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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ug 09. 2021

첫 키스 [2부]

추억 에세이

(지난번 이야기에 새로 구입한 샤프가 반에서 없어졌다. 분명 누군가 들고 갔는데 범인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선생님에게 말을 할까 망설이고 있었지만 관두기로 했다) https://brunch.co.kr/@drillmasteer/1995


그래서 그다음 날도 그대로 지나갔다. 분명 가져간 아이는 다음 날 조마조마하게 지냈을 것이다. 왜냐하면 분명 내가 선생님에게 이야기를 해서 범인을 찾아내는 과정을 거칠 거라고 예상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선생님에게 말하지 않았다. 하루가 지나고 그다음 날이 되었다. 토요일이었다. 날은 덥지만 맑고 바람이 불어 시원한 날이었다. 토요일에는 3교시까지 수업을 했다. 토요일에는 수업이 일찍 끝나니까 청소를 하고 난 다음에 우리는 학교에서 놀기로 했다. 당시 교무실 앞에 세워진 이순신 동상에 대한 이야기가 많을 때라 우리는 각자 무서운 이야기를 하면서 놀기로 했다. 이순신 동상 앞 로열박스에는 천막이 쳐 있어서 그늘이 있고 그 밑에는 시원했다. 토요일에 우리의 자산은 흘러넘치는 시간이었다.


청소를 일찍 끝내고 이순신 앞의 로열박스에 앉아서 과자를 먹으며 이야기를 했다. 음료와 과자도 준비했다. 슈퍼에 파는 제대로 된 과자가 아니라 문방구에서 산 불량식품이었다. 최애 쫀드기부터, 쪽쪽 빨아먹는 아폴로와 콜라 맛이 나는 사탕을 먹으며 무서운 이야기를 했다. 여자애들의 무서운 이야기는 그다지 무섭지 않았는데, 내가 외할머니에게 들은 무서운 이야기를 했을 때 여자애들은 정말 무서워했다. 외할머니는 나에게 외가가 있는 불영계곡의 작은 학교에서 일어났던 이야기를 해주곤 했다.


일제강점기에 그곳까지 도망쳐 온 사람들을 잡아서 발목을 자르고 고문을 하다가 죽은 사람들이 귀신이 되어 나타나는 이야기였다. 폐교가 된 학교에 가면 저벅저벅 걸어오는 소리가 나는데 그 귀신의 소리다. 그래서 무서워 책상 밑에 들어가 있으면 발목만 나타난다는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의 업그레이드된 버전을 말하자면.


여고생에서 대학생이 된 담력이 좋은 스무 살 친구 두 명이 소문이 있는 학교를 찾아갔다. 동아리 취재차 찾아간 것이다. 그 소문이 돌던 교실과 일본도를 휘두르고 있던 운동장의 뒤쪽도 구경하면서 무서운 이야기의 장소를 탐방했다. 학교마다 있는 무서운 전신 거울을 두 명이서 쳐다봤다. 그때 친구가 옆에서 웍 하면서 놀라게 했다. 다른 친구가 그러지 말라고 한다. 두 사람은 발목이 돌아다닌다는 그 문제의 교실로 들어갔다. 교실에는 아직 당시의 책상과 걸상이 있었다. 저학년 아이들이 앉을 수 있을 정도의 책걸상이었다. 두 사람은 더운 여름에 학교를 찾아갔기에 땀을 흘렸다. 산 속이라 해가 빨리 떨어진다고 해도 아직은 밝은 날이어서 두 사람은 덜 무서웠다.


두 사람은 걸상에 앉아서 음료를 마셨다. 땀이 많이 났다. 여름이고 계곡에 위치한 학교라지만 걸으면 더운 법이다. 넌 이렇게 더운 날 왜 스타킹을 신고 왔어? 덥다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말이야. 그렇게 말을 하며 친구는 샌들을 벗어서 발바닥을 주물렀다. 샌들을 신고 불영계곡을 돌아다녔기 때문에 발이 아팠다. 너 발이 몇 미리야? 스타킹을 신은 친구가 말했다. 나? 한 230?라고 대답했다. 좀 안 맞겠는데? 자기 발을 주무르던 친구가 뭐? 무슨 말이야?라고  물었다. 그리고 자신의 발을 주무르던 친구에게 스타킹을 신은 친구가 내가 좀 주물러 줘?라고 말했다. 그리고 샌들을 신었던 친구가 스타킹을 신은 친구에게 발을 내밀었다. 아, 시원해. 발을 주무르던 친구가 손바닥으로 발을 재더니, 나 스타킹 입고 온 이유가 뭔지 알아? 그러면서 가방에서 칼을 꺼냈다. 나 사실 발목 밑으로 발이 없어.


웍! 하면 정희와 여자애들이 꺄악하며 혼비백산을 했다. 손에 들고 있던 쫀득이도 아폴로도 다 던져 버렸다. 여자애들은 정말 무서워했다. 그렇게 깔깔 거리며 재미있게 놀다가 저녁이 되어 헤어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이제 곧 방학이다. 점점 더워진다. 청소를 하느라 흘린 땀은 다행히 식었지만 샤프를 잃어버려 속상한 마음은 식지 않았다. 집으로 오는 길목에 골목이 있다. 골목을 지나치는데 골목의 코너에서 누군가 쑥 나왔다.


