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에세이
대패삼겹살이 보통 두툼한 삼겹살보다 나는 좋다. 그래서 집에서 대패삼겹살을 구워 먹기도 하는데 나를 제외하고 다른 사람들은 대패삼겹살을 썩 좋아하지 않아서 집에서는 그냥 삼겹살을 구워 먹는다. 보통 사람들이 삼겹살보다 대패삼겹살을 잘 안 찾게 되는 이유는 얇고 비계가 많아서 건강에 좋지 않다는 인식 때문이기도 하고 두꺼운 삼겹살에 비해 맛도 떨어진다는 이유다. 내 입맛은 어째서인지 대패삼겹살이 두터운 삼겹살보다 훨씬 맛있는데 주위에서는 내 입맛이 특이하다고 했다. 오래전에 특별한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 특이한 것으로 바뀌곤 한다. 생각해보면 주위에서 내가 좋아하는 전통시장 안의 돼지국밥집에는 같이 안 가려고 한다. 거기는 주로 할아버지들이 국밥을 먹고 있으며 꼬릿 한 비린내가 난다는 이유다.
대패삼겹살은 익는 시간도 빨라서 익으면 밥에 싸서 외암 먹는 맛이 있다. 귀찮아서 쌈을 싸서 먹고 하는 걸 잘하지 않는데 대패삼겹살은 재빠르게 익어서 뜨거울 때 뜨거운 밥과 함께 먹기 좋다. 물론 내 입에는 참 맛있다. 대패삼겹살집이 성행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대패삼겹살 집에 하나둘씩 사라지기 시작하더니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다가 먹고 살기가 팍팍해지고 코로나 때문인지 최근에 대패삼겹살 집이 늘어나고 있다.
내가 일하는 곳의 시내 중심가에도 대패삼겹살 집이 생겼는데 실내가 무척 크고 럭셔리 한 고기 집 못지않게 실내 장식이 되어 있다. 저녁에 조깅을 하고 오는 길에 보면 늘 사람들이 가득 있다. 코로나 시대지만 가벼워진 주머니 때문에 대패삼겹살집이 호황이다. 늘 사람들이 많다. 맛있게도 먹는다. 그래, 대패 삼겹살은 맛있다니까.
언젠가 대패삼겹살이 유행일 때 우리가 종종 가는 대패삼겹살 집도 있었다. 일 인분에 천 오백 원하는 곳이었다. 삼인분 정도만 먹어도 어느 정도 허기가 해결될 수 있었다. 밥과 함께 된장찌개를 같이 먹으면 배부르게 먹을 수 있지만 우리는 식사를 하기 위해 간 적은 없었다. 분명 저렴한데 친구들과 함께 소주를 마시고 나오면 다른 곳에서 먹은 만큼의 돈은 나왔다. 횟집에 가서 먹으나 치킨을 먹으나 대패삼겹살 집에서 먹으나 나오는 돈은 비슷했다. 그게 참 신기하다면 신기했다.
그래도 ‘저렴한데 맛있어’가 우리를 관통하고 있었고 우리는 그 식당을 단골집으로 정해놓고 일주일에 한두 번씩은 들락거렸다. 약속도 하지 않았지만 거기에 가면 늘 앉는 자리에 친구들 중 누군가는 꼭 앉아서 소주잔을 나누고 있었다. 그럼 그냥 그 자리에 껴서 먹으면 된다. 생각해보면 대학교 시절에는 그런 단골집들이 꽤나 있었다. 아무 때나 쓱 들어가서 인사하고 앉아서 이야기를 하며 마시곤 하던 곳이. 그리고 거기에 가면 친구 중에 누군가는 꼭 있었다. 제대를 하고 친구라고는 할 수 없지만 지역에서 디제이를 하던 초등학교 동기가 레코드 카페를 열어서 그곳에 종종 갔던 적이 있었다. 앨범에 대해서, 음악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 친구가 레이 찰스의 탁성이나 음악적인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 나는 레이 찰스의 신변잡기에 관한 이야기를 너저분하게 했다. 그 친구가 맨해튼 트랜스퍼의 음악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 나는 맨해튼 트랜스퍼 멤버들이 어떻게 모이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식이었다. 그런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으면 주위에 어느새 몇몇의 손님들이 몰려와서 이야기를 더 들려달라고 하기도 했다. 이야기가 이상한 쪽으로 빠졌지만 우리가 자주 가는 곳 중에 단골 대패삼겹살집도 있었다.
