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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ul 11. 2021

런던 팝에서 27

단편 소설

표지 디자인은 피카소 그림을 그려봄


마지막.


 그다음 날 집으로 오는 내내 나는 잠든 척을 했고 아이들은 다른 곳에서 일박을 더 하자고 했지만 나는 몸이 너무 안 좋아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먼저 가야겠다고 했다. 할 수 없이 아이들도 피곤하다며 그대로 여행을 접었다. 나는 정말 며칠 동안 끙끙 앓았다. 열이 심하게 났고 죽만 먹으면 수면상태로 며칠을 보냈다. 꿈을 꾸면 악몽을 꿨고 식은땀을 흘려 속옷을 자주 갈아입었다. 방학이 끝날 무렵, 매미가 미친 듯이 우는 것을 보면서 누구도 동행하지 않고 입대를 했다. 입대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치론이와는 연락이 뜸하게 되었고 그러다가 두절되었다. 치론이는 같은 과 여학생들이 대학교를 졸업할 때 입대를 했다고 들었다. 23살에 입대하여 간호병으로 근무를 했다는 말을 고등학교 동창 녀석을 만나게 되면서 들은 것이다.


 치론이를 떠올리면 그날이 생각이 났다. 나의 정액을 꿀꺽 삼키던 치론이를, 얼굴을 대하며 마주 볼 자신이 없었다. 나는 어쩐 일인지 여자와 잠을 자게 되더라도 봉크보다는 여자가 입으로 해주는 쪽을 택하게 되었다. 무리 없이 그것만 해주는 여자가 있었고 자신의 성기에 왜 넣지 않느냐고 화를 내는 여자도 있었다. 나는 마치 내 페니스를 쪽쪽 빨아서 치론이의 관념이 싹 없어졌으면 하고 늘 느끼며 지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봉크로는 해갈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빳빳하게 선 페니스를 빨고 있는 여자가 앞에 있으면 여자의 머리를 잡고 포르노의 화면처럼 양손을 격하게 움직였다. “이런 미친 새끼야!"라며 입안이 찢어져서 치료비를 요구했던 업소의 여자도 있었다.


 나는 치론이와 어울려 지내지 말았어야 했을까.


 런던 팝에서 치론이는 내가 앉은 줄의 저 끝에 앉아서 제니스 조플린의 음악을 듣고 있었다. 내가 신청한 노래를 치론이가 마치 아는 것처럼 집중해서 듣고 있다. 내가 쳐다보고 있는데 치론이가 고개를 돌렸다. 찰랑 거리는 머리, 가지런한 치아, 여성스러운 단정한 매무새, 그리고 미소. 치론이는 나를 보며 고개를 약간 숙여 눈인사를 했다. 그리고 다시 영상으로 시선을 돌렸다.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이제 나이를 먹어가는 아저씨가 되었다. 그럼에도 어느 한 부분은 그때 그 시점에 머물러있었다. 전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 길 잃은 아이처럼 서 있었다. 그 자리에, 그 시간에 말이다. 씨발, 욕이 나왔다. 저 녀석이, 치론이가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있다. 눈물이 났다.    

  

 치론이는 28살에 죽었다. 내가 알고 있는 죽음 중에서 가장 비참하게 죽었다. 그건 영화, 책을 통틀어 가장 참혹했다. 치론이는 내가 놀러 갔던 자신의 집에서 고립된 채 죽음을 맞이했고 아무도 그 죽음을 알아채지 못했다. 동생도 그 누구도 치론이의 죽음을 알지 못했다. 죽음을 미리부터 준비하고 있었는지 이불을 깔고 그 위에 반듯하게 누워서 이불을 썩은 물로 다 젖게 만들었고 점점 액체화 되어가며 자연의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죽어 있었다. 도저히 치론이라고는 알아볼 수 없었다.


