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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pr 18. 2021

추어탕은 어른들의 음식

음식 이야기

산초가루는 추어탕에 잘 어울린다


추어탕은 어른의 음식 같다. 아니 어른의 음식이다. 군대에서 처음 추어탕을 먹었다. 그 이전의 기억을 아무리 잡아당겨 봐도 추어탕을 먹은 기억이 없다. 군대를 가기 전에 돼지국밥도 먹고, 삼계탕도 먹었지만 추어탕을 먹으러 가지는 않았다. 집에서 추어탕을 해먹을 법도 한데 우리 집에서 추어탕 같은 건 해 먹지 않았다. 일단 어머니의 음식 솜씨가 추어탕을 할 만큼의 손을 가지지 못했다.


요즘 여고생들과 이야기를 하면 친구들과 함께 가장 좋아하고 자주 먹으러 가는 음식이 마라탕이라고 한다. 나는 아직 마라탕도 한 번도 먹어보지 못했다. 마라탕에 대해서 여고생들은 자신만의 방법과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들어가는 재료에 따라 맛이 다르기 때문에 중독이 되면 빠져나올 수 없다고 했다. 그렇지만 추어탕에 대해서 물어보면 먹어 보지 못했거나 마라탕만큼 친근한 음식은 아니었다. 흥, 하고 만다.


입대를 하기 전에는 추어탕을 먹어보지 못했지만 군대에서 추어탕은 왕왕 나왔다. 군대에서 먹었던 추어탕은 미꾸리로 만든 것이 아니라 고등어를 갈아서 만들었지만 맛은 추어탕과 똑같다. 근래에 들어 생각해보면 좋지 못한 미꾸리를 사용해서, 귀찮다고 깨끗하지 않게 세척해서 미꾸리를 갈아서 만든 추어탕보다 고등어를 갈아서 만든 추어탕이 훨씬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고등어로 만든 추어탕도 맛이 똑같아서 산초가루를 넣어서 먹게 되면 풍미가 확 올라와서 한 그릇 더 먹게 된다. 군대에서 처음으로 추어탕을 먹어보고 맛있다고 생각했지만 제대하고 나서 이상하게도 다른 음식처럼 찾아먹게 되지는 않았다. 보통 맛있는 음식은 찾아서 먹게 되는데 추어탕은 이상하게 눈에 힘을 주고 찾아보지 않는다. 오늘은 추어탕이 너무 먹고 싶은데? 한 그릇 먹어야지, 하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기묘하지만 돼지국밥은 찾아서 먹게 되는데 추어탕은 그렇지 않다.


그건 아마도 내가 사는 지역에 돼지국밥은 아주 많고 맛도 다 다르고 들어가는 고기도 달라서 찾아서 먹게 되는데 추어탕을 파는 집은 잘 없기도 하거니와 미꾸리를 사용하던, 고등어를 갈아서 만든 추어탕이던 맛이 대부분 비슷하기 때문에 안 찾게 되는 것이 아닐까. 음식 중에는 그런 음식이 있다. 짜장면은 보기에는 비슷하지만 맛은 집집마다 다 다르다. 아귀찜도 집집마다 맛이 조금씩 다르다. 갈비탕도 그렇다. 그래서 찾아서 가게 된다. 저 집 짜장면은 내 입맛에 딱 맞아, 아 오늘 이 집 아귀찜을 먹으러 왔는데 일찍 문을 닫았군, 갈비탕 한 그릇 먹는 데 이렇게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나(내가 사는 바닷가에도 이런 집이 있다. 딱 200그릇만 팔고, 들어가는 고기의 양이 엄청나다), 하며 찾아가게 먹게 되는 음식들이 있다. 


그런데 삼계탕은 또 이 집이나 저 집이나 맛이 거의 비슷하다. 특별히 맛있다는 삼계탕집을 가도 특별히 맛이 없을 것 같은 삼계탕집의 맛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집에서 삼을 넣고 삶아도 삼계탕 집에서 파는 맛과 거의 흡사하다. 그래서 그런지 집집마다 맛이 다른 음식에 비해 집집마다 맛이 비슷한 음식을 이상하게 잘 찾아가지 않게 된다. 삼계탕도 먹으면 분명 맛있지만 누군가와 만나서 삼계탕을 먹으러 가지 않는다.


파스타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좋아서 많이들 먹으러 가는데, 박찬일의 ‘보통날의 파스타’를 보면 본고장의 파스타 종류가 삼천 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그러니까 모양, 들어가는 재료, 익히는 시간에 따라, 가정집 집집마다 맛이 다 다른데 종류가 그렇게 많다고 한다. 그래서 파스타도 맛있다고 하면 사람들이 찾아서 가는 것이 아닐까. 우리나라 김치도 집집마다 맛이 다 다르니까.


그러고 보면 라면이 나오는 식당 역시 사람들이 찾아서 가는 것 같다. 라면도 맛이 전부 다 다르기 때문에 라면으로 소문난 곳에는 늘 사람들이 많다. 그것처럼 추어탕도 집집마다 추어탕 특유의 맛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대체로 거의 비슷한 맛인데 비슷하게 맛있다. 전복 추어탕이라는 것을 먹어봤는데 그냥 추어탕이었다. 그냥 맛있다. 추어탕의 그 맛이다.


아마 친구와 만나서 머 먹을래?라고 친구가 물었을 때 대뜸 추어탕이라고 대답하면 오케이! 가자.라고 하지도 않는다. 뭔가 음, 그런데 말이야 왜 하필 추어탕이야? 근처에 추어탕 파는 곳이 있기는 있어?라고 할지도 모른다. 여기 유명한 돼지국밥집에는 고등학생들이 교복을 입고 삼삼오오 모여 국밥을 먹는 장면을 종종 볼 수 있다. 근처에 고등학교가 2군데나 있어서 맛이 좋은 돼지국밥 집에는 거대 제조 회사원들과 고등학생이 앉아서 먹지만 추어탕 집에 고등학생들이 교복을 입고 삼삼오오 먹는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조깅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재래시장 반찬을 파는 곳에 국도 파는데 추어탕을 파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이면 포장을 해와서 팔팔 끓여서 먹는다. 이렇게 먹는 추어탕의 맛은 알고 있는 그 추어탕의 맛이며 꽤나 맛있다. 사실 추어탕을 잔뜩 사놓고 매일, 일주일을 먹어라고 해도 나는 그렇게 할 만큼 추어탕은 맛이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추어탕은 가끔 먹게 된다. 이렇게 시장에서 추어탕을 파는 날이면 포장을 해 와서 먹곤 하는데 추어탕은 다른 '탕'에 비해 약간은 괄시를 받고 있다는 느낌이다. 


맛있는데 많이 찾지 않는, 막상 먹을 때는 좋은데 누군가 물어보면 먹고 싶은 음식에서 늘 소외되고 있는, 집에서 만들어 먹기도 힘들어서 가정에서는 잘 안 하지만 가끔 아파트에 추어탕의 냄새가 확 퍼질 때면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음식이다. 어른들의 음식이라서 그럴까. 추어탕 전문점에는 잘 가지 않지만 누군가 추어탕 사줄게,라고 하면 날름 나가서 먹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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