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교관 Jun 21. 2021

런던 팝에서 7

단편 소설


7.


 그녀는 내가 그녀의 집에 바래다주기를 바랐다. 사회 분위기도 심상치 않고 해서 같이 택시를 타고 그녀의 집까지 갔다. 그녀의 집은 택시를 타고 40분가량 가야 했다. 택시를 타고 가는 내내 그녀는 나의 팔짱을 꼈다. 예전에도 누가 나의 팔짱을 꼈었다. 팔에 힘을 꼭 주고.


 티셔츠에 아무래도 그녀의 향이 스며들 것 같았다. 향이라는 게 향수의 향이라면 빨래를 하거나 씻으면 사라진다. 하지만 그녀의 체취가 스며들면 그 향에 취해 곤란하게 된다. 근원적인 냄새에 도취되면 어떤 식으로도 사라지지 않고 나를 따라다닌다. 나는 그것을 경험했다. 그녀는 어쩌면 늘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그저 기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예전의 누군가도 어쩌면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집은 꽤 컸다. 혼자서 살기에는 큰 아파트였다. 35평 정도 되는 집에 주방이 커서 홈바가 있었다. 이런 집은 드라마 속에서나 봤지 실제로 보기는 처음이었다. 나는 그녀를 방의 침대에 눕히려고 했지만 그녀는 거실의 소파에 엎어졌다. 몸이 낙지 같아졌다. 마음먹고 옷을 벗기려고 달려들면 그녀는 저항을 못할 것 같았다. 저대로 두면 불편한 자세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면 필시 몸이 결릴지도 모른다.


 나는 한참 서서 그녀의 꺾인 자세를 생각했고 그녀의 집을 둘러봤고 그녀가 한 말에 대해서 생각했다. 한 번에 세 가지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서 나도 조금 놀랐다. 하지만 그녀의 몸에 함부로 손을 대기는 싫었다. 나는 그대로 집을 나가려고 했다. 그때 그녀가 나를 불렀다. 그녀는 술에 취했지만 아직 정신은 있었다.


 “오빠, 내가 한 말에 대해서 생각해 봤어요? 이리 와서 절 좀 일으켜줘요"라는 순간 그녀의 향이 확 짙어지는 것을 느끼고 나는 그만 그녀의 입술에 키스를 했다. 그녀가 혀를 내밀었다. 와인의 향이 혀에 감돌고 있었다. 우리는 가만히 키스를 하고 페팅을 했다. 그것으로 우리는 아주 만족을 했다. 그녀가 잠이 든 것을 확인하고 나는 그녀의 집을 나왔다. 시간은 새벽 4시였다. 여러 가지가 공존하는 시간이다. 연예인 누군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실수가 변명이 되면 실패가 되고 실수가 과정이 되면 실력이 된다. 나는 지금 변명을 하는 것일까 과정인 것일까. 그것들이 공존하는 시간 새벽 4시다.


 집으로 올라와서 창문을 바라보았다. 언제나 나를 바라보는 건물의 창문으로 나는 어둡고 좁은 방에서 가만히 서서 바라보았다. 건물은 붉은색을 단단하게 지녔고 건축물이 지녀야 하는 정당함을 버린 채 가만히 역시 나를 바라보았다. 웃음도 없고 숨도 쉬지 않는 무엇인가가 건물 속에서 어두운 창문을 통해서 여기를 보고 있다. 그동안 애써 눌러왔던 그 시선을 알아보기 위해 나는 집을 나섰다. 건물에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오늘은 많은 것이 새롭게 시작되는 날이다.


 그녀와 나는 오늘부로 비공식적이지만 정식적으로 만나는 사이가 됐다. 그렇다고 변화가 될 것은 없었다. 20대 초반처럼 두 사람의 모습을 합일하는 것에 신경을 쓰지 않았고 먹는 것에도 강요하거나 관여하지 않았다. 그녀는 관심과 간섭의 경계를 잘 알았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처럼 앞으로도 그렇게 지내면 된다. 서로는 암묵적으로 봉크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적어도 봉크로 인해 일어나는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


[계속]

작가의 이전글 런던 팝에서 6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