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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pr 16. 2021

유지만 하고 있어

일상 유지어터

나무는 매일 보는데 매일 신기하다
어떻게 비슷한 모습을 늘 유지할까


“유지만 하고 있어.”


같은 말인데 예전과 너무 다르게 들리는 말이 ‘유지’가 아닐까 싶다. 유지만 하고 있어서 속상했던 때가 그리운 나날들의 연속이다. 요즘은 장사하는 사람들은 유지하는 것도 힘들어서 대출에, 받을 수 있는 보조금에, 발버둥을 쳐도 유지하는 게 힘든 날이 되었다. 그러다가 돌아보면 그 자리는 빈자리가 되어 있다.


어제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과 국밥에 대해서 공감대가 형성이 되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요는 그 사람은 근래에 자꾸 살이 쪄서 큰일이라고 했다. 그 사람은 국밥을 너무 좋아하는데, 일주일에 7번은 먹는데, 특히 국물을 주욱 들이켤 때 몹시 행복하다고 했다. 또 새우젓도 많이 넣어서 먹는데 주위에서 살이 쪘다고 자꾸 입을 대서 그 좋아하는 국밥을 끊어야 하는지 고민이 된다고 했다. 운동도 좋아해서 매일 운동을 하는데 유지하는 게 너무 힘들다고 했다.


우리 같은 일반인이 살이 찌고 빼는 건 운동과는 무관한 것 같다고 했다. 먹는 걸 줄이거나 끊거나 조절이 필요하다면서 얼굴에 불만이 가득한 표정을 만들었다. 일 마치고 힘든 건 국밥 한 그릇에 모든 것이 다 날아가 버릴 정도로 국밥을 먹는 동안에는 정말 행복한데 그걸 포기하고 살을 빼야 한다니, 삶이 너무 허무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운동을 이렇게 매일 하는데 유지만 했으면 좋겠는데 그것마저 생각처럼 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동감한다. 나는 십 년이 넘게 비슷한 몸무게를 지니고 있지만 이렇게 유지하기 위해 정말 죽기 살기다. 그렇게 좋아하는 라면도 올해 들어 10번도 먹지 않았다. 국밥은 딱 한 번 먹었으며 짜장면은 먹지 못했다. 매일 조깅을 한 시간 반 정도 하고 밥을 먹을 때 술을 마시는데 한 잔 마신다. 한 잔을 마실 뿐이다. 한 잔을 달랑 마신다는 게 정말 믿기지 않는다 나도. 고작 한 잔을 마시다니. 대학생들과 이런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 그러려면 술은 왜 마셔요? 술을 마시고 취해야죠. 취하려고 마시는 게 술인데 한 잔 이라니 흥.라고 한다. 왜 안 그렇겠니. 물론 나도 대학교 다닐 때는 그랬지.


이렇게 죽기 살기로 매일을 보내지만, 그럼에도 유지하는 게 어렵다. 너무 어렵다. 배는 알게 모르게 자꾸 나오며 달리는 것도 나날이 조금씩 몸이 무겁다는 생각이 든다. 꼭 살이 찌지 않고 유지하는 생활만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넓게 보면 인생이 그렇다. 삶도, 살도 유지하는 것이 너무나 힘들어져 버린 요즘이다.


태연의 노래 중에 ‘들리나요’가 있다. 가사 중에 ‘먼발치서 나 잠시라도 그대 바라볼 수 있어도 그게 사랑이죠’라는 가사가 있는데 ‘먼발치’라는 말이 나온다. 먼발치를 찾아보면 ‘조금 멀리 떨어진 곳’으로 나온다. 황경신의 ‘밤 열한 시’를 보면 먼발치에 대해서 나와있다.


멀다는 건 두 사람 사이에 먼 거리가 있다는 것이고

발치는 발의 근처인데

먼발치는 어찌 된 말일까

게다가 한 단어라니

하고 잠에서 깨어나 문득 생각했다


라며 글은 시작된다. 먼발치는 슬프고 쓸쓸한 말이다. ‘먼’이란 눈에서 벗어난 목소리가 닿지 않는 아무리 부지런히 걸어도 도달할 수 없는 거리인데, ‘발치’는 숨을 죽이는, 그림자를 밟는, 벗어나지 못하고 여전히 서성이는 위치다. 그래서 먼발치는 도저히 닿을 수 없는, 가까이 있지만 만날 수 없는 불운한 숙명 같은 말이다. 예전 같지 않은 말 ‘유지’가 마치 ‘먼발치’처럼 느껴진다. 어쩐지 이제 다시는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할 것만 같은 내일 속으로 자꾸 걸어 들어가는 기분.  


“유지만 하고 있어”가 “유지만 했으면 좋겠어”로 바뀌었다. 유지라는 게 가능한 일인가. 유지를 한다는 건 증식보다 더 대단한 지금이 되었다. 먼발치처럼 가까이 있는데 아무리 걸어도 걸어도 도달할 수 없는 거리. 그렇지만 이 일상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 힘들다고 앉아서 징징 거릴 수만은 없다.


비가 오는 날은 비가 오는 날대로
비슷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현디가 진행하는 라디오에서 그랬다. 쓸데없는 일에 분노하는 사람이 늘었지만 화를 내야 하는 일에도 내가 참으면 되지, 라며 평화를 표방한 침묵으로 일관해버리는 사람도 많아졌다. 그리하여 시간이 지나서 후회하거나 잠들기 전 이불을 덮고 나서야 화가 나서 이불 킥을 해버린다. 정작 화를 내야 하는 일이 닥쳤을 때 마땅히 화를 내야 하는 타이밍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그러고 나면 일상이 조금씩 와해된다고 느껴서 그런 자신에게 더 화가 난다. 나는 왜 화를 내야 하는 때에 화를 내지 못하는 것일까. 막상 닥치면 제대로 화도 내지 못하고 상처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그대로 시간과 함께 흘러가 버린다.


생각해보면 화를 내야 할 때 화를 내는 것도 일상을 ‘유지’하는 길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위에서 말한 것처럼 화를 내야 할 때 내지 못한다 하여 징징 거릴 수만은 없다.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 일상을 유지해야 한다. 나에게 있어서 일상을 유지하는 동력은 소심함이다. 대심한 사람은 여러 사람들에게 이로운 영향력을 끼치려고 노력하지만 나 같은 소심한 사람은 한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 한다. 나의 소심함이, 그것이 이 고요한 물과 같은 일상을 유지할 수 있는 동력인 것이다.


신기하게도 봄이면 늘 이런 색채를 유지한다
일몰은 매일 이 시간이면 늘 저런 붉은빛을 유지한다


그래서 늘 평화로움을 유지하는 자연을 악착같이 매일 보려고 노력한다. 문을 열고 밖에만 나가면 된다. 다리만 문 밖으로 나가면 된다. 말 그대로 소확행이다. 매일 같은 코스지만 다양한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아무것도 아니지만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다.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처럼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된다. 오늘 들어볼 노래는 콜드 플레이의 옐로우 https://youtu.be/mRP72Ib2e9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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