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교관 Jun 19. 2021

런던 팝에서 5

단편 소설



 5.


  성인이 된 남자가 여자를 만나게 되고 만남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깊은 관계로 들어갈수록 봉크는 피할 수 없는 숙명 같은 것이다. 봉크를 하지 않고 이성과 깊은 관계를 유지하기는 말처럼 쉽지 않다. 만약 혼전순결을 유지하다가 결혼을 하게 되어도 가족의 번식을 위해서 생산적인 봉크를 해야 한다. 봄이 지나고 여름이 오는 것처럼 피할 수 없다. 아이를 가지지 않으면 되잖아,라고 해도 봉크 없이 결혼 생활을 하는 것 역시 몹시 일그러진 생활이다. 봉크를 하지 않고 이성과 깊은 관계를 유지하기는 말처럼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나는 여자를 만나지 않는 것이 옳은 것이다.


 내가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이 사무실의 그녀이기 때문에 사무실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뿐이지만 그때는 몹시 편안한 마음으로 대화를 하게 된다. 꼭 어린 시절에 걱정 없이 노는 것과 비슷했다. 부모들이 전셋값이나 월세를 올려달라는 주인집에 의해 다음 달에 쫓겨나야 하는 불안감을 지니는 것과는 다르게 아이들은 그런 어른들의 고민과는 무관하게 하루하루가 재미있고 즐겁다. 그녀와 사무실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런 기분이 그녀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의 연결로는 되지 않았다. 이상하지만.


 그녀는 일주일에 한 번은 나와 사무실에서 점심을 먹었다. 노사화합이라는 취지에서. 참기름 냄새가 고소하게 흐르는데 그녀의 향이 그 사이를 파고들었다.


 “오빠, 우리 오늘 저녁도 같이 먹을래요? 에스 키친에 예약을 할게요. 어때요?"


 회식을 하자는 소리다. 그곳은 고급 식당으로 맛있기로 소문이 자자한 곳이다. 회식이 있었지만 회식이 있을 때 통보를 받은 적은 그동안 없었다. 보통 오늘 저녁을 같이 먹자고 사무실에서 그녀가 말을 하면 그것이 회식이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거래처 사람이 늘 껴 있었다. 분위기는 대체로 좋았다. 그래서 오늘도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그녀가 예약을 한 테이블은 두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자리였다. 게다가 전망까지 좋았다. 연어 전문 식당으로 연어 수프가 먼저 나온 후 연어 샐러드, 연어 초밥, 연어구이, 연어 스테이크가 계속 나왔다. 그녀는 와인을 주문했다. 꽤 비싸 보이는 와인이었다. 그녀는 평소 회식을 하면 많이 먹는 것에 비해 오늘은 입이 짧았다. 덕분에 와인은 빠른 속력으로 줄어들었다. 그녀는 30분 동안 얼추 와인 한 병을 다 마셨다.


 “오늘은 어쩐 일이야?"라고 내가 물었다. 그녀는 연어 수프를 떠먹고 와인을 또 마셨다.


 “오빠, 내가 어릴 때 부모님은 늘 싸웠어요. 저와 친오빠와 동생은 부모님이 싸우면 알아서 놀아야 했어요. 나는 엄마와 아빠가 싸우면서 하는 이야기를 다 알아들을 수 있었어요. 오빠는 나보다 나이가 많았지만 부모님이 싸움을 해도 그저 장난감을 가지고 놀 뿐이었고 나는 동생은 안고 방구석에 가만히 있었죠."


 그녀는 이미 와인을 한 병 다 비우고 한 병 더 주문했다. 나도 먹는 속도를 줄이고 그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식당에는 토키 아사코의 ‘마이 페이보릿 띵’이 조용하게 흐르고 있었고 전망 좋은 야경으로 흐린 하늘이 허기진 예술가의 작품처럼 보였다.


 “엄마와 아빠가 싸우면 서로가 우리를 마치 어쩔 수 없이 생겨난 아이처럼 말했어요. 당신이 아이를 맡아서 키워, 라는 식이었어요. 엄마와 아빠는 우리를 미워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학교에서 미술시간에 가족을 그리라고 하면 나는 그림 속에 나를 그리지 않았어요. 선생님이 왜 네 명뿐이니?라고 물으면 나는 그림에 없다고만 했어요. 그때 미술치료사가 있었다면 내가 그린 그림을 보며 나는 가족에서 빠져야 하는 존재로 생각하고 있다고 했을 거예요. 그리고 적절한 치료나 내 부모님도 방법을 찾을 수 있었을 텐데."


 [계속]



작가의 이전글 런던 팝에서 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