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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un 18. 2021

런던 팝에서 4

단편 소설


4.


 그녀는 한창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너무 늙었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녀는 무척 활동적이고 예쁜 데다 세련됐고 하는 일에 대해서도 능률을 올리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런 능력은 노력과는 거의 무관하게 타고나는 편에 속한다고 봐도 된다. 대외적으로 능동적인 그녀의 모습은 살아있는 미술품을 보는 것 같은 것에 비해서 나의 모습은 뭔가 수면 밑에서 겨우 숨을 쉬며 서서히 움직이는 생명체에 지나지 않는 모습이다. 그런 모습이 ‘니’라는 인간이다. 그녀의 얼굴이 관심이 안 갈 정도로 생겼냐 하면 오히려 그 반대다. 그녀가 거래처에 등장하면 몰래 음료를 숨겨놨다가 건네주는 신입 남자 직원이나 어떤 직원은 대놓고 꽃을 선물하기도 했다. 그것은 순전히 그녀의 얼굴이 예뻐서 그런 것이기도 했다.


 나는 왜 그녀에게 호감을 가지지 못하는 것일까.


 매일 만나고, 매일 보다 보면 첫눈에 반하는 것 이외에 것에서 오는 친밀감이 호감으로 바뀌기도 한다. 그렇다고 내가 그녀에게 친밀감을 느끼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일까.


 단지 내가 원하는 타입의 여자가 아니기에 그럴 수 있다고 묵살해버리기도 이상하다. 나는 어떤 타입의 여자를 좋아하는지 나조차도 알지 못한다. 이런이런 여자가 좋다는 것이 성립되어있지 않다. 내가 바라는 여자의 얼굴에 대해서 다가가면 모호해져 버린다. 연예인들을 떠올리려고 내가 좋아할 만한 얼굴을 지닌 여자 연예인이 선뜻 떠오르지 않았다. 여자를 여자로서 보지 않고 한 사람의 인간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고, 생각을 전달할 수 있는 인간으로 대하고 있다. 그녀는 분명 예쁘고 스타일이 좋고, 하는 일에 대해서 재능을 보이고 있다.


 사무실에서 시간이 날 때면 나는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있다. 에세이나 소설 같은 거창한 글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글자 디자인이나 도안을 포토샵 작업과 병행하는 나만의 방식에 대한 글을 올리고 있는데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댓글을 달아주었다. 벌써 몇 년 동안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고 매일 조금씩 나만의 방식을 업로드하고 있는데 제일 많은 댓글을 다는 사람이 ‘델피늄’이라는 사람이다. 이 알 수 없는 뜻의 아이디를 쓰는 사람이 그녀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렇다면 그녀는 어째서 나에게 호감을 가지는 것일까.


 라는 질문에 돌입하면 폭우를 맞은 얕은 개울물처럼 혼탁하기만 했다. 그녀에게 직접 물어봐야 했지만 묻고 나면 대면이 더 껄끄러워질까 봐 아직 참고 있다. 그러고 나면 나는 아직 여자와 제. 대. 로. 사귀어 본 적이 없다. 여자를 다루는 방법에 대해서는 아예 다가가지 못했고, 책을 읽고 영화를 보는 것이 고작이었다. 하긴 여자를 많이 만나봤다고 한들 현재 만나는 여자를 잘 다루지는 못한다. 여자는 그런 존재다.


 여자와 다섯 번 정도 잠을 잤다. 잠을 잤다고 말하기에도 어딘가 모자람이 많은 구석이 있다. 여자와 봉크를 했지만 다섯 번 모두 힘들기만 했다. 세상을 다 가질 것 같은 흥분을 느낀다거나 경이로운 체험 같은 것은 없었다. 그저 페니스가 아프고 헤어 나올 수 없는 곳으로 들어가는 기분만 들 뿐이었다. 오히려 입으로 해주는 것이 훨씬 나았다. 때문에 여자를 강간하고 성범죄가 왜 일어나는지 나로서는 전혀 짐작이 가지 않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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