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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ug 02. 2021

그녀를 사랑한 죄 1

단편 소설


1.


 기분은 나쁜데 달짝지근해서 맡기 싫어도 맡고 싶은 냄새가 있다. 등에는 곪아서 바늘 끝만 갖다 대면 곧 터질 것처럼 부은 부분이 있는데 그게 탁 터졌을 때 하얀 고름이 연고처럼 죽 나온다. 그 고름 냄새가 이를테면 그런 냄새다.      


 매일 밤 나타나 계단 위에 앉아있는 남자는 하얀 고름 냄새 같은 것이다. 달짝지근한 냄새 때문에 나타나기를 바라는데 나타나면 기분이 절대적으로 나쁘다. 계단 위에 앉아있는 그 남자는 어느 기점을 시작으로 매일 밤 자정이 지나면 나타나서 계단 위에 가만히 앉아서 내 쪽을 바라본다.      


 그녀의 편지는 노골적이며 직선적이었다. 평소 그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지만 평소의 그녀 모습이 메일로 전송되어 온 편지 속의 그녀일지도 모른다. 그녀의 현실적인 모습이 꿈이고 그녀가 바라는 꿈이 현실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나보다 훨씬 연상이라 반말로 나를 대했지만 편지에는 언제나 존칭을 사용하고 있다. 메일을 통해 들어온 그녀의 편지는 나를 한껏 높이고 있다. 존칭으로 대해진다는 건 또 다른 기분이다. 현실적으로 눈앞에 있는 그녀가 아닌 상상 속으로 떠올린 그녀의 이미지가 내 앞의 어느 지점에서 평소와는 다른 존칭을 사용하고 있다. 그녀는 나를 존대해주며 그녀의 감정을 나에게 전부 토로하고 있다.     


 그녀 역시 계단 위에 앉아 있는 남자처럼 묘한 여자였다. 계단 위의 남자와 그녀가 다른 점은 그녀는 실제이고 계단 위의 남자는 실체가 모호하다는 것이다. 그녀를 안고 있으면 불안하면서도 안도감이 들었다. 차갑지만 차가우면 차가울수록 그녀는 뜨거웠다. 냉정하게 말을 하면 할수록 그녀의 몸은 타올랐다. 그녀가 내 품에 안겨 있으면 두근두근 거리는데 두근거림이 거슬리지 않을 정도로 안정감이 드는 것이다. 하지만 안정감의 겉에는 불안이 덕지덕지 붙어있다.     


 남자는 자정이 넘으면 문을 열고 들어와 계단에 앉아서 가만히 나를 바라보고 있다. 밖의 어둠보다 더 어두운 문을 열고 들어와 그 문보다 더 어두운 남자는 매일 밤 계단 위에서 몇 시간이고 나를 바라보았다. 무엇 때문에, 왜 그런지는 전혀 알 수는 없다. 그저 남자는 ‘바라본다’ 그 하나의 행동에 집중을 할 뿐이다. 남자의 표정은 아주 기분 나쁜 웃음을 짓고 있는 것 같다. 남자의 얼굴은 멀리 있고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지만 기분 나쁜 얼굴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두웠지만 그렇게 보였다. 마치 너에 대해서, 하찮은 너에 대해서 다 알고 있어,라고 하는 기분 나쁜 웃음 말이다. 그런 웃음을 얼굴에 박아 놓은 것 같았다. 남자는 어둠에 존속된 채로 계단에 쪼그리고 앉아 팔을 모으고 그저 여기를 바라 볼뿐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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