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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ug 10. 2021

야외에서 책 읽는 아버님

일상 에세이

이 글은 폭염으로 아스콘에 계란을 터트리면 그대로 익어버릴 일주일 정도 전에 써 놓은 글인데 시간이 이렇게나 흘렀다. 시간은 절대 여지를 두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시간이라는 건 몹시 좋아하는 사람과 아주 싫어하는 사람으로 갈라놓기도 한다. 오늘 오전 바닷가에 시원한 바람이 불어서 갑자기 생각난 건데, 어제 밤새 비가 왔다. 태풍의 영향으로. 그래서 창에 빗물이 붙었다. 다다닥 하며 밤새 세차게 비가 와서 창에 붙었다. 창에 붙은 비는 절대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데 비가 다시 내려 물방울에 붙으면 무게 때문에 밑으로 떨어져 소멸하고 만다. 창에 붙는 물방울을 떨어트리려는 비와 악착같이 창에 붙으려는 물방울을 보며 마치 아등바등 악착같이 인생을 부여잡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악착같이 부여잡고 있지만 무게가 무거워지면 밑으로 떨어져 누구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소멸해 버릴 텐데 100년도 살지 못하는 인생을 참으로 아등바등하며 보낸다. 아무리 이렇게 지낸다고 해도 시간은 손을 내밀거나 여지를 두지 않는다. 좀비처럼 의지만으로 앞으로 앞으로 갈 뿐이다. 그런 생각이 오전에 잠시 들었다.  



조깅을 하다가 몸을 푸는 곳에 가면 늘 그 시간에 나와서 책을 읽는 한 아버님을 본다. 폭염이라 밖이 더울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오후 6시가 지난 시간 강변의 그늘이 진 곳은 시원하다. 바람까지 불어서 정말 책 보기에는 딱이다. 아버님은 매일 비슷한 시간에 나와서 책을 본다. 볼펜으로 줄을 그어 가며, 옆에 필기를 해 가며 읽기 때문에 몹시 집중한다. 그 모습이 아주 멋있어 보인다. 나도 그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할아버지 나이가 되어서 책을 읽는다는 게 의미 없어 보이고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을 어릴 때는 했는데 노인이 되면 사실 생산적인 활동으로 시간을 보내지는 않는다. 대부분 시간을 멍하게 보내는 경우가 많다. 대체로 모여서 한 곳을 바라보며 있거나 돌아오지 않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다.

 

그게 아니라면 휴대폰으로 유튜브를 틀어 놓고 본다. 그에 비해 저 아버님은 매일 비슷한 시간에 비슷한 곳에 나와서 책을 읽는다. 나이가 들어 책을 읽은 게 삶에 무슨 도움이 될까,라고 생각했던 어린 날들을 반성한다. 책을 읽어 상상하고 공부를 하는 것만큼 하루하루를 충족하게 보낼 수 있는 건 나이 들어 없는 것 같다. 좀 떨어진 곳에서 몸을 풀고 있을 때 아버님이 와서 자리를 잡고 책을 읽은 모습이 시야에 들어오면 꽤나 마음이 안정된다. 아버님의 자세도 아주 안정적이다. 지형지물을 잘 이용하여 균형된 자세를 잡는다. 흐트러짐도 없다.


이런 아버님이 있는가 하면 작년부터 거의 매일 나오는 영감님이 있는데 노 마스크다. 정말 꼴 보기 싫다. 마치 이 공간이 자신의 집인양 생수를 받아서 입을 헹군 다음 카악 하며 가래를 뱉는다. 딱 꼴 보기 싫다. 작년에는 어두워지니 집에서 생수통 가장 큰 통을 가져와서 숨겨 놨다가 사람들이 뜸해지니 생수를 받아서 갔다. 나는 그걸 동영상으로 찍었다. 물통이 어찌나 무거운지 영감도 잘 들지도 못하는데 욕심 때문에 어떻게든 들고 간다. 며칠 전에는 5분만 걸어가면 공중화장실에 있는데 책 읽는 아버님 옆의 풀숲 맞은편에서 소변을 봤다. 그러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계속 그 영감을 쳐다봤다. 영감이 나의 시선을 피했다. 영감은 그 나이에 비해 몸이 좋고 건강하게 보인다. 매일 근력 운동을 하니 근육이 아직 발달해있다. 그렇다고 해서 시니어 헬창 같은 몸은 아니다. 걸음걸이는 거만하다. 늘 아주 천천히 거만하게 걸으며 팔 운동을 하면 입을 헹구고 가래를 뱉고 다리 운동을 하면 거만하게 좀 걸어서 물이 있는 곳에 가서 입을 헹구고 가래를 뱉는다. 어제는 영감이 타는 자전거를 세우다가 잘 못 발을 디더 옆으로 넘어졌는데 누군가에게, 자신을 이렇게 넘어지게 만들 게 했다고 주장하는 어떤 사람에게, 그러니까 허공에 대고 욕설을 심하게 했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만약 나에게 무슨 말이라도 한다면, 요컨대 왜 쳐다보느냐? 같은 말을 하면 나는 주머니에 항상 폰이 두 개라, 하나는 대 놓고 영상을 찍으며, 영감님 마스크 왜 안 씁니까, 여기 마스크 안 쓴 사람이 있습니까, 마스크 쓰고 싶어 쓴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다섯 샐 동안 마스크 쓰세요, 안 그럼 신고할 겁니다. 1, 2, 3, 한 다음 다른 폰으로 바로 신고를 할 요량이다. 영감은 마스크를 가지고 다니지 않기 때문에 다섯 샐 동안 마스크를 쓸 수 없다. 아무튼 꼴 보기 싫은 영감이다.


