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떡하지?
제목의 그 사람은 ‘나‘다. 화가 나지 않니? 화를 왜 안 내는 거냐? 같은 말을 지금까지 줄곧 들으며 지내왔는데 화가 안 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싶다. 단지 화를 내야 할 타이밍을 놓쳤거나, 화를 내고 나서 화를 내느라 쏟아부은 에너지가 커서 회복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게 싫거나, 화를 내봐야 소용없을 것 같다고 생각이 들면 화를 내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보통 제삼자와 어떤 문제로 부딪혔을 때는 지금까지 그런대로 큰 문제없이 잘 넘어온 것 같다.
화가 나는 일이 있어서 화를 내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어른이 되고 나서 화가 나는 일은 주로 직장에서 일어난다. 맡겨놓은 일처리를 하지 못했거나, 상사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 결국 그대로 하루를 넘겨버렸거나, 계약 건이 날아갔거나, 하는 일에는 화가 나는 것이 당연하기에 직원들에게 화를 낸다. 그러면 화는 밑으로 밑으로, 부하직원에게로 내려간다.
개인적으로는 회사생활을 한 번도 하지 않았기에 이런 일에 화가 나는 일이 없어서 그런지 시간이 이만큼 지나가 버려서 주로 화가 나는 일은 가까이 있는 사람들과의 마찰 때문인데 그때에도 나는 보통 화가 확 났을 때 그 화를 내야 하는 것이 마땅한 건지 잘 몰라서 그 타이밍을 넘기고 만다. 그러고 나면 애초의 전투적이었던 마음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그대로 넘어가버린다.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순전히 내 입장에서 하는 말이며, 내가 겪었던 이야기며, 어제의 일이다. 그래서 비교적 기억은 제대로라고 생각한다. 내가 일하는 건물에는 지하 주차장이 4층까지 있다. 지하 주차장 바닥의 공사 문제로 토요일 정오까지 폐쇄하니까 정오에 오픈을 한 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전에 오는 사람은 건물 앞이 강변이라 강변주차장을 이용하라고 했다. 강변의 공영주차장은 카드만 사용이 가능해서 카드가 없는 나는 느긋하게 출근하리라 마음을 먹고 정오가 넘어서 도착을 했다.
그런데 주차장은 아직 폐쇄되어 있고 입구에 정오까지 공사가 마무리가 되지 않아서 오후 2시, 즉 14시에 오픈을 한다는 것이다. 통보라든가 연락을 받지 못한 나는 주차장 입구에 공간이 있다. 공사가 끝나고 철문이 올라가면 바로 주차장에 들어가면 되니까 그 입구에 주차를 하고 나는 건물로 들어와서 일을 했다. 그리고 오후 2시가 되어서 연락이 와서 나는 차를 주차장에 넣었다. 여기까지가 어제 있었던 일이다.
그러고 난 후 2시간 정도 있다가 번영회 회장이 나에게 와서 폰에 찍힌 사진을 보여주며 나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그 입구에 차를 주차를 해 놓는 바람에 아직 바닥에 칠해 놓은 페인트가 덜 말라서 벗겨졌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왜 강변에 주차를 하지 않고 그 입구에 주차를 해놔서 이런 일을 만드냐는 것이다. 그리고 이 문제 때문에 주차감시를 제대로 하지 못한 관리인 아저씨만 회장 자신에게 혼났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 때문에 아무런 잘못도 없는 관리인 아저씨가 시말서(경위서)를 써야 할 판이라고 했다.
회장은 내가 잘못을 했으니 너의 잘못으로 인해 죄 없는 사람이 시말서를 쓰게 생겼고, 바닥의 페인트가 좀 벗겨진 것으로 인해 다시 폐쇄를 하게 되면 너(나를 말한다) 때문에 모두가 피해를 보는데 어떻게 할 거냐는 것이다. 하지만 회장의 말을 아무리 들어도 내가 잘못한 것은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정오까지라고 해서 정오까지 왔는데 아직 공사 중이다. 그리고 그 앞에 오후 2시까지 연장이 되었다고 써 놨는데 나는 그 소식을 듣지 못했다. 집에서 나오는 도중에 그렇게 바뀌었는데 그렇다면 나에게 연락을 해 주던지 해야지, 게다가 나는 강변주차장에 주차를 할 수 없다. 카드로만 계산이 가능한 무인 주차장에 카드가 없는 나는 들어가지 못한다. 회장이 나를 향해 나무랄 때 나는 이렇게 나의 입장을 이야기했다.
회장이 화가 나는 건 알겠지만 굳이 잘못을 따지자면 회장의 잘못이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 입점해있는 세입자들이 주차를 하기 전에 문자나 메시지로 연락을 주지 않았다는 점. 만약 입구에도 주차를 하지 못 한다면 관리인이게 그렇게 지시를 내리게 하고 관리인이 그 지침을 어겼다면 그건 회장과 관리인의 잘못이 맞지 나 때문에 시말서를 썼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여기서 내가 화가 나는 부분이다. 회장은 자꾸 나 때문에 관리인이 시말서를 쓰고, 나 때문에 다시 폐쇄를 하면 모든 사람에게 피해를 준다는 말을 했는데 그게 가스 라이팅이 아닌가. 너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 너 때문에 누군가가 이렇게 당하고 있다. 그러니 너에게 잘못이 있다. 이렇게 말을 하는 것에 화가 나는 것이다.
하지만 화를 내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내가 회장에게 위에서 말한 내 입장을 말했을 때 회장도 앞으로 서로 조심하자며 갔다. 회장이 화를 내고 나도 같이 화를 내면 나는 회장에게 이기지 못한다. 나는 그동안 그런 회장의 모습을 자주 봐왔다. 회장은 경찰들과도 싸워서 이기는 그런 사람이다. 그러니까 그런 사람이 화를 낼 때는 들어주고 나의 입장을 말하면 된다. 하지만 마지막에 가스 라이팅처럼 너 때문에, 너 때문에 일이, 너 때문에 누군가가 이렇게 되었다는 말은 참 화가 난다. 멍청해서 폰을 들고 바로 녹음 버튼을 누르지도 못했다. 그런 일로 찾아오리라고는 몰랐기 때문이다. 또 모른다. 하루 이틀이 지나서 계속 화가 난 회장이 다시 찾아와서 뭐라 뭐라 할지도. 직장인이든 자영업이던 인간관계에 대해서 들어가면 참 복잡하고 짜증 나는 일들이 잔뜩 있다. 그게 인간의 삶이라면 할 수 없지만 그래서 인간의 삶이 힘든 것이라고 해도 할 말은 없지만.
부르노 마스나 듣자. 노래가 너무 좋은 거 아니야,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