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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un 22. 2021

런던 팝에서 8

단편 소설


8.

 문제라고 하는 것은 늘 나에게 있었다. 나는 과연 그녀를 나의 여자로 받아들이는가 하는 질문을 계속 나에게 했지만 대답을 확실하게 할 수 없었다.      


 건물 앞쪽으로 돌아가서 앞에 섰을 때 나는 나를 의심했다. 건물의 앞, 정문으로는 한 번도 와 본 적이 없었다. 손을 뻗으면 알 수 있는 부분도 관심을 두지 않으면 이역만리 떨어진 곳처럼 전혀 알 수가 없다. 아침에 나가서 밤에 집으로 들어와서 창문을 통해 보는 건물의 뒷면과 창문이 전부였다.


 하지만 뒷면만 보더라도 건물은 생명력을 잃은 지 오래된 건물이고 그곳에는 아무도 살지 않고 왕래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집을 나와 건물을 돌아서 정면에 섰을 때 건물의 3층에는 음악 감상실이 영업을 하고 있었다. 간판에 불이 버젓이 들어와 있었다. 건물의 일층은 셔터가 굳게 내려져있었고 2층과 4층, 5층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3층에는 음악 감상실이 존재하고 있었다.      


 이런 시대에 음악 감상실이라니.     


 건물의 정면에서 보면 3층에는 트레이시 에민이 만들어 놓은 것 같은 네온 간판이 붙어 있었고 ‘런던 팝‘이라는 영어로 된 글자에 불이 들어와 있었다. 그 밑에는 자그마한 아크릴 간판에 조그마한 글자로 음악감상실이라고 쓰여 있었다. 런던 팝 글자 디자인은 아주 오래전에 한 것으로 촌스러웠지만 세련이 판치는 세상에서 트레이시 에민 같은 네온 하나쯤, 그것대로 개성이 되기도 한다. 나는 문을 열고 올라갔다. 계단이 5층까지 쭉 뻗어 있었다. 계단은 오래됐고 문틈으로 노랫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문을 열었다. 순간 노랫소리가 얼씨구 하면서 온몸을 때렸다.


 런던 팝은 문을 열고 들어가면 카운터가 있고 대기실이 보이고 대기실에서 보면 더 큰 유리 안으로 음악 감상실이 보이는 형태를 지니고 있었다. 새벽 4시가 넘은 시간인데도 몇 명이 대기실에 앉아 있었고 그들 대부분은 남녀 사이로 앉아서 페팅을 즐기고 있었다. 유리벽 안으로 보이는 음악 감상실에도 사람들이 꽤 앉아 있었다. 돌아다니는 사람이 있었고 잠을 자는지 의자에서 머리가 벗어나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그렇다면 늘 시선을 느끼고 있었던 것은 음악 감상실에 온 사람들이 창문을 통해서 나를 보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그것은 생명력이 없는 무엇인가의 시선이었다. 건물의 뒤 창문은 음악 감상실이 들어서면서 막아 버렸다. 창문도 음악 감상실 안에서는 아예 보이지가 않았고 그 창문을 통해서 밖을 내다볼 수도 없었다.


 카운터에는 머리가 겨우 모일 정도로 푹 꺼진 의자에 앉아서 껌을 씹고 있는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발랄한 여자가 있었다. 여자는 잡지책을 보고 있었는데 보그지였다. 꽤 오래 전의 책인 것 같았다.


 “저... 여기....."


 음악 소리 때문에 카운터의 여자는 나를 알아채지 못했다. 새벽 4시가 넘었으니 잠이 올 법도 한데 여자는 아주 말똥말똥했고 대기실에서 남녀가 페팅을 하고 있어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저기요!" 나는 좀 크게 여자를 불렀다. 그 소리에 페팅 남녀가 하는 짓을 멈추고 나를 쳐다보았다. 발랄한 여자는 내가 큰 소리로 부르니 그제야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껌을 씹고 있었다. 정확하게 오른쪽 어금니로만 씹었다.


 “몇 명이요?"


 “어, 저 그런데 여기 음악 감상실은 언제 생겼어요?"


 “저도 몰라요. 저도 일한 지 얼마 안 되거든요." 여자는 귀찮다는 듯 내뱉었다.


 “여기 음악 감상실은 하루 종일 문을 여나요?"


 “글쎄요. 그것도 저는 잘 몰라요. 저는 새벽 몇 시간만 일을 하거든요. 저는 피곤하답니다. 손님, 오후에는 늘 잠들어 있는 상태라 자세한 건 잘 알지 못해요. 왜요? 사장님 불러 드려요?"라고 발랄한 여자가 얼굴을 찡그리며 말할 때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 사람은 얼굴이 길고 앞니가 커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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