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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ug 08. 2021

첫 키스

추억 에세이

아직도 샤프를 쓰는 사람, 나


첫 키스에 대한 기억을 대부분 할까. 첫 키스라는 건 뭐라고 한다면, 그러니까 ‘그러니까’ 같은 것이다. 그러니까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앞의 내용이 뒤의 내용의 이유나 근거 따위가 될 때 쓰는 접속 부사’라고 되어있다. 그러니까 첫 키스는 마치 ‘그러니까’ 같은 것이다. 대체로 서로가 키스를 부르는 입술을 보며 아밀라아제를 서로에게 공급하며 혀를 꼬아서 하는 키스가 아니라 앞과 뒤의 이유나 근거 따위로 그저 이어주는 아무 기묘한 행위인 것이다. 느닷없이 일어날 때도 있고, 서로가 합일 하에 하지만 그저 허무하게 지나가는 경우도 있고, 한쪽은 첫 키스인데 또 다른 한쪽은 흥, 나는 아니거든, 하는 경우도 있다.


내 경우에 첫 키스를 떠올리면 그 경험을 첫 키스라고 부를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때는 6학년. 반초나 완초가 아닌 완국 6학년 때였다. 완초가 무엇이냐면 요즘의 줄임말로 반초는 반은 초등학교 반은 국민학교를 말하는 것이고, 완초는 전부 초등학교를 다녔다는 말이다. 나는 완국이니까 죽 국민학교였고 6학년 때의 일이다. 국민학교라는 단어는 마왕 신해철을 생각나게 한다. 신해철은 이름이 바뀌었다고 해도 국민학교를 나왔으니 그렇게 자신은 부르고 싶다고 말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https://brunch.co.kr/@drillmasteer/729 [의미 없이 올려 보는 신해철의 이야기]


내가 다닌 국민학교는 6학년이 되면 돌아가면서 선도위원을 맡는다. 6학년들이 때가 되면 각 반에서 한 두 명씩 돌아가면서 선도위원이 되어 아침에 교문 앞에서 저학년 아이들이 지각을 하는지, 이름표 같은 건 제대로 달았는지 검사를 한다. 조금 무서운 얼굴을 하고 말이다.


하지만 대부분 이런 선도 위원 하기를 싫어했다. 오전에야 그런 위치에 있다는 걸, 권력을 합법적으로 휘두르지만 모두가 다 하교 한 다음 학교에 남아서 청소까지 해야 했다. 학교 구석구석 곳곳을 다니며 쓰레기도 줍고 화단도 정리하고, 뭐 그런 잡다한 일을 해야 한다. 그래서 선도위원 따위 하기가 싫어지는 것이다. 특히 남자애들은 더더욱 하기 싫어서 갖은 핑계를 대고 오후에 빠져나갔다.


그런데 나는 참 이상하게도 모든 아이들이 하교 후 학교 곳곳을 청소하는 건 재미있었다. 그래서 다른 반 남자애들이 나에게 부탁을 하면 나는 대신 청소를 했다. 리어카 같은 수레를 끌고 다니며 학교를 온통 청소를 한다. 보통 6명이 한 조가 되어 청소를 하는데 처음에는 남학생, 여학생 비율이 반반이었다가 남학생들이 점점 빠지더니 결국 5명이 여학생이고 나 혼자 남자였다.


그래서 그런지 청소가 끝나면 다 같이 앉아서 공기놀이도 하곤 했다. 공기놀이를 하게 된 건 내가 여자애들보다 더 잘해서 나와 편을 먹으려는 여자애들이 있었다. 공기놀이의 관건은 마지막 5단계에서 공깃돌을 잘 모으는 게 중요하다. 그때 나와 주로 편을 먹은 여자애가 정희였다. 정희는 5학년 때 같은 반이었다가 6학년에 서로 반이 떨어졌다. 그러다가 돌아가면서 각 반에서 선출하는 선도 위원이 되면서 우리는 같이 만나게 되었다. 청소를 다 끝내면 우리는 학교 앞에 있는 길림성에서 짜장면을 한 그릇씩 먹었다. 학교의 청소를 다 끝내고 다 같이 지저분한 테이블이 있는 길림성에서 먹는 짜장면은 꿀맛이었다.