 시체는 이미 숨이 끊어졌지만 시체는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시체는 부패하기 시작하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꾸물거린다. 가까이 다가가면 성기를 가득 덮고 있는 무엇이 계속 움직인다. 그건 구더기들이다. 수많은 구더기들이 시체가 된 치론이의 몸에 있는 구멍을 통해서 안으로 파고들었다. 파리는 시취를 맡고 날아와서 벌어진 구멍을 통해 알을 낳고 알은 유충이 되어서 시체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치론이의 집으로 들어가서 치론이가 더 이상 숨을 쉬지 않는 방에는 오래전 상혁이 친구의 집, 지옥의 입구 같았던 화장실에서 본 수백 마리의 구더기가 치론이 몸 이곳저곳을 장악하고 있었다. 비퍼에 도착한 메시지를 읽어보니 몇 날 몇 시에 자신의 집에서 자신을 거둬줬으면 좋겠다는 음성이 들어와 있었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치론이 목소리였다.     


 난 이제 앞으로 누굴 만나더라도 더 이상의 나의 모습을 보여줄 수가 없어.


 사람들이 십 년 만에 무너지는 것에 비해 나는 일 년 만에 완전히 무너졌어.


 내 속의 단단하다고 생각했던 무엇이 파괴되어 버렸어.


 이제 나에게 시간이란 더 이상 선형적이지 않아.


 나는 닳아 없어지고 말 거야.


 나는 신의 실패작이 아니야.


 단지 다른 사람들이 아무것도 느끼지 않으려는 걸 나는 느끼려고 하는 것뿐이었거든.


 나는 고립되었어.


 너는 내가 고립 속에서 죽어가는 게 무서울 거라 생각하지만 죽음은 그렇게 무서운 게 아니야.


 실로 무서운 건 고립 속에서 영원히 갇혀 지내는 거야.


 네가 알아줬으면 해.


 너만 나를 알아주면 돼.


 너의 기억 속에 내가 있다면 그것으로 나는 만족해.     


 치론이 목소리에는 생명력이 빠져나가 있었다. 그동안 치론이는 고립된 채 힘들어했고 또 힘들어했다. 아무도, 그 누구도 치론이에게 손을 내밀어 주지 않았다. 일주일 전에 미리 예약을 하고 일주일 후에 비퍼의 메시지로 마지막일 목소리를 들었다. 집 열쇠는 현관 앞의 몇 번째 화분 밑에 있다고 해서 열쇠를 열고 집으로 들어갔다. 치론이 같지 않은 치론이 모습을 보면서 치론이 목소리를 계속 떠올렸다.


 네가 알아줬으면 해. 너만 나를 알아주면 돼.


 치론이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그때의 일이 떠올랐다.      


 나는 여자와의 봉크가 주는 의미에 대해서 다른 남자들과 다르게 받아들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같이 살아갈 여자가 있다면 그 여자에게도 큰 문제를 안겨주는 꼴이 된다.      


 치론이 아버지는 이미 죽었다. 여동생은 결국 술집에 나가기 시작했고, 술집에서 일을 하며 만난 외국인과 함께 한국을 벗어났다. 치론이는 거대한 자신의 문제를 끌어안고 사람들의 억압과 눈치와 편견 속에서 고립 속으로 파고 들어갔다. 그곳에서 영원히 사는 것보다 죽음을 택했다. 치론이는 비로소 자유로워진 것이다. 치론이 일기를 보고 녀석의 힘듦이 고스란히 내 몸으로 스며들었다. 나는 그제야 어깨를 들썩였다. 세상에는 이반도 많았지만 치론이는 그 속에도 제대로 끼지 못했다. 나는 치론이 일기를 다 읽고 모두 태웠다.     


 지금은 그녀와 페팅 중이다. 28살인 사라가 정성스럽게 페니스를 빨며 치론이가 남긴 관념을 씻어주고 있었다. 나는 28살에 삶이 끝났을지도 모른다. 사라는 매일 맛있게도 꿀꺽 삼켰고 그대로 우리는 키스를 나눴다.  몸에는 시취가 세포 깊숙이 배어들어 빠지지 않고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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