그리고 매일 나오는 초딩들이 있다. 두 명의 초딩으로 6학년으로 보인다. 둘 다 통통하다. 이 녀석들 늘 저기에서 논다. 매일 저기에서 빗물이 빠지는 하수구에서 뭔가를 늘 찾고 있다. 어느 날 보니 메뚜기 중에 방아깨비를 잡는 것이었다. 방아깨비가 저기에 있는 모양이다. 요즘은 메뚜기를 거의 볼 수 없는데 초딩들이 메뚜기를 매일 저기서 잡는 것이다. 그런데 가까이 가서 보니 방아깨비의 다리를 하나씩 뜯어서 죽이는 재미에 빠져 있었다. 곤충을 죽이는 재미 때문에 매일 저기에서 메뚜기를 찾고 있었다. 초딩 때 벌레 죽이는 재미를 알게 되면 걷잡을 수 없다. 잠자리는 날개를 떼서 서서히 죽인다거나, 좀 큰 개미는 더듬이를 떼어 낸다거나. 하지만 요즘은 곤충이 드물어서 곤충을 찾기도 힘든데 녀석들 잘도 찾아내서 다리를 뜯어 죽이는 재미를 서로 공유하고 있었다. 방아깨비의 다리를 하나씩 떼서 바닥에 버린 다음 몸통만 남은 방아깨비를 버리고 다시 메뚜기를 잡으러 다녔다.


시커멓게 탄 내가 그 앞에 딱 가서 버티고 서서 초딩놈들을 봤다. 슬금슬금 눈치를 본다. 메뚜기를 잡아서 죽이는 게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하지만 대 놓고 뭐라 할 수는 없었다. 법으로 정해놓은 것도 아니고. 그저 약간 무서운 얼굴을 하고 사지가 분리된 채 버려진 방아깨비 앞에 서서 저 녀석들을 노려 보는 수밖에 없었다. 눈치를 슬슬 본다. 내가 발을 탁 구르며 웍! 하는 큰 소리를 내면 호다닥 도망갈 것만 같다. 초등학생 녀석들도 내가 가면 늘 있으니 올여름에는 거의 매일 나왔다. 매일 나와서 방아깨비를 잡아서 다리를 하나씩 떼서 죽였다. 하루에 방아깨비의 세계가 하나씩 죽어갔다. 이 좁은 공간에도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오고 가는데 이 넓은 세계에는 얼마나 많은 호러블 한 인간들이 있을까. 태양에 익은 풀냄새가 나고 메뚜기가 초딩들에게 죽어가고, 땀을 흘리는 사람들이 운동을 하고, 한 아버님은 그늘에서 책을 읽었다. 여름인 것이다.


조깅을 하면서 고개를 들어 보면 자연은 그림을 그리고 있다.

굳이 제목을 붙이자면 '바람이 그린 그림'
빗질하는 하늘
여름에만 볼 수 있는 금빛 하늘
붉은 구름의 역습
조깅 후 포토존에서



오늘도 내 마음대로 선곡

https://youtu.be/G9tjIAas2hs

클릭비 녀석들의 백전무패가 나왔을 때 이 강렬하고 흡입력 쩌는 노래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이토록 강렬하게 비트가 들어가는데 또 랩은 왜 그렇게 좋은지. 그러다가 호석이와 종혁이가 나와서 부르는 부분의 가사는, 나에게 - 겁먹지 말라고, 세상 앞에서 두려워 울지 말라고, 모든 걸 다 걸고 싸워 한 번 부딪쳐보라고, 매일 쓰러지더라도 일어나라고, 세상에 저 끝, 절망의 끝에는 희망이 있으니까 날아갈 수 있다고, 이 세상을 가져보라고 외쳤다. 이 가사는 다른 많은 노래가 주는 위로에 비해서 너무 좋은 것이다. 아무튼 요즘 들어도 어색하지 않고 좋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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