정희는 약국집 딸내미로 피아노도 잘 치고 공부도 잘했다. 무엇보다 동그란 얼굴이 예뻐서 학교에서 인기가 많았다. 청소를 하면서 수레를 끌 때 수레가 무거우니까 정희와 여자애들이 뒤에서 밀면서 꺄 하는 소리를 지른다. 그리고 탄력이 붙으면 여자 애들이 한 명씩 수레에 올라탔다. 그때는 꺅하는 소리가 더 커진다. 그러다가 뒤의 무게가 무거우면 나는 힘을 뺐다. 그러면 시소처럼 내 몸이 약간 공중으로 붕 떠오른다. 학교 안에 그런 내리막길이 있는 곳에서는 그렇게 신나게 청소를 했다. 그런 게 재미있었다. 한창 소리 지르고 노는 걸 좋아하는 십삼 세인 것이다.


6학년 때 짝지가 있었다. 대부분 짝지는 여학생과 남학생이었다. 그때는 무엇 때문인지 남자애들은 남자와 짝지가 되고 싶었고, 여자애들도 마찬가지였다. 아직 이성이라든가 그런 것에 눈을 뜨기 전이라 그랬는지 동성이 짝지인 녀석들을 부러워했다. 뭐가 재미있는지 동성끼리 짝지가 된 아이들은 늘 행복한 얼굴이었다.


나의 짝지는 여자애였는데 이름이 현주였다. 나와는 그렇게 친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서먹하지도 않은 그런 사이였다. 부등호를 굳이 따지자면 좀 친한 쪽으로 기울었다. 먹을 것이 있으면 같이 나눠먹기도 하고 두부공장(라고 해봐야 시장의 작은 두부 집)에 콩물로 두부를 만드는 것을 취재하러 같이 가기도 했다. 그러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지만 무슨 대화를 했는지 전혀 기억은 없다. 오히려 다른 반이었던 약국집 딸내미 정희와의 대화는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런데 어느 날 짝지인 현주가 좀 이상했다. 나를 따돌리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바로 뒷자리에 앉은 애들과도 친했는데 그들과 현주가 나를 따돌렸다. 당시에는 유행하는 샤프가 있었는데 우리 집은 그렇게 넉넉한 형편이 아니라 유행하는 샤프가 나올 때마다 구입하지 못했다. 그랬는데 아버지가 유행하는 샤프를 사주었다. 아마 그때 아버지가 다니는 회사가 부흥기로 들어가는 시기였다. 그때 집도 방 한 칸에서 두 칸짜리로 이사를 했다.


샤프의 모습을 기억하자면 요즘도 쓰고 있는 제도 샤프처럼 날렵하고 유행타지 않는 유행의 샤프였으면 좋겠지만 이런 샤프가 아니라 솜사탕을 비틀어 놓은 것 같은 샤프였다. 스크류바처럼 손잡이 부분이 비틀어져 있고 파스텔톤의 샤프였는데 인기가 대단했다. 하지만 다른 샤프들보다 월등히 비쌌다. 나는 아버지에게 그 샤프가 가지고 싶다고 그만 이야기를 해 버렸고 아버지는 샤프를 사주었다.


잠깐 딴 이야기로 요즘은 키보드나 폰으로 문자를 입력하니 샤프가 거의 보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요즘도 샤프의 세계는 그야말로 바다처럼, 아니 우주만큼 넓다. 엄청난 샤프의 유혹이 쇼핑몰 안에서 끌어당긴다. 특히 우리나라 동아 샤프는 종류도, 컬러도 다양해서 주문을 하고 싶어 죽을 것 같다. 게다가 개당 가격이 700원밖에 하지 않는다. 눈이 번쩍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 옛날 내가 국민학교를 다닐 때보다 더 저렴하다.