현주였다. 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얼마나 있었는지 얼굴이 발갛게 익어 있었다. 그리고 나를 노려보는 듯한 눈빛을 띠었다. 나는 양손으로 가방 끈을 잡고 있었다. 현주는 그런 나의 앞길을 막아서고 내 얼굴을 보며 가만히 서 있었다. 나는 뭐라도 말을 해야 했지만 어떤 말을 먼저 꺼내야 할지 몰랐다. 뭔가 잘못 말을 꺼내면 울어 버리거나 폭발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여자애가 폭발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난감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방법은 있다. 하지만 울어버리면 대책이 없다. 마치 죄인이 된 것 같아서 여자애가 우는 자리에는 없는 게 상책이다. 그래서 아무런 말도 못 하고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현주도 뭔가 말을 해야 했지만 언어를 꺼버린 인형처럼 그저 나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노려봤다는 게 맞는 표현이다.


얼마쯤 서 있었을까. 현주는 가방에서 뭔가를 꺼내서 나에게 쓱 내밀었다. 그건 나의 샤프였다. 나는 그걸 천천히 손을 올려 받아 들었다. 그때 현주의 얼굴이 조금씩 울그락 불그락 해지더니 곧 울음을 터트릴 것 같았다. 그 순간 현주의 입술에 입맞춤을 했다. 입술을 빨아 당긴다든가 혀를 밀어 넣는다든가, 그런 행동은 없었다. 그저 입술이 맞닿았다. 그 정도였다. 그 짧은 입술 맞댐이 첫 키스라고 한다면 그것이 첫 키스였다.


어떻게든 울음을 터트리려는 현주를 막아야 했다. 아마 우리 둘은 서로 오해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우리는 짝지로서 친해진 다음 어쩌면 짝지 그 이상으로 친해지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그걸 표 내거나 입 밖으로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분위기로만 알 수 있는 거였다. 정희와는 저학년 때부터 같은 반이 몇 번 되었다. 현주는 6학년이 되어서 처음으로 같은 반이 되었고 짝지가 되었다. 학기초에는 서로 의지가 꽤 되었다. 그 당시에 나는 클럽활동으로 하고 있었는데 둥화 부여서 이야기를 지어내기도 했고 어딘가에 가서 취재를 해서 그걸 발표하기도 했는데 두부집 취재도 현주와 같이 가곤 했다. 그런 일들을 주로 현주와 함께 했다.


그러다가 내가 돌아가면서 하는 6학년 선도위원의 순번이 되고 다른 반에서도 한 명씩 오게 되었다가 남자애들은 다 나가고 여자애들하고 한 조가 되어 매일 청소를 하고 같이 놀고, 짜장면을 먹었다. 그 속에 정희가 있었고 정희의 샤프와 내가 새로 산 샤프가 같은 것이었다. 아마도 그런 일들이 현주의 어딘가를 아프게 한 모양이었다. 입을 맞추고 난 후에 현주의 손을 잡았다. 아주 작고 따뜻했다. 골목을 지나 우리 둘은 우리 집으로 가서 시원한 물을 마시고 엄마가 해주는 음식을 먹었을 것이다. 태양 밑에 조금만 있어도 얼굴이 발갛게 익어가는, 그럼에도 따뜻한 작은 손을 잡고 걸었던 여름이었다.


처음이라는 건 그저 순식간에 지나가고 큰 의미를 둘 수 없을 만큼 초라하거나 슬프거나 아프다. 처음이라는 건 늘 그렇다. 첫 키스는 그러니까 ‘그러니까’ 같은 것이다. 뭐든 처음은 서툴고 실수투성이다. 우리는 그런 실수를 반복하면서 실패하거나 실력이 된다.

중간의 저 문이 우리 집 대문이었다.

현주와 함께 저 대문으로 들어갔다. 이제 이 동네는 개발에 들어가면서 모든 것이 사라졌다. 그전에 이 달동네의 추억을 잡고 싶어서 다 부서진 동네를 한 컷 담았다.



오늘도 내 마음대로 선곡. https://youtu.be/KSyWrb4-W6g

이제는 검색도 안 되는 그룹 ‘테슬라’의 ‘럽 송’이다. 테슬라라고 아무리 검색을 해봐도 이 녀석들이 나오는 게 아니라 붕붕 자동차 테슬라만 검색이 된다.


테슬라의 이 노래 ‘럽 송’의 도입 부분의 기타 연주는 정말 그야말로 한때 전 세계를 강타 강타 강타했다. 감미롭고 아름답고 여심을 흔드는 기타 연주였다.


노래를 부르는 제프 녀석은 덤프트럭을 몰던 녀석이었는데 노래를 잘 불러 테슬라에 합류한 것으로 안다. 물론 이 기억은 너무나 오래되어서 이게 맞는지 어떤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나는 알고 있다.


제프 녀석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보통 록스타들이(한국을 비롯해서, 한국에서는 서태지나 지드래곤이나) 20대 초반에나 낼 수 있는, 목을 긁어서 내는 아주 허스키한 정말 멋진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이 노래가 들어있는 앨범은 시디 두 장 짜리로 라이브 버전으로 언플러그다. 물론 나에게도 이 앨범이 있다. 하지만 어디 있는지 또 열심히 찾아봐야 할 것 같다. 카세트테이프로도 있는데 일단 찾게 되면 한 번 더 이야기를 하자. 나에게는 몹시 좋은 노래 테슬라의 ‘럽 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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