대패삼겹살은 빨리 익기 때문에 성격이 급한 나 같은 인간은 금세 집어 먹을 수 있다. 노릇할 때는 비계의 부드러운 맛이 뇌를 녹일 것 같다. 구워졌다 싶으면 빨리 집어 먹어야 대패삼겹살은 맛있게 먹을 수 있다. 구워 놓은지 시간이 좀 지나면 바싹해져서 고기 맛이 나는 썬칩처럼 되어 버린다. 그 맛도 나름대로 맛있어서 일부러 그렇게 해서 먹기도 했다. 대패삼겹살은 아무래도 쌈 같은 거 싸지 않고 익으면 바로 밥 위에 올려 간장에 빠진 양파와 같이 먹는 게 맛이 있다. 이건 이대로의 세계가 좋아, 하며 날름날름 익기가 무섭게 건져 먹었다.
단골집이라 밭에서 상추를 키우는 친구(의 어머니가 키운다)가 그 집에 갈 때는 텃밭에서 딴 상추를 들고 왔다. 직접 재배한 상추는 색감이 진하지 않고 굵지 않으며 크지도 않다. 작고 부드럽고 연녹색의 상추였다. 친구가 상추를 들고 오는 날에는 주인고 같이 앉아서 상추에 쌈을 싸 먹었다. 대패삼겹살 집에서 내주는 상추보다 훨씬 맛있었다. 그럴 때면 주인은 우리에게 6인분 같은 5인분을 그냥 주었다. 주인은 아주머니로 넉살이 좋은 사람이었다. 고독한 미식가 – 세토우치 출장 편 두 번째 맛 집의 주인아주머니 같았다. 같이 앉아서 술도 마시고 이야기도 껴서 같이 하고 손님들의 이야기에 적절하게 참견하기도 했던 사람이었다. 그런 간섭을 싫어하는 손님들이 없을 정도로 사근사근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전국의 대패삼겹살 집이 점점 눈에 띄게 줄어들어 거의 사라지더니 굵은 삼겹살이 테이블을 점령했다. 굵은 삼겹살을 먹게 되면 절차가 못 마땅하다. 직원이 와서 이렇게 저렇게 잘라서 알맞게 구워주는데 그것 또한 우리는 별로였다. 그러면서 아주 자연스럽게 삼겹살집에서 술잔을 기울이는 것을 멈추게 되었다. 누군가 한 번 갈까,라고 해도 에이 하며 대체로 가지 않는 분위기가 이어졌다. 고기는 이제 집에서 각자 구워 먹자, 라는 식이 되어 버렸다. 코로나가 오기 전 재작년에 해운대에 살고 있는 친구를 만나 거기서 대패삼겹살을 주문해서 먹었는데 생삼겹살과 가격이 같아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 대패라는 게 이런 맛이니까 그저 한 번 먹어봐,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그러던 대패삼겹살이 요즘 다시 여기저기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것이 돌고 도는 유행일까. 이젠 여기저기 대패삼겹살 집이 생겼지만 예전처럼 가지 않게 되었다. 대패삼겹살은 여전히 맛있지만 자주 먹지 않는다. 시간의 흐름이라는 건 기호도 습성도 조금은 바꿔 놓는다. 그래도 누가 사준다면 날름 나가서 먹을 것 같다.
오늘은 삼겹살과 지금의 이 날씨와 이 시간과 잘 어울릴 것 같은 노래 맘보 넘버 파이브를 듣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