다시 돌아가서, 아버지가 사준 유행하는 샤프를 들고 학교에 갔을 때 현주는 왜 그런지 나와 대화도 하지 않고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무엇보다 기분이 안 좋은 건 뒤에 앉은 아이들과 현주는 잘 놀고 이야기를 하는데 나만 거기서 제외된 것이다. 이유를 물어야 하지만 나는 그만 이유를 물어볼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어느 시점이 지나고 나서는 그 이유를 묻는 것이 싫어졌다. 그리고 수업이 끝나면 각 반에서 모여든 아이들과 함께 학교의 청소를 했다. 물론 거기에는 정희가 있었다. 정희는 수업이 끝나고 내가 데리고 갔을 때 음악실에서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아마 그때 엘리제를 위하여를 연주하고 있었는데 나는 당시에 그 연주의 앞부분만 들어봤지 완곡은 들어보지 못했다. 그런데 정희가 완곡한 엘리제를 위하여는 너무나 멋진 곡이었다. 청소하러 가자고 불러야 했는데 그만 부르지 못하고 연주를 다 할 동안 기다리고 있다가 박수를 쳤다. 미소 짓는 정희.


우리는 또 신나게 청소를 하고 아이들과 함께 길림성에서 짜장면을 먹었다. 거기서 여러 이야기를 했는데 아버지가 사준 샤프를 자랑했다. 그때 정희도 필통에서 자신의 샤프를 꺼냈는데 나와 똑같은 색의 똑같은 샤프였다. 하늘색 파스텔톤의 샤프였다. 어쩐지 신기했다. 정희는 5학년 때에도 많이 이야기를 한 만큼 학교 청소를 하면서 이야기를 더 많이 하게 되었다. 그럴수록 현주와는 더 서먹하게 되었다. 나는 현주와 뒤에 앉은 친구들 틈에 끼지 못했다. 쉬는 시간이면 교실을 나가서 정희와 만나서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유월이 지나고 칠월이 되었다. 여름이 되었고 여름방학이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우리 모두는 아직 이성에 눈을 뜨기 전이라서 그런지 정희와 친하게 지냈지만 말 그대로 친구처럼 지냈다. 그건 정희도 마찬가지였다. 여자 친구 하자, 남자 친구 하자, 같은 뉘앙스가 우리에겐 없었다. 그냥 남자애들이 노는 식으로 정희도 껴서 놀고 나도 공기놀이를 하면서 놀곤 했다. 그러다 보니 현주와 아이들이 나를 따돌려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내 샤프가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찾아도 샤프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물건을 잘 잃어버리지 않는 내 경우에 비쳐보면 이상한 일이었다. 책상 위에 있는 걸 보고 쉬는 시간에 잠깐 나가서 화장실에 갔다가 정희를 만나고 들어왔을 뿐인데 없어진 것이다.


누구도 가져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샤프는 없어졌다. 이런 일로 선생님까지 부르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아버지가 사준 유행하는 샤프가 없어진 것은 정말 아까워서 속상했다. 그날 수업이 끝날 때까지 샤프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대로 없어진 것이다. 분명 누가 가져갔지만 그 누군가 역시 나타나지 않았다. 속상한 마음에 학교 청소를 하면서 정희와 여자애들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 여자애들은 누가 가져간 게 분명하니까 내일 선생님에게 말을 하자고 했다. 선생님을 불러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눈 감고, 그런 과정을 거쳐 샤프를 찾았다고 해도 샤프를 가져간 아이가 나온다면 그 녀석은 학교를 다니는 것이 힘들 거라는 게 가장 먼저든 생각이었다.


(2부는 내일 이 시간에)


오늘도 내 마음대로 선곡.

한올, 느린 산책.

https://youtu.be/C6Zc9MzOWgs 



나도 추천받아서 듣게 된 곡으로 말 그대로 쉬고 싶을 때, 또는 조급하게 앞만 보며 가다가 이 노래를 듣게 되면 숨을 한 번 쉬고 잠시 멈추게 된다. 그런 위로가 되는 노래다.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내가 얼마나 걸음이 빠른지, 빠르게 걷는지 알게 된다. 오래오래 걸을 수 있으려면 느리게 천천히 걷자. 하루키도 소설 속에서 물을 많이 마시고 천천히 걷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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