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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ug 03. 2021

그녀를 사랑한 죄 2

단편 소설


2.


 남자는 분명 현실의 사람이 아니다. 현실의 사람이 잠겨있는 문을 몰래, 소리도 없이 열고 들어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몇 시간이고 꿈쩍도 하지 않고 기분 나쁜 미소를 짓고 있을 수는 없다. 그 남자가 현실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현실에서 현실의 사람이 아닌 남자는 영혼이거나 그런 중류의 존재일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나는 나도 모르는 새 잠이 들어 그 속에서 남자를 봤던 것이리라. 하지만 꿈이라고 하기에는 어쩐지 모자라는 부분이 많다. 같은 꿈을 매일 꿀 수는 있겠지만 보통 자정이 넘어서 잠이 드는데 그 시간까지 술을 마시고 있거나 음악을 듣고 있다 보면 남자는 어느새 집으로 들어와 계단에 앉아서 나를 내려 보고 있다. 집으로 들어왔다는 것도 의문스럽다. 문을 열었다거나 문을 연 흔적이나 소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남자는 밖에서 집 안으로 들어온 것이 아니라 집 안의 어딘가에서 나타난 것이다, 라는 말이 맞을 것 같다. 남자는 늘 그 시간이면 계단에 앉아있어서 남자는 현실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사실을 처음에 알았을 때 무척이나 겁이 났다. 남자를 보자마자 꼼짝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며칠 동안 내내 보이는 남자에게서 하나의 특징을 발견했다. 내가 남자를 보고 있다는 것을 남자는 모르는 것 같았다. 남자는 그저 기이하고 기분 나쁜 웃음을 머금은 채 이곳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생각했다. 남자는 그녀의 남편이 아닐까. 언젠가 그녀에게서 남편의 모습을 들은 기억이 났다. 늘 검은 정장만 입고 다닌다는 이야기일 뿐이지만 남자는 자신의 아내가 젊은 남자와 바람을 피운다는 것을 알고 신체를 빠져나와 영혼의 모습으로 내가 있는 이곳을 찾아왔는지도 모른다. 남자는 다 알고 있다는 표정으로 나를 경멸하듯이 보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 집은 이모의 집이다. 이모의 집은 그녀의 집에서 차로 십오 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다. 나는 이모의 집을 잠시 봐주고 있다. 집은 이모 혼자서 살기에는 무척 큰 집이다. 이모는 이런 집에서 살고 있다. 중 2층이 있고 계단이 나선형으로 있다. 그리고 남자는 그 계단에 매일 밤 나타난다. 남자가 나타난 첫날 나는 이모의 집을 나가려 했다. 이모에게 연락을 했을 땐 이미 이모는 혈액암 때문에 병실의 저 안쪽 투병의 길로 들어갔고 이 집, 즉 이모의 집을 봐달라는 간곡한 부탁을 거절할 수 없게 되었다. 할 수 없이 집을 뛰쳐나오지 않고 남자가 나타나는 밤을 보내야 했다.


 남자가 나타나고 지금은 일주일이 지났다. 남자가 처음 나타난 날, 그 전날 오후에 그녀와 섹스를 했다. 그리고 그날 밤 그녀에게 메일이 들어왔다. 그녀와 섹스를 하게 된 건 그녀와 알고 지낸 지 5일이 지난 후였다. 몸을 섞은 날 돌아오는 자정에 남자의 존재가 나타났다. 계단에 앉아서 나를 보기 시작했다. 그 남자의 눈길을 받는 동안 감정의 바다에서 불길하게 퍼지는 파도의 기분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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