘이다. 현재 취업하지 못한 취준생들은 앞이 깜깜하다. 그들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흘리는 땀은 꿈을 꿀 수 있는 상황에서 흘리는 땀과 다르다. 신해철이 예전에 이런 말을 했는데, 운전을 하고 가다가 차에 기름이 떨어지면 보험회사에서 나와서 주유소까지 갈 만큼 최소한의 기름을 주유해준다. 앞이 보이지 않는 환경을 만들어 놓고 일만 해라고 하는 사회구조가 달라져야 한다고 했다. 어둠 속에서 멈춘 청춘들이 최소한 희망을 버리지 않도록 해줘야 하는 게 이 사회이며,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기성세대들이 할 일이다.


'목표'와 '꿈'은 조금 다르다고 생각한다. 청춘인 주인공은 꿈을 향해 일상을 통해 조금씩 성장하고 있으니 보는 사람까지 위로를 받는다. 미래에 대한 건강한 고민과 작은 기쁨에서 큰 만족을 느끼는 모습에서 코로나만 아니었다면 주인공과 비슷한 또래의  대학생들을 모아놓고 하던 강의에 초대를 해서 주인공의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이 힘든 일상을 단단하게 보내는 모습에서 아마도 청춘들 역시 많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우리는 재미없는 일상을 통해서 성장해간다. 무엇보다 매일 경험하는 오늘은 모두가 처음이라 서툴다. 처음부터 뭐든 잘하는 사람은 없다. 코로나가 도래하고 많은 사람들이 화를 많이 낸다. 화를 낼 일이 있으면 당연하게도 화를 내야 하지만 화가 나기 때문에 화를 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이런 시대에 주인공은 현실을 직시하고 자신이 놓인 상황을 받아들인다. 매일 행복할 순 없지만 행복한 일은 매일 일어난다는 걸 주인공은 보여준다. 


주인공이 브이로그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며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였는데 나부터 위로가 된다. 위로는 실은 나를 모르는 누군가에게 받는 일이 많다. 위로라는 건 일상 같은 것이다. 이 브이로그의 주인공을 보면서 일상을 보내는 근사한 방법이란 그 속에서 상상력을 잃지 않는 것이다. 지치지 않고 브이로그를 만들기를 바라며.


https://youtu.be/gDr96OntC6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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